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런 생각을 하고는 했다.
이렇게 편안하게... 하루를 낭비하는 날도 있으면 좋겠다고.
'이런 모습으로 그리될 줄은 몰랐지만...'
황제는 모용진의 품 안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나르타를 기다렸다.
급한 일이긴 하나 목욕 중인 비를 억지로 불러낼 정도로 경우가 없진 않은 모용진이었기에 그는 그대로 황제를 안아 든 채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폐하 주무시면 안 됩니다.]
[흐냐... 이 몸은 금방 잠이 오는구냐. 버티기가 힘들다냐.]
그러나 황제의 입장에서도 나름 할 말이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이 몸은 잠을 요구했으니까.
[타흘라 비 전하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 정도로 섬세한 기의 운용이라니... 천재라면 그녀를 말하는 것이겠죠.]
모용진은 타흘라의 기술에 꽤 깊은 감명을 받은 모양이었다.
사실 모용진은 주술과 마법을 둘 다 다룰 수 있는 천재가 있다는 말에는 조금 회의적이었으니까.
하지만 실제로 있었다.
그녀는 주술도 마법도 부족한 게 하나 없는 진짜였으니까.
'그런 재능이 있어도 되는 건가?'
마법은 이미 그 현자가 감탄할 정도의 재능이거늘.
주술도 이미 모용진이 봐도 그 경지가 아득하게 느껴질 정도의 재능이라니... 대단한 여인이 아닐 수 없었으니까.
[흐냐아아. 나르타가 늦는구냐.}
늘어지게 하품하며 황제가 말하자 모용진은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대답했다.
[원래 여인의 목욕은 더 느린 법입니다.]
[머리가 길어서 말이냐?]
황제의 질문에 모용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점도 있겠지요. 윤기가 넘치는 머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들이는 시간이 엄청나다 들었습니다.]
[흐음... 여인의 몸이라는 것도 피곤하겠구냐.]
황제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나르타가 나오는 것을 얌전히 기다렸다.
"어머나? 금위대장이 이곳에 어인 일인지요?"
그때 물기에 살짝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으면서 나르타가 모습을 드러냈다.
금위대장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들은 탓인지 그녀의 복색은 목욕 후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갖춰져 있었다.
"그래서 저를 왜 찾으셨... 어머나. 이건 또 보내요?"
나르타가 바로 모용진의 품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황제를 보고는 눈을 반짝였다.
"이 고양이 때문에 왔습니다."
"고양이를 돌봐 달라는 부탁인가요?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나르타가 신난 얼굴로 말하는 걸 보면서 모용진은 덤덤하게 말했다.
"이 고양이를 폐하로 되돌리는데 협조해주세요."
"...네?"
나르타는 자기 귀를 의심하면서 무심결에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던 손을 거뒀고, 모용진은 다시 한번 말했다.
"폐하를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리는데 협조가 필요합니다."
"농담이... 아니라요?"
나르타의 당황한 표정을 보면서 모용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농담이나 할 때가 아니었으니까.
--
"대리청정을 케르 비 전하께 맡겼다는 것은 어쩌면 이미 폐하께서 마음을 굳히셨을지도 모르겠군요."
호부 상서의 말에 이부 상서는 신중론을 펼쳤다.
"아직 확신하긴 이른 일입니다. 다른 것도 아닌 폐하께서 굳이 법도를 어겨 가면서 황후를 급하게 정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이미 사직도 황후 없이 넘긴 분이 그런 짓을 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차라리 그럴 거면 사직 때 황후를 확정 지어 버리는 게 이런 식으로 대리청정을 시키는 것보단 더 반발을 적게 할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
"솔직하게 말합시다. 정녕 폐하께서 원하신다면 이곳에 있는 그 누가 감히 반대를 표할 수 있겠습니까?"
병부 상서의 말에 아무도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대로 반발을 적게 하는 방법이라던가 그런 건 지금의 폐하껜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그 어떤 반발이라도 무마시킬 압도적인 무력이... 지금의 황제에겐 존재했으니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재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떤 것을 원하는 것이오."
"사실 황후 자리가 오래 공백이었던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폐하의 뜻이 정녕 그러하다면 신하 된 도리로 이번엔 일을 빠르게 진행하는 편이 뒤탈이 없을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민족의 반발도 조기에 진압해야 효과가 있으니..."
호부 상서와 병부 상서의 말을 들으면서 이부 상서는 난색을 표했다.
너무 성급하지 않나?
하지만 이게 정녕 폐하의 뜻이라면...
"들어 줄 수 없소."
그러나 재상은 단호했다.
모든 장관들이 황제의 뜻을 지레짐작하고 겁을 먹고 있을 때 재상은 뜻을 굽힐 생각이 없었다.
"폐하께서 정녕 법도를 어기고 황후를 정하실 생각이라면 이 소신이 목숨을 걸어 충언하겠소. 그러니 그 이야기는 그만하도록 합시다."
재상은 단호하게 말했고, 그 말에 아무도 반박하는 자가 없었다.
그가 목숨을 걸겠다 하면 진짜 걸 만큼 강직한 자라는 걸 이 자리에서 모르는 이가 없었으니까.
"그럼... 오늘은 모두 퇴궁하시오. 다들 지친 모양이라 성급해진 듯하니."
재상의 박력이 넘치는 말에 모두가 입을 다물고는 퇴궁을 준비했다.
그걸 본 이부 상서 박노식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재상에게 말을 걸었다.
"재상께선 어찌 생각하십니까? 이 대리청정이 실제로..."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 믿습니다. 믿습니다만..."
재상은 조금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사실 재상도 이 대리청정이 정상은 아니라는 걸 인식하고 있었으니까.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지요. 황태후 폐하께서도 움직였으니 조만간 모든 정황이 밝혀질 것입니다. 그러니 이부 상서께서는 혼란을 최대한 막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재상은 그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분명... 폐하께서 괜히 그런 짓을 한 게 아닐 거라 믿었으니까.
"네, 소신도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나라의 녹을 먹고 살아오면서 이렇게 폐하께서 무슨 의중이신지 파악하기 어려운 적은 처음이구나.'
홀로 남겨진 재상은 이게 부디 별일이 아니기만을 바라면서 뒷정리를 마치고 퇴궁을 준비했다.
"재상. 잠시 이야기를 나눠도 되겠습니까?"
"황태후 폐하..."
자신을 찾아온 황태후 폐하를 보고 재상은 올 게 왔다는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아마도... 황태후 폐하께선 모든 조사를 끝낸 모양이었으니까.
"재상은 어찌 생각하고 계셨습니까? 이번 대리청정 말입니다."
"...정상적인 일은 아니지요. 케르 비 전하의 일 처리엔 문제가 없었습니다만... 그래도 너무 이례적인 일입니다."
황후도, 황태자도 아닌 비가 대리청정을 한 사례는 역사를 따져 봐도 얼마 되지 않았으며, 그 사례의 황제들은 하나같이 지탄을 받는 암군들이었다.
그렇기에 이런 난리가 난 것이지만...
다른 황제였다면 당장 집단 상소가 빗발쳐도 이상하지 않을 대사건이라는 건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아니 당장 황제의 전대인 무문제 때 이런 일이 있었다?
바로 반정이 일어나서 황제의 목이 거리에 걸렸을 것이다.
"재상은 믿을 수 있기에 이번 소란을 잠재우기 위해 특별히 이야기하는 겁니다."
"경청하겠습니다."
재상은 그제야 주변에 궁녀가 한 명도 없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이 일은 아주 비밀스러운 이야기라는 걸 이해했다.
"폐하께서 케르 비에게 대리청정을 맡긴 이유는 폐하께서 묘약을 드셨기 때문입니다."
"...묘약을 말입니까?"
재상은 순간 소리를 지를 뻔한 걸 억지로 참아야 했다.
묘약이라니!
이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단시간 안에 끝날 수 있다면 문제는 없겠지만... 아무래도 다른 것도 아니고 묘약을 마신 일이니 장기간으로 흘러갈 각오도 해야겠지요."
"이해했습니다. 정말 그런 상황이라면 케르 비 전하 말고는 대리청정을 맡을 비는 없겠군요."
묘약을 먹었다는 건 황제께서 고양이가 되었다는 것.
고양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만한 비는 재상이 생각할 때 묘인인 그녀뿐이었다.
"그러니 재상에게만 이야기하는 겁니다. 최대한 소란을 막아주셨으면 합니다."
황태후의 부탁에 재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실 당장 오늘 해결되면 바랄 것이 없겠지요. 이렇게 머리 싸매고 고민할 이유는 없으니 말입니다."
황태후의 말에... 재상은 공감했다.
"그렇게 되면 정말 좋겠습니다."
물론 그것은 희망 사항일 뿐.
힘든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재상은 내일을 각오했다.
--
"무슨 일인데 집무실에 출입이 막힌 걸까?"
제조상궁에게 막혀서 집무실에 발을 들이지 못한 오르테가가 의문을 품자 옆에 있던 세이나가 말했다.
"바쁜 일이라도 있는 게 아닐지요?"
"그렇다면... 차라리 다행이지만."
'뭔가 일이 생긴 걸까?'
그렇다면 왜 케르한테 대리청정을? 오르테가는 돌아가는 사정 따윈 자세히 몰랐지만, 그런 그녀라도 황제가 비에게 대리청정을 시키는 게 정상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폐하를 믿고 있답니다. 금방 돌아오실 거예요."
"...그렇겠지?"
오르테가는 그 말에 조금 위안을 얻었다.
"세이나는 참 사람을 편하게 해주네."
"그런 칭찬은 처음 들어서 조금 부끄럽네요. 그보다 이젠 어디로 갈까요?"
"목욕이나 할까? 좀 많이 돌아다녀서 씻고 싶은데."
"그럴까요?"
세이나에게 황궁을 안내해주느라 많이 돌아다닌 탓일까?
오르테가는 옷이 땀으로 흠뻑 젖어 버렸기에 씻으려고 걸음을 옮겼다.
"아무튼 폐하를 다시 되돌려주시기 바랍니다."
"?"
욕탕 근처까지 온 오르테가는 욕탕 쪽에서 들리는 모용진의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했다.
세이나는 벌써 뭔가를 직감했는지 놀란 듯이 입가를 손으로 가리고 있었다.
"뭐야? 폐하 여기 있어? 같이 씻..."
오르테가의 눈이 커졌다.
"어라? 고양이?"
"..."
모용진은 주변을 왜 경계하지 않았지? 하는 생각하면서 입술을 깨물었고, 나르타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으며, 세이나는 조심스럽게 모용진 쪽으로 다가 갔다.
"안녕하세요. 폐하."
애초에 눈이 보이지 않아 심안으로 세상을 보는 세이나에겐 황제는 그냥 황제로만 보였기에 그녀는 얌전히 황제에게 인사했다.
"냐, 냐..."
"어머? 고양이 소리가 들리네요."
세이나가 황제의 입에서 흘려나온 당황이 섞인 고양이 울음소리에 미소를 짓자 모용진은 한숨을 쉬고는 이제서야 주변에 남들의 접근을 금하는 결계를 쳤다.
"이리 되었으니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고양이가 된 페하를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해선 나르타 비 전하의 화기가 필요합니다."
"네, 거기까진 이해했어요."
나르타가 대답하자 오르테가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서 황제를 안아 들었다.
"이게... 진위라고?"
"냐아."
그렇다고 말하는 듯한 고양이의 모습에 오르테가는 눈을 크게 떴다.
"이렇게 귀여운데?"
"냐아."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하십니다."
모용진이 해석해주자 오르테가는 그제야 실감했다.
이 작은 고양이가 진짜...
"진짜 폐하구나. 고칠 수는 있어?"
오르테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모용진은 확신을 가지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칠 수 있습니다. 나르타 비 전하!"
"아, 아니 그게 제가 살펴봤는데요 이거 너무 섬세한 작업이..."
나르타는 타흘라가 표시해 둔 곳을 보고는 경악했다.
이렇게 섬세하게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그것도 화기로? 그녀에겐 너무 부담되는 수준이었다.
혈관 하나하나를 통과하는 급에 섬세한 작업이 필요할 정도였으니까.
"그, 그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꾸욱.
그때 황제가 그녀의 품에 얌전히 안기면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르타를 올려다보았다.
"으으... 그, 그럼 살짝만 시도는 해볼게요. 아프면 신호를 보내주세요?"
결국, 나르타는 각오를 다지고는 자기 화기를 황제의 작은 몸에 흘려 넣었다.
'역시 타흘라는 대단해.'
이 세밀한 작업을 어떻게 그렇게 간단하게 해낸 걸까? 나르타는 그녀를 볼 때마다 자신은 천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야 해.'
약한 소리하긴 했지만, 이미 하기로 한 이상 실패는 허용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나르타는 필사적으로 이미 타흘라가 지나가면서 표시해 둔 길을 따라서 제거해야 하는 기운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제거해야 하는 기운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부터 찾아야 했다면 갑절은 어려워야 했으나 이미 누군가가 지나가면서 표시해 둔 곳을 따라가는 것이었기에 나르타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어렵지 않다고 여겼다.
'이걸 다 태우면...'
물론 진입하고 나서도 할 일은 남아있었다.
무작정 출력을 높이면 안되었다.
그녀가 지금 해야 하는 일은 안정적으로 출력을 유지하는 것. 너무 과하게 출력을 높이면 폐하의 내부에서 다른 것까지 태워 버릴 것이다.
그렇기에 나르타의 이마엔 어느새 땀이 맺혔다.
세밀한 조절이 필요한 작업이라서 그런지 엄청난 집중을 요구했으니까.
"....됐다."
나르타의 입이 간신히 열린 시점이었다.
퍼엉!
그 순간 나르타의 품에서 갑자기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황제가 얌전히 그녀의 품에 안겨 있는 형세가 되었다.
"...내려주거라."
황제는 자신을 안아 들고 있는 상태로 팔이 덜덜 떨리는 나르타를 보면서 자신을 내려줄 것을 요구했다.
나르타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내려주려고 했으나 결국 팔이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황제를 떨어트리듯이 놓았고, 황제는 가볍게 착지하면서 자세를 바로잡았다.
"잘했다."
"하...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없네요."
나르타는 지친 얼굴로 중얼거렸고, 모용진은 기쁜 얼굴로 외쳤다.
"성공했군요!"
"나르타 괜찮아?"
오르테가는 황제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 비틀거리는 나르타를 급하게 부축했다.
"조금... 피곤하네요."
나르타는 그런 오르테가의 품에 안겨서는 작게 중얼거렸다.
"땀에 젖은 거 봐! 다시 씻어야겠다. 도와줄게."
그녀의 상태를 살펴보던 오르테가가 그렇게 말하고는 나르타를 안아 들고 욕탕으로 향하자 세이나는 황제에게 꾸벅 인사하고는 그런 그녀를 따라 욕탕으로 향했다.
"...나르타에겐 나중에 감사의 선물이라도 전해 줘야겠구나."
그 모습에 조금 미안한 감정이 생겨났는지 황제가 작게 중얼거렸다.
고생해준 나르타를 위해서 보약이라도 선물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타흘라 비 전하랑 케르 비 전하께도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용진의 말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맞지도 않는 대리청정을 하느라 고생한 케르나 해주에 도움을 준 타흘라도 무시할 수는 없었으니까.
"짐이 하나 느낀 것이 있는데... 대리청정이라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더구나."
일단 대리청정이 끝났다는 걸 알리기 위해 근처에 있던 궁녀에게 명령해 상선을 부른 황제가 오늘은 자신이 사실상 거의 푹 쉬었다는 걸 깨닫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고양이의 모습이었다는 것만 제외하고 보면 솔직히... 정말 나쁘지 않았다.
"얼른 자식이 생겨야 대리청정을 시키든 할 텐데."
그렇다고 오늘처럼 비에게 맡길 생각은 없었다.
고작 하루였지만 아마 내일은 조정에서 엄청난 난리가 나 있을 게 짐작이 갔으니까.
"...황태자 전하의 미래가 보이는 것 같아서 참으로 딱합니다."
모용진이 헛소리를 했지만 황제는 깔끔하게 무시하면서 걸음을 옮겼다.
황제는 이번 사태는 그냥 모처럼 얻은 휴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동안 고생해온 자신을 위한 휴가 말이다.
--
"전 폐하께서 도망친 게 아닐까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황제의 처소.
몸을 씻고 바로 자기 처소로 향한 황제는 이미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자신보다 큰 키의 여인을 보았다.
얇은 옷을 입으니까 더 눈에 보이는 그녀의 근육질 몸은 황제보다도 탄탄해 보였다.
황제는 그녀를 보면서 반문했다.
"짐이 도망치는 걸 본적 있나?"
도망이라니... 솔직히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나. 황제는 실제로 도망친 적은 없었다.
"없죠. 혼자서도 도망칠 줄 모르던 그 모습이 아직도 이 두 눈에 생생하니까요."
그녀는 그때를 회상했다.
딩키족의 전사들을 보고도 혼자서 굳건하게 서 있던 그 모습.
그 모습은... 그 어떤 전사보다도 전사다웠다.
"피하지 않을 것이다."
황제가 그리 말하면서 용포를 벗자 그녀 역시 옷을 벗었다.
"이번엔 지지 않을 겁니다."
처억.
그녀가 자세를 잡자 황제 역시 자세를 잡았다.
그녀가 합궁 상대라고 할 때부터 황제는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딩키족의 규칙대로, 밤의 레슬링을 진행할 거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