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제의 의무방어전-117화 (117/235)

이 대륙에서는 총 네 종족이 살고 있다.

우선 가장 인구수가 많은 인간.

대륙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사는 이 인간이란 종은 그야말로 다양한 곳에서 살아가며 제국에 속해 있었다. 명실상부한 이 대륙의 패권을 거머쥔 종족이기도 했다.

그들의 왕이자 이 대륙 전체의 황제인 진위란 자는 역대 최강의 황제라 불리던 천무제를 이미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는 괴물로, 모든 종족의 두려움을 사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두 번째로 강맹함을 자랑하는 종족이 바로 대륙의 서부에서 자리 잡은 용인.

용의 성질을 지닌 이 종족은 용을 떠올리게 하는 뿔과 세로동공의 눈동자. 날씨를 다루는 주술이 특징적인 강한 종족이다.

오죽하면 대륙에는 묘인은 인간의 열 명 몫을 한다면, 용인은 인간의 백 명 몫을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적은 수의 비해서 무시할 수 없는 힘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종족이었다.

아무래도 임신이 어려운 종족의 특징 때문에 개체 수는 적었지만 그만큼 수명이 길었고, 노화가 더뎠기에 그들을 무시하는 종족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사는 곳은 용왕국이라 불리며, 매년 그들이 말하는 축제로 용왕을 정한다.

지금 용왕인 바아간은 무려 50년이 넘는 세월을 군림하며, 여전히 최강의 용인으로 남아 있었다.

세 번째는 바로 묘인.

대륙 동부의 숲지대에 서식하는 그들은 강한 수컷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약육강식의 사회로, 그들은 그들의 우두머리마저 힘의 논리로 정했다.

두 가지의 모습이 있으며, 변형 주술에 능한 그들은 전투의 프로들로, 하나, 하나가 우수한 격투가들이다.

그런 그들의 수장인 묘왕 무카는 역대 최고의 격투가라 평가되는 실력자로 모든 맨손 격투가들에게 존경을 사는 존재였다.

그리고 마지막.

보통 사람들은 보기조차 힘든 환상의 종족이라 불리는 어인. 인간의 상체와 물고기의 하체를 가진 바다의 강자들.

혹자들은 말한다.

그 어떤 대륙의 강자라도, 물속에선 어인을 이길 수 없다고.

그런 어인 중에서도 최강의 전사라 불리던 남자가 바로 지금의 해왕 세이든.

다채로운 마법과 신기에 닿았다는 수중 창술로 노쇠한 지금까지도 바다에서는 그 적수를 찾지 못했다는 세이든은 여전히 해왕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 해왕 세이든이 사는 해왕국이 존재한다고 알려진 제국 남부의 바다.

그곳에 지금 황제의 일행이 도착했다.

--

"여기서 대기해라."

남부의 바다를 보면서 마부와 백부장들과 마법사들에게 그리 명령한 황제는 기분이 좋아 보이는 얼굴로 장미 향기를 맡고 있는 오르테가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 갈 거다."

"아, 그래? 이거 좀 맡아줘!"

그 말에 바로 류화에게 장미를 넘겨 준 오르테가는 황제에게 질문했다.

"그럼 갈아입어야 하지?"

"그래. 도움이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마을에서 사람을 찾아보마."

황제가 옷을 갈아입기엔 불편해 보이는 뿔을 보면서 묻자 오르테가는 고개를 저었다.

"뿔이야 뭐... 불편하면 잠시 실체화를 풀면 되니까. 그럼 갈아입고 올게!"

오르테가가 해왕국으로 인간이 들어가려면 꼭 입어야 할 옷을 들고 마차 안으로 들어가자 황제는 주변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으면서 옷을 갈아입었다.

푸른 도포로 갈아입은 황제는 얌전히 마차 안으로 들어간 오르테가를 기다렸다.

'이 옷을 입은 것도 몇 년만이더라...'

황제는 감상에 젖어서는 옷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해왕국에서 해수를 이용해 만든 이 옷은 인간이라도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하긴 아무리 짐이라도.'

물속에서는 길어야 10분이다.

아무리 황제라도 그 이상은 버틸 수 없었기에 인간이 해왕국으로 가려면 이 옷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나 왔어!"

그때 오르테가가 옷을 갈아입고는 해맑게 웃는 얼굴로 마차에서 나왔다.

"해왕국은 오랜 만이다. 그보다 어때? 잘 어울려?"

오르테가가 가볍게 자기 몸을 휙 돌려보면서 묻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어울리는 구나."

햇빛에 반짝이는 푸른 치마와 푸른 저고리는 나름 그녀에게 차분한 느낌을 주고 있었지만... 정작 오르테가의 행동이 전혀 차분하지 못해서 황제는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넌 뭘 입어도 아름다우니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

"그, 그래? 고마워."

오르테가가 그 솔직한 칭찬에 눈에 띄게 당황하며 얼굴을 붉히자 황제는 가볍게 몸을 풀었다.

"그럼 들어갈까? 벌써 사자가 온듯하니."

[전능하고 위대하신 폐하를 뵙습니다.]

그 순간 물 위로 올라온 거대한 바다거북이 황제를 향해 공손하게 인사했다.

관복을 입고 서 있는 거북의 모습을 보는 건 퍽 우스웠으나 그의 정체를 알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세이든의 권속이구나. 그자가 보냈느냐?"

황제가 가볍게 질문하자 거북은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네, 해왕을 보좌하는 거북대신이라 합니다. 위대한 폐하와 용왕국의 공주님을 보필할 기회를 얻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그래, 바아간과 할 말이 있는 건가?"

황제는 왜 하필 오르테가와 함께 올 것을 요청했는지 궁금했기에 가볍게 물어보았고, 거북대신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아뇨. 공주님의 그 날씨를 다루는 비술이 필요합니다.]

"응?"

오르테가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날씨를 다루는 비술이라니? 그런 건 자신보단 아버지 쪽이 더 적합하지 않나? 그녀는 그런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런 건 아버지가..."

그러나 황제는 그 말의 의미를 알아냈다. 그렇기에 오르테가가 대답하기 전에 바로 반응했다.

"불가. 짐이 허락할 수 없다."

바아간은 강하다.

순수한 강함 자체는 오르테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하겠지.

하지만 강함과 주술의 위력은 다른 문제이다.

제어할 수 없는 강대한 힘은 그저 골칫거리에 불과하다.

황제가 늘 오르테가가 주술을 쓰려고 할 때마다 막은 것은 그런 이유가 가장 컸다.

그녀의 날씨를 부리는 주술은 제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제어가 되지 않은 날씨의 변동이... 이 대륙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아무도.

그렇기에 황제는 그녀의 주술을 쓰는 건 절대 허락할 수 없었다.

[해왕이 원하는 일입니다.]

거북대신이 조금 당황한 얼굴로 대답하자 황제는 차분하게 그런 거북대신을 쳐다보며 말했다.

"허나 짐이 원하지 않지. 그 이상의 대답이 필요한가?"

꿀꺽!

거북대신은 침을 삼키고는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다.

그 차분한 모습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이... 그를 숨조차 쉬기 버겁게 만들었다.

[아닙니다.]

"그러면 안내 하거라. 그 일은 짐이 직접. 세이든과 이야기를 나눠볼 터이니."

[알겠습니다.]

더 이상 말해 봐야 심기만 불편하게 할 뿐.

거북대신은 가만히 해왕과 황제를 저울질 해 보았다.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지는 명백했다.

[그럼 해왕국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거북대신이 속내를 숨긴 채 그대로 물속으로 들어가자 황제는 바로 뒤따랐다.

풍덩!

바다 안으로 들어가자 보인 것은 여유롭게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들과 거북대신이 준비한 거대한 고래와 그 등에 마련된 자리였다.

[고래를 타시면 바로 해왕국으로 이동할 겁니다.]

"더 커진 거 같군."

황제는 그 고래 위에 마련된 자리에 앉으면서 옆에 앉은 오르테가한테 말했다.

"너도 그때보다 커졌고."

"뭐가? 가슴이?"

오르테가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묻자 황제는 잠시 침묵했다. 너무 직설적이라서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커지긴 했지?"

뭐, 그때에 비하면 말도 안 되게 커지긴 했지만, 황제는 딱히 그런 의도로 했던 질문은 아니었다.

"아하하하! 너도 커졌잖아. 키도 그때는 내가 더 컸는데."

그 애매한 대답에 환하게 웃던 오르테가가 새삼 황제와 자신의 키를 재어보면서 중얼거렸다.

예전엔 자신보다도 작았는데... 이젠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그 변화가 참으로... 오르테가는 조금 아쉬우면서도 싫진 않았다.

"잘생겼다. 누구 남편이길래 이렇게 잘생겼지?"

"...답이 정해진 질문은 하지 마라."

빠르게 헤엄치는 고래 위에서 오르테가는 다른 주변의 풍경보다는 황제를 구경하는 데 더 집중했다.

그녀에겐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보다도 황제를 구경하는 게 더 재미있었으니까.

"그런데 왜 날씨를 바꾸려고 하는 걸까?"

황제의 얼굴은 충분히 구경했는지 만족한 표정이던 오르테가가 아까 거북대신의 제안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어째서 해왕이 날씨를 바꾸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미 이곳은 이렇게 아름다운데...

"늙으니까 노망이 난 거지. 네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야. 뭐, 짐작 가는 게 있긴 하다만..."

황제는 그 의문에 단호하게 말하고는 어느새 보이기 시작한 화려한 바다의 도시를 쳐다보았다.

산호와 해초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건물들.

그리고 그 중앙에 있는 커다란 백색의 산호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궁전.

이곳이 바로... 이 바다에 있는 어인들의 나라.

해왕국이었다.

--

아름다운 백색 산호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궁전에 들어선 황제는 자기 뒤를 따르는 오르테가를 살피면서 앞으로 당당하게 걸어갔다.

주변에서 경계하는 시선이 느껴졌으나 황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사라진 거북대신이 아마도 자신의 뜻을 세이든에게 전한 탓이겠지.

황제는 여차하면 무력 충돌까지 각오하고 있었다.

정말 해왕이 원하는 것이 황제가 짐작하고 있는 것이 맞다면... 그가 눈이 뒤집혀도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환영하오."

커다란 문이 열리고 화려한 알현실로 들어선 황제는 상석에 앉아서 자신을 맞이하는 노인을 쳐다보았다.

고래처럼 커다란 덩치.

그리고 커다란 지느러미. 의자에 앉아서 커다란 삼지창을 들고 있는 거구의 노인을 보면서 황제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지금 저 건방진 대처만 봐도 세이든의 의중을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지금... 싸우자는 의미인가?"

황제는 그 선택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른 자도 아닌 황제를 맞이하는 데 저런 방자한 태도라니?

기가 막혔으니까.

딱히 권위적이고 싶진 않았으나, 이런 걸 내버려둔다면 나라의 근간이 흔들릴 것이니 쉽게 좌시할 수는 없는 문제였다.

"나이가 있으니 이해해주시오."

우득!

황제가 그 말에 그대로 기운으로 세이든을 짓눌렀다.

"윽!"

"그래, 그대로 영원히 앉아 있겠다고 하면 이해해 줄 여지도 있겠지."

황제의 싸늘한 말에 그 기운을 떨쳐 버리려던 세이든은 오히려 더욱 강하게 자신을 압박하는 기운을 느끼고는 입술을 꾹 깨물면서 저항을 포기했다.

"..."

저항을 포기하기 무섭게 해왕은 자신을 압박하는 기운이 사라지자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황제 앞에 머리를 박았다.

지금은 일단 복종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이... 바다의 지배를 허락 받은 이가 고귀하신 폐하를 뵙습니다."

"...그래, 이게 옳게 된 인사지."

황제는 그리 말하고는 오르테가를 데리고 세이든이 앉아 있던 상석에 앉으면서 말했다.

"그래, 짐의 비에게 요청할 것이 있다지."

오르테가가 앉을 자리가 없어서 무릎을 내준 황제는 덤덤하게 물었다.

이 자가 이리 방자하게 나온 이유는 뻔했다.

자신이 그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기 때문에 그가 기 싸움을 시도했다는 것은 바로 알아보았으니까.

다른 황제였다면 통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상대가 나빴다면 확실히 나빴다.

"그렇습니다. 날씨를 바꾸게 해주십쇼."

일단 저자세로 다시 한 번 부탁하는 세이든을 보면서 황제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불가. 그대들의 욕심으로 이 대륙에 영향을 끼칠 수는 없을 것이다."

"폐하, 이곳은 바다입니다. 그리고 바다에선 어인을 이길 자가 없지요."

스릉!

'역시 시간 끌기 였나.'

황제는 어느새 이곳을 둘러싸고 있는 어인 전사들과 삼지창을 들고 자신의 앞에 일어선 세이든을 보면서 너무나도 뻔하다고 생각했다.

"제 청을 들어 주시지요. 전 폐하와 이렇게 척을 지고 싶진 않습니다."

세이든의 협박에 황제는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를 잘못 이해한 세이든이 무서운 얼굴로 경고했다.

"그 옷을 믿고 있는 것이라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 옷에 걸린 마법을 풀면 그저 바다에 빠진 인간이 될 뿐이니까요."

오르테가는 급변한 분위기에 당황하고 있었지만 황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태연자약했다.

"10분... 아니 2분이면 되겠구나."

"...무엇이 말입니까?"

황제의 중얼거림에 세이든은 알 수 없는 불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불안은 제대로 적중했다고 볼 수 있었다.

황제는 계산하고 있었으니까.

"2분이면 그대들을 죽이고 물 위로 올라가는 데 충분한 시간이라는 이야기다."

그 순간... 이 바다가 피로 물들었다.

황제는 오르테가의 눈을 가려주면서 그 말에 분노하고 달려든 어인 전사들을 양단해 버렸다.

비무장의 황제가 보여준 그 말도 안 되는 기예에... 바다에선 적수가 없다는 용맹한 어인 전사들도 겁에 질리고 말았다.

"의심이 된다면 시험해 보거라."

그 모습에 당황한 세이든을 보면서 황제는 아무런 감정이 없는 목소리로 덤덤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듣는 모든 어인 전사들은 겁에 질린 채 무기마저 내려놓고 있었다.

"물론 그 대가는 네놈의 늙은 머리통이겠지만."

"..."

세이든은 그 순간 깨달았다.

자신이 순간의 욕심에 눈이 멀어 허튼짓을 했다는 것을 말이다.

물밖에서도 괴물이던 남자는... 물속이라고 해도 다르지가 않았다.

"...이 무례는 백 번 사죄드리겠습니다."

결국 세이든이 다시 한번 머리를 땅에 박았고, 황제는 그들에게 시체를 치우라 명하고는 그가 이토록 무모한 짓을 벌인 이유로 추측하고 있던 것을 이야기 했다.

"찾고 있구나. 천신이 그대들에게 넘겨 주었으나 잃어 버린."

이 바다의 모든 생물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전설적인 마도구.

"해신의 왕관을 말이다."

황제는 그리 말하면서 전사들이 시체를 다 치우자 오르테가의 두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치워주었다.

"...그렇습니다."

세이든은 원래 자신의 머리를 지키고 있어야 할 왕관에 대해 언급하는 황제를 보면서 순순히 인정했다.

그가 오르테가를 이곳으로 부른 이유.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았던 황제를 적으로 돌릴 각오하면서까지 오르테가의 주술을 원한 이유는...

온종일 번개가 내리치는, 그렇기에 어인은 절대 갈 수 없는 해역에 잠들어 있는 해신의 왕관을 찾기 위해서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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