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래서. 저를 등용하시겠다고요."
퉁퉁 부은 얼굴로 콰오콴이 공손하게 앉은 채 질문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그는 땅에 붙어 있는 시간보다 공중에 떠 있는 시간이 길 정도로 두들겨 맞았다.
그래서 그런가? 황제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
"그래, 짐의 것이 되어라."
황제는 그의 거처에서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고, 그 행동에 콰오콴은 조금 놀랐다.
솔직히 다른 것도 아닌 황제가 나뭇잎만 조금 깔린 바닥에 털썩 주저앉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그러고 보니 그런 제안을 받았던 것도 같군요."
콰오콴은 턱을 만지작거리면서 대답했다.
참으로 대단한 자였다.
황제의 친서를 제대로 읽지도 않았다는 것을 저리 당당하게 밝히다니.
라파이르는 그 배포에 감탄했고, 달리아는 그 겁을 상실한 행동에 감탄했다.
황제는 그저 재미있다는 듯이 웃을 뿐이었다.
"거절한다고 하면 어쩌실 겁니까?"
"아마 계속 찾아오겠지."
"...하, 솔직히 전 어딘가에 속박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콰오콴은 정말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물론 그렇다고 황제가 그 말을 받아 준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황제는 그게 무슨 상관이지? 하는 듯한 얼굴로 물었고 콰오콴은 당당하게 말했다.
"거절하겠습니다."
"그럼 내일 올까? 아니면 그대로 포박해서 데려가 다시 제안 할까?"
"..."
콰오콴은 황제가 생각 이상으로 집착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말했다.
"전 아내가 있습니다."
"짐도 있다."
그걸 왜 말하는 거지?
황제가 그런 눈으로 보자 콰오콴은 헛기침했다.
아무래도 이건 오해였던 거 같으니까.
"크흠! 소신을 보는 폐하의 눈이 워낙 뜨거워서 남색을 좀 의심을..."
"그대는... 그래, 자신감이 넘치는 건 좋은 일이지."
황제는 그 대답에 기가 막혔으나 긍정적으로 봐주기로 했다.
오히려 달리아가 웃음이 터져서 곤란했지.
"크흐흡! 폐하께서 남색... 크흡!"
"그러고 보니 저 여자는 누구입니까?"
콰오콴이 달리아를 보면서 그제야 묻자 황제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짐의 비다. 보다시피 짐은 자네 같은 곰보단 그래도 여인이 좋구나."
황제의 솔직한 말에 콰오콴은 호탕하게 웃었다.
"아! 이거 정말이지... 크하하! 비 전하 앞에서 이상한 말을 한 셈이 되었군요. 아무튼 전 어딘가에 속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콰오콴은 다시 한번 거절 의사를 밝혔고,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대가 그런 걸 좋아하지 않듯. 짐 역시 거절 당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아."
"!"
콰오콴은 그 말에 움찔했다.
이건 협박인가? 콰오콴이 공포로 몸을 떨고 있을 때 황제의 입이 다시 열렸다.
"협상을 하자. 원하는 게 무어냐. 짐의 것이 된다면 그대가 원하는 것을 내어주마."
땅을 달라면 주겠다.
산을 달라고 해도 주겠다.
금은보화를 달라고 해도 줄 것이며, 바다를 달라고 해도 줄 생각이 있었다.
황제의 그런 제안에 콰오콴은 망설였다.
사실... 그는 황제에게 정말 받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폐하께선 소인에게 기운을 나눠 주실 수 있습니까? 폐하의 기운을 말입니다."
콰오콴은 그리 말하며 호리병을 꺼냈다.
그는 꼭 강자의 기운으로 해 보고 싶은 게 있었으니까.
"무엇에 쓰려고?"
황제는 그 부탁에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기운을 어디다가 쓴단 말인가?
기운을 주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 황제가 물어 본 이유는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사실 제가 실전된 주술 하나를 찾아냈습니다. 바로 수호신을 만드는 주술이지요."
그 말에 콰오콴은 솔직하게 이야기 했다.
그는 실전된 주술을 찾았으나 아직 확인해보지 못하고 있었다.
"수호신?"
"...그 사역마랑 비슷한 겁니다. 다른 점은 신성이 있다는 점이겠지요."
그런 의문에 답해준 것은 라파이르였다.
마법사는 자기 마력으로 사역마를 만드는 마법이 있다.
보통은 박쥐 정도의 작은 동물 밖에 만들어내지 못 하지만... 뛰어난 마법사들은 엄청난 것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예를 들면 크라이스 마법부장의 거대한 불새나. 대마법사님의 성채만한 골렘 같은 거 말이다.
아무튼 신성이 있다는 차별점을 제외한다면 사역마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물건이다.
라파이르의 설명에 황제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신성이 있다는 것은?"
"말 그대로 입니다. 수호신은 만들어진 순간부터 그 존재를 믿는 신앙의 힘에 따라서 그 힘이 강해지거나 오히려 약화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역마보다 고점은 높지만... 저점도 터무니없이 낮죠."
라파이르의 말에 황제는 고개를 갸웃했다.
"허면 왜 짐의 기운을...?"
그런 거라면 굳이 짐의 기운이 필요 없을 텐데?
황제가 그런 의문을 품었다.
그 대단한 설전 주술로 수호신을 만들거면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게 좋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으니까.
"아무래도 그 신성은... 기운의 주인을 믿는 자가 얼마나 많은지에 따라 달라지는 터라."
콰오콴의 설명에 황제는 이해했다.
그 말은 즉...
"짐을 믿는 자들의 힘을 이용하고자 한다?"
"그렇습니다."
콰오콴은 그렇게 답하면서도 눈치를 살폈다.
솔직히 말해서... 심기가 불편해질 수도 있는 문제였으니까. 황제의 명성을 이용하겠다는 의미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그래, 가져가라."
"정말이십니까?"
이렇게 흔쾌히 자기 부탁을 들어 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에 콰오콴의 눈이 커졌다.
"그래, 그대를 얻는 것으로 그 정도는 저렴하지."
"대체..."
자신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시는 걸까?
콰오콴은 그런 생각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그대로 황제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제 주술은 폐하의 것이니 마음대로 쓰십쇼."
처음이었다.
누군가에게 속박당하는 것에 염증을 느끼던 그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속박되어도 상관없다 느꼈다.
자신을 이토톡 높게 평가해주는 남자에게... 그 누가 끌리지 않겠는가.
그것도, 이토록 강한 사람이 자신을 인정해주는데 말이다.
적어도 콰오콴은 이번 황제에게 끌렸다.
그는 강했고, 그런 강자가 자신을 이렇게 높게 평가해주었으니까.
"그래, 그럼 바로 써 보도록 하지."
황제는 그 말에 콰오콴을 보면서 부탁했다.
"당장 우리를 데리고 이동해주게."
"어렵지 않지요."
콰오콴은 그 말에 덤덤하게 말했고, 라파이르는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이동 주술은 하자가 많습니다. 곧 있으면 제 마력이 회복되니까 그때..."
쿠웅!
라파이르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하며 콰오콴이 허공에서 문을 소환했다.
"들어오시죠."
라파이르는 자기 눈을 믿을 수 없어서 크게 떴다.
마법사들이 주술사보다 황실에 많이 자리 잡은 가장 큰 이유는 마법의 유용함 때문이었으니까.
그중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이동 마법과 이동 주술의 차이 때문이었다.
마법과 달리 보통 이동 주술은 문제가 많았다.
거리가 짧다던가, 안정성이 떨어진다던가, 아니면 혼자만 이동할 수 있다던가 하는 인원의 문제 때문에 말이다.
그런데 이건...
"여긴 어디냐?"
황제는 문 안으로 들어서자 보이는 초라한 방안을 보며 물었다.
초가집인가? 안에는 갓난 아기가 누워있었고, 여인은 이런 상황에서도 느긋하게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소신의 집입니다. 그리고 이건 이동 주술이 아니라 엄밀하게 말하면 소환 주술이라네. 마법사 양반."
그 말대로 방금 콰오콴이 보여 준 것은 엄밀히 따지면 이동 주술이 아니었다.
문을 소환해서, 그 문을 이용해 이동하는 소환 계열의 주술이지.
"말도 안 되는..."
"신기하군. 유용하겠어."
"여보. 또 손님이야? 뭐라도 대접해줄까?"
그때 여인이 그제야 일행이 있다는 걸 깨닫고는 의아한 얼굴로 묻자 콰오콴은 손사래를 쳤다.
"으응? 아니야. 금방 갈 거니까. 그보다 그렇게 유용해 보입니까? 소신은 주술로 지정해 둔 문밖에 소환 못해서 별로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콰오콴의 멍청한 대답에 황제는 혀를 찼다.
정작 주술을 만든 당사자가 그 가치를 모르다니.
"이 문으로는 몇 명이나 이동할 수 있지?"
인원의 문제는 없는 거 같은데...
황제가 그런 생각을 하며 물었고, 그 대답은 황제의 기대 이상이었다.
"음, 열려 있는 한 인원은 관계가 없지요. 한 장소에 고정해둘 거라면 딱히 유지비도 들지 않습니다. 지정하는 작업이 좀 복잡하지만요."
"..."
진짜 터무니없는 주술이 아닌가?
황제는 정말 생각도 못 한 거물을 영입했다는 생각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주술 부대의 대장이 된 것을 환영하지. 콰오콴."
그 대답을 들은 콰오콴은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입을 열었다.
"이왕 맡은 거 저 마법사들보다 훨씬 우수하다는 걸 증명하겠습니다."
콰오콴은 당당하게 선언했고, 라파이르는 위기감을 느꼈다.
이 남자...
과연 황제가 주목할 정도의 거물이었으니 말이다.
--
타라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뒤로 모용진은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그녀와 늘 같이 식사를 했고, 산책을 했으며, 같이 책을 읽고 감상을 나누기도 했다.
즐거웠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행복한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타라?"
언제나와 같이 타라를 찾던 모용진은 타라가 보이지 않자 의아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태자가 가출한 지 벌써 반년이 흘렀다.
모용진은 어젯밤 그녀에게 청혼했고, 태자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녀석이 돌아오면 그녀와 함께 도망칠 계획도 짜두었다.
그래서 오늘은 산책하면서 그 계획을 정돈할 생각이었는데...
'이상하게 분위기가 어둡네.'
그러고 보면 저택 안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다.
모용진이 그런 생각하고 있을 때 모용진의 숙부가 다가와서는 무서운 얼굴로 말했다.
"모용진. 가주님께서 부른다."
"아버님이 말입니까?"
모용진은 불길함을 느끼면서 숙부에게 질문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가보면 알 게다."
"..."
모용진은 느낌이 좋지 않았지만 일단은 숙부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숙부가 향하는 곳은 저택에 있는 커다란 공터.
보통은 연회를 하거나, 모용가 소속 무사들이 단련을 하는 곳이었다.
'뭐지? 왜 사람들이...'
그러나 그곳에선 연회도, 무사들의 단련도 없었다.
바닥에 쌓인 볏짚과, 그 볏짚 위에 마련된 기둥.
그리고...
"타... 라?"
그 기둥에 묶인 채 피를 흘리고 있는 타라와 그런 그녀를 벌레처럼 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왔구나."
모용진은 자신을 보며 덤덤하게 입을 여는 모용철을 죽여 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물었다.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철컥!
그 순간이었다.
분노로 주변을 파악하지 못한 모용진의 팔에 기를 봉하는 수갑이 채워졌다.
"모용진 님께서 날뛰면 곤란합니다."
그리고는 모용가의 수준 높은 무사들이 기를 사용하지 못 하는 모용진의 사지를 순식간에 제압했다.
"놔! 이 새끼들아! 놓으라고!"
모용진의 입에서 정말이지 드물게 거친 말이 흘러나왔으나 무사들은 기까지 쓰면서 필사적으로 모용진을 제압했다.
그들은 느끼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밀리면 바로 이곳의 모두가 끝장이 날 거라는 걸 말이다.
"모용진..."
타라는 그런 모용진을 보면서 웃었다.
모용진은 왜 그녀가 웃는 건지 순간 이해할 수 없었다.
"난 괜찮아."
"타라..."
모용진은 멍하니 그런 그녀를 보았다.
믿을 수 없었다.
왜 그녀가 이런...
"네 죄를 알겠느냐?"
그런 모용진의 머리를 지긋이 밟아준 모용철은 타라의 앞에 다가가서는 기름을 부었다.
그 모습이 모용진은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사랑이 죄인가요?"
"너 같은 천한 년이 모용가의 장자를 유혹했으니 그것이 죄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냐."
짜악!
입가에 비릿한 비웃음을 지으며 모용철이 타라의 뺨을 후려쳤다.
그녀의 터진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왔으나 그녀는 여전히 기가 죽지 않았다.
"천한 게...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할 정도의 죄인가요?"
"그렇다."
모용철은 단호하게 말했고, 대부분이 그 말에 공감하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에... 모용진은 가문에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역겨웠다.
그녀를 제대로 봐주는 사람은 이곳에서 아무도 없었다.
그녀를 인간으로 봐주는 사람도... 자신 말고는 없었다.
그제야 모용진은 그녀가 이곳에서 얼마나 괴로웠을 지 다시 한 번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었다.
계획이고 뭐고... 바로 그녀를 데리고 도망칠 것을.
그래도 떠나기 전에 태자를 만나고 싶다는 그런 안일한 생각이... 화를 부르고 말았다.
"넌 그 사랑 때문에 죽는다. 후회하지 않냐?"
모용철이 볏짚에 횃불을 던지면서 조소하자 타라는 발밑이 타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도 태연하게 대답했다.
"후회하지 않아요."
그녀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런 그녀의 눈은 전혀 흔들림이 없어서... 오히려 모용철이 당황할 정도였다.
당장 가까이 있는데도 괴로울 정도의 열기가 느껴지거늘, 그녀는 고통스러운 표정조차 짓지 않았다.
대단한 정신력이었다.
엄청 고통스러울 텐데... 어느새 그녀의 몸엔 불길이 옮겨 붙었으나 그녀는 당당하게 말했다.
"전... 그를 사랑한 것을 후회하지 않아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모용진을 향해 웃어 주었다.
그는 알까?
불에 타는 고통보다.
자신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사람들의 시선이 더욱 고통스럽고, 괴로웠다는 것을.
그렇기에... 자신을 인간으로 봐주는 그 당신의 두 눈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는 것을.
그러니까... 그녀는 마지막으로 그 두 눈에 자신의 웃는 얼굴을 새겨주고 싶었다.
"타라..."
모용진은 그런 그녀의 미소를 확실하게 눈에 새겼다.
그 미소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자신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그러니까... 이 사랑을 후회하지 말아 달라고.
"...타라."
모용진은 울었다.
그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향해 웃으며 죽어 가는 타라를 보면서 모용진은 웃으면서 울었다.
그녀도 웃었으니까.
자신도 웃어야 했다.
더 괴로울 그녀가 웃는데 자신이 울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야...
'이걸로 된 거지?'
앞으로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후회하지 않을 거 같았으니까.
--
"...길었다."
모용진은 자기 앞에 있는 근원을 보면서 검을 뽑았다.
정말이지 길었다.
이 빌어먹을 곳에서 시간을 버리는 것 말이다.
서걱!
모용진이 진법의 근원인 말뚝을 베어내자 숲이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저건."
모용진은 숲이 사라지자 보이는 설원의 성을 보면서 숨을 삼켰다.
그야말로 소름이 끼칠 정도의 기운이 저 성에서 흘러나왔다.
그 순간 알았다.
자신이 중요한 것을 발견했다는 것을 말이다.
"세르나."
모용진은 그 성을 보면서 세르나에게 말했다.
"도망치자."
이건 위험하다. 그리고 이미 충분하다.
모용진의 이성이 빠르게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을 때였다.
"누가 보내준 데?"
"어?"
세르나는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온 새머리 남자가 휘두르는 발톱에 바로 검을 뽑아서 대응했다.
콰득!
"세르나!"
모용진은 그 방어를 뚫고 세르나의 팔을 짓이기는 발톱을 보고는 다급하게 다가가서는 검을 휘둘렀다.
그 검에 실린 기세가 심상치 않았기에 새머리 남자는 세르나를 놓아주고는 공중으로 거리를 벌렸다.
"...괜찮나?"
모용진은 세르나를 보면서 물었고, 세르나는 자신의 팔을 억지로 움직이며 대답했다.
"싸, 싸울 수 있어요!"
세르나가 강한 척했으나 모용진은 그녀가 싸우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다.
하필이면 그녀가 자주 쓰는 손이 망가졌다.
온전한 상태에서도 도움이 될지 알 수 없는데 이렇게 되어서는...
솔직히 말해서 짐이 될 뿐이다.
그렇기에 모용진은 그녀에게 속삭였다.
"도망쳐라. 그리고 본 것을 전부 폐하께 전해."
"대, 대장은 어쩌고요?"
세르나가 당황한 얼굴로 묻자 모용진은 다급하게 외쳤다.
"시간을 끌고 도망칠 테니까. 얼른!"
"...꼭 돌아와야 해요! 술 사주기로 했잖아요!"
세르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달리기 시작했고, 그걸 본 새머리의 남자는 그대로 세르나를 향해 날아가면서 말했다.
"못 보낸다니까!"
새머리 남자가 그렇게 외치면서 발톱을 휘둘렀고, 세르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 달렸다.
그녀는 믿었다.
모용진을 믿었기에 전혀 의심하지 않고 앞으로만 달릴 수 있었다.
파직!
그때였다.
어느새 새머리 남자의 앞으로 이동한 모용진이 주먹을 굳게 쥔 채 말했다.
"아니."
모용진은 허공을 달려서는 새머리 남자를 쫓는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였음에도 표정에 변화가 하나도 없었다.
"보내야 할 거다."
'...대체 언제?'
새머리 남자는 자신이 따라잡혔다는 사실에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떴으나 이미 늦었다.
콰득!
새머리 남자의 발톱을 잡아서 그대로 부숴 버린 모용진은 녀석의 몸통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우드득!
그러자 그 주먹이 박힌 부분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끄르륵!"
엄청난 소리를 내면서 고통스러워하던 새머리 남자가 그대로 추락했다.
모용진은 가볍게 착지하고는 여전히 달리는 세르나에게 말했다.
"가! 어서!"
"...어쩌지 형님?"
비틀거리면서 몸을 일으킨 새머리 남자가 중얼거리자 그 순간 하늘에서 소머리의 거한이 떨어졌다.
쿠웅!
"흐음... 글쎄? 이미 망한 거 같은데 말이야."
소머리의 거한은 가볍게 몸을 풀면서 여유로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물론 겉과 속은 전혀 달랐다.
'막내의 진법이 깨질 줄이야.'
겉으로는 태연한 반응이었지만 소머리 거한은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설마 막내의 진법이 깨질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지금은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이곳이 황제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면 설령 이곳을 버리고 도망친다고 해도 황제는 자신들을 필사적으로 쫓을 테니까.
'크다.'
모용진은 소머리의 거한을 보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하나로도 벅차 보이는 상대가 둘인가...
이건 정말이지 목숨을 걸어야 할 거 같았다.
"후..."
"이봐 후회는 없나?"
그때 소머리 거한이 모용진에게 질문하며 거대한 도끼를 어깨에 걸쳤다. 그는 이렇게 된 이상 모용진을 죽일 생각이었다.
황제가 가장 신뢰하는 검을 부러뜨리는 것으로 전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지금의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으니까.
후회라...
"없다."
그 질문에 모용진은 덤덤하게 말하고는 검을 들었다.
후회하지 않는다.
"너희를 전부 죽이고 돌아갈 거니까."
애초에 모용진은 죽을 생각은 없었으니까. 살아서 반드시 돌아갈 생각이었다.
"술을 사주기로 했거든."
"크하하하하! 미친놈."
소머리의 거한은 그 말에 웃으면서 도끼를 휘둘렀다.
쩌적!
그러자 바닥이 갈라졌다.
말도 안 되는 힘이었다.
뚝!
순식간에 소머리 거한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넌 죽을 거다. 여기서."
소머리 거한의 선언에 모용진은 자세를 잡았다.
'적어도 후회 없이.'
모든 것을 불태우자.
모용진은 각오를 다지면서 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파직! 파직!
"해봐."
모용진은 싸늘하게 말하고는 더욱 더 강하게 기를 방출했다.
마치 이곳을 지배하려는 듯한 기의 움직임이었다.
'이 무슨...!'
그 모습을 보면서 새머리의 남자는 눈을 크게 떴고, 소머리의 거한은 근육을 긴장시켰다.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압박감.
그들은 그제야 알았다.
지금까지 저 인간은 단 한 번도 전력을 내보이지 않았다고.
그리고 이것이 바로...
모용진이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보인 전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