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제의 의무방어전-115화 (115/235)

"마차 여행은 오랜 만이네. 기대된다. 우리 뭐 하고 놀까?"

오르테가가 마차 안에서 소란을 피우자 황제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런 그녀의 옆에 앉아서는 책을 읽었다.

마차 안에는 오르테가와 황제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호위는 뒤에 있는 다른 마차에 타서 뒤따르고 있었으니까.

"책만 읽지 말고! 모처럼 단둘인데 같이 놀자고."

"...이거 줄 테니까 얌전히 있어라."

자신에게 달라붙는 오르테가를 보며 황제가 여행을 가기 전에 준비한 사탕을 그녀의 입에 물리자 오르테가는 사탕을 우물거렸다.

"아니! 놀아달라고!"

단숨에 사탕을 먹어치운 오르테가가 칭얼거리자 황제는 작게 중얼거렸다.

"...안 먹히나."

'괜히 챙겼군.'

황제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책을 덮었다.

그러고는 물었다.

"그래, 뭐 할까?"

뭐, 오르테가의 말대로 모처럼 단둘인데 책만 읽고 있는 것도 눈치 없는 짓이겠지.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일단 오르테가에게 어울려줄 생각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일단 누워 봐."

그러자 오르테가가 황제를 자기 무릎 위에 눕혔고, 황제는 순순히 그녀의 손길에 이끌러 그녀의 무릎을 벤 채 물었다.

"그래서?"

"이대로 잡담이나 할까? 옛날처럼."

"...책을 읽는 게 더 재미있을 거 같은데."

황제의 솔직한 대답에 오르테가는 조금 서운한 얼굴로 물었다.

"나랑 노는 건 이제 재미없어?"

"솔직히 이야기하는 건 여화나 레오니 쪽이 더 재미있지."

그녀들과 병장기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검술에 대해 논하는 게 솔직히 더 재미있었다.

그 말에 오르테가는 볼을 살짝 부풀렸다.

"그으래?"

"그래."

"..."

황제의 단호한 대답에 오르테가는 단단히 삐진 얼굴로 황제의 볼을 마구 늘렸다.

"그마해라."

황제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오르테가는 더욱 볼을 늘렸다.

그녀는 솔직히 말해서...

"나 화났어."

화가 났으니까.

"보면 알아."

그녀가 볼을 놔주자 황제가 덤덤하게 말했고, 오르테가는 그런 황제의 입술을 잡고는 가볍게 흔들었다.

"이, 이 얄미운 입!"

"..."

황제는 묵묵히 그걸 당하고 있다가 가볍게 오르테가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가볍게 떼어냈다.

"얼굴을 가지고 노는 건 그만해라."

"노는 거 아니라 화내는 거거든?"

오르테가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하자 황제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화를 내지?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

그 순간 오르테가가 황제를 자기 무릎에서 치우고는 말했다.

"너랑 이제 다신 말 안 해!"

"...?"

황제는 갑자기 화를 내는 오르테가를 이해하지 못했다.

대체 왜 화를 내는 거지?

"화난 건가?"

휙!

"..."

오르테가가 고개를 돌린 채 진짜로 대답하지 않자 황제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그래, 대화를 안 하면 짐은 편하지."

그렇게 말하고 다시 황제가 책을 펴자 오르테가는 그 모습을 잠시 노려보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불편하군.'

그 상황에서...

황제는 그녀가 조용해서 좋은 게 아닌, 그 침묵이 묘하게 거북하게 느껴졌다.

그 뒤로도 마차가 움직이는 동안...

진짜로 오르테가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

"두 분 왜 저래?"

야영을 위해 마차를 멈추고 천막을 지은 료라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황제와 오르테가는 천막이 지어지는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폐하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오르테가 비 전하께서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은 이상했기에 백부장들은 둘의 반응을 살피며 좌불안석이었다.

"료라이 니가 한 번 물어봐라."

비천이 조심스럽게 말하자 료라이는 정색했다.

"나보고 죽으라고? 류화가 하자."

"뭐? 싫어! 한울이가 하라고 해."

서로가 서로에게 떠넘기며 눈치를 보고 있는데 황제가 그들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그렇게 눈치 보지 말고 물어보거라."

"아, 그, 그게..."

젠장! 이런 눈치는 빨라가지고는!

료라이는 식은땀을 흘리며 다른 백부장들에게 시선을 주었으나 다른 백부장들은 냉정하게 그 시선을 외면했다.

'나쁜 새끼들.'

전우도 다 소용이 없구나.

료라이는 그런 생각하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그게 혹시 두 분이 싸우셨나 해서요."

료라이가 조심스럽게 질문하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 같구나."

"아, 그런 거 같... 네?"

싸우면 싸운 거지 그런 거 같다는 건 무슨 말이지?

료라이가 그 대답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황제가 말했다.

"갑자기 나한테 화를 내서 말이다. 조금 당황스럽긴 하지만... 확실히 싸웠다고 보는 게 맞겠지."

그 말에 료라이는 어이가 없었다.

갑자기 화를 내?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오르테가 비 전하께서?

오르테가 비 전하께서는 감정적인 분이라고는 해도 어지간하면 화를 내는 경우는 없었다.

특히 저렇게 말도 안 할 정도로 화낼 정도면...

'폐하께서 잘못하셨겠군.'

료라이는 분명 폐하의 잘못일 거라고 확신했다.

다른 백부장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거 같았다.

"저기... 이거 사석으로 쳐도 되는 겁니까?"

그때 한울이 조심스럽게 묻자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러네.

사석이 아닐 땐 황제는 분명히 짐이란 호칭을 썼으니까.

한울은 그 말에 조금 용기를 얻어서는 말했다.

"그건 막내가 잘못한 거 같은데."

"너 미쳤어?"

갑자기 황제한테 예전처럼 말하다니! 류화가 깜짝 놀라서 물었으나 한울은 당당했다.

"뭐! 사석이라잖아. 예전처럼 말해도 된다는 거 아니야?"

"그래, 말해라."

황제의 허락까지 떨어지자 한울은 솔직하게 말했다.

"솔직히 오르테가 비 전하께서 괜히 화를 내는 사람은 아니잖아? 그러니까 막내 잘못일 확률이 높지."

"그건... 그렇지."

비천이 공감하자 류화는 정신이 나갈 거 같았다.

아니, 예전처럼 황제가 진짜 막내도 아니고, 황제인데? 아무리 허락이 떨어졌어도 이렇게 막말해도 되나?

류화는 그런 생각이 들었으니까.

"아니 예전도 아니고 폐하한테 그렇게 막말... 에휴, 모르겠다."

류화는 체념하고는 황제에게 편하게 말했다.

모두가 편하게 말하는 데 자신 혼자 격식을 지키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으니까.

"막내야. 자세히 이야기해볼래? 그래도 일단 이야기를 들어봐야 알 거 같거든. 계속 이 상태로 이동할 수는 없잖아."

황제는 그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차 안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 말을 듣던 백부장들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아니... 그건...

"화낼 만한데?"

"막내야..."

비천과 한울은 그리 말하고는 작게 한탄했고, 료라이와 류화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사과하자. 그게 제일 나은 거 같아."

류화가 솔직하게 말하자 황제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무엇을?"

"전부! 솔직히 다른 여자랑 비교하는데 누가 좋아하겠어."

류화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빈손이 자식이 왜 황제를 걱정했는지 이제는 알 거 같았다.

여심을 저리 모르니... 황제가 아니었다면 결혼도...

'못하진 않았겠네.'

빌어먹을 세상.

류화는 속으로 불공평한 세상에 대한 욕을 내뱉어 주고는 말했다.

"누가 너한테 재미없다고 하면 기분 좋겠어?"

"상관없는데."

황제의 덤덤한 대답에 류화는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이런 걸로는 이해를 못하는 것 같으니 다른 예시가 필요해보였다.

"말을 바꾸자. 누가 막내 너한테 모용진보다 재미없다고 하면 좋겠어?"

'죄송해요. 대장님.'

류화는 속으로 모용진에게 사과하면서 말했고, 그 순간 황제의 표정이 무섭게 굳었다.

"그건... 기분이 아주 나쁘구나."

그제야 황제는 이해했다.

자신이 상당히 기분이 나쁜 말을 했다는 것을.

그 상황에 모용진을 대입해서 생각해 보니 황제는 자신이 얼마나 기분이 나쁜 말을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사과를... 해야겠구나."

황제의 말에 백부장들은 속으로 환호했다.

드디어 이 분위기가 풀리겠구나.

"언제나 그대들에겐 신세만 지는구나."

황제는 솔직하게 감사를 표하고는 오르테가에게 다가가려고 했으나 이내 멈칫했다.

"?"

백부장들은 그런 황제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왜 갑자기 멈추신 거지?

"...두렵구나."

그때 황제의 입에서 놀랍게도 약한 말이 튀어나왔다.

그 모습에 백부장 전원이 놀랐다.

설마 황제의 입에서 두렵다는 말을 들을 줄이야.

그 야만족과의 거친 전쟁 중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말이었기에 놀라움은 더욱 컸다.

그러나 황제는 두려워졌다.

이상하게도...

황제는 자신이 사과를 했음에도 오르테가가 받아 주지 않는 상황을 상상하니... 사과하는 게 두려워졌다.

--

'그 녀석은 별 생각 없이 한 말일 텐데...'

한편 오르테가는 스스로가 한 말이 후회되었다.

녀석의 처지에선 그냥 평소처럼 한 말일 텐데... 이상하게도 오르테가는 그 말이 갑자기 서운해졌다.

마치... 이 여행이 기대가 된 건 자신 뿐이라고 말하는 듯한 그 모습에서... 오르테가는 깊은 서운함을 느꼈으니까.

'나만... 늘 그랬지.'

생각해 보면 늘 그랬던 거 같다.

자신만 신나서 이야기하고, 녀석은 늘 그렇게 덤덤하게...

원래 그런 녀석이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다른 여자가 언급되자 그 늘 그랬던 게 사실 자신에게만 그런 게 아니었나 싶어서... 오르테가는 몹시 서운했다.

'확실히 여화랑 레오니랑 있을 때가 더 즐거워 보이는 건 사실이니까.'

생각해보면 위는 둘과는 취향이 잘 맞아서 그런지 셋은 곧잘 어울렸다.

어쩌면 자신은...

'나... 질투하고 있었구나.'

그 모습을 덤덤하게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

오르테가는 그제야 자신의 감정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자신과 있을 때보다 더 즐거워 보이는 녀석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질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번 일은 그저 쌓인 게 터진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이대로...'

계속 말하지 않게 되는 걸까?

오르테가는 그건 싫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먼저 다시 친근하게 말을 걸 용기가 나지 않았다.

두려웠다.

자신이 다시 말을 걸었을 때... 위 녀석이 '다신 말 안 한다면서?' 하고 자신을 밀어낼까 봐...

오르테가는 상상만 해도 두려웠다.

"천애야. 이 엄마 어떻게 해야 할까..."

오르테가는 대답이 들려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자기 뱃속에 있을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천애(天愛).

위가 이 아이를 위해 지어 준 태명은... 하늘의 사랑을 받는 아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어쩌면... 자신보다도 녀석에게 사랑을 받을 이 아이라면 혹시 그 답을 알고 있을까?

오르테가는 그런 생각하면서 천막 안에 준비된 침대에 몸을 눕혔다.

"그래..."

내일 화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자.

오르테가는 그렇게 결심하고는 눈을 감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