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제의 의무방어전-127화 (127/235)

"그러니까 묘약을 먹었다는 거지? 아하하하! 귀여워. 그냥 이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타흘라는 황제의 설명을 듣고는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그녀는 그저 이 상황이 즐거웠지만 황제는 전혀 즐겁지가 않았다.

[끔찍한 소리를 하지 말거라냐! 그보다 어떻게 짐을 알아본 거지냐?]

어떻게 바로 짐이 고양이인 걸 알아본거지?

황제가 의아한 감정이 들어서 질문하자 타흘라는 안경을 벗고는 말했다.

"음, 그냥 보이던데? 난 주술이면 한 번 보면 대충 어떤 주술인지 알 수 있어. 애초에 쌍둥이들한테 안 들켰어? 금위대장의 화안금정은? 다른 건 몰라도 그런 고등의 주술안이면 바로 알아볼 텐데?"

다른 거면 몰라도 요괴가 된 금위대장의 화안금정은 그녀의 천안(天眼)과 비교해도 크게 뒤처지지 않는 고등의 주술안일 텐데... 이걸 못 알아봤다는 건 조금 신기하게 들렸다.

[모르더구냐.]

"아... 하긴 탐색 마법은 마법이니까. 설령 쓰더라도 뭔가 있다는 것 정도만 알려나? 하긴 현자 님도 몰랐다고 하니 별수 없겠네. 애초에 이런 귀여운 고양이한테 그런 마법을 쓸 마법사도 별로 없고 말이야. 금위대장께서는... 주의력 부족일지도?"

기본적으로 둔갑은 주술.

마법사인 그녀들에겐 조금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금위대장은 고양이까지 화안금정으로 들여다볼 만큼 철저하진 않은 모양이고...

타흘라는 그런 생각하면서 황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황제는 그 손길을 감내하면서도 그녀에게 매달렸다.

지금은 그녀가 황제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희망이었으니까.

[그래서... 해답은 보이느냐?]

"조금 시간이 걸릴지도? 아무래도 정보가 좀 많이 부족해서 말이야."

타흘라의 대답에 황제는 얌전히 그녀의 손길에 몸을 밑긴 채 얌전히 검사를 받았다.

"흐음... 금위대장을 불러야겠는데? 역시 천안으로도 보는데는 한계가 있거든. 화안금정으로 확인이 필요할 거 같은데?"

[당장 불러오마냐.]

황제가 막 와서는 숨을 고르고 있는 케르에겐 집무실로 돌아가 대리청정을 계속하라고 명령하고는 성큼 걸음을 옮겼다.

"응? 금위대장은 못 알아봤다면서?"

그 말에 타흘라가 의아한 얼굴로 묻자 황제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 화안금정인가 뭔가로 짐을 알아볼 수 있다 하지 않았느냐. 만약 금위대장이 알아본다면 그대처럼 짐과 대화할 수 있는가냐?]

"알아본다면? 주술을 써서 알아듣겠지? 요괴의 요술이면 나보다도 더 깔끔하게 동물과 대화가 가능할 테니까?"

그 대답에 황제는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모용진이 자신을 알아보기만 하면 대화가 가능하다면...

그가 자신을 알아보게 하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았으니까.

--

'아니, 근데 진짜 폐하께선 어디로 가신 거지?'

모용진은 계속 눈을 풀어 황제를 찾고 있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대리청정도 일단 받아들이긴 했지만 폐하가 생각해낸 것이라 믿기 어려웠는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모처럼 찾아낸 그 배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당사자가 보이지 않으니 모용진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미칠 지경이었다.

"합궁이 싫으신 걸까요?"

"하하,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다. 딩키족과의 우호는 폐하께서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실 겁니다."

금위대장은 이번 합궁 상대와 면담을 진행하면서 식은땀을 흘렸다.

개인적으로 모용진에겐 지금까지의 합궁 상대 중에선 단연 가장 까다로운 여인이었으니까.

물론 그녀가 그런 식으로 인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필이면 합궁이 있는 날에 다른 비에게 대리청정을 시키고 본인은 사라졌으니... 황제의 의도를 의심해도 무리는 아니지.

'그보다 역시 딩키족이군.'

모용진은 눈앞에 앉아 있는 큰 키의 미인을 보면서 감탄했다.

엄청 큰 키다.

딩키족의 평균 키가 9척이던가? 그녀는 확실히 그 평균보다도 큰 키를 가지고 있었다.

'나보다 큰 여자는 이 여자 말고는 본 적이 없으니...'

모용진은 자신보다 큰 여자는 이 여자 말고는 본 적이 없었다.

커다란 키에 검은 피부, 노란 눈동자는 크고 순박해 보였고, 콧날은 날카로웠다.

큰 키만큼 다른 부분도 컸지만... 그녀를 그저 아름다운 여인으로 경시할 수는 없었다.

우득.

"이런, 제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네요."

'과연...'

철로 만든 잔을 구겨 버리는 그녀를 보면서 모용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금 옷의 틈새로 보이는 근육은 그녀가 얼마나 강건한 육체를 지녔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신체 능력이었다.

그녀는 딩키족.

인간의 몸으로 묘인들과 필적하는 신체 능력을 지닌 전투 민족이었으니까.

그들은 그야말로 신체 자체가 무기다.

당장 저 철로 만든 잔도 그녀가 준비한 것이었으니까.

"사실 내일로 미뤄도 상관이 없습니다. 이곳을 가만히 둘러보니 단련할 도구가 참으로 많더군요."

그녀가 드물게 만족스러운 듯 웃으면서 말하자 모용진은 속으로 안도하면서 대답했다.

"마음에 드셨다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무슨 문제가 생기진 않았나 걱정이 되네요. 저를 쓰러트렸던 그 황제 폐하께서 무슨 일이 생기기는 쉽지 않겠지만요."

"...그렇지요."

그 말에 모용진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황제가 즉위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제국에서 독립하려는 민족들이 많았다.

그녀가 속한 딩키족도 그중 하나였다.

그들의 압도적인 무력으로 순식간에 투르크를 침공하여 베르헴까지 진격한 그들을 막은 것은... 다름 아닌 황제였으니까.

지금 눈앞에 있는 그녀는 그 군세의 선봉장으로 황제를 가장 먼저 상대했던 여인이었다.

'검을 다루진 않지만...'

신체가 무기인 그들은 기본적으로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들의 힘은 진짜.

제국에 속한 민족 중에서도 군사력은 강한 편에 속하는 투르크가 전면전에선 그들의 상대조차 되지 않았던 것이 이를 증명한다.

마침 술탄을 압박하기 위해서 찾아왔던 황제가 그곳에 있지 않았다면 투르크와 딩키가 합쳐진 하나의 왕국이 탄생했을지도 모를 일이지.

그렇게 되면 근처에 있는 루루족도 무사하진 못했을 거다.

그야말로 순식간의 한 지방을 정복한 패자가 탄생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모용진은 지금도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면 그들은 분명 크릴라이보다 더 제국에 위협적인 적이 되었을 테니까.

'그보다 합궁 상대로 이 여자를 보내다니...'

그런 딩키족에서도 그들이 섬기는 무신, 카산의 걸작이라 불리는 여인이 바로 눈앞에 있는 이 여자.

베베라 다카라가스다.

10척에 육박하는 거구에 그야말로 신이 빚은 거 같은 완벽한 근육질의 몸.

그녀는 이미 성인식 때 사자 무리를 단신으로 때려 죽이면서 그녀의 특별함을 과시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바로 카산의 걸작.

투르크와의 전쟁에서도 크게 활약하여 베르헴까지 진군하게 한 일등 공신이기도 했다.

일단 모용진도 그녀한테 맨손으로는 싸울 염두가 안 났다.

저런 여자랑 맨손으로 결투를 벌인 황제의 깡이 대단한 것이지.

괜히 딩키족이 그녀가 황제에게 지자 망설임 없이 다시 제국의 아래로 들어온 것이 아니다.

그녀의 무력은 이미 일신의 무력을 넘어섰으니까.

"냐!"

퍼억!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안으로 들어온 검은 고양이가 그대로 그녀의 복부를 쳐서는 날려 버렸다.

"무슨..."

그걸 두 눈으로 목격한 모용진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베베라다.

키만 10척에 육박하는 근육질의 몸은 저런 작은 고양이의 공격에 날아갈 성질의 것이 아니다.

모용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함을 느껴 화안금정으로 고양이를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놀랐다.

그 본질은...

[폐하...?]

전음을 통해 말을 걸면서도 모용진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럼 케르 비와 계속 같이던 고양이가... 황제였단 말인가?

[이제야 알아보는 구냐.]

황제는 그 모습을 보고 만족했다. 바로 자신을 알아본 모양이었으니까.

모용진은 요술로 황제의 말을 알아듣고는 경악했다.

설마 진짜 황제였다니.

[왜 그런 모습...! 아니지 지금은.]

"베베라 님! 괜찮으십니까?"

모용진이 여전히 쓰러져 있는 베베라를 보며 다급하게 묻자 멍하니 쓰러져선 자신이 맞은 복부를 만지작거리던 그녀는 벌떡 일어나더니 말했다.

"저 고양이는?"

그녀의 관심은 자신을 날려버린 검은 고양이, 즉 황제에게 완전히 쏠려 있었다.

그 질문에 모용진은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 그, 그게..."

"범상치 않은 고양이로군요."

그녀는 고양이를 경계하며 말했다

이게 고작 고양이라는 말은 믿을 생각이 없었다.

자신이 밀려날 정도의 힘을 가진 평범한 고양이가 있을 리가 없으니까.

[아니 왜 사고를 치십니까!]

그 모습을 보면서 모용진이 식은땀을 흘리며 전음으로 따지자 황제는 머쓱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전장에서 싸우던 자가 있기에 짐도 모르게 말이다냐. 미안하다냐.]

베베라는 황제의 기억에도 강하게 남은 강자.

당장 그 늙은이가 자꾸만 제국에 완전히 속하려고 드는 것도 그녀가 있는 딩키족이 두려워서라는 분석도 있을 정도니...

그녀의 무위는 이미 인간의 범위를 벗어났다.

그 무카도 솔직히 순수하게 신체 능력으로 다투면 그녀에게 질 거다.

황제도 순수하게 육체만으로 싸우면 저 여자를 이길 자신은 없었다.

물론 바보도 아니고 저런 인간 흉기한테 신체 능력만으로 싸움을 걸어줄 사람은 없겠지만.

[어쩔 수 없지냐. 짐이 직접 기를 나눠준 고양이라고 하거라냐.]

[그게 말이 됩니까!]

모용진이 투덜거렸으나 딱히 다른 수는 없었기에 그는 속으로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그게... 폐하께서 기를 나눠준 고양이입니다."

아니 이딴 설명이 먹힐까?

모용진은 회의적이었지만...

"그렇군요. 그 괴물 같은 폐하의 기를 받은 고양이라면 그런 강함이 이해가 갑니다."

[누가 괴물이라는 건지 모르겠구냐. 저 여자가 훨씬 괴물 같지 않느냐?]

황제가 옆에서 뭐라 뭐라 하긴 했지만 모용진에겐 마법의 폭격을 맞고도 멀쩡한 여자나, 그런 여자를 맨손으로 제압한 황제나 거기서 거기였다.

둘 다 괴물이니까.

[둘 다 괴물이죠.]

[번개를 미친 듯이 쏘아대는 괴물도 있다냐.]

끝까지 질 생각을 안 하는 황제를 보며 작게 한숨을 쉰 모용진은 그녀에게 다시 한번 사과의 말을 전하고는 그녀를 돌려보냈다.

"그보다 어쩌다 이렇게 되셨습니까?"

그녀가 간 걸 확인한 모용진이 그대로 황제를 내려다 보면서 물었다.

어쩌다가 이런 고양이의 모습이 되었단 말인가.

[묘약을 먹었다냐. 그대의 화안금정으로 확인을 할 필요가 있다고 타흘라가 데려오라 하더구냐.]

"그걸 왜 처먹습니까! 하... 일단 타흘라 비 전하께 가 보겠습니다. 적어도 오늘 안에는 해결 하는 편이 좋지요. 그녀를 기다리게 하는 건 심장이 떨리니까요."

모용진은 상대가 황제라는 것도 망각하고는 험한 말이 나오고 말았다.

아니 묘약을 대체 왜 먹는 거야? 그게 어떤 물건인데! 모용진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방금 떠난 그녀를 생각하면 지금도 온몸이 덜덜 떨렸다.

그녀를 기다리게 하는 건 아무리 모용진이라도 살 떨리는 일이었으니까.

[다음 합궁 상대가 저 근육질 괴물이란 말이냐. 무서운 일이로구냐.]

황제의 푸념에 모용진은 그대로 황제의 목덜미를 잡고는 걸었다.

"엄살 부리지 마세요."

[아니 뼈가 부러질 거 같다니까냐.]

"칼도 안 드시는 분이 무슨 뼈가 부러집니까. 아무튼 서두릅시다."

황제의 엄살을 깔끔하게 무시하면서 모용진이 말했다.

어쩐지... 갑자기 대리청정이라니.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지금 황제의 모습을 보니 이해가 갔다.

황제가 고양이가 된 지금...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 그것이었으니까.

--

"나름 일 처리는 잘하고 있다고 들었지만... 서류엔 전혀 손을 대지 않았구나."

황태후는 케르가 타온 엉망진창인 차를 태연하게 마시면서 집무실을 살폈다.

서류는 어제와 비교해도 양이 늘어나면 늘었지 전혀 줄지 않았다.

그것이 의미하는 건 현재 대리청정 중인 그녀가 서류는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그, 그게 주인이 서류는 처리하지 말라고 해서냐."

"황상께서? 그렇다면 어쩔 수 없었겠구나. 그보다 황상께서 어디로 가셨는지 혹 알고 있니?"

그러나 황태후는 그 대답에 바로 이해했다.

그게 황상의 명이라면 오히려 안 건든 것이 옳은 일이었으니까.

"그, 그게 말이다냐..."

잠시 고민하던 케르는 그래도 주인의 어머니한테는 말해도 괜찮겠지 하는 생각에 순순히 대답했다.

"이, 이건 비밀인데 말이다냐. 지금 주인은 고양이가 되었다냐."

"...?"

황태후는 그 말에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소리니?"

황상이 고양이가 되다니? 전혀 생각도 못한 일이었으니까.

"그, 그게 묘약을 잘못 먹어서 말이다냐. 그래서 지금 나는 이곳에서 시간을 끌고 있고 주인은 타흘라랑 같이 해결 방법을 찾아보고 있다냐!"

"마리아 그 여자는?"

이런 상황에선 아무리 황태후라도 우선 마리아부터 찾았다.

그녀는 마법이나 주술이나 그 차이를 잘 몰라서 그런 문제에선 당연히 마리아가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으니까.

"주술이라서 잘 모른다고 해서냐. 다행히 타흘라는 뭔가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거 같다냐."

"정말이지... 그 여자는."

마리아에 대한 반감을 더욱 키우면서도 황태후는 조급해졌다.

그러나... 황태후는 자신이 조급해져 봐야 할 수 있는 일도 없다는 걸 알았기에 빠르게 평정을 되찾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일은 일단 비밀로 하거라. 그리고... 열심히 하거라."

황태후는 그녀를 의심했던 자신을 반성했다.

이 순진한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그녀도 원치도 않던 대리청정으로 힘들 테니 이럴 땐 응원해주는 게 맞겠지.

원치도 않은 대리청정을 하는 그녀를 응원해준 황태후는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일단 황상을 찾는 건 그만두도록 하거라."

"네."

궁녀들의 대답에 황태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제조상궁을 불렀다.

"제조상궁."

"부르셨습니까."

제조상궁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황태후에게 대답하자 황태후는 그녀에게 명령했다.

"당장 급한 일이 아니면 집무실엔 출입하는 자가 없도록 제한하도록 하거라."

일단 현장에 사람이 접근하게 하지 못하게 하는 편이 낫다.

황제가 남아 있던 상황이면 모를까. 해주 방법을 찾기 위해 자리를 비운 이상 현장에 너무 많은 사람이 오는 것은 막는 편이 좋았다.

게다가 케르 비를 위해서라도 그녀에게 부담되는 업무는 미루는 편이 좋겠지.

"네, 그리하겠습니다."

제조상궁이 그렇게 말하고는 궁녀들에게 지시를 내리자 황태후는 침소로 돌아가면서 생각했다.

'황상께선 다른 의미로 사람을 초조하게 만드는군요.'

무문제께서는 너무나도 연약하여 사람을 걱정시켰다면... 황상은 너무나도 강인해서 그런지 별의별 사고를 치면서 사람을 걱정시키는 능력이 있었다.

--

"그래서 화안금정으로 살펴본 결과는?"

타흘라가 실실 웃으면서 묻자 모용진은 결론을 냈다.

확실히...

"이 알 수 없는 기만 어떻게 해결하면 주술이 풀릴 거 같은데 말이죠. 비 전하께서는 뭔가 의견이 없으십니까?"

"아, 역시 그런 결론에 도달하는구나. 폐하께선 주술을 발동할 때 가장 기본적인 게 뭔지 알고 있어?"

타흘라가 느긋한 어조로 묻자 황제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기를 다루는 것이다냐.]

"정답이야. 그래서 해주와 해법이 다른 것도 그런 주술과 마법에 차이 때문이지. 마법을 해제하는 해법은 말이지... 그 마법을 작동시키고 있는 수식을 푸는 거라면, 해주는 인간의 몸에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술자의 기를 안전하게 제거하는 것이거든."

즉 황제의 몸에서 고양이로 둔갑시키는 주술을 유지하고 있는 기를 제거하는 것이 기본적인 해주 방법이라는 것이다.

조금 복잡해지면 재료가 필요하거나 하지만 이 경우엔 재료보다는...

"화기가 필요할 거 같은데. 섬세하게 안쪽에서 이 기운만 태워 버릴 수 있는 우수한 화염 술사가 없을까?"

역시 화기로 기를 불살라버리는 게 더 확실한 해주 방법이었다.

그런 결론에 도달한 타흘라의 말에 모용진이 질문했다.

"뇌기로는 안 되는 겁니까?"

"상관은 없을 거 같은데 금위대장의 기는 솔직히 요기에 더 가깝지 않나? 그러면 좀 부작용이 있을 수 있겠는데?"

요기는 아무래도 인간의 몸엔 부담이 심하다.

이런 해주에 쓰기엔 그리 적합하지 않았다.

"난 일단 화기는 못 다뤄."

타흘라는 자신은 화기는 잘 다루지 못한다고 순순히 시인했다.

"주술사는 결국 자기 기로 주술을 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속성이라는 것이 중요하거든. 난 엄밀히 말하면 수기 쪽이 강한 편이라서 말이야. 수기랑 음기가 강하면 그게 빙술사의 자질이 되는 거지."

의외로 그녀의 설명은 그녀의 성정을 생각하면 꽤 자세했고, 친절했다.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화기 하면 떠오르는 사람을 말했다.

[나르타가 있다냐.]

"그녀 정도의 화기면 출력은 문제가 없겠지만... 문제는 역시 섬세함이겠지? 그녀가 그 정도의 정밀한 작업을 해낼 수 있을까?"

타흘라는 잠시 고민했다.

"난 그녀의 실력은 몰라. 들은 소문대로의 여인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흐음... 그러니까 폐하께 묻고 싶은데 말이야."

타흘라는 진지한 얼굴로 황제에게 물었다.

"폐하는 그녀를 믿어?"

[믿는다냐.]

한 치에 망설임도 없이.

황제는 대답했다.

그 대답에... 타흘라는 웃었다.

"하긴 당신은 그런 사람이니까."

자신의 허무맹랑한 꿈도 믿어 주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믿어 주겠지.

타흘라는 문득 궁금해져서 황제에게 물었다.

"그럼 나는? 믿어?"

그렇다면 자신의 실력은? 황제는 자신의 실력은 단 한 번도 제대로 본적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황제는 자신을 믿어줄까? 타흘라는 그런 의문이 들었으니까.

[믿는다냐.]

그리고 이번에도 단번에 대답이 나왔다.

그렇게 말하는 황제의 눈은, 고양이의 모습으로 알 수 있을 정도로 곧고 투명해서...

타흘라는 새삼 자신이 정말 나쁜 사람한테 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하, 진짜 반하겠다니까. 당신은."

타흘라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리고는 황제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러고는 기운을 흘려보냈다.

"밑 작업만 해 둔 거야. 내 기운으로 표시해 둔 곳만 태우면 된다고 전해주겠어?"

타흘라가 한 것은 별 건 아니었다.

황제를 고양이로 만들고 있는 기운을 자기 기운으로 감쌌을 뿐.

즉 타흘라가 감싸둔 기운만 나르타가 태워 버리면 황제는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다.

[...고맙다냐.]

황제는 그녀의 배려를 이해했기에 감사를 표하고는 모용진과 함께 공방을 떠났다.

자신이 한 작업에 대해서 한 치에 의심도 없는 황제의 모습에 타흘라는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믿는다... 라?'

타흘라는 눈을 감았다.

간단한 말이다.

그에겐 어쩌면 별 의미가 없는 말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타흘라에겐 전혀 가볍지 않은 말이었다.

가문의, 아니 주술계의 이단아로 살면서... 그녀가 걷는 길은 필연적으로 모두의 의심 어린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역사상 누구도 양립하지 못했던 주술과 마법.

의심 어린 눈길은 그녀에겐 당연한 것이었고, 당연히 그녀를 믿는 자는 드물었다.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한다.

주술과 마법. 두 분야를 다룬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그 두 개가 정말 양립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심의 눈길을 받아야 했으니까.

지금은 친해진 로라나 미령조차도 처음엔 그녀를 향해 의심의 눈길을 보냈을 정도니 다른 사람들이 그녀의 실력에 의구심을 가지는 건 당연할 정도였다.

마법으로 외도를 하느라 주술 실력까지 퇴화해 버린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길을 받는 건 다반사였고, 모두가 그녀의 실력은 인정은 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래도 주술사인 그녀의 마법에 분명 문제가 있을 거라고 허점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들이 말하는 건 똑같았다.

그녀의 천재성은 인정하지만 정녕 주술과 마법을 둘 다 제대로 다룰 수는 있는 거냐고.

뭐, 그런 시선도 그녀는 이해했다.

그 현자조차도 처음 봤을 땐 자기 실력을 의심할 정도였으니까. 다른 사람들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

양쪽에서 의심의 눈길을 받는 것도, 배척 당하는 것도, 그녀에겐 익숙하고, 또 덤덤한 일이 되었다.

그런데...

황제는 자신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이런 양쪽 어디에서 속하지 못한 자신을 믿는다고 말해주었다.

그 믿음이... 너무나도 무거워서. 그녀는 가끔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두근.

그만큼 타흘라는 이렇게 자신을 처음부터 온전히 믿어 주는 사람은 처음 봤으니까.

두근.

타흘라는 아무리 뛰어난 마법 공학자도 고장 난 심장은 고칠 수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이렇게 고장 난 심장은 쿵쾅거리면서 타흘라를 괴롭게 만들고 있었으니까.

"정말... 나쁜 남자라니까."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놓고선 아무렇지도 않다니...

정말 나쁜 사람이다.

타흘라는 그리 생각하면서 심장의 고장으로 인한 과열로 붉어진 얼굴을 차가운 책상으로 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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