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제의 의무방어전-78화 (78/235)

〈 78화 〉 만수절(萬??)

* * *

"선물이랍니다아!"

다음날.

조정에서 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집무실에서 황제를 반긴 것은 마리프와 미르예프, 그리고 설화였다.

"?"

황제는 집무실에 마련된 휴식용 식탁 위에 케이크와 요리가 올려져 있는 걸 보고는 놀랐다.

"그대들이 준비한 건가?"

"네, 만수절 선물이랍니다아. 역시 이런 건 요리가 좋을 거 같아서요오. 저희 셋이 준비해봤어요오."

"부족한 솜씨지만... 노력해 보았습니다."

마리프와 미르예프의 말에 황제는 설화를 보았다.

"헙! 죄송합니다."

자신이 만들어놓고선 그 요리에 정신이 팔려 있던 설화는 황제의 시선이 자신에게 닿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사과했다.

"빈이 먹고 싶어 하는 거 같으니 같이 들지."

"어머나... 선물인데요오?"

선물을 같이 먹는 건 조금 그렇다는 듯한 마리프의 말에 황제는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짐이 혼자서 먹기엔 그 양이 많구나. 게다가..."

황제는 설화에게 앞에 놓인 산적을 하나 집어 먹여주며 말했다.

"그대들과 같이 식사하는 것까지 선물이 아니었나?"

"어머나. 어머나. 폐하께선 말을 참 기쁘게 해주신다니까요오."

그 말에 홍조를 띄우며 기뻐하던 마리프는 순순히 자리에 앉았고, 미르예프도 머뭇거리다가 자리를 잡았다.

설화는 이미 식사에 정신이 팔려 있는 수준이었다.

"잘 만들었구나. 이 산적. 누구의 솜씨냐?"

황제가 산적을 하나 먹어보며 감탄하자 미르예프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제가 한 것입니다. 마음에 드시는 지요?"

"그래, 옛날 생각이 나는 맛이야.... 황태후께서 알려주었느냐?"

미르예프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가 좋아하는 음식을 물어보자 황태후께서 말해주신 것이 이 산적이었으니까.

"확실히 맛있어요."

우물. 우물.

그 산적을 집어먹으면서 설화가 풀어진 얼굴로 중얼거리자 황제는 웃어 버렸다.

하여간 잘 먹는 것이 보기 좋기는 하였다.

마리프는 느긋한 움직임으로 음식을 먹고 있었고, 미르예프는 계속 황제의 눈치를 보면서 음식을 집었다.

'이런 북적거리는 식사도 그리 나쁘진 않구나.'

그런 그들에게 음식을 먹여주기도 하면서 황제는 미소를 지었다.

조금 이른 점심이긴 하지만...

황제는 비들과 같이 식사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폐하! 다녀왔습니다!"

비들과의 점심시간을 끝내고 정무를 보기 시작한 지 대략 3시간 후.

허락도 구하지 않고 익숙한 듯 벌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달리아는 어깨에는 상아를 짊어진 채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그래, 잘 다녀왔느냐?"

"완전 최고! 동생들이랑 같이 사냥하니까 더욱 좋던데요? 다음엔 폐하도 같이 해요."

황제의 질문에 달리아가 해맑게 웃으면서 그리 말하더니 상아를 내밀었다.

"그리고 이건 만수절 선물! 헤헤. 멋지죠? 그냥 장식해 둬도 괜찮을 정도로 질이 좋아요."

"...상아구나. 잘 받도록 하마."

재상이 좋아하겠군.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일단 상아를 벽에 세워두었다.

"선물입니다."

그 뒤에 들어온 레오니가 코끼리 가죽을 내밀자, 그녀와 같이 들어온 여화는 사자 가죽으로 만든 양탄자를 건넸다.

"멋지죠? 숫사자 가죽을 가공해서 양탄자로 만들었어요."

과연... 이건 또 박력이 넘치는군.

황제는 숫사자 가죽 양탄자를 보며 감탄했고, 코끼리 가죽은 그 용도를 고민해 보았다.

뭐, 재상에게 주면 알아서 잘 쓰겠지.

황제는 그것들도 잘 말아서 벽에 세워두고는 그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선물 고맙구나."

그 용도와 쓸모는 젖혀두고 자신을 위해서 그 선물을 준비했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갸륵하였기에 황제는 그녀들을 칭찬해주고는 사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바로 그냥 창으로! 팍! 뚫어 버린 거죠. 헤헤."

"저흰 검으로 사냥했는데 다음엔 투창을 배워 보고 싶어요."

여화의 말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배워두면 언젠가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 나쁠 건 없다."

"그보다 무슨 무술 대회를 한다 들었습니다."

갑자기 레오니가 무술 대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여화도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도 들었는데 무슨 대회인가요?"

"무카의 제안으로 벌이는 대회다. 그대들도 참가하게 될 거야."

그 말에 여화와 레오니는 눈을 반짝였다.

그 이야기는 소문이 사실이라는 이야기였으니까.

"참가자는 그 소문 그대로인가요? 보상도?"

여화의 질문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고, 여화는 손을 꽉 쥐면서 말했다.

"반드시 우승해서 폐하께 도전하겠어요. 그때가 되면..."

여화는 진심을 담아서 황제에게 요구했다.

"폐하의 전력을 보여주세요."

그녀는 보고 싶었다.

그때 결투에서 보여준, 봐주는 듯한 황제의 검이 아닌, 전력으로 내지른 황제의 공격이 말이다.

"그러도록 하마."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레오니는 여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녀 역시 여화와 같은 마음이었다.

"제가 죽어도 좋으니까 폐하의 진심이 담긴 일검을 보고 싶습니다."

그녀는 설령 죽더라도, 그런 황제의 검을 맞아보고 싶었다.

그런 둘을 보면서 황제는 웃었다.

역시 그녀들이라면 바로 참가해 줄 거라 믿고 있었다.

물론 레오니의 요구는 조금 곤란했지만...

비를 대회 중에 죽인 황제라니... 그는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일로 역사에 기록되고 싶진 않았다.

"그런 건 우승했을 때의 요구할 수 있는 것이지. 짐의 예상으로는 아마도..."

게다가... 비들의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나 어려운 싸움이 될 거다.

아마도 황제가 볼 때 강력한 우승 후보는...

'역시 모용진이 없는 지금은 리처드 고드프리겠지.'

황제가 볼 때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는 바로 이자였다.

애초에 그의 강함을 알고 있기에 황제가 친히 국경의 방위를 맡긴 것이니까.

원래 장군들을 임명하는 것은 병부 상서의 일이었다.

괜히 대장군이 무관들의 장이면서도 병부 상서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병부 상서는 무관에게 있어서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했으니까.

다만... 그런 병부 상서의 권한을 무시하고 황제는 자신의 재량으로 장군을 두 명 정도 뽑을 수 있었는데.

황제가 뽑은 두 명의 장군이 바로 리처드 고드프리와 환명호였다.

그중 리처드 고드프리는 그 무위를 보고 황제가 직접 선별한 야만족을 확실히 제거하기 위한 검.

애석하게도 야만족들이 제국의 발아래에 들어오는 걸 선택했기에 정작 제대로 써 보지 못했지만...

그 무위만큼은 황제가 보증했다고 봐야 할 정도의 실력자였다.

"아니다. 그런 걸 말해 봐야 그대들에겐 의미가 없겠지. 최선을 다하거라. 짐의 전력을 보고 싶다면."

허나 황제는 굳이 그 사실을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지금은... 그저 그녀들이 열심히 해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

"자! 선물!"

그날 밤.

황제는 자기 침소까지 찾아와선 선물을 건네는 오르테가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이건 또 어디서 구한 것이냐?"

잘 만든 손수건이었다.

특히 손수건에 새겨진 황금 독수리는 꽤 수를 놓는데 능숙한 사람의 솜씨가 분명했다.

"그야 직접 만들었지."

"...뭣이?"

황제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이걸 직접 만들었다고? 이 푼수가?

황제는 믿을 수가 없었다.

"손수건 천은 산 거지만... 수는 내가 놓은 거야. 어때? 폐하? 마음에 들어?"

"...황태후께서 뭔가를 가르치고 있긴 하구나."

물론 저 녀석이 거짓말을 할 녀석은 아니니 사실이긴 하겠지만... 황제는 여전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저 녀석이 이 정도의 기술을 얻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으니까.

황제는 그녀에게 이 정도나 가르친 황태후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쌍둥이들도 뭔가를 준비한 건가?"

"아, 전... 여기요."

뒤에서 우물거리고 있던 리사와 니사를 보며 황제가 묻자 니사가 먼저 머뭇거리며 잘 포장된 물건을 내놓았다.

오르테가가 '방금 그 말은 무슨 뜻이야?' 하면서 귀찮게 굴긴 했지만 황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면서 그녀의 선물을 풀어보았다.

"커피를 준비했어요. 집무실에 두면 좋을 듯해서..."

안에 있던 것은 꽤 비싼 커피였다.

황제는 잘 모르지만 예전에 재상이 말한 귀한 커피 종류 중에 하나로 보였으니까.

"호오... 고맙구나."

황제는 일단 감사를 표했다.

커피를 타는 방법 같은 건 뭐... 찾아보면 알 수 있겠지.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커피를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저, 저는..."

"?"

그때 리사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자 황제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그녀의 손에는 작은 상자가 들려 있었다.

"사실 고민을 많이 했지만... 역시 이게 가장... 에잇! 아무튼 선물이예요!"

리사가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황제에게 상자를 내밀자 황자는 그 상자를 열었다.

그러고는 그 내용물에 놀랐다.

"이건... 조금 놀랍구나."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황제가 정말 가지고 싶었던 물건이었으니까.

"제, 제가 준비할 수 있는 것 중에선 가장 귀한 것이거든요."

리사의 말대로 이건 황제도 쉽게 구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아니, 오직 오페아 가문의 장녀였기에 구할 수 있는 물건이겠지.

상자에 있는 것은 반지였다.

겉으로 보기엔 작은 보석이 박힌 수수한 반지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건 마법 반지였다.

그것도 오페아 가문의 비전 마법이 담겨 있는 반지.

"구하기 힘들었을 텐데..."

"폐하께 드려도 되냐구 물어 봤는데 아버지께서 허락해주셔서요."

리사가 볼을 긁적이며 말하자 황제는 오페아 가문의 수장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 딸바보 녀석.'

황제는 어이가 없었다.

전에 자신이 비전 마법을 보여달라고 할 땐 '아무리 폐하시라도 비전을 함부로 보일 수는 없습니다.' 같은 말을 지껄이더니... 딸의 부탁에 아예 비전 마법 자체를 홀랑 넘겨 버려?

하지만... 확실히 황제에겐 매력적인 마법이었다.

"정말... 고맙구나."

황제는 그녀에게 감사를 표하고는 홀로 남아서 반지를 오른손 검지에 꼈다.

그러고는 중얼거렸다.

"반지는 그대가 보고 싶은 것을 보여 준다."

지잉.

그러자 반지가 빛나더니 곧 허공에 영상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과연."

황제는 역시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페아 가문의 비전 마법은 다름 아닌 시전자가 가장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보여주는 마법이다.

어쩌면 오페아 가문의 수장은 비전 유출을 걱정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남에게 보여주는 걸 꺼렸을 뿐일지도 모르겠다.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영상에서 나온 전우들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저 친구는 아마도 화살에 죽었지, 저 친구는 자신 대신 칼을 맞았다. 저 친구는 낙마해선 머리가 깨졌던가...

저 친구는...

하나, 하나,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회상하면서...

황제는 그 그리운 얼굴들을 하나하나 전부 눈에 담았다.

"그래... 이렇게 생겼었지."

덕분에 그들의 얼굴을 다시 한번 새겨둘 수 있었다.

황제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반지를 다시 벗었다.

'...최고의 선물이군.'

지금까지 받은 선물 중에선 과연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렇기에 황제는 한참을 그렇게 앉아선... 방금 본 얼굴들을 다시금 가슴에 새겼다.

­­

"만수절을 맞아서 무술 대회라... 이거 참. 제 의사는 리플렉션이 안 된 겁니까?"

재상은 앞에서 능청스럽게 말하는 남자를 보면서 잔뜩 긴장했다.

풍성한 턱수염은 전혀 관리하지 않았는지 제멋대로 자라 있었고, 붉은 기가 감도는 금발은 올백머리로 해 둔 근육질의 중년 남자는 싱긋 웃었다.

그야말로 남성미가 넘치는 중년의 남자는 사람만 한 거대한 대검을 옆에 낀 채 느긋하게 술을 마시며 말했다.

"만수절 콩그레츄레이션 하러 국경에서 왔단 말입니다. 오케이? 검을 윌드하러 온 게 아니라고요."

"그래서... 장군께서는 거절하실 겁니까?"

재상의 날이 선 질문에 남자는 가볍게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었다.

"노! 노! 노! 이런 대회라면 그럴 스케줄이 아니라도 참가해야지요. 보상도 아주 쿨! 멋집니다. 정말 먹음직스럽습니다."

남자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폐하와 리벤지. 아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거 폐하께서 저한테 찬스를 주실 모양이군요."

"..."

당연히 자신이 우승이라는 듯이 말하는 남자를 보고도 재상은 딱히 부정할 수 없었다.

저 괴상한 말투도 그의 평가를 낮출 요소는 되지 않았다.

이변이 없다면 모용진이 없는 이상 우승은 당연히 이 남자일 테니까.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남자의 검은색 대검이 등불에 반짝였다.

국경 방위 사령관이자.

폐하께서 직접 보고 장군으로 뽑은 앵글족 최강의 전사.

전장의 사자라고도 불리는 리처드 고드프리는 웃는 얼굴로 술을 들이켰다.

정말이지... 그는 벌써 대회에 대한 기대로 흥분 상태였다.

아랫도리가 빳빳하게 설 정도로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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