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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의무방어전-103화 (103/235)

"자세는 바르게. 눈은 언제나 상대를 향하게."

모용진은 쓰러진 여화와 레오니에게 진지한 어조로 조언했다.

"일단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을 잃지 않고 뛰어난 판단력이 뒷받침되면 더욱 강해질 수 있죠."

"...다시!"

여화가 벌떡 일어나면서 검을 쥐었고, 레오니도 다시 방패와 검을 쥐었다.

"저 피곤합니다! 폐하에 이어서 두 분까지 이러시면 저 힘들어요?"

그런 그녀들의 반응에 모용진이 바로 투덜거렸다.

안 그래도 아침에는 황제에게 실컷 두들겨 맞았던 모용진이었기에 이젠 쉬고 싶었지만...

"한 번만 더요."

"...하, 진짜 마지막입니다? 진짜요?"

여화의 재촉에 결국 모용진은 다시 검을 들었다.

'체력은 대단하시네 정말.'

대단한 체력들이다.

모용진은 질린 표정으로 자신에게 날아든 여화의 검을 올려치고는 빈 복부에 앞차기를 날렸다.

퍼억!

그대로 뒤로 넘어진 여화를 보면서 조그마한 뇌창을 꽂은 모용진은 여화가 쓰러지자 바로 뒤에서 기습해온 레오니의 검을 팔에 기를 둘러서 막아 내고는 뇌창을 어깨에 박았다.

"끝. 이제 진짜 쉽니다. 치료하고 쉬세요."

드디어 자유다!

그런 생각하면서 모용진은 대기하고 있던 의원을 부르고는 빠르게 사라졌다.

"하하, 상대도 안 되네."

여화가 분한 듯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면서 말하자 레오니는 조용히 패배를 곱씹어보더니 대답했다.

"...너무 빨라."

황제를 상대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너무나도 단단하다는 느낌이라면... 모용진을 상대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너무 빠르다는 것이었다.

"다음엔..."

여화는 치료를 받으면서도 분한 듯 중얼거렸다.

다음엔 저 속도를 반드시 따라잡고 말겠다.

그런 각오를 다지면서...

--

"내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형님. 모녀를 같이 범하면 어떤 기분일까? 형님이 확인해 볼래? 내가 하고 싶긴 한데 형님의 여자를 건드릴 수는 없잖아? 대모는 내가 빌려줄 수 있는데 말이야."

진지한 얼굴로 개소리를 하는 미친왕을 역겹다는 듯이 쳐다봐준 황제는 한숨을 쉬었다.

"저거 언제 철이 들거 같냐?"

"못 고치지 저거. 좇이 뇌에 박힌 놈인데."

천박한 말을 태연하게 입에 담으며 대답한 라오허는 다시 미친왕과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미친왕이 일어난 덕분에 자유로워진 대모가 슬쩍 눈치를 보면서 황제의 얼굴을 감상하자 황제는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마주하는 건 처음이구나."

"...그."

쉿!

황제의 말에 머뭇거리면서 대답하려던 대모는 카무란이 눈치를 주자 입을 꾹 다물었다.

"대답은 하지 말고. 그대의 목소리를 들으면 짐이 조금 화날 듯 하여서."

이번엔 커피를 마실 생각인지 원두를 갈면서 황제는 대모에게 말했다.

"사실 짐은 그대를 죽이려고 했다는 걸 알고 있느냐? 모르겠지."

끄덕!

그 말에 대모가 사색이 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황제는 서툴게 주먹다짐을 하는 미친왕과 라오허를 보면서 말했다.

"미친왕에게 감사해라. 저 아이의 노리개 역할을 하기 위해 그대의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이니까."

아직도 쿠류에서 돌아오지 않은 세이나를 생각하면 치우고 싶긴 했다.

허나 다른 이도 아닌 그 세이나가 미친왕에게 그녀를 넘겼으니. 이젠 그녀의 생사여탈권은 미친왕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잘 놀아주어라. 외로운 아이니까."

"폐하는 여전히 미친왕한테 약하군요."

덜덜 떠는 대모에게 다시 의자를 하고 있으라고 지시한 황제는 카무란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가끔 무는 게 괘씸하긴 하지만 그래도 같은 어미한테서 난 자식이라고 아주 미워할 수는 없더구나."

"얼굴은 참 닮았는데 말입니다."

"그거만 닮아서 문제지..."

황제는 싸우다가 지쳤는지 체통도 잊고 바닥에 벌러덩 누워 있는 둘을 보면서 이마를 감싸 쥐었다.

정말이지 몇 살을 먹어도 어린애 같은 놈들이었다.

"카무란. 그대는 잘 지내는가?"

"저야... 늘 책을 벗 삼아서 지내고 있습니다. 아! 최근에는 분재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관상하는 맛이 있어서요."

카무란의 대답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취미 생활하면서 여유롭게 보내는 것도 좋겠지. 지금은 그래도 되는 시기였으니까.

"분재라... 조만간 선물로 몇 개 보내도록 하마."

아무튼 동생이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니 지원해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 황제의 말에 카무란은 놀랐다.

설마 황제가 그런 걸 지원해주겠다고 할 줄은 생각도 못했으니까.

"허허... 진짜 많이 달라지셨습니다."

"달라졌지. 사람하고 어울리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더구나."

비들과 교류하면서 유해진 것일까? 카무란은 그리 생각하면서 그제야 타흘라가 부탁했던 것을 떠올리고는 운을 뗐다.

"그러고 보니 타흘라 누님께서 폐하께 잘 좀 말해 달라 부탁하더군요."

"타흘라... 아! 그래 그대의 사촌 누이던가?"

황제가 그제야 오늘 있을 합궁 상대를 떠올리고는 커피를 타기 시작했다.

"그렇습니다. 실제로 본 것은 두 번 정도지만..."

"원하는 게 있는가 보구나. 그런 청탁을 하는 거 보니까."

역시...

단박에 알아차리는 황제를 보며 감탄한 카무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의 비가 되고자 하는 여인들이 보통 그렇지. 가문이 원했거나, 자신이 원했거나, 아니면... 짐한테 원하는 게 있거나."

"그런 걸 안 좋아하십니까?"

"딱히. 사실 짐도 의무로 그녀들을 안는 것이니까."

황제의 대답에 카무란은 쓰게 웃었다.

"의무라... 황제 자리를 지키기 위해선 해야 하는... 그야말로 의무방어전이로군요."

아내와의 잠자리를 세간에선 그리 말한다고 하던데... 황제에겐 그저 여자와의 잠자리 자체가 그러했다.

"그렇게도 볼 수 있겠지. 사실 짐은 몸이 여러 개면 좋겠다는 생각할 정도로 힘들어."

"...하긴 수가 수이니. 부담스러울 수 있겠습니다."

황제의 후궁은 벌써 16명. 합궁이 끝났을 때는 아마도 최소 34명이 된다는 것인데...

그녀들을 전부 만족하게 해주려면 정말이지 몸이 열 개라도 힘에 부칠 것이다.

"그렇지. 웃진 말거라. 그대가 짐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면 이 문제로 그대가 고생했을 텐데."

"하하..."

그러면 전 죽었겠죠.

카무란은 그리 말하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그 말을 황제는 부정하지 않았다.

"아무튼 다른 이도 아닌 네가 한 부탁이니 들어 줘야지."

원래 이런 청탁은 하지도 않는 카무란의 부탁이니 황제는 어지간하면 들어 줄 생각이었다.

"그 아이에게 부탁이라고 할 게 있던가? 놀랍구나."

그때 갑자기 불쑥 나타난 마리아가 놀란 듯 중얼거리자 황제는 덤덤하게 말했다.

"자꾸 그런 식으로 찾아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이게 본녀의 태교법이니라. 뱃속에 있을 때부터 마법에 친숙해져야지."

"..."

그 대답에 황제는 한숨을 푸욱 내쉬고는 카무란에게 그녀를 소개했다.

"대마법사다."

"으응? 이럴 땐 다르게 소개하는 게 맞지 않느냐?"

쿡쿡.

마리아가 귀찮게 옆구리를 쿡쿡 찌르면서 재촉하자 황제는 그녀의 머리를 엉망으로 만들어 주고는 말했다.

"짐의 비다."

"흠흠! 그러하단다."

그제야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기뻐하는 마리아를 보면서 카무란은 놀라움을 숨기지 않았다.

"그 대마법사를... 실물로 볼 줄은 몰랐습니다."

"흐음... 그대가 대마법사라고 먼저 소개해서 저러는 거 아니더냐. 본녀는 지금은 대마법사보단 비라고 불리고 싶은 날이다만."

"무리지."

황제의 비보단 역시 대륙의 하나뿐인 대마법사라는 게 더 인상적이니까.

그렇기에 황제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보다 여긴 어쩐 일이냐? 나르타와 함께 세헤라자드한테 가벼운 요가를 배운다고 가지 않았나?"

세헤라자드에게 산모도 할 수 있는 요가를 배우겠다고 나르타랑 같이 가는걸 봤는데...

황제가 그리 생각하며 질문하자 마리아가 황제의 시선을 피했다.

"크흠!"

"...도망쳤구나."

황제는 그제야 마리아가 배우는 도중에 도망친 걸 눈치채고는 한숨을 쉬면서 그대로 마리아를 안아 들었다.

"짐은 잠시 다녀오마."

"어? 다녀와. 난 커피 좀 마시고 있을게."

어느새 다시 대모 위에 앉은 미친왕이 황제가 탄 커피를 들면서 말하자 라오허는 그 모습을 보고는 작게 투덜거렸다.

"에휴, 나도 결혼이나 해야지. 옆구리 시려워서 이거 원."

"다녀오세요. 저 둘은 제가 잘 관리하고 있겠습니다."

카무란의 듬직한 말에 고개를 끄덕여 준 황제는 가기 싫다고 발버둥 치는 마리아를 데리고는 그대로 세헤라자드를 찾아 떠났다.

"아, 아니 조금은 운동을 했으니 좀 쉬려고 했을 뿐이다."

"그래, 변명은 세헤라자드한테 하거라."

황제는 그런 칭얼거림을 깔끔하게 무시했다.

"폐하! 거 봐요. 역시 폐하께서 잡아 오실 거라고 했잖아요."

그때 저 멀리서 보이는 나르타가 마리아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세헤라자드는 안도한 얼굴로 다가와서는 황제에게 말했다.

"감사하옵니다. 갑자기 도망쳐서 당황하고 있었사옵니다."

"그래, 그럴 듯 하여 잡아 왔다. 잠시..."

꾸욱.

"윽! 이거 하지 말거라!"

황제가 마리아의 몸에 기를 밀어 넣어서 마법을 봉인하자 그녀는 바로 반응했다.

물론 황제는 그런 그녀의 항의를 깔끔하게 무시했지만.

"이제 도망은 못 칠 거다."

"감사합니다. 자! 같이 마저 배우자고요."

나르타와 세헤라자드가 반항하는 마리아를 끌고 저 멀리 사라지자 황제는 집무실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집무실에서 벌어진 도박판을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런 놈들이지."

그 도박판에 같이 어울리고 있는 카무란을 보면서 황제는 고개를 저었다.

카무란도 이런 걸 보면 저 녀석들과 같은 철 없는 동생이었다.

"오셨군요. 형님도 하실 겁니까?"

패를 섞으면서 카무란이 묻자 황제는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좋다. 셋 다 바지까지 벗겨줄 테니까."

아예 탈탈 털어서 다신 이런 걸 하고 싶지도 않게 만들어주지.

황제가 그리 결심하며 패를 받아 들자 형제들은 눈을 빛냈다.

"오! 자신감. 형님한테 돈 뜯어서 술 마시러 가자."

미친왕의 제안에 라오허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

이럴 때만 죽이 잘 맞는 둘을 보면서 황제는 결심했다.

저 녀석들을 진짜 싹 벗겨서는 내쫓아버리겠다고 말이다.

--

"이게 공방이야? 좋네."

미령을 따라서 도착한 공방의 규모를 보면서 타흘라는 감탄했다.

그야말로 상상 이상이다.

규모도 규모지만 설비도 최신이었고, 보조하는 장인들도 수준급이었다. 황제의 지원이 생각 이상으로 진심인 거 같아서 타흘라는 묘한 기대를 품었다.

"콰오콴이잖아! 안녕 콰오콴!"

그때 한참 공구를 다루고 있는 콰오콴을 발견한 타흘라가 반가운 듯 인사했다.

콰오콴이나 그녀나 주술계에서는 이단아 소리를 듣는 사람들 답게 둘은 제법 교류가 있었다.

"아니 이게 누구야! 타흘라잖아. 크하하하! 진짜 왔구만."

콰오콴은 호탕하게 웃으면서 그런 타흘라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타흘라!"

그때 로라가 기다렸다는 듯이 타흘라에게 안겨 왔다.

그 작은 몸을 받아 내면서도 타흘라는 위태롭게 휘청거렸다.

"나... 조금 지칠지도?"

"크하하하! 그러니까 운동을 하라고 했잖아. 그보다 이젠 뭐라고 불러야 하지? 비 전하? 아니 아직은 아니니까 비 후보?"

"적당히 불러. 난 탈권위를 지향하는 사람이거든."

로라를 떼어낸 타흘라의 대답에 콰오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폐하를 존경하는 마음에서 일단은 비 후보라고 불러드리지."

"날 존중해서 그런 호칭을 써 주는 게 아니라? 너무하네..."

타흘라는 섭섭하다는 듯이 말하면서도 로라가 건드리고 있는 냉장고를 살펴보았다.

"기능적으로는 완성된 거 아닌가? 이걸 왜 보고 있어?"

그 말에 로라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에게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요컨대...

"가격 때문이구나. 흐음... 그러네. 그걸 감안 해야겠구나."

역시 가격이 문제인가? 애초에 그녀는 가능한지만 염두했지, 상품성까진 신경 쓰지 않았기에... 그 의문 자체가 생소했다.

"폐하께서 생산 가격을 낮추라고 하셔?"

"아니, 내가 원하는 가격에 팔려고 하면 낮춰야 한다고 리사가 그래서... 그러니까..."

도와줘.

그 말을 들으면서 타흘라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녀를 도와주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당장 기능하게 만드는 것만 염두에 둔 회로라서 단가를 낮출 방법을 찾으라면 그리 어려운 건 아니었으니까.

"그러면 나중에 나도 도와줘."

타흘라의 제안에 로라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도와줄게. 무조건 도와줄게!"

"그... 폐하께서 너 말은 잘 들어 줘?"

너무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이는 로라를 보며 타흘라가 조심스럽게 묻자 잠시 고개를 갸웃한 로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들어 줄 걸...? 일단 대디가 폐하랑 친한 사이라서..."

"호오..."

그건 몰랐는데.

타흘라는 그런 생각하면서 눈을 빛냈다.

"그러면 날 도와줄 수 있겠다."

여차하면 로라한테도 부탁하면 되겠네.

타흘라는 그런 생각하면서 일단 회로를 살펴보았다.

갑자기 일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일단 도와주기로 한 이상 합궁 전까지 해볼 수 있는 만큼 해볼 생각이었다.

--

"...밤이 되었구나."

황제는 슬슬 판을 접어야 할 때를 느끼고는 판을 끝냈다.

"형님... 도박은 그 앞으로 하지 마쇼."

라오허가 황제를 향해 진심을 담아서 충고해주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황제가 일방적으로 탈탈 털렸다.

덕분에 3형제 모두 용돈을 두둑하게 챙겼을 정도였으니까.

"...나도 뼈저리게 실감하는 중이니까 조용히 하거라. 아무튼 모처럼 형제들 얼굴을 보니 좋았다. 그건 형이 주는 용돈으로 생각하고 아껴 쓰고."

이렇게 모이는 것도 오랜 만이라서 그런가...

황제는 돈을 제법 많이 잃었음에도 웃는 얼굴로 그리 말하면서 형제들을 보내고는 미령을 기다렸다.

"폐하, 합궁 준비가 끝났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형제들이 돌아가자 바로 안으로 들어온 미령이 합궁 준비가 끝났음을 알려왔다.

"그래, 그대가 볼 때 이번 상대는 어떤 여인이냐?"

"...부디 너그럽게 봐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미령의 대답에 황제는 피식 웃었다.

그녀와 타흘라의 관계는 대충 짐작하고 있었기에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그래, 그대의 부탁이니 너그러이 봐주도록 하마."

그 후 황제는 그녀와 함께 욕탕으로 가서 몸을 깨끗이 씻고는 침소로 향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미령은 황제가 침소로 가는 걸 확인하고는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돌아갔다.

"상선."

"네."

"중요한 이야기를 할 거 같으니 사람을 뒤로 물리거라."

뭔가 청할 것이 있다고 하니 주변에 사람은 없는 편이 낫겠지.

그런 생각하며 황제가 말하자 상선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사람을 침소 주변에서 물러나게 했다.

"...들어가마."

"흐아암. 네."

뭔가 졸음기가 가득한 대답에 황제는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안으로 들어갔다.

"...신기한 눈이구나."

안으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황제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조금 탁한 느낌의 하늘색 눈동자였다.

방안이 묘하게 서늘하게 느껴질 정도로 강한 한기를 뿜어내며, 그녀는 침대에 누워서 졸고 있었다.

"합궁을 여러 번 진행해봤지만 누워 있는 경우는 처음 보는구나."

살다 살다 황제가 왔는데 누워있는 비를 보게 될 줄이야... 황제가 그리 생각하며 말하자 타흘라가 해맑게 웃었다.

"와! 그 처음을 제가 하게 되어서 영광이네요."

여전히 일어날 생각을 안 한 채 늘어져 있는 그녀의 대답에 황제는 그녀를 살펴보았다.

검은 머리카락은 궁녀가 제법 노력한 듯 하나 끝이 갈라져 있는 걸 볼 때 딱히 관리하지 않는 느낌이었고, 피부는 새하얗긴 했으나 이게 건강하게 하얀 느낌이 아니라 말 그대로 햇빛을 별로 받지 않아서 하얀 느낌이 강했다.

전체적으로 마른 편이나 가슴은 누워 있음에도 그 형태를 유지할 정도로 컸다.

이 정도 크기면 마리아와 비견될 거 같았다.

안경은 크고 두꺼웠지만 그런데도 그 외모를 가리진 못한 듯했다.

뭔가 행동 하나 하나에서 권태로움이 묻어 나오는 미인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누워서는 졸린 듯 하품하면서 말했다.

"폐하께... 부탁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요. 지금 좀 졸려서요..."

"그러냐."

"한숨 자고 말할 테니까 1시간 뒤에 깨워주세요."

푸욱.

그대로 잠들어 버린 그녀를 보면서 황제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구나."

살다 살다 합궁 날에 이런 태도를 보여주는 여인을 보게 될 줄이야. 그것도 부탁할 게 있다면서 저런 태도를 보인다고?

정말이지...

"재미는 있구나."

솔직히 신선해서 웃기긴 했다.

그렇기에 황제는 그녀의 말을 들어 주기 위해서 의자에 앉아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한 시간 뒤엔 깨워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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