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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의무방어전-126화 (126/235)

"어머나! 귀여워라."

나르타는 케르의 어깨에 올라타선 털을 고르고 있는 검은 고양이를 보고는 눈을 반짝였다.

"켁!"

케르는 그런 나르타를 보면서 싫은 소리를 냈다.

마주치기만 하면 머리를 만지고 안아보는 등 소란을 피우기에 케르는 나르타가 영 껄끄러웠으니까.

"친구인가요?"

"냐냐! 굳이 따지자면 주..."

투욱!

아무런 생각도 없이 황제의 정체를 말하려던 케르는 황제의 앞발을 맞고는 입을 다물었다.

사뿐.

케르의 어깨에서 떨어진 황제는 그야말로 가볍게 착지하고는 거칠게 울었다.

"냐아아아!"

"어머? 화가 났나보네요?"

나르타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화났다는 것만 알아들었지만 케르는 그 말을 똑똑히 들었기에 몸을 움찔거렸다.

[들킬 말을 해서 뭘 하자는 거냐아아!]

"미, 미안하다냐!"

바로 사과한 케르는 덜덜 떨었고, 나르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이 작은 고양이가 더 서열이 높은 거 같네요."

"시, 실제로 높... 흐냐아아!"

케르는 자기 꼬리를 밟는 황제의 행동에 다시 한번 실언할 뻔한 걸 참을 수 있었다.

"그, 그게 친구가 밑긴 고양이라서 말이다냐. 함부로 대하기가 조금... 곤란하다냐."

"아하, 그러셨군요. 하긴 남의 애완동물은 함부로 대하긴 좀 그러니까요."

바로 이해해준 나르타는 고양이에게서 도무지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 안아봐도 될까요?"

결국 안아보고 싶은 욕망을 참지 못한 나르타가 안절부절못하면서 물어보자 황제는 단호하게 말했다.

[거절해라냐.]

"미, 미안 하지만 곤란할 거 같다냐. 사람의 손을 꺼리는 녀석이라서 말이다냐!"

"저런... 아쉽네요."

나르타는 눈에 띄게 아쉬워하면서도 그냥 머리를 쓰다듬는 것으로 만족했다.

"왜 거절한 거다냥?"

나르타와 떨어지자 케르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냥 한번 안겨줘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눈빛이 무서웠다냐.]

그러나 황제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고양이의 본능이 거부하는 위험한 눈빛이었다.

황제는 나르타의 시선을 그렇게 평가하면서 다시 케르의 어깨에 올라탔다.

[아무튼 계속 돌아다녀 보자꾸냐.]

"알았다냐."

케르는 걸음을 옮겼다.

나르타의 눈빛이 무섭다는 것은 그녀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이번엔 어디로 갈 거냐.]

"두목을 만나려고 한다냐!"

황제의 질문에 케르가 이런 상황에선 역시 두목에게 의존해야 한다면서 꼬리를 붕붕 흔들었다.

그걸 본 황제는 그 두목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가 두목이라고 부르는 사람.

그 사람은 이 황궁에서 한 명뿐이었으니까.

--

"으응?"

무카는 앞에 있는 물병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이게 남아 있지?

"이게 왜 남아 있는 거다옹?"

분명 딸에게 보낸 걸로 기억하는데...

왜 이게...

"아, 잘못 보냈구냥."

그제야 무카는 자신이 실수로 묘인의 영약이 아닌 묘약(猫藥)을 보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묘약.

효능은 별건 아니고, 옷을 입은 채로 고양이로 변할 수 있게 해주는 약이다.

아무래도 그냥 고양이의 모습으로 둔갑하면 옷이 벗겨진다.

매번 묘인으로 변신할 때마다 옷을 번번이 찾아야 하는 것에 귀찮음을 느끼는 묘인을 위해서 개발한 것이 바로 이 약이다.

이 약을 먹으면 옷도 함께 둔갑되어 둔갑을 풀어도 옷이 남아 있으니까.

'뭐, 잘못 먹어도 문제는 없겠지냐.'

어차피 딸 아이가 먹으면 문제 될 건 없겠지냐.

인간이 먹는다면 조금 곤란할지도 모르지만...

무카는 딸이 그렇게 좋아하던 영약을 남한테 나눠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별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부하를 불렀다.

"이거 다시 보내달라냐."

아무튼 잘못 보냈으니 제대로 다시 보내야지.

그렇기에 무카는 자신이 풍신(風迅)을 맡긴 믿을 수 있는 충신인 데무에게 영약을 건넸다.

"이번엔 제대로 전달하고 오겠다냐."

눈가에 상처가 인상적인 데무는 믿음직스러운 대답을 들려주고는 바람처럼 달려서 사라졌다.

바람처럼 달릴 수 있는 풍신을 그에게 맡긴 것은 그가 묘인치고는 달리는 것을 아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무카는 솔직히 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다음엔 반드시...'

그 인간 여성에게 패배했던 감각을 되살리면서 무카는 다시 나무를 치기 시작했다.

스스로가 만족할 성취를 얻으면... 다시 그녀에게 도전할 생각이었다.

--

"두목!"

케르가 그대로 자신에게 안겨 오자 여화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일단 그녀를 받아주었다.

여화는 여전히 그녀가 왜 자신을 두목이라 부르며 친근하게 구는 건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일입니까?"

그 소리를 듣고 찾아온 레오니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면서 물었다.

이 겨울에도 그녀의 근육으로 탄탄한 몸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얇은 옷을 입고 무거운 목검을 들고 있던 그녀는 고양이를 보더니 말했다.

"검은 고양이라... 이탈리에선 불길함의 상징입니다만..."

레오니는 살짝 몸을 숙여서는 검은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건... 꽤 귀엽네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풀어진 레오니의 말에 여화는 그제야 검은 고양이에게 시선을 주었다.

"이건 확실히..."

여화도 바로 관심을 보였다.

작고 푹신푹신해 보이는 것이 참으로 귀여운 고양이가 아름다운 금안을 반짝이면서 얌전히 있었다.

"얌전하다. 신기해."

보통 고양이가 이렇게 얌전하던가?

별로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던 여화는 신기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고양이라면 나쁘지 않단 생각이 들었으니까.

"냐아."

그때 검은 고양이가 작게 울었고, 케르는 묘한 기대를 담아서 여화를 보면서 물었다.

"뭐라고 했는지 알겠나냥?"

"냐아?"

그 질문에 여화가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자 케르는 노골적으로 실망했다.

"두목은... 못 알아듣는 거구냐."

[그걸 굳이 시도해 봐야 아는 거냐.]

황제는 어느새 레오니의 품에 안긴 채 체념한 얼굴로 냐아 하고 울었다.

그나마 레오니는 순수한 호기심 느낌이라서 나르타만큼 거북하진 않았다.

고양이가 되고 나서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면... 케르가 나르타를 싫어하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일까?

그녀의 눈빛은 고양이의 입장에서 보니까 확실히 부담스러웠다.

"알았다냐..."

추욱.

실망한 얼굴로 늘어진 채 레오니에게 황제를 다시 받아 든 케르는 그대로 자기 어깨에 황제를 올리고는 터덜터덜 걸었다.

"두목이... 못 알아들을 줄은 예상 못 했다냐."

[여화가 강하다고는 하나 인간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냐. 하지만 이 상황에 의지할 사람이 두 명 정도는 기억이 나는 구냐.]

황제의 말에 케르는 다시 의욕을 찾았다.

"그, 그게 누구다냐?"

[이런 일엔 늘 믿을 만한 사람이다냐.]

황제의 말에 케르는 그가 안내하는 대로 걸으면서도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솔직히... 케르는 그녀가 정말 소문대로 굉장한 사람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

"그대가 본녀를 찾아온 것은 처음이구나."

안락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던 마리아는 책을 덮고는 케르를 쳐다보았다.

마력이 흘러넘치는 자색 눈동자가 빛을 뿜어내자 케르는 몸을 움찔했다.

[내 말을 알아듣겠냐?]

"냐아!"

황제의 말은 당연하지만 마리아의 귀엔 그저 고양이의 울음소리로 울려 퍼졌다.

딱!

그러나 그 소리는 확실히 마리아의 시선을 끌었다.

그녀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황제의 작은 몸이 떠오르더니 그대로 마리아의 품으로 날아들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깊은 가슴골에 제대로 파묻히고 말았다.

"흐음... 귀여운 고양이구나."

딱히 버둥대지도 않고 가만히 있는 황제를 보면서 미소를 짓던 마리아는 살짝 그를 놓아주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대로 계속 안았다간 질식 당할 우려가 있었으니까.

"어머 고양이! 저도 안아볼래요."

그런 마리아에게 마법을 배우고 있었던 거 같은 리사가 바로 관심을 보이자 마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 만져 보거라."

"와... 부드러워."

니사는 리사가 마리아에게 넘겨받은 황제의 앞발을 만지작거리면서 미소를 지었고, 리사는 관심을 보였다.

"귀여워! 폐하께 고양이를 길러도 되냐고 물어볼까?"

"나, 나도!"

쌍둥이들이 고양이를 보면서 호들갑을 떨고 있을 때 마리아는 케르에게 마법으로 의자를 내주고는 물었다.

케르는 갑자기 생긴 의자에 깜짝 놀라면서도 순순히 그 의자에 앉았다.

"그래, 본녀를 찾은 이유가 있겠지?"

"그, 그게... 그러면 일단 단둘이... 아니, 저 고양이랑 셋이서 이야기하고 싶은데냐..."

리사와 니사에게까진 말하지 말라는 황제의 시선이 느껴졌기에 케르가 그렇게 부탁하자 마리아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는구나. 그럼 오늘 수업은 이쯤 끝내고 내일 다시 오도록 하렴."

"네에... 아쉽지만 안녕. 야옹아."

앞발을 만지작거리면서 아쉬움을 표하던 리사는 그대로 니사를 데리고 물러났고, 마리아는 그 모습을 보고는 말했다.

"그래, 그 강한 고양이는 무엇이느니?"

강한 고양이.

케르는 그 말에 조금 기대를 품었다.

지금까지는 그 누구도 고양이로 변한 황제의 강함을 눈치채지 못했으니까.

"그, 그게... 사실 주인이다냐."

"..."

마리아는 그 말에 눈을 크게 뜨고는 그대로 고양이를 들었다.

"이 귀여운 것이... 황제란 말이냐? 놀라운 일이로고..."

마리아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 원인을 찾기 위해서 황제의 몸을 마력으로 탐색했다.

확실히 고양이가 이 정도로 강하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하겠지.

"흐음... 주술이 느껴지긴 하는구나. 대체 어쩌다 이리 귀여운 모습이 되었느니?"

"그, 그게 말이다냐..."

마리아는 케르의 설명을 듣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묘인의 영약으로 이리된다고?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차라리 묘약 쪽이... 그러고 보니 폐하는 지금 알몸이느냐? 아니면 옷도 같이 사라졌느냐?"

마리아가 그 말에 뭔가 생각나는 게 있는지 케르에게 물었고, 케르는 황제가 고양이로 변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어? 그러고 보니... 옷도 같이 사라졌다냐."

그 말에 마리아는 확신하듯이 말했다.

"그러면 영약이 아니라 묘약이었던 모양이구나. 그럼... 이 모습으로 평생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냐냥! 그, 그게 무슨 소리다냐?"

케르는 마리아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자 놀란 얼굴로 외쳤고, 황제의 눈도 크게 흔들렸다.

"묘인을 위해 만든 약을 인간이 먹었으니 영구성을 띄게 된 것이지. 실제로 묘약을 먹고 고양이가 된 채 평생을 살아간 사람도 있다고 하니 무슨 수를 쓰지 않으면 아마 평생 그 모습으로 살아야 할 것이니라."

"바, 방법은 없는 거냐냥?"

케르가 간절한 얼굴로 묻자 마리아는 난처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그녀는 주술은 그렇게 박식한 편이 아니었으니까.

그녀는 현자지만 대마법사지 대주술사가 아니다.

"본녀는 모르니라. 애초에 이건 둔갑술이라는 주술의 일종이라... 본녀의 지식은 부족한 점이 있으니. 차라리 콰오콴 그 자에게 물어보거나 그 콰오콴보다 우수한 주술사에게 물어보는 편이 낫겠구나."

[나르타는... 화염술사고, 콰오콴은 너무 고대 주술에 치우쳐 있으니... 순수하게 주술이 가장 뛰어난 자는... 한 명밖에 생각나지 않는구냐.]

황제도 이젠 제법 심각해져서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머리를 굴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모습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건 사양이었으니까.

"그, 그게 누구다냐?"

[따라오거라냐. 짐이 앞장을 설 테니 말이다냐.]

지금은 느긋하게 있을 여유도 없다.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그 작은 다리로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타악! 타악!

그야말로 주변의 광경이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속도로 달린 황제는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케르는 미쳐 쫓아오지 못했는지 아직 모습이 보이진 않았지만 황제는 신경 쓰지 않았다.

황제의 눈이 바쁘게 건물 안을 훑었다.

그리고 찾아냈다.

벌써 닳아버린 의자에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는 검은 머리의 여인을 말이다.

그녀는 점점 다가오는 황제를 보더니 실실 웃으면서 물었다.

"으응? 폐하? 뭐야 그 귀여운 모습은?"

황제는 묘인도 아니면서 바로 자신을 알아본 여인을 보면서 확신했다.

역시... 이 여자를 찾은 것이 정답이라고.

[짐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냐?]

"으응? 잠시만 기다려 봐."

그녀는 황제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하며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못 알아듣는 건가냐...'

뭔가 이어지지 않는 것 같은 대화에 황제가 실망하고 있을 때였다.

스윽.

그대로 황제의 몸통을 잡고 들어 올린 여인은 그 탁한 하늘색 눈동자로 눈웃음을 지으면서 물었다.

"대체 무슨 비밀스러운 이야기하려고 그 모습으로 말을 거냐아아? 귀엽네. 냐냐 거리는 거."

[!]

그 대답에 황제는 그녀가 자기 말을 알아듣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눈을 크게 떴다.

"그래서 우리 귀여운 황제 냥이께서 무슨 일로 그렇게 찾아왔는지 들어 보고 싶은 데냐?"

물론...

고양이가 된 자기 말투를 따라 하는 그녀의 모습엔 화가 났지만.

황제는 그래도 희망을 보았다.

천재 주술사이자 마법사.

두 분야에 전부 정통한 그녀라면 현자도 찾지 못한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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