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에?"
늘 그랬듯이 주방에서 요리를 준비중이던 마리프는 뜻밖에 손님에 조금 눈을 크게 뜨고는 놀란 듯이 그 손님을 보았다.
언제나 느긋하던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동요하는 게 느껴질 정도로 이번 손님은 놀라웠으니까.
"요리를 가르쳐달라고 했는데?"
그러나 이 뜻밖에 손님, 아니 황제는 그런 동요를 신경 쓰지 않으면서 다시 한번 이곳에 온 목적을 말했다.
마리프는 순간 머리가 어지러웠다.
긴 제국의 역사에서 황제가 주방에 들어온 적이 있었나? 그 옛날 미문제 이후엔 없었던 듯한데...
마리프가 혼란에 빠져 있을 때 뒤에서 재료를 집어먹고 있던 설화가 물었다.
"요리하고 싶으세요?"
"고얀 놈들이 짐이 요리를 배운다고 늘 거 같지 않다는 망언을 내뱉더구나."
그 질문에 황제가 작게 푸념했다.
황제가 주방에 들어오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요번에 방문해서 아직도 황궁에 머무르고 있는 동생들 때문이었다.
"그, 그런가요?"
미르예프가 식은땀을 흘리면서 묻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요리를 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그 녀석들에게 무시당하고 나니까 승부욕이 생긴다고 해야 하나? 반드시 그 녀석들에게 자신이 요리도 배우면 곧잘 한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그런 상황이라 그대에게 요리를 좀 배우고 싶구나."
황제는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건... 조정에서 경연을 끝내고 한숨 자고 있을 때 일이었다.
--
"형님 잡니까?"
정자에 누워서 잠을 청하고 있던 황제는 익숙한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스릉.
"아, 아니 다짜고짜 그 칼 들이대는 건 자제해주세요! 형님!"
황제는 그제야 눈앞에 남자가 미친왕인 걸 눈치채고는 검을 다시 돌려보냈다.
"갑자기 검은 어디서 불러와서는..."
"이 형님 피곤하다."
집무실에서 끌어온 검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보내면서 황제가 무심하게 대답했다.
물론 미친왕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에이, 그러지 말고요. 식사나 같이 합시다. 곧 라오허랑 카무란도 돌아가지 않습니까?"
"..."
이 녀석이 어쩐 일로 정상적인 말하지?
황제의 눈에 그러한 감정이 담기자 미친왕은 그 감정을 눈치챘다.
"아니 저라고 언제나 비정상적인 건 아닙니다?"
"눈치는 빨라서는... 그래, 어차피 곧 점심이니 같이 식사나 하자꾸나."
뭐, 거절할 이유는 없는 제안이다.
확실히 동생들이 내려가기 전에 한 번 더 모일 생각은 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황제가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제가 요리해볼까요? 모처럼 형제가 모였는데요."
그때 카무란이 정자 위로 올라오면서 말하자 뒤따라온 라오허가 투덜거렸다.
"뭔 요리야. 그보다 형님은 요리... 아니다. 솔직히 안 어울려."
"...그 말은 좀 듣기 거북하구나."
황제는 딱히 요리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안 어울린다니? 대놓고 그런 말을 들으니까 자존심이 상했으니까.
"요리 못하잖아?"
"배우면 잘할 거다."
해 보지도 않았는데 못한다고 단정 짓는 그 말이 상당히 듣기가 거북했으니까.
그렇기에 황제가 덤덤하게 말하자 라오허는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에이... 그냥 요리를 잘할 관상이 아니아. 형님은."
"그 정도로 관상을 잘 본다면 왜 네가 죽을 관상은 못 보는 걸까? 라오허."
황제의 서늘한 말에 라오허는 안색이 창백하게 변해 버렸다.
"저, 저기 진심?"
"...보여주마."
덜덜 떠는 라오허를 보면서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나선 동생들에게 말했다.
"짐의 요리를."
"...그거 꼭 해야 해?"
미친왕이 그걸 굳이 해야 하냐는 듯이 반응했으나 황제는 그 말을 깔끔하게 무시했다.
"동생에게 무시를 당하고 가만히 있을 형이 어디 있느냐."
'아 저건...'
제대로 자존심이 긁힌 거 같은데?
그 모습을 보면서 미친왕은 그리 생각하고는 한숨을 쉬었다.
"맛없으면 라오허가 다 먹는 걸로."
미친왕은 이 모든 재앙은 저 눈치 없는 새끼의 주둥아리에서 나왔으니 그 주둥아리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뭐? 왜 난데!"
미친왕이 황제가 사라지기 무섭게 제안하자 라오하가 바로 발작했다.
"찬성입니다."
그러나 카무란이 동의해 버리자 라오허는 투덜거리면서도 그 이상의 반발을 할 수 없었다.
정말 맛이 없으면 카무란과 미친왕이 합심을 해서라도 전부 자신의 입에 욱여넣을 거라는 것을 라오허는 잘 알고 있었으니까.
"젠장... 더러운 다수결. 어? 저 여자?"
그때였다.
라오허는 황궁을 거니는 한 여인을 발견하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라오허는 기분으 극도로 가라앉는 것을 느끼면서 시선을 돌렸다.
"뭐야, 나르타 비잖아. 아는 사이?"
미친왕이 그런 라오허의 시선이 향했던 곳을 확인하고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자신 만큼이나 여자를 좋아하는 저 녀석이 저렇게 싫은 반응을 보여 줄 정도라면... 상당한 악연일 테니까.
"...조금."
라오허는 그렇게 덤덤하게 대답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저놈 왜 저래?"
"같은 진륜족이니까 안면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겠지만... 좀 이상하긴 하네요."
카무란 역시 저 반응은 이상하다는 기분이었다.
그가 알고 있는 나르타는 누군가에게 미움 받을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르타 비는 저도 예전에 몇 번 만나 보았지요. 배움이 빠르고 뛰어나서 보면서 감탄하게 되는 주술사였습니다."
같은 주술사다 보니 학회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아주 총명하고 뛰어난 실력을 지닌 주술사였다.
사람이 모나지도 않아서 호감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라오허는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조금 신기했다.
"무슨 악연이라도 있는 걸까요?"
카무란의 의문에 미친왕은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악연이 있다면 그런 문제는 대충 저 새끼 문제라고 보면 돼. 저놈이 누군가랑 문제가 있다면 열의 열은 저 새끼 잘못이거든."
"자꾸, 새끼. 새끼. 말 한 번 저속하다?"
라오허가 투덜거렸으나 딱히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거 봐. 저놈 잘못이라니까. 신경 쓸 거 하나도 없어."
그 반응에 미친왕은 금방 신경을 껐고, 그때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머리를 때리는 감각이 느꼈다.
퍼억!
"여! 진민이 뭐 해? 얼굴 보기 힘들더니."
"...오르테가! 이 새끼 진짜."
고개가 앞으로 푹 꺾였던 미친왕에게서 자동으로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머리 때리지 말라고 했지!"
"네가 자꾸 피하니까 그러지. 누님이 황궁에 있으면 빠릿빠릿하게 인사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오르테가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자 미친왕은 이를 갈았다.
형님의 오랜 친구인 그녀는 진민에게 있어서 원수나 다름없었다.
어릴 때부터 그녀한테 두들겨 맞은 기억이 워낙 많아서 그런지 보기만 해도 짜증이 치밀어 올랐으니까.
물론 형님 앞에서는 그런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지만... 솔직히 미친왕은 그녀를 별로 안 좋아했다.
"내가 왜 인사를 해? 형님이 목에 칼 들이밀고 협박하지 않는 이상 그럴 일은 없는데?"
"그렇게 험한 말 하면 이 누님은 슬픈데?"
"뭐가 누님이야 동갑이구만..."
미친왕은 투덜거리면서 머리를 부여잡았다.
"무식하게 힘은 세선. 혹이라도 나면 어쩔려고. 나한테는 얼굴이 유일한 재산인 거 몰라?"
"그거 참 슬픈 말 아니야?"
오르테가는 그런 미친왕을 측은하게 바라보며 말하고는 카무란한테도 인사를 건넸다.
"카무란도 오랜만!"
"그러게요. 오랜만이군요."
카무란은 그녀의 밝은 모습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예나 지금이나 참 사람이 밝은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곁에 있으니 폐하께서도 변한 것이겠지.
카무란은 그런 생각을 하면 그녀에겐 참 고마운 마음 뿐이었다.
"라오허도 있네? 셋이서 뭐 하고 있었어?"
그제야 라오허를 발견한 오르테가가 질문하자 미친왕이 대답했다.
"이 녀석이 형님을 좀 긁었더니 형님이 직접 요리해 온다고 해서 말이야. 그거 기다리는 중."
"요리? 위 녀... 아니 폐하가?"
오르테가가 놀란 표정으로 말하자 그녀를 기다리던 나르타가 다가왔다.
"오르테가?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폐하가 요리를 한다는데?"
오르테가가 신난 얼굴로 말하자 나르타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네?"
나르타는 눈을 크게 떴다.
황제가 요리라니? 정말이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었으니까.
"다른 애들한테도 말해야겠다. 그럼 난 다녀올게!"
오르테가가 신난 얼굴로 달려가 버리자 나르타는 이곳에 있는 면면들을 살펴보았다.
카무란, 미친왕, 그리고 라오허.
나르타의 시선이 라오허를 향했다. 그런 그녀의 얼굴엔 약간의 망설임이 어렸다.
"오랜만이네요. 라오허."
"...그러게."
그 인사에 라오허는 정말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나르타를 보면서 말했다.
"오랜만이네."
정말 보고 싶지 않았던 얼굴이었다.
솔직히... 이 넓은 황궁에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녀는 그만큼 라오허에겐 정말이지 만나기 싫은 존재였으니까.
"주술은..."
나르타가 머뭇거리면서 입을 열자 라오허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아, 아! 그래! 못 써! 여전히 못 쓴다고!"
라오허는 그야말로 발작하듯이 화를 냈다.
그녀가 라오허를 알고 있는 이유.
그리고... 라오허가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
"그쪽이 알려 준 거잖아? 나한테 재능이 없다고."
"그, 그건..."
나르타가 난처한 얼굴로 할 말을 잃었다.
딱히 숨길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라오허에겐 동년배의 주술 스승이 있었다.
그 스승이 라오허에게 잔혹한 현실을 알려주었고, 주술사의 길을 포기하게 만들어주었으며...
그 스승이...
바로 눈앞에 있는 나르타라는 건 딱히 비밀이라고 할 것도 아닌 일이었다.
"알아. 사실이긴 하니까."
라오허는 그녀의 말이 옳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는 기를 다루는 재능도 없었고, 그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주술사가 되기는 힘들다는 것을 의미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진륜족의 피가 흐르는 사람이 주술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을 라오허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이게 괜한 원망이라는 걸 알면서도...
라오허는 그녀를 원망하게 되었다.
그 잔혹한 현실을 알려 준 것이 바로 그녀였으니까. 그런 자신의 스승이 그녀였으니까.
라오허는 그녀를 볼 때마다 주술을 쓸 수 없는 자신을 실감해야 했다.
--
"동생 분들에게 대접을 하고 싶어서였군요오.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힘을 빌려드리겠습니다아."
마리프는 황제의 말을 듣고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 자식들한테 대접하고 싶은 마음은..."
"무슨 요리가 좋을까요오. 혹시 동생분들이 좋아하는 요리가 있을까요오?"
마리프가 그런 황제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하며 질문하자 황제는 잠시 고민했다.
그 자식들이 뭘 좋아하더라?
"미친왕은 회를 좋아했던 거 같구나."
"회요오? 네, 그리고 다른 분은요오?"
"카무란은... 굴을 좋아했던 거 같은데."
"굴 말이군요오! 그리고요오?"
마리프가 호응해주는 걸 보면서 황제는 계속 생각했다.
라오허는...
"라오허는 모르겠구나."
그러고 보니 라오허는 뭘 좋아하더라?
생각해 보면 황제는 라오허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었다.
"으음... 그럼 일단 두 분이 좋아하는 요리로 해볼까요오?"
마리프의 말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런데 전에 요리해본적은 있으신가요오?"
마리프가 식칼을 깔끔하게 씻으면서 질문하자 황제는 식칼을 쥐면서 대답했다.
"야전에서 요리를 한 적은 있는데."
그 대답에 설화는 신기하다는 듯이 질문했다.
"야전에선 어떻게 요리해요?"
"그냥 대충 재료를 자르고, 통에 넣어서 끓이지."
"..."
그 대답에 설화는 침묵했고, 마리프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거... 먹을 만 한가요?"
설화의 질문에 황제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야전에선 허기를 채울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지."
"네에. 여기는 야전이 아니니까 일단 그런 식으로 요리하시면 곤란하답니다아."
그 대답에 마리프는 단호하게 말하고는 식재료를 꺼내오기 시작했다.
"우선 생선을 손질하는 법부터 배울게요오."
마리프가 아직 살아 있는 신선한 생선을 보면서 말하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배워 보도록 하마."
황제는 배우기로 한 이상 대충 배울 생각이 없었다.
제대로 요리를 배우고, 요리를 해서 증명해낼 생각이었다.
자신이... 요리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