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말입니까?"
마방에서 말의 갈기를 빗어 주고 있던 레오니는 황제가 건넨 백금색 노리개를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노리개엔 방패 모양의 장식까지 달려 있었다.
평소엔 딱히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녀는 이번엔 감정을 제대로 숨기지도 못하고 한참을 머뭇거렸다.
"그, 그게 저한테 이런 게 어울리진... 오히려...'
횡설수설하기 시작한 레오니를 보며 황제는 그녀에게 다가가서는 자상하게 그녀의 옷에 노리개를 달아주었다.
"잘 어울리는구나."
"..."
레오니는 그 말에 멍한 표정을 짓더니 곧 고개를 푹 숙이면서 대답했다.
"그게... 그러니까... 감사합니다."
두근.
황제의 귀에 들릴 정도로 심장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황제는 뭐라 해야 할지 고민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한 레오니가 그대로 도망치듯 가 버리자 황제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괜한 말이었나."
너무 부담을 주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자신을 보고 있는 말의 갈기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고는 다른 비를 찾으러 이동했다.
"폐하! 폐하! 이거 봐요! 이 활 진짜 멋지죠?"
그때 그런 황제를 발견하고 신난 얼굴로 달려온 달리아가 자신의 활을 자랑하면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잘 만들어진 각궁을 보면 황제는 그 궁을 만든 사람이 누군지 바로 알아보았다.
"가비가 만든 것이냐?"
"어? 어떻게 알았어요? 오늘 받았어요. 헤헤! 그래서 내일 사냥을 가려고 하는데..."
신난 얼굴로 사냥 계획을 이야기하는 달리아를 보면서 황제는 그녀에게 준비한 자색 노리개를 건네주었다.
"선물이다."
"...폐하. 혹시 죽을 병에 걸렸어요?"
진지하게 걱정하는 그녀를 보면서 황제는 표정을 굳혔고, 달리아는 말은 그래도 크게 기뻐하면서 그 노리개를 받았다.
"아하하! 농담인 거 아시죠? 그보다 이거 어디다가 쓰는 건가요?"
달리아가 노리개의 용도를 모르는지 고개를 갸웃하자 황제는 잠시 고민했다.
그녀의 옷은 이 겨울에도 엄청 얇아서 딱히 노리개를 달아 둘 곳이 잘 보이지 않았다.
"여기다가 달면 되겠구나."
"읏!"
달리아는 황제의 손이 자기 허리에 닿자 작게 몸을 떨었다.
그런 그녀의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고, 황제는 그녀의 허리띠에 노리개를 달아두었다.
"이렇게 하면 된다."
"그, 그렇군요... 고, 고마워요."
"?"
잔뜩 붉어진 얼굴로 감사를 표하고는 달리아가 도망치듯 사라지자 황제는 갸웃했다.
'왜 도망치는 거지?'
아무튼 싫어하진 않은 거 같으니 상관은 없지만...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남은 사람을 정리해 보았다.
'나르타, 설화, 미르예프, 마리프... 마리아는 왕관을 돌려 받으면서 주면 될 테고...'
"충성! 존엄하신 폐하를 뵙습니다."
그때 골 디나카가 각진 자세로 경례하고는 황제에게 다가왔다.
"그래, 마침 잘 왔구나, 이거 받거라."
적갈색 노리개를 황제가 그녀에게 건네주자 그녀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그걸 받아들였다.
"제가 감히... 이런 귀한 선물을 받아도 되는 걸까요?"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그녀를 향해 황제가 고개를 끄덕여주자 그녀는 그대로 땅에 머리를 박았다.
"분에 넘치는 선물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당장 이 심장을 꺼내..."
"그만."
황제는 그런 그녀의 행동을 멈추고 일으켜 세워주고는 말했다.
"그대는 이제 악골족이기 이전에 짐의 비니 그 누구를 상대로도 그렇게 함부로 머리를 조아려서는 안 될 것이다."
"명, 명심하겠습니다."
'...피곤한 아이구나.'
황제는 그녀의 머리에 묻은 먼지를 털어 주고는 그녀를 보내주었다.
'그러고 보니 가비는 거기에 있겠구나.'
황제는 활을 떠올리면서 그녀가 있을 곳으로 향하려다가... 다른 비들이 있을 더 가까운 곳을 깨닫고는 다시 걸음을 돌렸다.
일단... 주방으로 가 볼 생각이었다.
--
"그 녀석... 언제 오려나."
오르테가는 혼자 방안에 남아서는 중얼거렸다.
물론 그 해신의 왕관을 구하러 간 거다.
늦을 것은 예상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얼른 황제가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황제가 없는 지금은... 아무리 아름다운 것을 봐도 금방 질려 버리고 말았으니까.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때였다.
공손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오자 오르테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들어오세요."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자 방 안으로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해왕 세이든이었다.
다시 봐도 콰오콴이 생각날 정도로 거대한 체구가 가장 먼저 오르테가의 눈에 들어왔다.
"다시 한번 폐하와 비 전하께 무례했던 것에 우선 사죄 드리겠습니다."
공손하게 나오는 세이든을 보면서 오르테가가 어색하게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보다 나이도 많고, 신분도 낮다고 할 수 없는 사람이 극도의 저자세로 나오는 모습을 보는 건 솔직히 조금 부담스러웠으니까.
"그냥 말을 편히..."
그래서 오르테가가 그냥 말을 편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려고 했으나 세이든은 고개를 저었다.
"어찌 감히 그런 무례를 범하겠습니까."
"그, 그래요..."
오르테가는 솔직히 어색했다.
당장 나이만 해도 자기 아버지 뻘이고, 그 신분도 아버지와 비슷한 사람이 이렇게 저자세로 나오는 걸 보는 건 말이다.
그러나 세이든 처지에선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방은 마음에 드십니까?"
"아! 엄청 마음에 들어요. 물고기들도 귀엽고."
오르테가의 밝은 대답에 세이든은 다행이라는 듯이 반응하고는 고민에 잠겼다.
그 모습을 보면서 오르테가는 황태후에게 배운 대로 차를 내올까 하다가 이곳이 바닷속이라는 걸 기억해내고는 머쓱한 얼굴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 그러고 보니 아무것도 대접하지 않았군요. 죄송합니다."
따악!
세이든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해마들이 안으로 들어오더니 산호로 만들어진 식탁 위에 보라색 액체가 들어 있는 방울 두 개와 해초로 만든 과자를 내려놓고 사라졌다.
"해왕국의 명물인 미역 과자와 해초 주스입니다."
"아, 그렇군요. 이거 근데 어떻게 마셔요?"
세이든의 설명에 해초 주스가 들어 있는 방울을 양손으로 든 오르테가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묻자 세이든은 직접 시범을 보였다.
앞에 놓여 있는 관을 꽂고는 그 관을 이용해서 내용물을 쭈욱 빨아 마셨으니까.
"아! 그렇게 마시는 거군요."
오르테가는 어색하게 관을 집어 들고는 그대로 방울에 꽂아서 살짝 빨아 마셨다.
"달다."
오르테가가 작게 감탄하자 세이든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 손녀도 좋아하더군요. 해왕국에선 여성에게 아주 인기입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무슨 볼일이신가요?"
세이든의 설명을 들고 고개를 끄덕이던 오르테가가 주스를 내려놓고는 묻자 세이든은 한참을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제 손녀와 친하시다고 들었습니다."
"세이린이요? 그렇긴... 하죠?"
오르테가 긍정적으로 반응하자 세이든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제 손녀가 이번에 폐하의 합궁 상대로 정해졌다는 건 이미 아실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네, 알고 있어요."
오르테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다.
세이린이 그 녀석의 이야기를 할 때의 반응이나, 황제가 노골적으로 자기 앞에선 그 아이의 언급을 피하는 것만으로 그 사실 정도는 짐작이 가능했으니까.
"그 아이는 죄가 없습니다. 모든 건 이 늙은이가 실수한 것이니 제 잘못은 오로지 제 잘못으로만 끝낼 수 있도록... 부디 오르테가 비 전하께서 폐하께 좋게 이야기해주실수는 없습니까?"
그 말에...
오르테가는 그제야 왜 세이든이 자신에게 찾아왔는지 알아차렸다.
그는 두려웠던 것이다.
황제에게 대항하고 난 뒤에...
황제는 아직 그의 처우에 대해선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그가 처벌 받을 것은 자명했고, 세이든은 그 처벌이 손녀한테 이어지진 않을 지 우려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건 정말이지 괜한 걱정이라고 오르테가는 생각했다.
"제가 말하지 않아도... 될걸요?"
"그 말씀은..."
세이든이 충격을 받은 얼굴로 오르테가를 보았다.
그 말은... 황제가 자기 손녀를 용서하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일까?
세이든은 절망적인 상황을 상상하며 두려움에 몸을 떨었지만... 오르테가가 한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
"폐하가 무서워 보일 수 있다는 건 저도 알거든요? 처벌도 확실하게 하는 편이고... 그래도 말이죠."
오르테가는 볼을 긁적이면서 말했다.
"세이든 씨의 일을 가지고 세이린에게 뭔가 해코지를 한다던가 불이익을 줄 사람은 아니예요.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
세이든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황제의 무서움은 그야말로 뼈저리게 실감했다.
당장 세이든은 황제가 대장군 진만을 토벌할 때 그의 식솔 하나도 남기지 않았던 것을 기억했으니까.
세이든은 정신이 들고 보니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짓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황제에게 대항한다는 건... 혈족의 죽음을 의미했다.
그렇기에 두려웠다.
세이든은 자기 늙은 목숨은 상관없지만... 세이린을 포함한 가족들이 전부 죽임을 당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도와주지... 않으실 겁니까?"
"만약 폐하께서 세이린을 죽이겠다고 말하면 제가 막을게요. 하지만 폐하께서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제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 있어요."
오르테가는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세이든을 보면서 맹세했다.
그녀는 믿고 있었다.
그녀가 아는 황제는... 그렇게 잔혹한 사람도, 냉정한 사람도 아니었으니까.
그 말에... 세이든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감사합니다."
세이든이 아는 황제는 용서를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녀가 아는 황제는 아마도 다른 사람인 거 같았다.
세이든은 어느 쪽이 정답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부디 그녀의 말대로 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
"어머나아. 정말 귀여운 노리개네요오."
주방에서 사과를 깎고 있던 마리프는 황제가 건네준 산 모양의 장식이 달린 하늘색 노리개를 받아들고는 느긋하게 중얼거렸다.
"그보다 누구에게 주려고 사과를 그렇게 예쁘게 깎았느냐?"
멋들어지게 깎인 사과를 보면서 황제가 묻자 마리프가 느긋하게 대답했다.
"나르타 씨가 사과를 먹고 싶다고 해서요오. 대장간으로 가져가려고 했답니다아."
"...대장간이라니?"
황제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마리프는 느긋하게 사과 하나를 집어선 황제에게 내밀었다.
"자, 아아아."
덥썩.
황제는 그녀가 건넨 사과를 그대로 물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황제의 입안에 들어갔으나 그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면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맛있죠오?"
"맛은 있구나. 그런데 대장간은..."
"저쪽에 미르예프랑 설화가 있으니까요오. 그분들 것도 있는 거지요오?"
"..."
전혀 듣지 않는 마리프를 보면서 속으로 한숨을 쉰 황제는 그녀에게서 대답을 듣는 건 포기하고는 그녀가 가리킨 방향으로 향했다.
"폐하! 또 회를 뜨시려고 오신 건가요?"
주륵.
설화가 입맛이 도는지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으면서 묻자 황제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이걸 전해주려고 왔다."
진갈색 노리개를 설화에게 건네면서 황제가 말하자 설화는 감동한 얼굴로 노리개를 받았다.
"선물인가요? 헤헤,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그대도."
호들갑을 떠는 설화를 부러운 듯 보고 있던 미르예프에게 황제는 은색의 노리개를 건네주었고, 미르예프는 그것을 받아 소중하게 품었다.
"절대 잊어 버리지 않을게요. 꼭 달고 다니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황제는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너무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무렴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장간이라...'
아무튼 마리프의 말을 들어 보면 나르타는 대장간에 있는 것 같았기에 황제는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리프가 대장간이라고 말하는 곳이라면...
황제가 가비를 위해서 마련한 그곳밖에 없었으니까.
"...폐하! 폐하께서도 활을 보러 오신 건가요?"
그때 한참 대장간 앞에서 활의 시위를 조절하고 있던 여화가 황제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말을 걸었다.
"아니, 그대들을 찾고 있었지."
황제의 대답에 여화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을 찾을 일이라니... 그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여화는 곧 반색하면서 검을 뽑았다.
"대련인가요?"
"아니."
"...그럼 뭔가요?"
그 대답에 시무룩한 얼굴로 다시 검을 집어넣는 그녀를 보면서 황제는 검 모양 장식이 달린 검은색 노리개를 건네주었다.
"선물이다."
"...노리개네요? 이런 건 처음 받아봐요."
여화는 신기하다는 듯이 노리개를 살펴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녀는 살면서 이런 여성스러운 물건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웠다.
"싫은가?"
"아니... 그게..."
여화는 그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어색하긴 한데요. 그래도 조금..."
여화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작게 대답했다.
"기쁘네요."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황제의 대답에 완전히 홍당무로 변해 버린 여화는 활을 시험해 보겠다면서 도망치듯이 떠나버렸다.
벌써 도망치는 비만 몇 번을 본 거지?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대장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말 여기 있었군."
대장간 안으로 들어선 황제는 엄청난 열기를 뿜어내는 화덕 앞에서 멍하니 타오르는 불을 보고 있는 나르타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어머, 벌써 돌아오셨나요?"
그 말에 그제야 황제가 이곳에 왔다는 걸 알아차린 나르타가 화덕에서 시선을 떼고는 황제에게 말을 걸어왔다.
"여행은 즐거우셨나요?"
"...잠시 들린 것이다. 곧 다시 가야 하니 그 이야기는 여행이 다 끝나고 이야기하자꾸나."
황제의 대답에 나르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의자에서 일어나 가볍게 팔을 벌렸다.
"?"
"안아주세요."
그 행동에 고개를 갸웃하던 황제는 나르타가 당당하게 요구하자 피식 웃고는 그런 그녀를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되었느냐?"
"네, 역시 폐하의 품안은 따뜻하네요. 그래서 무슨 일로 여기로 오신 건가요? 가비라면 재료를 가지러 내려갔는데요."
나르타가 황제의 품에서 나오면서 말하자 황제는 고개를 저었다.
"꼭 가비만을 보러 온 건 아니라서."
"?"
황제는 의아한 표정을 짓는 그녀에게 그녀와 똑 닮은 붉은색 노리개를 직접 달아주면서 말했다.
"선물이다."
"어머나."
나르타는 설마 선물을 준비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지 작게 감탄했다.
"정말 많이 변하셨네요."
"그래 보이나?"
황제가 그 말에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정리해주면서 묻자 나르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예전에 폐하께선 솔직히 이런 분은 아니셨으니까요."
그녀의 말에 황제는 피식 웃었다.
그 말대로... 예전에 자신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긴 했으니까.
그녀들의 선물을 준비하는 것도, 이렇게 누군가의 머리를 정리해주는 것도...
전부.
예전에 황제라면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들이었다.
"그래서 싫으냐?"
"아뇨. 오히려 더욱 연모하게 되었답니다? 싫으신가요?"
장난스럽게 말하면서 웃는 나르타를 보면서 황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싫지 않다."
예전엔 솔직히 누군가의 호의라는 것 자체가 불편하고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싫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들의 호의에 그만큼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즐겁게 하고 계십니까?"
그때 가비가 손에 소의 뿔을 들고는 의아한 얼굴로 물어왔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황제는 가볍게 대답했다.
"그냥 옛날이야기를 좀 하고 있었지."
가비는 그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들고 온 소뿔을 땅에 내려놓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황제는 그녀를 위해서 준비한 망치 모양의 장식이 달린 진갈색 노리개를 건넸다.
"그보다 이건 선물이다."
"...아, 달리아 비께서 비슷한 걸 소중하게 달고 다니시던데 폐하께서 주신 거군요. 감사히 쓰겠습니다."
당장은 편한 작업복 차림이라 일단 노리개를 조심스럽게 벽에 걸어 둔 가비는 황제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마리아 비께서 찾으시던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지요?"
"아, 그렇지. 그럼 짐은 이만 가보마."
작업이 끝났나?
하긴 이미 마리아가 제시한 시간을 넘겼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걸지도...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둘에게 작별 인사하고는 마리아가 기다리고 있을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늦었구나. 본녀를 달아오르게 만들 생각이라면 성공했다만..."
방 안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투덜거리는 소리와 함께 마리아의 시선이 황제에게 쏘아졌다.
"분명 한 식경이라고 했는데 뭘 하느라 이제 오는지.... 본녀는 참으로 들어 보고 싶구나."
조금 삐진 얼굴로 묻는 마리아에게 황제는 바로 사과했다.
"선물을 좀 나눠 주고 오느라 늦었다. 미안하구나."
"선물?"
마리아는 황제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하더니 곧 당당하게 손을 내밀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본녀의 것도 있겠지?"
싱긋 웃으면서 말하는 마리아를 보면서 황제는 그녀를 위해서 준비한 은색과 자색이 섞인 노리개를 건네주었다. 그걸 바로 손에 쥔 마리아는 눈을 반짝이면서 중얼거렸다.
"호오, 노리개구나."
"그보다 왕관은?"
황제가 질문하자 마리아는 소매에서 왕관과 버튼을 꺼냈다.
겉으로는 전혀 변한 게 없는 왕관이 그녀의 손에 들려 있었다.
"이 버튼을 누르면 왕관이 그 기능을 상실하도록 만들었단다. 굉장하지 않느냐?"
그 말에 황제는 마리아가 건네준 버튼을 만지작거리고는 일단 책상 위에 두었다.
그런 물건이라면 굳이 그곳에 가져갈 필요는 없었으니까.
"이건 일단 이곳에 두고 가마."
"좋은 생각이니라. 그보다... 본녀가 아주 고생을 한 것은 알고 있겠지?"
"?"
고생이라니? 본인 입으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황제가 그리 생각하면서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마리아가 자신이 물고 있던 곰방대를 황제의 입에 물렸다.
"후후, 아주 고생을 했어. 그것에 대한 대가는 따로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
후우욱!
부드럽게 웃는 마리아를 보며, 황제는 곰방대를 크게 한 번 피우고는 그녀에게 곰방대를 돌려주며 물었다.
"대가라... 무엇을 원하지?"
"눈을 감고 있거라."
스륵.
황제는 그 말에 얌전히 눈을 감았고, 그녀의 부드러운 손이 황제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뒤로 넘겼다.
쪽.
그리고 얼마 후, 부드러운 무언가가 확실하게 황제의 입술에 닿았다.
"아쉽지만 지화(智話)가 있으니 이걸로 만족하도록 하마. 이제 눈을 떠도 되느니."
마리아가 아쉬운 얼굴로 자기 배를 쓰다듬으면서 말하자 황제는 자기 입술을 가볍게 매만졌다.
"뭐한 거지?"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 물어보는 건 너무 짓궂지 않느냐? 아무튼 금위대장이 기다리고 있는 거 같으니 얼른 가보거라. 그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지 않나?"
마리아가 실실 웃으면서 황제에게 말하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선물을 전해 줘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
"늦네에..."
오르테가는 침대에 걸터앉은 채 늘어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벌써 저녁이 되어가는데 녀석은 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설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번개에 맞아서 다쳤으면?
그 녀석이 그런 거로 다칠 녀석은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었는데... 오르테가는 그런데도 불안 했다.
휘익!
"...그 자식. 사람을 던지다니."
그때였다.
오르테가는 열어둔 창문으로 무언가가 들어오자 그쪽에 시선을 주었다.
"위!"
그야말로 반가운 얼굴에 오르테가가 반색하면서 그대로 달려와서는 황제에게 달려들었다.
꼬옥!
"왜 이렇게 늦은 거야! 걱정했잖아!"
"...미안하구나."
황제는 자기 품에 뛰어 들어 온 오르테가를 보면서 미안한 표정으로 그리 말하고는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 주었다.
오르테가의 눈에는 약간의 물기가 어려 있었다.
"걱정한 건가?"
"당연하지! 금방 온다던 사람이 이렇게 늦는데!"
오르테가가 조금 화를 내면서 말하자 황제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모용진한테 시키고 바로 올 걸 그랬나?
그런 생각을 잠깐 했지만... 그래도 선물은 직접 전해주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믿었으니까... 황제는 오르테가에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선물을 좀... 여기저기 나눠 주느라 늦었다."
"선물?"
오르테가가 고개를 갸웃하자 황제는 그녀의 눈에 물기를 닦아주고는 그녀를 생각나게 만든 샛노란 노리개를 직접 그녀의 옷에 달아주었다.
"이거 말이다."
"노리개네? 예쁘다. 다른 사람들한테도 다 준 거야?"
오르테가가 노리개를 구경하면서 감탄하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그보다 말이야."
"?"
황제는 여전히 자신의 위에 올라탄 채로 말하는 오르테가를 보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오르테가는 그런 황제를 다시 한번 꼭 껴안으면서 말했다.
"잘 돌아왔어."
이상한 일이다.
원래라면 돌아왔다는 말은 이곳에선 그리 적합한 말은 아니다.
이곳은 황제의 집이 아니고, 황제가 돌아올 곳도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그래. 돌아왔다."
황제는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도 자신이 무사히 돌아왔다는 안도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