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위대장은 여전히 오지 않았나?'
한편 황제는 저녁 식사를 끝냈음에도 올 생각이 없는 금위대장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큰일이긴 한가 보구나.'
시간이 좀 걸릴 모양이군.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일단 몸을 씻었다.
궁녀들의 도움을 받아 옷을 입고, 황제는 침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황상. 합궁하러 가는 길입니까?"
그때 마주친 황태후의 말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황태후께선 어쩐 일이십니까?"
"오늘은 별이 참 아름답기에 구경하러 나왔답니다."
그 말에 황제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확실히 오늘은 별이 많아 참으로 보기 좋았다.
"좋은 밤이 되시길."
"황상도 좋은 밤이 되면 좋겠군요."
합궁을 잘하라는 압박은 딱히 주지 않았다.
비들이 회임을 하고 나서부터 그녀는 황제의 밤일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으니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솔직히 그런 일로 잔소리를 듣는 것은 조금 피로한 일이었으니.
"그러고 보니 폐하께 편지가..."
"...또 그거구나."
기분 나쁜 편지.
너무 자주 와서 그런지 봉투만 봐도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기에 황제는 대충 읽어보고는 상선에게 다시 편지를 넘겨 주었다.
"대충 태워 버리거라."
"네."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쓸 때가 아니었다.
황제는 침소에 들어갔다.
안에서는 궁녀가 신경 써서 입힌 잠옷이 엉망이 되도록 팔굽혀펴기를 하는 가비의 모습이 보였다.
"운동 중이냐?"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덤덤하게 대답한 가비는 운동을 계속했다.
황제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녀의 근육을 점검했다.
'일단 중심이 되는 근육들이 탄탄하구나.'
단단한 것은 팔만이 아니었다.
생각 이상으로 단단한 몸에 황제는 감탄했다.
"단련을 잘했구나."
"궁장이면서, 궁수이려면 아무래도 근육 단련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니까요."
운동을 끝낸 그녀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황제를 보았다.
"그러는 폐하께서는 근육이 대단하시군요."
옷으로 가려져 있을 땐 알 수 없는 근육이 얇은 옷을 입자 확실하게 보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황제의 근육에 감탄하고 있었다.
"요새는 좀 줄어서 걱정이긴 하지. 확실히 예전만큼 단련할 시간이 없어서."
태자 시절에 비하면 확실히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황제는 그게 조금 불만스럽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보다 지금이 할 일이 많은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그럼 시작할까요?"
스륵.
가비가 옷을 벗으면서 말했다.
근육으로 탄탄하고, 열기에 그을린 그녀의 몸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래."
황제도 그걸 보면서 옷을 벗었다.
할 거면 빠르게 끝내는 것이 황제에게도 마음이 편했으니까.
--
사각. 사각.
어두운 방 안.
그곳에서 한 여인이 작은 등불에 의존한 채 책상에 앉아 편지를 쓰고 있었다.
'이번엔 부디...'
이 마음이 전해지면 좋을 텐데... 애석하게도 그녀가 보낸 편지에는 단 한 번도 답장이 없었다.
'사랑해요.'
그런데도 그녀는 편지를 쓰는 걸 멈추지 않았다.
이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면 넘쳐흐를 것 같았기 때문에.
뭐라도 해서 이 감정을 표출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거 같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오늘도 편지를 쓴다.
아무리 해도 전해지지 않은 이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
번쩍!
갑자기 친 번개로 인해 보인 방안엔 한 남자의 초상화가 가득했다. 그녀는 그 초상화를 보면서 웃었다.
"내 사랑. 반드시 만나러 갈게요."
죽어서라도 반드시.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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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 끼친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거야?"
리사는 그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과자를 먹었고, 미르예프는 차를 추가로 따르면서 대답했다.
"그녀가 원하던 바를 이뤘지요. 답장은 받지 못했지만, 그 사랑하는 사람과 맺어질 수 있었으니까요."
미르예프는 덤덤하게 말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녀의 사랑은 비정상적이었다. 여기서 그녀에 대해서 알아보고 나서 소름이 돋았다.
그 여자는 미르예프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뒤틀려있었으니까.
"혹시... 아는 사람이야?"
리사의 질문에 마리예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고 있었다.
"황제를 사랑한 여자. 하지만 그 사랑이 너무나도 과했기에... 자신 이외의 다른 여자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사람."
미르예프는 그녀를 본적은 없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질릴 정도로 들었다.
아버지가 늘 그 여자에 대해서 이야기 했으니까.
"그래서 다른 비를 암살하고 목이 잘린 여자지요."
"모, 목이? 그거 실화였구나."
리사는 놀랐다.
예전에 얼핏 들은 적은 있었다. 목이 잘린 비가 있었다고. 그게 실화였을 줄이야...
"지금 폐하는 아닐 테니... 설마 선제 폐하 때 일이야?"
리사가 눈치채자 미르예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합궁을 하기 전부터 늘 선제 폐하께 편지를 보냈다고 해요. 그 내용은 그저 사랑해라는 말만 가득했다고 하죠."
"으으, 정신병 같아."
그 말에 리사는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녀의 선제를 향한 사랑은 비정상적이라고 할 정도로 뒤틀려 있었고, 집착도 심했다.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걸 병적으로 싫어했고, 선제 폐하를 묶어두워서라도 자기 소유물로 하고 싶어 하는 여자였다고 해요."
그런 집착은 선제 폐하마저 질리게 만들었고, 그녀는 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우선 모든 비들을 죽이고자 했다.
선제 폐하의 곁에는 자신만이 남도록 하기 위해서.
"그녀의 손에 죽은 비가 5명은 되었다고 하죠. 결국 선제께선 그녀의 처형과 다음 황제 때엔 그녀가 속한 민족의 합궁을 가장 나중으로 미루는 처벌을 내렸다고 해요."
"그렇구나. 그래서 프리아족이..."
리사는 왜 크릴라이가 포함되기 전에 프리아족은 이미 마지막 순서로 확정된지 의문이 들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의문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아! 황태후 폐하."
그때였다.
그들이 있는 천막으로 다가온 황태후를 보면서 반갑게 인사했다.
"천막을 치고 별구경이라도 하고 있었니?"
황태후의 질문에 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황태후 폐하께서도 같이 하실래요?"
리사의 제안에 황태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미르예프가 눈에 띄게 몸이 굳긴 했지만 케르나 니사는 딱히 황태후를 두려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주인의 어머니도 왔구냥.]
난로 옆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케르가 그렇게 말하면서 황태후의 무릎으로 올라가서 몸을 웅크리자 황태후는 미소를 지으면서 그런 케르를 쓰다듬어 주며 물었다.
"다른 비들은 안 보이는구나."
"네, 일단 별구경은 저희 넷이서 하고 있었어요."
"그 여자 이야기는?"
"아! 제가 알고 있는 이야기하다보니... 실례가 되었다면 송구합니다."
미르예프가 덜덜 떨면서 사과하자 황태후는 고개를 저었다.
"딱히 무례가 될 일은 아니란다. 그 여자가 이상한 것이지. 그래서... 사실 조금 걱정되는 게 있기도 하니."
황태후는 지금의 상황이 참으로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
비 끼리 딱히 권력 다툼도 없이, 각자가 잘 어울리면서 투기를 일삼지도 않는. 이 평화가 마음에 들었다.
"이런 말하긴 뭐 하지만... 내가 비로 생활할 때는 이런 시간조차 없었지. 모두가 적이었고, 조금이라도 가문의 영향력을 키워서 제국을 좌지우지하려는 권신들로 가득 찬 황궁에서... 비들은 그런 권신들의 대리전을 위한 말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 모든 건 지금 생각해보면...
황제가 약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모든 비들에겐 늘 암살 위험이 뒤따랐지. 나 역시 그러했단다. 하루가 멀다 하고 암살자들이 찾아오고, 근처에 있던 궁녀는 독을 탔지.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곳이었어. 심지어 의원조차도."
꿀꺽!
그녀들이 이야기의 집중하는 걸 보면서 황태후는 웃었다.
"그럴 때 내가 어찌했을 거 같니? 한 번 리사 비의 의견을 들어 보고 싶구나."
"저요? 으음... 폐하께 부탁하지 않았을까요? 지켜달라고."
리사가 조금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황태후는 덤덤하게 말했다.
"나약하구나. 아니 어쩌면 지금의 황상을 보고 그런 생각하는 걸지도."
황태후는 참으로 나약한 생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해했다.
이 아이가 본 황제는 지금의 황제다.
그때의 황제를 모르니 저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겠지.
"선제께선 아무런 힘도 없었단다. 자신을 지키려면 스스로가 강해야 했지."
그렇기에 그녀가 한 선택은 간단했다.
"그렇기에 난 나를 건드리면 그 이상으로 되돌려주었단다. 궁녀가 독을 타면 그 궁녀의 가족까지 전부 죽여 버렸고, 암살자를 보내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배후를 알아내 보낸 쪽의 일족을 직접 죽여 버렸단다."
오싹!
그 말에 리사와 미르예프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야말로 누가 생각나는 대처법이었으니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으니... 앞으로도 계속 그런 나날이 이어지면 좋겠구나."
"그러네요."
황태후의 말에 리사는 공감했다.
그녀는 권력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다른 비들도... 솔직히 그리 싫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녀 역시 황태후처럼 이런 평화가 이어지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
"앞으로는 이젠 궁장으로서... 생활할 수는 없겠죠."
침대에 누운 채, 알몸으로 황제를 올려다보고 있던 가비는 조금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다.
이제부터 자신은 황제의 비가 되어... 궁장으로 살아갈 수는 없겠지.
이 결정에 후회는 없지만... 그거 하나만큼은 조금 아쉬웠다.
"왜 그리 생각하느냐?"
황제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야 전 이젠 황제의 비니까요. 비의 일을..."
"그러니까 그 비의 일이 뭐지?"
"그건..."
도르륵.
가비가 눈을 굴렸다.
그러고 보니 비가 되면 이제 뭘 해야 하는 거지? 그녀도 막상 떠올려 보려고 하니 생각나지 않았다.
"자식을 낳는 것. 그 후에는 무엇을 하던지 자유다. 짐에게 죄가 되는 일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
두근.
그 말에 가비는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다시... 궁장으로 일할 수 있다고?
그것이 그녀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그대의 실력을 그대로 썩히는 건 아쉬운 일이지."
'리사도 좋아할 테고.'
그녀의 활은 분명 돈이 될 거다.
리사와 재상이 좋아하는 모습이 벌써 눈에 선할 정도였다.
"애초에 사냥터가 그 꼴이 된 것에는 그대의 책임도 있지 않으냐. 일해서 갚거라."
"...후후."
그 말에 가비는 웃었다.
뭔가... 황제가 일해서 갚으라고 말하니까 조금 신기한 기분이었으니까.
"네, 몸으로 일해서 갚겠습니다."
그녀의 대답에 황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슬슬 애무에 들어갔다.
근육이 많아서 탄력적인 그녀의 젖가슴을 만져 주면서 가볍게 입술에 입술을 겹쳤다.
서로가 서로의 몸에 온기를 나눠 주면서 황제는 점점 손을 아래로 움직였다.
'엄청나게 좁군.'
그녀의 아래를 풀어 주면서 황제는 상상 이상으로 좁은 그녀의 질을 풀어 주기 위해서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흣!"
그 움직임에 반응을 보이는 그녀를 보면서 황제는 일단 그녀의 팔 근육을 만지작거렸다.
"아무리 봐도 잘 단련되었구나."
이건 그냥 황제의 취향이었다.
아무리 봐도 굉장히 잘 단련된 근육이어서 관심이 갔으니까.
"치, 칭찬 감사합니다."
잔뜩 붉어진 얼굴로 힘겹게 입을 연 그녀는 손을 뻗어서 황제의 가슴에 얹었다.
"준비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래."
해야지.
황제는 그제야 자기 본래 임무를 깨닫고는 근육을 만지던 손을 다시 아래로 가져갔다.
"흐읏!"
한참을 아래를 풀어 준 끝에 그녀의 음부에 물이 나오기 시작하자 황제는 손을 거두고는 슬슬 삽입을 준비했다.
그걸 보는 그녀의 얼굴에 약간의 두려움이 어렸지만 금방 각오한 얼굴로 그것을 받아들였다.
"읏!"
생각하지 못한 고통에 잠시 신음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황제의 팔을 꽉 잡았고, 황제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허리를 움직였다.
찌걱. 찌걱.
"읏! 흐읏!"
고통에 일그러진 그녀의 표정이 조금 안타까우면서도 황제는 조심스럽게 허리를 움직였다.
아무래도 아래가 좁아서 그런지 더 아픈 것 같았다.
"너무 아프면 말하거라."
"...눈에 화살이 박혔을 때보단 덜 아프니 괜찮습니다."
그녀의 대답에 황제는 그렇다면 다행이라는 생각에 허리를 움직였다.
처음엔 고통스러워하던 그녀도 점점 적응했는지 점점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가 사라져갔다.
꿀럭. 꿀럭.
황제는 그녀의 안에 제대로 사정하고는 그대로 물건을 빼냈다.
그녀는 자기 음부에서 흘러나오는 정액을 보면서 말했다.
"...끝난 건가요?"
"그래."
한 번 했으니까 이제 끝이겠지.
황제는 그런 생각하면서 옷을 입으려고 할 때였다.
터억.
가비가 황제를 그대로 밀어서 침대에 눕히고는 그 위에 올라탔다.
"그러면 다음으로 이어가죠."
"..."
"확실하게 회임하려면 역시 여러 번이 좋지 않습니까?"
그녀의 역동하는 팔 근육에 홀린 황제는 잠시 멍하니 그녀의 팔에 시선을 주었다.
그걸 동의로 알아들은 걸까? 그녀가 그대로 황제의 물건을 만져서 다시 세우고는 삽입을 시작했다.
"정 힘드시면 제가 움직여보겠습니다."
"그래. 마음대로 해 보거라."
아무래도 그녀는 성교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래 몇 번 정도야...'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그녀에게 어울려주었다.
그 선택을... 바로 후회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
"...폐하?"
다음날.
조정에서 경연을 진행하던 황제는 재상이 놀란 얼굴로 자신을 보자 그제야 자기 코에서 흐르는 피를 발견하고는 가볍게 닦았다.
"어제 좀 피곤했던 모양이구나. 신경 쓰지 말고 계속 하거라."
"네, 허면 주문자께서 말하셨던 대로..."
'...이거 너무 방심했군.'
황제는 설마 그녀와 밤새도록 정을 통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폐하."
"...듣고 있다."
황제는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경연에 그리 집중하진 않았다.
솔직히 황제는 옛날 경전을 들여다보는 것엔 그리 관심이 깊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사실 경연은 황제에겐 적당히 신하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경전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질문하면서 시간을 태우는 일에 지나지 않았다.
"오늘은 경연은 이쯤에서 끝내지."
"아직..."
"끝내지."
재상은 경연을 더 이어가려고 했으나 황제가 피곤한 얼굴로 다시 한번 말하자 고개를 숙였다.
"그럼 오늘 경연은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재상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꾸벅 숙여서 황제에게 인사하고는 조정을 나섰다.
재상은 그런 그들을 보면서 황제에게 질문했다.
"많이 피곤하신 모양입니다. 오늘은 유독 집중을 못 하시는군요."
"그래... 잠을 한숨도 안 잤더니 좀 피곤하구나."
정확히는 잠도 안자고 정을 통해서지만, 재상은 그 말에 그제야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보다 공방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전 들은 게 없습니다."
재상의 말에 황제는 벌써 오늘 새벽에 보낸 친서를 확인한 건가? 하면서 조금 감탄했다.
오늘은 경연도 있는 날이라서 경연을 준비하느라 바빴을 텐데 업무에서 그가 부족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는 게 참으로 놀라웠다.
"어제 합궁을 끝낸 비가 궁장이지 않느냐. 그것도 대궁사. 활을 만드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기에 그녀를 위한 공방 하나를 찾아보라고 전한 것이다."
"아!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찾아보겠습니다. 리사 비 전하께서도 기뻐하겠군요."
역시, 황제의 예상대로 기뻐하는 재상을 보면서 그 모든 일을 미령에게 일임하기로 한 황제는 피곤한 얼굴로 조정을 나섰다.
"다녀왔습니다."
그때였다.
조정 앞에 엄청나게 많은 전사들을 굴비처럼 묶어서 데리고 온 모용진이 꾸벅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해 왔다.
"이놈들은 무엇이지?"
"내분 세력입니다. 칸을 죽이고 폐하께 반기를 들려고 했다고 하더군요. 제압해서 데려왔습니다."
"...다카이가 있구나."
모용진의 말에 그들을 살펴보던 황제는 기억에 남은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완전히 정신이 나가 버린 다카이가 침을 줄줄 흘리면서 멍청하게 웃고 있었다.
"누가 저렇게... 만들었는지는 짐작이 가고. 흐음... 리처드는 뭐라고 하더냐?"
황제가 다카이를 보면서 물었다.
그걸 보면서 모용진은 과연 황제란 생각이 들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폐하께선 이미 리처드와 다카이의 악연에 대해서 알고 있는 눈치였으니까.
"리처드가 저리 만들 정도면 무슨 일인지 짐작이 가지. 일단 짐은 그 친구의 의견이 가장 듣고 싶구나."
황제의 말에 모용진은 리처드를 떠올리면서 대답했다.
"폐하의 뜻에 맡기겠답니다."
"흐음... 그렇다면 짐에게 처벌을 물어볼 필요가 없지 않나? 이들의 처벌은 아주 예전에 이미 정했는데."
황제는 싸늘하게 말했다.
"전부 삶아버리거라."
"네. 바로 지시하겠습니다."
지금까지 황제는 법도대로 라면 팽형을 해야 할 때도 하지 않았지만... 이번은 달랐다.
"그러면 다음 칸은 누구지?"
"아마도 아파리란 여전사가 될 듯 하더군요."
"흐음... 그 여자 말이지."
황제는 그녀를 알고 있었다.
자신의 검에 한쪽 눈을 잃었음에도 투지를 잃지 않고 주군을 지키려고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여전사였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살려 두었던.
그 전사의 이름을 여기서 듣게 될 줄이야.
"여성 칸이라니 이례적이구나."
칸은 크릴라이에선 남자밖에 될 수 없는 직책이었다. 그런데 여성 칸이라니... 황제는 신기하단 생각이 들었다.
"백부장들이 다 죽었다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이번 내분으로 백부장들이 전부 죽었다.
이젠 정말 아이와 여성, 일부 전사 밖에 남지 않은 심각한 상황이었다.
"...없어져 버렸구나."
그 대답을 들은 황제는 작게 한탄했다.
그제야 황제는 자신이 그토록 증오했던 적이 이젠 정말 허상이 되어 버렸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