소설리스트

황제의 의무방어전-77화 (77/235)

〈 77화 〉 만수절(萬??)

* * *

"무술 대회 말입니까?"

슬슬 퇴궁하려던 중 갑자기 집무실로 불려온 재상은 그 말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만수절에 무술 대회라니?

"그리 되었다냐."

'...이 사람 짓이군.'

그제야 집무실에 있는 바아간과 무카를 발견한 재상은 눈을 가늘게 떴다.

재상은 황제에게 바람을 넣은 사람이 이 묘왕 무카라는 걸 확신했다.

뭐...

"나쁠 것은 없겠지요."

생각보다 나쁜 제안은 아니다. 시간이 촉박하긴 하지만.

재상은 빠르게 머리에서 주판을 굴려보았다.

물론 마차 열 개 분량의 금화는 황실에서도 꽤 큰 지출이긴 하나... 평소 폐하께서 검소한 생활을 한 것도 있고, 애초에 그 정도는 황제의 여흥을 위한 지출이라 치면 그리 많은 지출도 아니었다.

게다가...

'회수 가능하다.'

참가자의 면면을 보면 화려하기가 그지없다.

저번 천황제처럼 무술 대회를 관람할 수 있는 좌석표를 판매한다면... 어느 정도 회수가,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이 가능했다.

황실에서 운영하는 상단도 흑자 운영을 거듭하고 있고, 지금 황실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부유한 편이니...

사실 황실의 재정 상태는 금액 회수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나 재상의 천성이 회수를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을 허락하지 못했다.

"그러면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표의 판매는 황실 상단에게 일임하고... 흐음, 노점도 생각을 해두어야겠군요."

"그래 세부적인 것은 그대에게 전부 일임하마."

황제의 말에 재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러났다.

"재상에게 맡겼으니 알아서 잘할 것이다."

뭐, 이젠 재상이 알아서 하겠지.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무술 대회의 준비는 걱정하지 않았다.

"기대된다냐."

무카는 벌써 대회를 기대하면서 딸을 만나러 가겠다며 나가 버렸고, 바아간 역시 오랜만에 딸을 보고 싶었는지 오르테가의 위치를 물어보고는 사라졌다.

황제만 집무실에 남아서는 남은 일을 처리하고 있을 때였다.

"들어가도 될까요?"

"...언제는 허락을 받고 들어왔느냐. 편히 들어오거라."

반가운 목소리에 황제는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슬슬 돌아올 때가 되긴 했다.

드륵.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온 나르타는 황제를 보며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다녀왔어요."

그 모습이 참으로 오랜만이라... 황제는 반갑게 느껴졌다.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나선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래, 어디 보자..."

황제는 가장 먼저 그녀의 배를 만져 보았다. 그리고는 당황했다.

"응?"

"아직 태동이 느껴질 시기는 아닌 걸요?"

그 모습을 보며 후후 웃던 나르타의 말에 황제는 머쓱한 얼굴로 배에서 손을 똈다.

아, 아직 그런 시기는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서 황제는 참으로 민망했다.

"그런가? 짐은 아이에 대해선 잘 몰라서... 그래, 이 배에 태영이가 있구나."

황제는 나르타의 배를 보면서 입가에 웃음을 지우지 못했다.

멀리 있을 땐 실감하지 못했는데... 자신이 아이의 아버지가 될 거라는 게 그제야 실감이 났으니까.

"아들일까? 딸일까? 일단 이름은 양쪽 다 고민해 봐야겠구나."

황제는 그리 말하면서 나르타의 배를 쓰다듬으며 고민에 잠겼고, 그 모습을 보면서 나르타는 웃었다.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그래 보이느냐?"

나르타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내심 안심했다.

솔직히 자신만 기뻐할 일이고 폐하께선 그저 덤덤하게 넘길지 모른다는... 그런 걱정을 안 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황제가 저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나르타는 괜히 더 기분이 좋아졌다.

"확실히... 나쁘지 않은 기분이구나."

황제는 그리 말하고는 웃었다.

선제께서 자신을 보면서 늘 웃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지금은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자식을 보는 아비의 심정이 이런 것이었나...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말했다.

"몸 관리를 잘하거라. 이젠 홀몸이 아니니."

"네, 그런데 다른 할 말은 없나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르타가 뭔가 기대가 가득한 얼굴로 자신을 보며 묻자 황제는 고민했다.

다른 할 말이라... 잠시 고민해본 황제는 그제야 그녀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그래서 황제는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구할 수 있었다.

"잘 다녀왔느냐?"

"네!"

그 말이 정답이라는 듯이 웃으며 대답하는 나르타를 보며 황제는 그제야 그녀가 돌아왔음을 제대로 실감했다.

­­

"호오 대회 말이냐. 재미있겠구나."

"무술 대회라니 기대가 되옵니다."

나르타가 가기 무섭게 자기 차례라는 듯이 찾아온 마리아와 세헤라자드는 무술 대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흥미를 표했다.

"그보다 만수절이라... 본녀에게 받고 싶은 것이라도 있느냐?"

마리아가 곰방대로 물방울을 만들어 내며 묻자 황제는 피식 웃었다.

"마력초로 별걸 다하는구나."

"호오? 관심이 있느냐? 그대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준비해 줄 수 있는데."

마력초가 마력, 다른 이름으로 기 회복에 좋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황제는 딱히 그런 게 필요해본 적이 없기에 사양하고 싶었다.

"펴보니까 별로던데."

"유감이구나. 동지를 하나 구할 수 있나 했는데 말이야."

마리아는 아쉬워하면서도 실실 웃었다.

그녀는 모처럼 황제와 이런 시시한 잡담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얻은 것이 즐거웠다.

"온천은 참으로 좋더구나. 그대도 함께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사옵니다."

잘 포장된 물건을 들고 서 있던 세헤라자드가 그 말에 공감을 표하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한 번 다 같이 가는 것도 좋겠구나."

"그보다 선물이옵니다."

그때 세헤라자드가 황제에게 들고 있던 물건을 내밀었다.

"당일에는 번잡할 듯 하여서... 미리 준비했사옵니다."

그녀의 말에 황제는 그녀가 건넨 물건의 포장을 풀었다.

과연...

"짐이 마음에 들어 하는 게 뭔지 잘 아는 거 같구나."

신월도인가... 황제는 그야말로 명품이 분명해 보이는 투르크족 전통 무기를 보면서 감탄했다.

참으로 마음에 차는 좋은 선물이었다.

"참으로 마음에 드는 선물이다. 고맙구나."

황제가 진심으로 기뻐하며 감사를 표하자 세헤라자드는 기쁜 듯 얼굴을 붉혔다.

"기뻐해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옵니다."

세헤라자드가 고개를 푹 숙이면서 말하자 황제는 신월도의 날을 만져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번 대회에 들고 나가야겠구나.'

모처럼 받은 선물이니 바로 써봐야지.

황제는 그리 생각하며 한참을 그렇게 검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세헤라자드는 흡족해했고, 마리아는 초조한 얼굴로 물었다.

"보, 본녀에게 필요한 게 정말 없는가?"

"정말 고맙다. 이 검은 잘 쓰도록 하마."

황제는 그런 마리아의 질문을 깔끔하게 무시하며 세헤라자드에게 거듭 감사를 표했다.

그 모습을 본 마리아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볼을 부풀렸다. 그리고는 황제의 옷자락을 잡고는 마구 흔들기 시작했다.

황제는 그런 마리아를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애가 대체 몇이지?'

제일 연장자가 저리 어린 애 같다니...

황제는 그런 생각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저리 화가 났으니 조금 달래줄 필요가 있어 보였으니까.

­­

'선물로는 뭐를 고르지?'

리사는 고민에 빠졌다.

오르테가 비에게 물어 봤지만 본인에게 물어보라는 전혀 도움도 안 되는 조언만 받았을 뿐이라...

그녀는 초조한 얼굴로 선물을 고민 중이었다.

"자아. 완성이네요오. 내일 선물로 드리면 되겠네요오."

그런 리사의 앞에서 느긋하게 케이크를 만들고 있던 마리프는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아무래도 황제의 만수절 선물로 케이크를 준비한 모양이었다.

니사는 상단에서 물건을 고르는 모양이었고, 케르는 왜 선물을 준비해야 하냐고 되물었으며, 설화와 미르예프는 요리를 준비 중인 모양이었다.

오르테가 비 역시 선물을 준비한 거 같았으니...

리사는 초조함을 느끼고 있었다.

'무얼 줘야 하지? 대체 뭘 줘야...'

폐하께서 기뻐하실까?

한참을 고민하던 리사는 결국 결정을 내렸다.

그녀가 준비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최선의 선물을 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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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는 아랑가티의 초원.

"이거 폐하의 만수절 선물로 바치면 딱이겠네."

그곳에서 달리아가 막 잡은 코끼리의 상아를 보면서 말하자 여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인 거 같아."

레오니도 그 말에 공감을 표했다.

그녀는 코끼리의 가죽을 벗기면서 말했다.

"난 그러면 가죽으로."

여화는 그 말에 뒤에 있던 숫사자의 가죽을 벗기면서 말했다.

"그러면 난 이걸로 할게."

"상아가 제일 비싼데... 언니한테 양보해주는 거야? 이 언니는 감동했어."

달리아는 그녀들의 말에 감동한 표정을 지으면서 능숙하게 상아를 잘라 냈다.

코끼리를 해치운 건 달리아의 창이었다.

그녀가 던진 창은 확실하게 코끼리의 머리를 관통했으니까.

여화와 레오니는 사자 무리를 사냥할 때 크게 활약했는데 둘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사자가 한 마리씩 죽어 나갔다.

달리아가 생각하는 사냥과는 조금 달랐지만... 그런 점에서 그녀들은 확실히 훌륭한 사냥꾼이었다.

"확실히 사냥이라는 거 성취감이 있네."

여화의 말에 달리아는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재미있지? 다음에 또 오자?"

그런 그녀의 제안에 여화와 레오니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동을 도와줄 마법사를 기다렸다.

만수절이 오기 전에... 얼른 돌아가야 했으니까.

­­

"크하하! 역시 확실하게 패배했구냐."

케르의 말에 무카는 호탕하게 웃었다.

역시 졌구나.

하긴 이 말괄량이가 얌전히 황제의 곁에 있을 때부터 이미 예상했던 일이긴 했다.

"냐... 주인은 확실히 강했다냐."

케르는 그렇게 말하고는 얼굴을 붉혔고, 무카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드디어 주인이 생겼으니 한 명의 훌륭한 묘인이 되었구냐. 장하다옹."

무카는 그런 딸이 자랑스러웠다.

케르는 그 말에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힌 채 꼬리를 마구 흔들었다.

"그, 그렇다냐. 이제 난 한 명의 훌륭한 묘인 여성이다냐."

주인이 없는 묘인 여성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바로 성적 매력이 없는 도태 묘인.

대부분 주인이 없는 묘인 여성은 이쪽에 해당하기에 묘인 여성에게 주인이 없다는 건 부끄러운 일로 여겨지는 경우가 흔했다.

다른 하나는 강해서 주인으로 섬길 강한 남성이 없는 강한 묘인.

이 경우엔 젊을 땐 매우 존중을 받지만... 결국 번식을 못 하기에 늙으면 자연스럽게 평가가 박해진다.

결국 묘인 여성에게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강한 주인을 만나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는 동시에 번식도 할 수 있는 여성이 되는 것.

그런 점에서 케르는 가장 이상적으로 성공한 묘인 여성인 셈이었다.

그것이 무카는 참으로 뿌듯하였다.

"좋은 새끼를 낳거라냐."

"그럴 거다냐!"

해맑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케르를 보면서 무카는 흐뭇한 얼굴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자기 딸은 이리 훌륭하게 성장했다.

그러니까...

'이겨야지.'

아버지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무카는 이번 싸움 대회는 절대 질 수 없었다.

그렇기에 무카는 딸의 얼굴을 보면서 각오를 다졌다.

­­

"그래...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구나."

바아간은 자신의 앞에서 실실 웃으면서 수를 놓는 오르테가의 모습에 겉으로는 평온을 가장하긴 했지만 속으로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저 녀석이 수를 놓는다니?

조금 나쁘게 말해서 애새끼 같던 자신의 딸이 저런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바아간은 놀람을 금치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래 보여요? 헤헤."

그런 바아간의 말에 오르테가가 해맑게 웃으면서 말하자 바아간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이곳에 있는 딸은 확실히 행복해 보였다.

그렇기에 바아간은 그 모습이 뿌듯하기도 하면서도...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마치 딸을 빼앗긴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 이제 황제의 여자가 되었으니 빼앗긴 게 사실이긴 한데... 그걸 막상 이렇게 실감하니까 조금 서운하다고 할까?

바아간은 복잡한 심경으로 오르테가를 보았다.

"그 녀석이 말이죠? 그래서 제 고백에 얼굴을 붉혔다니까요?"

'폐하가...?'

딸이 고백했다는 사실에도 놀랐지만, 더 놀라운 건 폐하의 반응이었다.

정말... 그 폐하께서 그런 반응을 보였다고?

솔직히 바아간은 믿어지지가 않았다.

'불쌍하게도...'

아무래도 딸이 너무 힘든 사랑을 하다 보니 헛것을 본 모양이구나.

바아간은 그런 생각하며 오르테가를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물론 오르테가는 신나서 그때의 이야기를 하느라 그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것도 그 녀석 생일 선물로 준비 중이거든요. 어때요? 멋지죠?"

"...잘 만들긴 했구나."

솔직히 직접 수를 놓고 있는 걸 보지 않았다면 딸 아이가 만들었다고는 못 믿었을 정도로 잘 만들긴 했다.

바아간은 그런 생각하면서 오르테가의 이야기를 한참 동안 들어 주었다.

조금 망상이 섞여 있는 거 같긴 했지만... 그런 딸의 망상에도 어울려주는 것이 상냥한 아버지의 역할이라고 믿었으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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