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제의 의무방어전-132화 (132/235)

"...그러니 안심하고 이만 돌아가거라."

황제는 브레드를 돌려보내고는 의자에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라. 멋대로 들어와선. 가만히 보고만 있구나."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던 황제의 말에 마법으로 몰래 들어온 마리아는 곰방대를 입에 물고 마력초를 태우더니 말했다.

"배후가 잡혔다고 들었느니."

"...그래."

마리아는 그 대답에 덤덤하게 물었다.

"처벌은 어찌할 생각이냐?"

"없다."

"...의외로구나. 법도대로 처리하는 거 아니었느니?"

비 암살 미수인데 처벌이 없다고? 마리아가 신기하다는 듯이 반응하자 황제는 덤덤하게 말했다.

"법도를 따져보아도 미수로 황제의 약혼녀를 처벌한 사례가 없다."

애초에 황제한테 약혼녀가 있었다는 것 자체도 이례적이긴 하다.

아니 사실 그녀가 처음이다.

보통은 태자의 약혼녀가 태자비가 되지 못하고 이렇게 질질 끌려서 황제가 될 때까지 약혼 관계로만 남아 있는 경우는 없었으니까.

"흐응. 그것만은 아닐 텐데..."

"무슨 말하고 싶은지 모르겠구나."

딱. 딱.

황제가 시치미를 떼자 곰방대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린 마리아는 신비한 자색 눈동자로 황제를 보았다.

황제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면서 그녀가 할 말을 기다렸다.

"그녀에게 죄책감이라도 가지고 있느니?"

"..."

그 질문에 황제는 입을 꾹 다물었다.

마리아는 그 모습을 보고 확신했다.

"태자비가 될 예정이었던 여인이었다지. 그러나 되지 못하였고."

마리아는 덤덤하게 말했고, 황제는 여전히 침묵했다.

"솔직히 말해 보거라. 주기로 한 것을 주지 못한 것이... 그리도 마음에 걸리더냐?"

"...약속이었지. 반대가 있었다고 하나. 가문과 가문이 한 약속이었다."

재상의 반대가 있었다고는 하나...

다른 가문도 아닌 황가와 왕가의 약속이었다.

그것을... 지키지 못했다.

그들에게 주기로 한 자리를 주지 못했다.

죄책감이 없다면... 거짓일 것이다.

비록 거리가 있어서 당장 황제가 되었을 때 그들이 바로 도움을 준 건 아니었지만, 흔들리는 제국을 빠르게 안정시키는 데 프리아족의 도움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일 테니까.

받기만 하고 주기로 한 것을 주지 못한 관계.

그것이 황제에겐 죄책감과 부채 의식으로 남아 있었다.

"역시 현자로구나."

현자를 속일 수는 없겠군.

황제가 그리 생각할 때였다.

"그대의 일이니 모를 수가 없지. 나르타도, 세헤라자드도, 심지어 오르테가 그 아이도 비슷한 생각일 테니 말이다."

"...정말이지."

황제는 자신이 제대로 읽히고 있다는 사실에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 보니 피해자들의 대표로 연장자인 그녀가 온 모양이었으니까.

"그대들한테는 미안하구나."

황제가 솔직하게 사과하자 마리아가 듣기 좋다는 듯이 웃었다.

"후후, 중증이구나 그 말을 들으니 그냥 용서해주고 싶어지니 말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마리아는 황제의 머리를 가볍게 쓸었다.

부드러운 촉감이 그녀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

"머리를..."

"미안하다 하지 않았느냐. 그건 말뿐이었느냐? 흑흑. 조금 가지고 노는 것도 안 되는 것이냐?"

"..."

머리를 그만 만지라고 말하려던 황제는 그녀의 말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서는 마리아가 자기 머리카락을 희롱하는 걸 한참을 지켜보았다.

"이쯤 하면 되었지 않나."

"푸흡! 그 머리도 썩 어울리는 구나."

양갈래로 묶인 자기 머리를 보며 웃음을 터트리는 마리아를 가만히 노려보던 황제는 바로 그 머리를 풀었다.

"앗! 기껏 만들어줬더니."

마리아가 아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으나 황제는 그 반응을 깔끔하게 무시했다.

"...그보다 왔군. 이만 돌아가거라."

황제가 무언가를 느꼈는지 그녀에게 말하자 마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은 모양이구나. 그럼 본녀는 이만 물러가도록 하마."

스륵.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그녀를 멍하니 보고 있던 황제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커피콩을 갈았다.

이제... 손님이 올 시간이었으니까.

"폐하, 모셔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준비가 끝나기 무섭게 바로 모용진의 목소리가 문 앞에서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 황제는 마음을 비우고는 대답했다.

"안으로 들이거라."

황제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는 여인을 보았다.

비단처럼 고운 은발을 뒤로 곱게 묶고, 죄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화려한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당당하게 황제의 앞에 섰다.

"참으로 많이 자랐군."

황제의 기억에 있는 여인은 아직 철이 없는 조그마한 소녀였는데...

어느새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 명의 성숙한 여인이 되어서 그 성숙한 매력을 유감 없이 뽐내고 있었으니까.

"벌써 그 후에 9년이나 지났답니다."

"...그렇구나."

어느새 황제는 이제 23세가, 그녀는 21세가 되었다.

그 세월이 황제는 이제야 실감이 났다.

"그대가 저지른 일을 알고 있는가?"

"알고 있습니다."

당당하게 대답하는 그녀를 보면서 황제는 다시 침묵했다.

이 여자를 어떻게 해야 함이 옳을까? 황제는 수 없이 고민하며 입을 열었다.

"...알고 있음에도 어이하여 그리하였느냐?"

"폐하를... 보고 싶었으니까요?"

그녀의 대답은 황제가 예상한 대답이 아니었다.

그만큼, 그녀가 한 일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은 대답이었으니까.

"..."

황제는 침묵했고, 그녀는 그 침묵을 즐겼다.

눈앞에 있었다.

언제나 상상만 하던.

그저 초상화로만 볼 수 있었던.

그 사람이 눈앞에 있다는 것만으로 그녀는 행복했으니까.

"커피 한 잔 하겠나."

황제는 그 짧은 침묵을 끝내고는 그녀에게 제안 했고, 그녀는 황제가 권한 자리에 앉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마시고 싶네요."

타악.

"그래, 짐을 봤으니까 이젠 그런 짓은 하지 말도록."

황제가 커피가 든 잔을 그녀 앞에 내려놓고는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일단... 그녀의 의도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경고는 해야 했으니까.

"또 하면 어떻게 되나요?"

황제는 그녀가 싱긋 웃으면서 묻자 한숨을 쉬었다.

참으로 대단한 여인이긴 했다.

자신의 경고를 듣고도 저렇게 태연한 사람은 흔치 않았으니까.

"짐은... 그래, 그대를 처벌하고 싶진 않아."

황제는 일단 솔직하게 본심을 이야기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프리아족에게 받은 것이 참으로 많았다.

어쩌면... 한족들보다.

그것들은... 비록 황제가 원하지 않았던 것이라 해도 그들이 많은 걸 희생해서라도 자신에게 준 것들이라는 걸 알기에...

황제는 그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이 공주를 처벌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다시 이런 짓을 반복한다면... 대체 그대를 어찌해야 할까. 사실 짐은 방법은 하나밖에 모른다네."

황제는 잔을 기울이고는 가볍게 커피를 음미했다.

그 모습을 아네스는 정말이지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대를..."

황제는 망설였다.

그들에게 있는 부채 의식이 이 말을 하는 것을 망설이게 했다.

하지만...

또 이런 짓을 벌인다면 그땐 어쩔 수 없었다.

봐주는 것도 한 번 뿐이니까.

"그대를 죽일 수밖에."

"그 손으로요?"

묘하게 상기된 얼굴로, 잔뜩 기대하듯 말하는 그녀를 보면서 황제는 그제야 알았다.

그녀가 이런 짓을 벌인 이유를.

"그대는... 짐의 손에."

"죽고 싶어요. 이미 당신의 처음은 다른 여자한테 빼앗겼으니까요."

빼앗겼다.

그 말이... 황제의 죄책감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원래의 약속대로 그녀가 정말... 태자비가 되었다면 분명... 그 모든 처음은 온전히 그녀의 것이었을 테니까.

황제는... 그녀에게 마땅히 주어야 할 것을 주지 못했다.

애써 외면해왔던 현실이... 황제를 무겁게 짓눌러왔다.

"당신의 손에 최초로 죽은 황제의 여인이 되고 싶어요."

그것은 이미 광기라고 부를 수 있었다.

황제는... 자신이 죽고 싶다는 말을 할 때마다 무문제와 황태후가 느꼈을 감정을 조금은 이해했다.

이런 기분이었나...

황제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말했다.

"그 말을 듣고도... 짐이 그대에게 그것을 줄 거로 생각하는가?"

그녀를 죽게 둘 수 없었다.

그녀가 자신을 죽게 두지 않았던 것처럼.

황제는 그녀에게 죽음을 주지 않을 생각이었으니까.

"이번에도 주지 않으실 건가요? 정말이지... 슬프답니다."

슬픈 얼굴로 그리 말한 그녀는 황제에게 손을 뻗었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정말로 멀게 느껴졌다.

"이상하네요.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당신의 숨소리도, 그 향기도 너무나도 가까운데..."

그녀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어째서 당신이... 그토록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질까요?"

"그대가 짐을 그렇게 느끼기 때문이겠지."

황제는 그녀가 뒤틀려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선... 다른 비들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딘가 뒤틀린, 그래서 망가져 버린 느낌이 났다.

"망가졌구나. 그대는."

그렇기에 황제는 슬픈 듯이 말했고, 그 말에 아네스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어머, 그러는 폐하께선... 멀쩡하신가요?"

멈칫.

그녀의 질문에 황제는 그대로 멈췄다.

그녀는 망가졌다.

허면 자신은... 멀쩡한가?

자신은... 그녀에게 당당하게 말할 자격은 있는가?

황제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상하게도 엄청 붉게 느껴졌다.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피는...

전부 자신의 업보였다.

살려 달라고 빌었었다.

타마드는 그 모든 것을 포기할 테니 부디 목숨만은 부지하게 해달라고... 그리 빌었지.

어쩌면 황제가 되었을지도 모를 그 목숨은 그렇게 황제 대신 죽었다.

그녀의 선택으로 인해서.

"...어째서 짐이었느냐."

황제는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알고 있었다.

후회하지 않는다. 자업자득이었다.

자신을 설득해 봐도.

황제는 진작에 알고 있었다.

가족을 죽이고, 온몸에 피를 칠갑하면서...

멀쩡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이미 자신은... 그런 선택을 한순간 망가져 있었다는 것을.

진작에 미쳐 버린 황제가 이제 와서 정상인 척을 한다고 정상이 될 수 있을까?

그녀의 말이 옳았다.

자신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일지 모르나... 고장 나 있었다.

언제부터 고장이 났는지는 모르겠다.

유일하게 믿고 있던 동생이 독을 탔을 때? 아니면 재상을 죽였을 때? 그것도 아니면... 제발 살려 달라고 눈물을 쏟으며 빌던 타마드를 찢어 죽였을 때?

그것도 아니면 리아 누님을 절망에 빠트렸을 때인가? 라오허의 어머니를 죽였을 때? 그것도 아니면... 전장에서 형을 잃었을 때부터?

그렇기에 황제는 더욱 궁금해졌다.

그녀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어째서... 이런 자신을 고른 것일까?

그녀는... 왜 자신을 황제로 만드는 선택을 한 걸까?

그녀가 타마드를 골랐다면, 이 제국이 엉망이 되어 무너졌을지언정...

자신은 만족스럽게 죽을 수 있었을 텐데...

어째서 자신을 살리기로 결정한 걸까?

황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걸 물어보시는 건가요?"

그러나 그녀는 그 질문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그를 골랐냐고? 그건 너무나도 당연했으니까.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편지에도 제 감정을 듬뿍 담아드렸잖아요?"

"...전부 태웠다."

황제가 여전히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하자 그녀는 눈에 띄게 기뻐했다.

"어머 불같은 답장을 들려주셨네요. 제 불타는 사랑이 제대로 전해진 거 같아서 안심했답니다."

황제는 전혀 대화가 제대로 되고 있는 기분이 아니었다.

"그러면 짐을 왜 사랑했지? 짐은 그때 그대를 처음..."

"본 게 아닌 걸요."

"...?"

웃고 있던 그녀가 처음으로 정색을 하며 말했다.

"왜 기억을 못 하는 거죠? 전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데. 그때 아직 철없던 저한테 말해주셨잖아요. 다음에... 다시 볼 수 있다고."

"?"

황제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 여자는... 대체 무슨 말하고 있는 거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니 기억해주세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황제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가볍게 그 곱고 가느다란 하얀 손가락을 황제의 입술에 가져다 댔다.

"만약 기억해주신다면 그 뒤론 얌전히 폐하께서 절 사랑해주시길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

황제는 그녀의 말에 생각에 잠겼다.

대체 그녀를 언제 봤던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으니까.

--

'역시... 아직도 기억 못하시네요.'

아네스는 황제가 직접 안내해 준 별궁에 들어서선 옷을 갈아입고는 침대에 누웠다.

역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의 만남을.

그 운명적이었던 순간을.

자신의 마음을 사로 잡은 그 순간을.

그는 예전에 잊어버렸다.

그것이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너무나도 슬폈다.

하지만...

'그래도 얼굴을 봤어.'

초상화로만 보던, 황제의 주변에 붙여둔 궁녀가 보고해주던 모습이 아닌.

실제 황제의 모습.

그것을 본것으로 그녀는 그 슬픈 감정이 금세 사그라졌다.

'기억해주세요.'

그녀는 소망했다.

이젠 당신의 처음이 되지 않아도 좋으니까.

적어도 자신과의 첫 만남이라도 기억해주면 좋겠어요.

그녀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그의 입술에 닿았던 자기 손가락에 조심스럽게 키스했다.

쪽.

'후후, 좋은 보상을 받았네요.'

당분간 손을 씻을 수 있을까?

그녀는 그런 걱정을 하면서.

한참을 그렇게 황제의 입술에 닿았던 그 감촉을 느끼며 여운에 젖어 있었다.

정말이지... 그가 자신과의 첫 만남을 기억하지 못한 것만 빼면 오늘은 그녀에게 있어서 최고의 하루였다.

--

[내일이지? 일단 준비는 끝났어. 형이 오기만 하면 되는데. 마법으로 올 거야?]

집무실에 자리 잡은 통신 마도구에서 들려오는 라오허의 목소리에 황제는 상소문을 읽어보면서 대답했다.

"그리 되겠지. 당일 바로 시작할 예정이니 아마도 마리아의 마법으로."

통합 훈련에서 첫날부터 마법사가 빠질 수는 없으니 마리아가 수고해 줄 예정이었다.

그런 황제의 대답에 라오허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현자 님이 고생이 많으시구만. 참. 그러고 보니 새해는 잘 보냈어? 새해 인사가 늦었다고 죽이진 않겠지?]

"...모르지."

그 늦은 새해 인사에 황제가 살짝 웃음기를 담아서 말하자 라오허가 발작했다.

[형님은 농담이겠지만 난 살 떨리거든! 그런 농은 자제해주면 안 될까?]

"그래, 그보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다."

라오허에게 건성으로 대답하며 황제가 운을 똈다.

혹시 라오허가 뭔가 알지 않을까?

황제가 그런 생각하면서 말을 걸었다.

"짐에게 형식적인 약혼녀가 있다는 건 알고 있겠지."

[응? 아아, 그 뭐냐. 아네슨가 뭔가 하는 미친년?]

매번 황제를 향해 사랑해란 글자로 가득한 정신 나간 편지를 보내는 여자 말인가?

라오허가 그리 생각하면서 묻자 황제가 가만히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그래도 짐의 약혼녀인데 그런 불경한 표현이 맞나?"

[미, 미안. 그, 그분 말이지. 알지. 왜?]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깨달은 라오허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황제가 말했다.

"그녀와 짐의 첫 만남이 언제인지 알고 있나?"

[응? 그때잖아.]

잔뜩 긴장하던 라오허는 무게감이 확 떨어지는 질문에 실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때잖아. 나랑 민이 그 자식이랑 공놀이하고 있을 때, 그분이 길을 잃었잖아. 그래서 형님이 데려다주지 않았나?]

"...그런 적이 있었나?"

황제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런 적이... 있었나? 둘이 공놀이를 한 게 한 두 번도 아니고... 황제는 여전히 감이 오지 않았다.

[기억도 못 하는 거야? 아주 웃고 난리더만. 난 형님이 솔직히 그 여자를 좋...]

"짐이 웃었다고?"

라오허가 투덜거리듯이 말하는 것을 듣고 황제가 의외라는 듯이 되묻자 라오허는 머뭇거렸다.

[아, 아니 민이 녀석이 구경하자고 해서 몰래 봤는데... 형님이 웃고 있었어. 그래서...]

'...대체 왜 웃고 있었지?'

그 말을 들으며 황제는 생각에 잠겼다.

그녀를 상대로 자신이 웃고 있었다고?

어째서?

"...아."

한참을 고민하던 황제는 그제야 떠올렸다.

자신이 웃은 이유와...

그녀와 처음 만났던 날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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