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제의 의무방어전-93화 (93/235)

"세르나 백부장! 이게 무슨..."

한참을 내달리던 세르나는 자신을 보고 내려온 크라이스를 보고는 거친 숨을 토해냈다.

그런 그녀의 얼굴엔 안도의 감정이 피어올랐다.

허억! 허억!

"어, 얼른 도와야! 대장이 지금 싸우고 있어요!"

거친 숨을 내쉰 세르나가 다급하게 크라이스에게 말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다시 모용진에게 돌아가서 그를 돕고 싶었으니까.

'역시 저 번개는 그럼...'

크라이스는 그 말에 아까부터 이곳에서 격렬하게 내려치고 있는 번개를 만들어낸 당사자를 알아차리고는 전율했다.

저 멀리서 마구 내려치고는 번개는 그야말로 신의 천벌로 보일 정도였으니까.

마법보다 더 마법 같은 공격.

저게 바로 폐하께서 늘 이야기하던 금위대장의 전력인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했다.

"얼른 가서 도와야 해요! 안 그러면..."

세르나가 그런 크라이스를 독촉할 때 크라이스의 입이 열렸다.

"세르나 백부장!"

크라이스는 정신을 못 차리는 세르나를 보면서 화를 냈다.

저 안으로 뛰어들겠다고? 저 격렬한 번개 안으로? 금위대장이 전력을 내야하는 강적이 있는 곳으로? 다시 기어 들어가겠다는 말인가?

"저기로 간다고요? 미쳤습니까? 우리의 실력으로 금위대장의 짐만 된다는 것을 모르는 겁니까? 분명... 금위대장께서는 당신한테 다른 일을 시켰을 텐데요?"

다른 자도 아닌 금위대장이 저런 말도 안 되는 기술까지 써가면서 싸워야 하는 적을 상대로 자신들이 정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크라이스는 자신들의 수준을 잘 알았다.

저런 전투에 끼어봐야 걸림 돌이 될 뿐이다. 그런 건 금위대장도 원치 않을 일이었다.

"..."

세르나 역시 알고 있었다.

자신과 크라이스가 가 봐야 발목만 잡을 거라는 걸.

오히려 방해만 될 테고, 정작 대장이 원하던 폐하께 정보를 전하는 것조차 못하게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어떻게 버려요! 우리가 버리면 죽을 텐데!"

그건 즉 대장을 버리라는 이야기였기에 세르나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그녀는 그가 죽지 않았으면 했다.

살아 있어주길 바랐다.

차라리 자신이 죽어도 좋으니까. 그는 살았으면 했다.

그게 세르나의 진심이었고, 세르나는 이대로 대장만 두고 도망칠 생각은 없었다.

그걸 보면서 크라이스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이대로 가다간 결정을 내리지 못하리라.

"제가 나쁜 놈이 되겠습니다."

터억!

"놔, 놔요! 얼른 대장에게 돌아가야..."

그대로 세르나를 잡아챈 크라이스는 이동을 준비했다. 세르나가 발버둥을 쳤으나 크라이스가 마법으로 제압하자 금세 얌전해지고 말았다.

크라이스는 빠르게 이동 마법을 준비했다.

목적지는 수도.

최대한 빠르게... 황제에게 이 사실을 전해야 했다.

그래야... 그게 그나마 금위대장을 살릴 수 있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일이었으니까.

--

'크라이스 녀석 근처에 있었나?'

모용진은 이동 마법의 기척을 느끼고는 미소를 지었다.

멋진 선택이다.

어쭙잖게 정에 이끌려 이곳으로 왔다면 오히려 곤란했을 거다.

저 녀석들에게 자기 약점을 만들어 주는 셈이었으니까.

'적절한 때에... 만났네.'

그들의 강함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

다만...

"쿨럭!"

이 녀석들이 너무 강할 뿐.

이 정도 수준의 적 앞에서 그들은 짐밖에 되지 않는다.

그걸 모용진은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그 선택이 오히려 고마웠다.

"대단해... 넌 진짜 대단하다. 이 정도면 충분하잖아. 황제의 검이여."

우마왕은 심각할 정도로 피를 토해내면서도 전투 의지를 잃지 않은 모용진에게 말했다.

"아우를 죽였으면 네 목숨을 내놓아야지. 그게 동등한 교환이라는 거잖아."

우마왕은 이젠 다신 대답을 들을 수 없는 붕마왕의 시체를 보면서 도끼를 높게 들었다. 그런 그의 몸도 이미 화상으로 엉망이었다.

조금만 반응이 늦었다면 동생과 같이 이 남자에게 죽었으리라.

그런 생각에 우마왕은 모골이 송연할 정도였다.

'한 명... 인가. 조금 아쉽네.'

결국 모용진은 선택했다.

방어를 어느 정도 포기하고 전력으로 공격함으로 최소한 한 명을 확실하게 데려가기로.

원래는 저 우마왕이란 요괴를 데려가고 싶었지만...

'터무니없이 강하군.'

어쩔 수 없이 약간 모자란 저 새대가리를 정리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푸아악!

우마왕의 도끼가 내리치자 모용진의 몸이 크게 베였다.

엄청난 양의 피를 뿜어내며 모용진은 서서히 쓰러지기 시작했다.

최대한 기로 방어했음에도 완전히 절단나는 것을 막는 것이 한계일 정도였다.

'한계... 인가.'

모용진은 마지막에는 단 한 명을 떠올렸다.

자기 목숨을 바칠 주군, 평생을 바친 황제.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나의 동생.

그에겐... 미안한 마음뿐이다.

'여기서... 지면... 안 되는데 말이야.'

황제의 검이 여기서 꺾였다.

절대로 꺾여서는 안 되는 검이 꺾였다.

백 번을 사죄해도... 모자랄 일이었다.

모용진은 미안했다.

"미안..."

황제에게 사과하면서... 모용진은 서서히 눈을 감았다.

털썩.

"확실하게 목을 칠까? 그게 맞겠지."

우마왕은 그런 모용진을 보면서 다시 한번 도끼를 들었다.

아직 숨이 붙어 있다.

확실한 마무리가 필요하다. 그런 생각할 때였다.

"그만. 형님."

구름을 타고 나타난 제천대성이 그런 우마왕을 막아섰다.

"그렇게 끝내는 건 너무 허무해. 혼천대성 형님이 죽었어. 우린 전력이 약화되었고, 이대로면 황제의 손에 전멸할 뿐이야."

"...그럼 어쩌자는 거지?"

우마왕이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우가 죽었다. 그런데 저런 말을 지껄이다니! 애초에 이 녀석이 진작 돌아왔으면 붕마왕은 살았을 수도 있는데!

우마왕이 그런 생각에 화가 나려고 할 때 제천대성의 입이 열렸다.

어느새 그의 손엔 아직 이곳을 떠나지 못한 붕마왕의 혼이 들려 있었다.

"간단한 이야기지. 요괴로 만들자."

"...!"

우마왕은 그 제안에 눈을 크게 떴다.

그 말은... 황제의 검을 꺾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강탈하자는 이야기인가?

"형님의 혼은 강한 요기를 지녔어. 그리고 이 괴물은 거의 죽기 직전이다. 이 정도면 충분히 요괴로 만들고 주술로 복종시킬 수 있어."

"확실히..."

충분히 가능하다.

이미 죽기 직전인 모용진의 정신적인 방어벽은 약해졌고, 마침 이 정도의 강자를 요괴로 만들 정도의 강한 요기를 가진 혼도 있다.

"모처럼 동료가 생기겠어."

제천대성은 웃었고, 우마왕도 웃었다.

어쩌면... 아우가 죽은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래... 새로운 막내가 생기겠구나."

새로운 요괴의 거두가 탄생하는 순간이 오는군.

우마왕은 그렇게 생각하며 웃었다.

저 괴물이 동료가 된다면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얻은 것보다 든든할 테니까.

"여기선 곤란해. 곧 황제가 올 테니까. 일단 데리고 가자고. 난 이 녀석을 데려갈 테니까 형은 병력을 이끌고 다른 거점으로 이동해 줘."

제천대성이 모용진을 둘러메고는 말하자 우마왕은 호리병을 들고는 호쾌하게 대답했다.

"그래! 맡겨둬라."

'이 성을 잃는 건 조금 아쉽지만...'

제천대성은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모용진의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웃음을 참지 못했다.

정말이지... 생각 이상의 수확이었다.

--

"...여기에."

황제는 크라이스의 보고에 다급하게 모용진이 있었다는 곳으로 날아왔다.

재상의 허락 따윈 받지 않았다. 그런 걸 받을 여유가 없을 정도로 황제는 다급했으니까.

마리아도 원래라면 투덜거릴 장거리 이동에 말없이 협조해 줄 정도였다.

"..."

황제는 전투의 흔적을 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성을 보았다.

그야말로 격렬한 전투가 있었던 흔적으로 가득하고, 성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전투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에 시체는 하나도 없었고, 남아 있는 것은...

"...이 검은."

고열로 인해 엉망으로 망가진 검 하나.

그것이 황제에게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주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그 검은 모용진의 검이었고, 황제가 그에게 하사했던 검이기도 했으니까.

"..."

황제는 말하지 않았다.

그저 얼굴을 양손으로 덮고는 기나긴 침묵을 유지할 뿐이었다.

"...찾아."

한참 후.

황제의 입이 열렸다.

그런 황제의 말투에는 약간의 물기가 어려 있었다.

우르릉!

그 순간 황제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에 성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당장 그 개자식들을 찾아. 금위대 전원이. 아니. 지금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병력을 움직여서 이 대륙을 이 잡듯이 뒤져."

분노.

황제의 얼굴엔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분노가 어렸다.

주변 공기가 무거워지고, 황제의 기운을 이기지 못한 주변이 엉망으로 망가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팔랑.

"..."

갑자기 하늘에서 종이가 내려왔고, 황제는 기를 가라앉히고는 그 종이를 들었다.

"...하."

황제는 어이가 없어서 혀를 찼다.

종이의 내용은 참으로 도발적이었으니까.

[인간의 황제여. 앞으로 한 달 후. 구마 대평원에서 승패를 가르자.]

"...좋아. 한 달 후라고? 찾을 수고를 덜었군."

황제는 그 종이를 거침없이 찢어 버리고는 싸늘하게 말했다.

대체 무얼 믿고 저런 오만한 제안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한 달 후. 금위대 전원은 대평원에서 대기하도록."

"그리하겠습니다."

크라이스는 이를 악물면서 대답했다.

금위대장이 당하다니... 아직도 그는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대장... 대장..."

세르나는 여전히 멍한 얼굴로 모용진의 검을 매만지며 눈물을 흘렸다.

"..."

빠득!

황제는 분노를 최대한 억누르면서 모용진의 검을 쳐다보았다.

이미 타버린 저 검처럼.

황제의 마음도 타버린 기분이었다.

--

"...크하하하! 드디어 완성이군."

황제에게 선전포고를 보내고 얼마 후.

제천대성은 완성된 '물건'을 보면서 환호했다.

크게 외형은 바뀌지 않았다.

머리는 금색으로 물들었고, 그 두 눈이 불처럼 타오르는 금색으로 변했을 뿐.

하지만... 그것이 바로 제천대성을 더욱 흡족하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역대 최강의 요괴가 탄생했다.

그것은 저 요괴 속에 내재된 강렬한 검은색 뇌기와 자신과 같은 화안금정이 증명하고 있었다.

"...난. 그래 혼천대성."

그 요괴는 자기 몸을 살펴보더니 중얼거렸다.

요괴가 가볍게 손을 까닥이자 알몸이던 그의 몸엔 금색의 도포가 입혀졌다.

그 모습에 제천대성은 더욱 미소를 지었다.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요술까지 쓰다니.

제대로 성공한 거 같았으니까.

"그래 혼천대성. 세상의 하늘을 혼란스럽게 할 우리 요괴의 거두. 그게 바로 그대다."

제천대성은 웃으면서 말했다.

이 전력을 얻었으니.

그는 황제를 상대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믿었으니까.

"들어라! 우리 요괴들은 이제부터 한 달 후에 인간을 친다!"

"와아아아아!"

족히 10만은 넘어 보이는 요괴들이 함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모처럼 호리병 밖으로 나왔으니 기분이 좋겠지.

제천대성은 그들이 소리를 마음껏 지르도록 내버려 두며, 이 걸작에게 말을 걸었다.

"뇌천왕(雷天王). 그대의 활약을 기대하지."

자신을 위해서 특별히 요괴들의 명장이 준비한 검을 보면서 새로운 혼천대성.

뇌천왕 모용진은 검을 쥐었다.

"인간의 황제를 죽여라. 그게 너의 일이다."

"황제를... 알았다."

제천대성의 말에 조금 머뭇거림이 있었지만 뇌천왕은 확실하게 대답했다.

그 대답에 제천대성은 세뇌가 제대로 되었다고 확신하며 광소했다.

드디어 손에 넣었으니까.

황제가 가졌던... 최강의 검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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