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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의무방어전-121화 (121/235)

"흐음... 그렇군."

마리아는 자신에게 쥐어진 해신의 왕관을 흥미롭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 여자에게... 아니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황상."

눈깔 사탕을 으득 씹으면서 황태후는 뭔가 불만을 말하려다가 포기했다.

정말 내키지 않았지만... 이런 일은 그녀가 전문이라는 건 황태후도 인정하고 있었으니까.

"결론만 말하자면... 그대가 요구한 것을 들어 주는 건 본녀에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란다."

잘 만들어진 물건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천기라는 말도 안 되는 마력을 이용해서 기적을 구현한 물건일 뿐. 구조 자체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으니까.

그걸 가볍게 손 보는 것 정도는 그녀에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시각은?"

"흐음, 한 식경 정도면 충분할 거 같구나."

황제가 원한 것은 바로 원한다면 얼마든지 원격으로 해신의 왕관이 그 기능을 잃게 만들게 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하는 것이었다.

꽤 어려울 거라 예상했는데 마리아는 그리 어렵지 않은 작업이라 말하고 있었다.

"잠시 다른 일이라도 하고 오거라."

마리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황제는 황태후와 함께 그녀의 방에서 나왔다.

"황상은 이제 무엇을 할 생각인지요?"

황태후가 사탕을 다 먹었는지 막대기를 가볍게 으깨버리면서 묻자 황제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오르테가 녀석의 선물을 사려고 했습니다만... 기왕 사는 것 모든 비들에게 선물을 살까 합니다."

원래는 오르테가의 선물을 사려고 했지만, 막상 그러려고 하니까 다른 비들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황제는 모든 비들에게 동등하게 선물을 줄 생각이었다.

"좋은 생각이군요. 분명 그 아이들도 기뻐할 거랍니다."

황태후의 말에 황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참 좋을 거 같군요."

"왜 요새 자꾸 안 어울리는 짓을 하십니까? 그러고 보니 죽을 때가 되면 사람이 변한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황태후가 자리를 뜨기 무섭게 모용진이 깐죽대기 시작하자 황제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넌 왜 안 변하지?"

"..."

오싹!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린 모용진이 급하게 입을 다물었다.

황제는 그걸 보고는 피식 웃고는 걸음을 옮겼다.

"...흠, 그래 세르나랑 아비를 이쪽으로 데려오거라."

"뭐 하... 아하, 그 녀석들도 꼴에 여자라고 도움이 될 거라 기대하시는 겁니까?"

모용진에 질문에 황제는 웃음을 꾹 눌러 참고는 대답했다.

꼴에 여자라니... 그 녀석들이 들었다면 바로 날뛸 말이었으니까.

"...그래도 생물학적으로 여자기는 하니까."

솔직히 황제도 모용진처럼 그녀들이 못 미덥긴 했다.

그래도 황제가 아는 여성이라는 게 황태후와 비를 제외하면 궁녀와 그 녀석들밖에 없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선물이요? 맡겨 주세요! 제가 또 전문이죠."

잠시 후.

모용진에게 불려온 세르나가 당당하게 가슴을 펴며 말하자 아비는 비웃었다.

"네가?"

"저 검도 못 다루는 머저리 말은 무시해요."

세르나는 그 말에 싱긋 웃으면서 말했고, 아비는 바로 화를 냈다.

"뭐야? 너 지금 나한테 시비 거는 거야?"

"먼저 시비건 사람이 누군데! 이 노처녀가."

"너는! 너는! 뭐 달라? 너도 노처..."

"나, 난 아직 젊으니까 괜찮거든! 바보! 아비는 바보!"

어느새 둘이 유치하게 다투기 시작하자 황제는 머리가 아파왔다.

여전히 참 아름다운 사이다.

마음 같아선 저 두 입을 꿰매버리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둘 다 짐과 훈련이 하고 싶나? 원한다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는데."

"...죄송해요!"

"잘못했습니다!"

그 말에 세르나와 아비가 거의 동시에 땅에 머리를 박으면서 사과하자 황제는 앞서 걸으며 말했다.

"그래서 그대들의 의견을 듣고 싶구나. 비들에게 줄 선물로 무엇이 적절할까?"

"옷은 어때요?"

세르나가 가장 먼저 말했다.

"예쁜 한복을 단체로 맞추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그렇게 말한 세르나가 아이처럼 해맑게 웃자 황제는 잠시 고민했다.

"...무슨 단체 생활하니? 군대야?"

아비가 그 의견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무슨 군대도 아니고 단체복을 맞춰.

그건 황제도 같은 생각인 거 같았다.

"별로 좋은 생각 같지는 않구나. 그러니까 모용진한테 까였지."

"어, 어떻게 알았어요? 대장이 말했어요?"

황제의 말에 세르나가 놀란 눈으로 묻자 황제는 작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둘의 분위기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지."

"폐... 아니 진위 님께서 그런 말을... 조금 신기하네요."

폐하의 입에서 분위기만 봐도 안다는 말이 튀어나올 줄이야.

아비가 놀랐다는 듯이 중얼거리자 황제는 주변에서 느껴지는 시선을 보며 물었다.

"그보다 주변의 시선이 따갑구나. 정체가 들킨 걸까?"

딱히 황제란 티를 내진 않았는데... 황제가 그리 생각하며 묻자 세르나가 장난스럽게 알했다.

"아뇨. 제가 너무 예뻐서... 죄송해요.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 주세요. 솔직히 주인님께선 눈에 띄잖아요."

그러나 그것도 잠시 황제의 싸늘한 시선이 자신에게 꽂히자 세르나는 바로 사과하고는 솔직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물색 도포를 입은 황제는 누가 봐도 귀한 집 자제로 보였고, 눈에 띄는 사람이었으니까.

'일단 얼굴부터가...'

하긴... 누구나 한번은 돌아볼 만한 외모긴 했다.

세르나와 아비도 황제가 무서운 만큼 주변의 시선을 끌기 좋은 화려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걸 자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런가... 아무튼 다른 의견은 없는가?"

황제도 자신이 눈에 띄는 외모라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었기에 들키지만 않았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그녀들에게 계속 질문했다.

"꽃은..."

"이미 줬다."

아비의 의견을 황제는 바로 잘랐다.

이미 오르테가에게 꽃을 선물해서 이번엔 다른 걸 선물하고 싶었으니까.

"그럼... 아! 이건 어때요?"

그 순간 세르나가 장신구 가게를 보면서 제안 했다.

세르나가 들고 있는 것을 본 황제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나쁘지 않구나."

지금까지 제안 중에선 확실히 제일 괜찮았다.

황제는 오르테가 녀석이 생각나는 노란 노리개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그거 가격이 좀 나갑니다."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던 상인이 그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퉁명스럽게 말했다.

세르나와 아비는 어이가 없었다.

지금 누구한테 가격이 나간다고 말하는 거지?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는 상인이었다.

"이런 게 몇 개가 있나?"

황제는 그런 퉁명스러운 반응에도 불구하고 태연하게 노리개의 수를 물어보고 있었다.

"거기 전시된 게 전부요."

"..."

황제는 이 장사꾼은 장사할 마음이 있는 건가 싶긴 했지만... 딱히 신경 쓰지 않으면서 노리개를 골랐다.

상인의 태도는 상관없이 상품은 마음에 들었으니까.

"비용은 이걸로 지급하지."

"어음은 안 받..."

황제의 말에 그제야 고개를 든 상인은 뭐라고 한 소리를 하려다가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는 보았으니까.

황실의 인장이 찍힌 어음을 말이다.

"아, 아이고! 높으신 분이셨군요. 귀인을 몰라... 헙!"

그 어음을 보고 굽실거리던 상인은 그제야 황제의 얼굴을 보고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조, 존엄하..."

"조용히."

황제는 바로 머리를 박으려던 상인을 그대로 멈추고는 말했다.

설마 이 상인이 바로 자신을 눈치챌 줄이야. 조금 의외였다.

"거리가 번잡해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 알아들었나?"

끄덕! 끄덕!

상인이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강하게 끄덕이자 황제는 그를 속박하고 있던 기운을 풀었다.

"그럼 이제 선물을 전해 줘야겠구나."

황제가 손에 들린 노리개들을 보면서 말하자 세르나와 아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른 전하죠!"

"....그대들은 이제 복귀해라."

"네? 저희도 구경..."

황제의 명령에 아비가 아쉬워하면서 말하자 황제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복귀해라."

황제가 다시 한번 명령하자 세르나와 아비는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터덜터덜 걸어가는 둘을 보면서 황제는 가장 먼저 공방으로 향했다.

황궁을 나온 김에... 우선 그곳에 있는 비들에게 선물을 할 생각이었으니까.

--

"선물? 노리개네. 귀여워라."

공방에 도착한 황제는 가장 먼저 눈에 띈 타흘라에게 하늘색 노리개를 선물했다.

그걸 만져 보면서 기뻐하던 타흘라는 한복에 바로 그 노리개를 달았다.

"선물 고마워요. 폐하. 키스라도 해드릴까요?"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며 타흘라가 한참을 그렇게 의자에 늘어져서는 노리개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로라가 돌아왔다.

"어머? 폐하께서 여긴 어쩐... 선물이요?"

로라는 황제가 준 붉은색과 금색이 섞인 노리개를 받고는 순수하게 기뻐했다.

"그, 그게 선물을 받을 줄은... 고마워요."

떨리는 목소리로 감사를 표하는 그녀를 보면서 황제는 질문했다.

"다른 비들은 없나?"

"곧 리사랑 니사가 올 텐데요."

로라가 바로 노리개를 달아보면서 대답하자 황제는 잠시 그들을 기다렸다.

"폐하! 여긴 어쩐 일이신가요?"

로라의 말대로 잠시 후 도착한 리사는 황제를 보고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금세 기쁜 듯이 실실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황제는 그녀들을 위해서 준비한 노리개를 꺼냈다.

"선물을 전해주려고 기다렸다."

"선물이요? 아..."

리사는 황제가 건네준 푸른색 노리개를 받고는 붉어진 얼굴로 감사를 표했다.

"그게... 고마워요."

"니사 비도. 둘은 쌍둥이라서 똑같은 색으로 골랐다."

"가, 감사합니다."

니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감사를 표하며 리사가 받은 것과 똑같은 색의 노리개를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기쁜 듯이 웃으면서 노리개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는데...'

황제는 하나같이 다 좋아하니까 솔직히 조금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별거 아닌 선물인데도 저리 기뻐하니...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그럼 짐은 이만 가보마."

"네."

그녀들의 인사를 받으면서 황제는 황궁으로 향했다.

"폐하? 합궁하러 가신 것 아니었습니까?"

황궁에 도착하기 무섭게 마주친 미령이 황제를 보며 조금 놀란 듯한 눈으로 묻자 황제는 그녀에게 검은색 노리개를 건넸다.

"일 때문에 잠시 들렸다. 그보다 선물이니 받거라."

"...감사합니다."

미령의 눈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곧 그녀가 덤덤하게 선물을 받았다.

'별로 기쁘지 않은 건가?'

황제가 그리 생각하면서 그녀를 지나쳐 걸을 때였다.

"후후..."

작게 웃은 미령은 그 노리개를 정말이지 사랑스럽다는 듯이 내려다보면서 가슴에 꼭 품었다.

그 모습을 본 황제는 여전히... 솔직하지 못한 여인이라는 생각하면서 계속 앞으로 걸었다.

"폐하? 돌아오셨사옵니까?"

두꺼운 털옷으로 몸을 따뜻하게 감싸고 세이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세헤라자드가 황제를 발견하고는 말을 걸어왔다.

"아니, 잠시 일이 있어서 왔다. 그보다 선물이다."

황제가 초록색 노리개를 세헤라자드에게 선물하자 세헤라자드는 감격한 얼굴로 그 선물을 받았다.

그런 그녀의 몸은 감격으로 크게 떨렸다.

눈에서는 눈물까지 흐르고 있었다.

"정말이지... 분에 넘치는 선물을 주셔서 감사하옵니다."

"자, 그대도."

"어머, 저도 있나요?"

세이나는 놀란 듯이 중얼거리면서 황제가 준 검은색 노리개를 받아들였다.

미령에게 준 것과 색은 같았지만 세이나가 받은 것엔 번개 모양의 장식이 추가로 달려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선물을 받는 건 처음이라서 기쁘네요."

세이나가 기쁜 듯이 중얼거리자 황제는 그런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냐... 선물? 고맙다냐. 주인.]

마루에서 졸고 있던 케르를 발견한 황제는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노리개를 건네주었고, 케르는 그 노리개를 품에 안고는 다시 잠들었다.

'이제 몇 명 남았지?'

황제는 점점 줄어가는 노리개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녀들이 기뻐하는 만큼... 황제도 솔직히 조금 즐거운 기분이 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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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놀랐어요. 폐하께서 선물을..."

복귀한 세르나가 모용진의 앞에 앉으면서 중얼거리자 아비도 공감했다.

"그러게. 너무 변해서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

"...긍정적이지. 이제 정말 다른 사람들에게 정을 줄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겼다는 거니까."

모용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검을 계속해서 닦았다.

솔직히 그도 지금의 황제 모습이 어색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 변화가 싫진 않았다.

"정말 빠르게 변하고 있어. 그것도 긍정적으로."

원래 폐하께선 어떤 의미에선 조금 뒤틀려 있는 사람이었다.

당장 자비를 베푼다면서 사람을 죽이기도하고, 팔이나 혀를 자르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그런 모습은 많이 줄어들었다.

비들에게 선물을 준다는 발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람이 부드러워졌으니까.

모용진은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젠... 그렇게 잔인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제국은 안정되었으니까.

그러니까...

모용진은 자신이 놀리기는 했지만 폐하께서도 이젠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렇게 평화로운 삶을 이어 나가면 좋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대장도 좀 그렇게 긍정적으로 빠르게 변해주면 좋은데."

세르나가 작게 투덜거리자 아비는 웃음을 꾹 참았고, 모용진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하하."

그녀에겐 미안하지만... 모용진은 딱히 변화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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