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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의무방어전-133화 (133/235)

"생각한 모습과... 조금 다르네요."

나르타는 솔직하게 말했다.

뭔가 표독스러운 느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실제로 그녀를 보니 개미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할 정도로 가련하고 순수해 보이는 여인이었다.

그녀에게 가졌던 감정이 불호에 가까웠는데도 그 외모만으로 괜히 호감까지 갈 정도였다.

"어머나. 어떤 모습을 상상했는지 궁금해지네요."

아네스는 그런 그녀를 향해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나르타에 대해서는... 솔직히 좋은 감정은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네스는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었다.

"좋은 모습은 아니겠죠? 암살자를 보낸 사람을 좋게 생각해주긴 힘들 거든요."

나르타의 차가운 말에 아네스는 웃었다.

그렇긴 하겠지.

그녀의 마음도 이해는 갔으니까.

"그래서 그런 저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냥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어요. 그런데..."

화륵.

나르타의 주변에서 불로 만들어진 나비가 날아다녔다.

그걸 본 아네스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오히려 그 나비에 손을 가져다 대고 있었다.

제법 뜨거울 텐데... 놀랍게도 아네스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다음에도 이러신다면 그때는 그저 궁금하지만은 않을 거 같네요."

"어머나... 무서워라."

즉 다음부턴 이런 짓을 하지 말라는 경고를 위해서 찾아왔다는 건가?

참...

상냥한 사람이었다.

아네스는 그리 생각하면서 나르타에게 말했다.

"충고 감사드려요."

"..."

나르타는 가만히 아네스를 보았다.

방금 그 행동은 그녀 나름의 위협이었다.

허나... 역시 어려웠다.

나르타는 천성이 누군가를 위협하는 데는 영 서툴렀으니까.

'폐하라면...'

이런 것도 잘하셨을 텐데...

그런 생각하면서 나르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그녀에게 할 이야기는 다 했으니까.

"할 이야기는 다 한 거 같으니... 전 이만 물러가보도록 할게요."

"네, 즐거운 시간이었답니다."

그녀가 상냥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자 나르타는 질려 버렸다.

전혀 말이 통하는 것 같지 않아서 도저히 상대할 마음이 들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미워할 수는 없는 건 왜인지...'

나르타는 이상하게도 그녀를 미워할 수 없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말이다.

--

"주술안이 궁금하다고? 의외네. 그런 것에도 관심이 있었어?"

오늘은 모처럼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던 타흘라는 그대로 침대에 늘어진 채 오르테가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녀가 찾아온 것도 솔직히 신기했는데 그녀가 질문하는 내용은 더 신기했으니까.

"딱히 관심은 없는데... 같은 금안인데 폐하는 그냥 눈인데 모용진은 그 뭐지? 뭔 금정?"

"화안금정을 말하는 거지?"

"어! 그거! 아무튼 그거라잖아. 그래서 궁금해졌어. 그게 주술안이라며? 무슨 차이야? 뭔 효과가 있어? 다른 주술안도 있어?"

"오르테가 씨는 호기심이 많구나? 으으음... 어디서부터 설명해야할까..."

타흘라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서 턱을 괸채 고민에 잠겼다.

꽤 긴 설명이 될 텐데...

"먼저 주술안에 대해서 설명해볼까? 주술안, 혹은 마안이라고 불리는 특별한 눈은 일단 알려진 것만 12종류 정도 있어."

"...생각보다 많네?"

오르테가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녀의 생각보다 많았으니까.

"일단 유명한 게 그 정도고 자질구례한 저급 주술안까지 따지만 더 많겠지만... 아무튼 주술안은 결국 특별한 기, 다른 말로는 마력이 깃든 눈이야."

특별한 마력이 깃들어 있어서 소유자에게 특별한 능력을 주는 눈.

주술안의 가장 큰 특징이 그것이었다.

"가장 상급의 주술안이라 불리는 건 딱 두 개야. 천안과 화안금정이지."

타흘라는 자신의 반짝이는 하늘색 눈동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천안이지. 마리프 씨와 똑같은 하늘색이지만, 내건 좀 더 빛이 나지? 이게 천안이야. 마리프 씨는 그냥 눈색이 특이한 거고."

천안의 효능은 간단했다.

"이 천안은 좀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눈이야. 주술이나 마법, 간혹 누군가의 미래나 인간의 생사까지. 그래서 고등의 주술안이라 평가 받는거야."

물론 미래나 생사 같은 건 마음대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 그런 점에서 많은 이들이 탐내는 눈이기도 했다.

"화안금정은 활활 타오르는 것 같은 금색 눈동자가 특징이야. 폐하의 눈과 금위대장의 눈은 같은 색이지만 확실히 다른 느낌이지?"

화안금정은 모든 만물의 본질을 꿰뚫는 혜안이다.

나아가서는 사람의 마음마저도 살펴볼 수 있는 무서운 눈이기도 했다.

"무언가를 깊게 헤아리는 부분에선 오히려 화안금정이 훨씬 낫지. 둘을 비교하자면 천안은 넓게 본다면, 화안금정은 깊게 보는 느낌일까?"

"와... 뭔가 대단하네. 아무튼 그게 상급이구나. 그러면 그다음은?"

"나머지는 딱히 급을 정해 두진 않았을 거야. 효과도 제각각이고 설명하기도 길어지니까... 그냥 대충 이런 게 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이유는...

"귀찮네. 아무튼 금위대장의 것은 화안금정이 맞아. 폐하는 아니지. 애초에 폐하는 원래 금색도 아니잖아? 눈동자 말이야."

귀찮았으니까.

아무튼 황제의 금안은 황족이라는 증거일 뿐.

실제로는 다른 색일 테니까.

화안금정일 확률은 낮았다.

타흘라는 그렇게 말하고는 오르테가를 보았고, 오르테가의 반응을 보니 확실히 원래부터 금안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보다 황제의 약혼녀라... 그런 것도 있을 수가 있다는 게 참, 다시 들어도 신기하단 말이야."

"맞다! 약혼녀라니! 난 전혀 들은 적이 없는데?"

오르테가가 그 말에 그제야 그 사실을 기억해내고는 화를 냈다.

약혼녀라니! 그런 말은 한 번도 못 들었는데.

왜 이런 중요한 걸 자신한테는 이야기 해주지 않은 건지 화가 났으니까.

"오르테가 씨가 관심이 없던 거 아닐까아아? 꽤 유명한 이야기였는데."

그러나 타흘라는 오히려 오르테가가 몰랐다는 게 더 신기했다.

애초에 역사학계에서는 그녀의 선택이 제국의 운명을 갈랐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는데 몰랐다니... 하긴 그게 오르테가 비 답다면 답긴 했다.

'아네스 베르티에라... 그러고 보니.'

특이한 눈을 가진 여자였지.

타흘라는 그녀의 특이한 점을 기억해내고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희귀한 케이스인데. 한 번 만나볼까?'

솔직히 타흘라는 그녀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나서 한 번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대륙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었으니까.

한 인간에게...

두 개의 마안이 자리하는 것은 말이다.

--

그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홍채 이색증을 타고 태어났다.

유전자의 문제라고는 볼 수 없었다.

그 아이의 홍채 이색증은 조금 특이했으니까.

"마안이 두 개나 깃들다니... 대륙 역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입니다."

갓난아기를 진찰하던 의사는 그 두 눈을 보며 그렇게 평가했다.

왼쪽에 깃든 것은 보는 이를 매혹시킨다는 화안(花眼).

오른쪽에 깃든 것은 보는 이의 몸을 둔하게 만든다는 설안(雪眼).

둘 다 격이 높은 마안은 아니었지만... 하나도 아닌 두 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의미가 남달랐다.

"대단한 재능입니다."

마안을 가지고 태어난 자는 마력 적성이 높은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마안을 하나도 아니고 두 개를 타고나다니...

그야말로 재능만 놓고 보면 대마법사의 재능.

지금까지 겔만만 존재하는 대마법사가... 프리아에도 생겨날 수 있을 정도의 재능이었다.

"허! 그 정도란 말인가?"

그때의 루이는 의사의 말에 하늘을 날아갈 것처럼 기뻐했다.

늦게 얻은 딸에게 이런 재능이 있다니! 그 얼마나 기쁜 일인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 재능까지 있었으니... 그는 더욱 자기 딸을 아꼈다.

그렇기에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에겐 악감정이 없다고는 못하겠다.

그런 금지옥엽의 마음을 훔친 도둑 놈이었으니까.

루이는 그런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존엄하신 대륙의 하늘을 뵙습니다."

눈앞에 있는 남자는... 자기 금지옥엽을 홀린 불한당이면서도, 이 대륙에서 그 위가 없는 지존이었으니까.

황제는 아네스를 다시 찾아가기 전에 면담을 요청해온 루이와 만나고 있었다.

"그래, 짐을 보고자 했다지."

"...제 딸을 데려가셨다고 들었습니다."

관도에서 그 술탄 늙은이와 열심히 다툼을 하고 있을 때 딸이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황제에게 면담을 신청한 루이는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비를 암살하려 했으니... 형식적으로라도 체포는 해야 되지 않겠나."

"...이해합니다. 그래서 제 딸은 무사합니까?"

황제의 말은 지당했고, 거기까진 루이도 이해했다.

하지만... 그래도 처벌이 두려운 건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루이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고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궁에서 쉬고 있겠지."

"그, 그게 제 딸 아이가 그런 짓을 한 것은..."

투기심 때문일 거다.

여인의 귀여운 투기심이니 부디 자비를 달라고.

말도 안 되는 궤변이라는 건 루이 자신도 알고 있지만 지금은 그런 변명이라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황제는 그 변명을 듣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루이가 변명할 수가 없었다.

"죽고 싶었다더구나. 짐의 손에."

"...네?"

그만큼 황제가 전해준 말은 루이가 하려던 말을 끝맺지 못할 정도로 충격적이었으니까.

루이는 솔직히 딸이 질투심에 일을 벌인 거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만큼 그 아이가 눈앞에 남자를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이유였다고?

"마, 말도 안 되는..."

루이가 덜덜 떨면서 끔찍한 상상에 몸을 떨자 황제가 그런 그를 위로하듯 말했다.

"그래서 주지 않기로 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을 준다면 그것은 처벌이 아니지."

"...감사합니다."

황제의 말에 루이는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끔찍했다.

저 황제의 손에 딸이 죽는 걸 상상만 해도 루이는 심장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처벌은 어떻게 됩니까?"

루이가 가장 관심을 가진 것은 그것이었다.

이 비정한 황제가 자신의 딸이라고 아예 처벌하지 않을 거란 생각은 없었으니까.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이번 한번은 넘어가기로 했으니."

"...황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의외로 황제는 처벌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밝혔다.

루이가 아예 머리까지 책상에 박으면서 감사를 표하자 황제는 그를 일으켰다.

"감사할 일이 아니다. 그건 짐이 그대들의 도움을 잊지 않고 있다는 의미기도 하니."

"..."

루이는 그 말에 생각에 잠겼다.

처음엔 이 황제를 선택한 것이 그저 딸 아이를 위해서 손해를 본 선택이라 생각했다.

지금의 황제보단... 타마드와 재상이 약속한 것이 루이에겐 더 달콤하게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든든하다니.'

지금은 이 황제가 자신들의 도움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든든하게 여겨졌다.

그렇기에 루이는 황제에게 말했다.

어쩌면 이 문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사실 최근 투르크에서..."

투르크에서 프리아를 향해 관세를 걷겠다는 말을 해 왔다.

당연히 프리아 입장에선 받아들일 수 없었고, 둘은 관도에서 치열하게 그 문제로 논의중이었다.

투르크는 자신들의 포도주 사업장을 보호하기 위해서 프리아의 질 좋은 포도주가 싸게 들어오는 것을 관세를 통해 막고자 했고, 프리아는 주요 거래 대상인 투르크의 그런 행동이 불만이었다.

"...흐음, 그 문제는 짐이 해결해 줄 수 있겠구나."

황제는 양쪽의 입장은 다 듣지 않았지만... 그래도 루이의 근심을 해결해 줄 수는 있었다.

"그대들은 전부 제국의 속국이거늘. 짐은 그 어떤 속국에게도 관세를 걷을 권리는 주지 않았다고 말이다."

애초에 제국은 속국에게 관세를 매길 권리 따윈 주지 않았으니까.

"바로 그리 전하겠습니다!"

술탄 녀석 꼴이 좋지.

루이가 속으로 그런 생각하고 있을 때 황제가 말했다.

너무 프리아의 편만 들어 주면 그 늙은이가 반감을 품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투르크의 포도주는 제국에서 일정량을 수입하겠다고 전해라. 이 정도의 양을 매년 매입해주겠다고 하면 그쪽에서도 그리 큰 반감을 가지진 않을 거다. 그러니 이 친서를 술탄에게 전하거라."

황제는 바로 친서를 써 주었고, 루이는 그 친서를 공손하게 받아들였다.

투르크의 포도주는 맛은 그리 좋지 않지만 도수가 높은 편이었다.

고온의 환경 때문에 포도주가 변질되지 않게 독한 술을 섞기 때문이었다.

황제는 그것들을 수입해 철곡으로 보낼 생각이었다.

추운 환경에선 아무래도 도수가 높은 술이 필요할 테니.

"그리 전하겠습니다."

아무튼 너무 두 민족이 감정 상하게 둘 필요가 없다.

민족 간의 문제를 중재하는 것도 제국의 역할이었으니.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떠나려는 루이에게 말했다.

"그대의 딸과는... 잘 이야기해볼 테니 걱정하지 말거라."

"폐하만을 믿고 있겠습니다."

이젠 완전 자신에게 신뢰의 눈길을 보내는 루이를 보내고는 황제는 눈을 감았다.

그때를 이젠 확실히 기억한다.

아주 기분이 나쁜 날이었다.

재상이 보낸 암살자를 죽이고, 더러운 기분을 지우기 위해서 궁의 안쪽에 있는 한 건물의 천장 위에서... 하늘을 보고 있었다.

동생들의 목소리가 들리기에 아래를 내려다 보니 그곳엔 귀여운 소녀가 있었다.

한눈에 알아보았다.

저 작고 순진무구한 소녀가 재상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 심혈을 기울여서 설득하는 프리아의 공주라는 것을.

그래서 일부러 모르는 척 말을 걸었다.

그저 재상과 관련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황제는 그녀가 싫었으니까.

그런데도 그녀는 그저 실없이 말을 걸어왔다.

그게 더 싫었다.

정말이지 모두의 사랑을 받고 자라온 것 같은 그녀가... 황제는 거북했다.

자신과는 다른 세상에서 사는 것 같아서.

자신과 달리 가족을 의심하지 않아도 되고, 부하를 의심하지 않아도 되며,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는 공주를 보면서...

그때의 자신은 얼마나 비참한 생각하고 있었는지.

황제는 이젠 안다.

그렇기에 더 의아한 것이다.

왜 그녀는 그런 자신을 좋아하게 된 걸까?

그때의 그 웃음이 무슨 의미였는지도 모르면서.

황제는 깊은 죄책감을 느끼면서 아네스가 있는 궁으로 향했다.

그 모든 진실을... 고백하기 위해서.

--

모든 이들의 호감을 사는 눈.

그녀의 화안은 그런 눈이었고, 그래서 그런지 황제의 약혼녀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수많은 남자들이 구애 해오고는 했다.

물론 그녀는 그런 남자들의 구애 따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모든 이들을 홀리는 그녀의 눈은 아주 예전부터 단 하나의 남자만을 담고 있었으니까.

그런 점에서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살 수 있는 눈이라는 건... 틀렸다.

정작 그녀가 가장 호감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에겐... 호감을 사지 못한 눈이니까.

'오고 있네요.'

느낄 수 있다.

애초에 보고 있었으니까.

늘 지켜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눈은. 그녀의 눈이기도 했으니까.

'아바마마도 참...'

너무 걱정이 많다.

폐하께서 자신을 버릴 일이 없다는 건 조금만 봐도 알 수 있을 텐데...

아무튼 이제 올 것이다.

자신이 붙여둔 궁녀들의 눈이 황제의 위치를 제대로 보고해주고 있었으니까.

아네스는 눈을 감은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런 식으로 보는 것도 좋았지만. 역시...

"자는 중이었느냐."

"아뇨.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이런 식이 아닌, 자신의 진짜 눈에 사랑스러운 그의 모습을 담는 것이 훨씬 좋았다.

아네스는 그리 생각하면서 황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저 무뚝뚝한 얼굴마저도 사랑스러운데... 그때처럼 다시 미소를 지어 준다면 얼마나 기쁘고, 또 행복할까?

아네스는 그런 생각하면서 질문했다.

"그래서 이젠 기억이 나셨나요?"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질문했고,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후후, 그럼 말해주실래요? 우리의 만남을."

잔뜩 기대하는 얼굴로 아네스가 말하자 황제는 그대로 의자에 앉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황궁에서 길을 잃었던 그대와 만났지. 아마 내 동생들도 있었을 거고."

"정답이랍니다."

"그리고... 그대와 대충 이야기하다가. 그대로 헤어졌지."

"네, 그때 웃으면서 말씀하셨지요.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그랬지..."

행복한 얼굴로 대답하는 그녀를 보면서 황제는 눈을 감았다.

역시 말해야겠지.

"그때 짐이 웃은 이유는... 그대가 짐의 적이 될 거라 생..."

"알고 있답니다."

"..."

황제는 그녀의 대답에 놀랐다.

알고 있었다고?

처음부터? 그런데 어째서 자신을...

황제가 그리 생각할 때 그녀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 미소의 의미는 처음부터 저한텐 상관이 없었어요."

애초에 그녀에게 그 의미는 상관이 없었다.

그녀가 황제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상상 이상으로 간단했으니까.

"전 그 미소가 좋았으니까요. "

"...그대는 정말이지."

황제는 그녀를 보았다.

그제야 알았다.

그녀의 말은 한 치에 거짓도 없는 진심이었으니까.

"고작... 그런 이유로?"

자신을 죽이겠다고 생각하며 미소 짓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고?

황제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녀는 그런 황제조차도 사랑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부담스럽구나. 솔직히."

스륵.

황제는 그녀가 부담스러워졌고, 그 순간 방안에 등불이 꺼졌다.

덜컥.

"그보다 밤중에 숙녀의 침실에 들어오는 건 그런 의미라고 이해해도 되는 걸까요?"

황제는 갑자기 잠긴 문을 보고는 그녀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스륵.

묘한 기대로 상기된 얼굴로... 그녀는 갑자기 옷을 벗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짐은 합궁 순서를 지킬 것이다."

"알고 있답니다. 그러니까..."

새하얀 나신을 드러내며, 그 풍만한 가슴이 황제의 등에 닿게 한 아네스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알고 있었다.

자신이 황제의 합궁 상대인 이상, 그 순서를 어기려 들지는 않을 거라는 것을.

그렇지만 그녀에겐 그런 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이 안에 넣지만 않으면 되는 게 아닐까요?"

그녀가 자신의 아래를 가리키며 입술을 가볍게 핥았다.

"..."

그 순간 황제는 그녀가 무슨 짓을 하고자 하는지 알아차렸다.

"...마음대로 하거라."

황제의 허락이 떨어지자 아네스의 길고 가느다란 손이 황제의 얼굴을 잡고는 그녀 쪽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허락해주셔서 감사해요."

순수하게 감사를 표한 아네스가 바로 입을 맞춰오기 시작했다.

뜨거운 밤의 시작을 알리는... 그녀의 인생에서 첫 키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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