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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의무방어전-135화 (135/235)

황제가 눈을 뜨자마자 본 것은 이미 잔뜩 긴장한 채로 도열해 있는 금위대와 미리 훈련할 자리를 마련해두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라오허였다.

"형님은 여전히 건강해 보이네. 준비는 다 해뒀어."

"라오허. 잘 지냈느냐."

황제는 도착하기 무섭게 자신을 반기는 라오허의 어깨에 자연스럽게 팔을 걸치면서 인사를 건넸다.

"나야 뭐... 잘 지내지. 그보다 또 뭘 하려고?"

왜 갑자기 친한 척이시지?

이런 친근한 행동조차도 그 의도를 파악할 수 없어서 두려웠기에 라오허가 잔뜩 긴장하고 있을 때 황제가 말했다.

"짐을 위한 병장기를 준비해 오거라."

"아, 통합 훈련에 쓰려고? 그러고 보니 빈손이네."

그 말에 라오허는 그제야 황제가 빈손이라는 걸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야 어렵진 않은데... 뭘 준비하면 되는데? 검?"

병장기를 구하는 것은 이 제천의 자사인 그에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역시 어느 무기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라오허가 묻자 황제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

"...진짜?"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하는 황제의 말을 들은 라오허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그만큼 황제의 요구는 놀라웠지만... 어떤 의미에선 참으로 그다웠다.

"질은...? 그 요구대로라면 아무리 그래도 상품(上品)을 바로 구하긴 힘들 거든?"

문제는 역시 품질이다.

당장 황제가 쓸 정도의 품질을 가진 병장기를 구하는 것은 꽤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라오허가 조심스럽게 묻자 황제는 가볍게 대답했다.

"품질은 상관없으니 준비만 해놓거라."

황제의 대답에 라오허는 의아한 얼굴로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품질이 상관없다니? 그래도 황제가 쓸 무기인데...

라오허는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그 의문을 입 밖으로 내고 싶진 않았다. 두려웠으니까.

그렇기에 라오허는 손짓으로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관리들을 불렀다.

"바로 준비하라고 할게. 그러면 훈련은?"

"...병장기가 준비되면 바로."

황제는 그리 답하고는 금위대에겐 그동안 장비를 정비하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잔뜩 긴장한 자세로 서 있던 금위대는 흩어져서 각자 장비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그보다 준비를 잘했구나. 아주 탁 트인 것이."

황제는 금위대 전원이 모여 있음에도 전혀 좁게 느껴지지 않은 평원을 보면서 만족스럽게 웃었다.

제천에서 원 없이 날 뛸 곳을 만들어두라고 지시하긴 했지만 짧은 시간에 이렇게 잘 만들어둔 것이 참으로 기특했다.

솔직히 황제는 라오허에게 많은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일단 산을 좀 깎았어. 그리고 저기 숲은 이참에 뽑아서 다른 쪽으로 옮기고. 그리고는 잔디를 쫙 깔았는데. 어때? 마음에 들어?"

태연하게 산을 깎고 숲을 옮겼다고 말하는 라오허를 보면서도 황제는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마음에 드는구나. 잘했다."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공사비가 들었지만, 라오허는 어차피 형님의 돈이니 신경 쓰지 않았다.

형님의 돈을 쓰고 형님한테 칭찬 받으니까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그런지 라오허의 입가에선 미소가 떠나갈 줄을 몰랐다.

"아니 뭐... 인부들도 돈 벌고 좋지 뭐. 그보다 구경해도 될까? 나도 좀 보고 싶은데."

관리에게 황제가 부탁한 물건을 급하게 준비하라고 지시한 라오허가 묻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마음껏 구경하거라."

황제의 허락이 떨어지자 라오허는 바로 사람들에게 지시해 자기 자리를 만들었다. 혹시라도 훈련에 말려들 것을 걱정했는지 거리는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아, 비들이 앉을 자리도 만들었어야 했나?"

그제야 여화와 레오니를 발견한 라오허가 묻자 황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훈련에 참가하기로 했으니 그럴 필요는 없다. 그보다 의원은?"

역시 이번 훈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원이었다.

훈련 중에 사람이 죽는다면 그것만큼 어이없는 일도 없으니까.

그렇기에 황제가 묻자 라오허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준비해 뒀지. 죽지만 않으면 살릴 수 있을 정도로 약도 준비해 뒀어."

라오허는 그 부분은 특히 신경 써서 준비했기에 자신이 넘쳤다.

황실에 정식으로 인가를 받아서 영약이니 비약 같은 것도 잔뜩 가져 왔고, 어의도 일부만 남기고는 전부 이곳에 데려왔다.

준비는 만전.

사상자가 안 나오게 하는 게 가장 우선이었다.

"그래도... 알지?"

적당히 하자.

라오허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기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은 써 보도록 하마."

물론 상황에 따라서 조절이 힘들지도 모르지만...

황제는 그래도 최대한 신경 쓸 생각이었다.

여기 있는 금위대는 전부...

어떤 의미에선 황제의 재산이었으니까.

--

"그런데 통합 훈련 말인데... 이게 맞아?"

약혼녀의 얼굴 한 번 보겠다고 호기롭게 찾아온 오르테가는 그녀에게 통합 훈련의 내용을 듣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오르테가는 오늘 통합 훈련을 위해서 황제가 떠났다는 것도 방금 아네스 덕분에 알았으니까.

그걸 보면서 느긋하게 오늘 찍은 영상을 정리하고 있던 아네스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뭐가요?"

"약혼녀라면서... 걱정도 안 돼?"

오르테가는 태연한 그녀의 모습에 놀랐다.

그런 위험천만한 짓을 하는데 걱정이 안 된다니! 오르테가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그야 약혼녀니까요. 반대로 약혼녀도 폐하를 믿는데 비라는 사람은 못 믿나보네요?"

"윽! 그, 그건..."

그러나 아네스는 여전히 당당하게 대답했고, 오르테가가 오히려 그 말에 할 말을 잃어 버리고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 모습이 조금 귀여워 보여서 아네스는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해주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그녀도 걱정이 되긴 했으니까.

"뭐... 걱정이 안 된다면 그게 더 이상하겠죠. 저 역시 걱정은 된답니다."

아네스 역시 걱정이 안 된다면 거짓이었다.

사실 따라가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믿을 수밖에 없잖아요? 당신이라면 이해할 거로 생각했는데요."

"아, 알고 있거든. 그보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오르테가가 그녀가 정리하는 영상이 담긴 마석을 들어 보며 묻자 아네스가 행복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번에 황궁에 와서 찍은 영상들을 정리 중이랍니다? 늘 초상화로 만족했는데 가까이 있으니까 이런 것도 가능하니 정말 좋네요. 아! 그건 오늘 아침에 찍은 거랍니다?"

"이게...?. 잠깐 왜 둘 다 알몸인건데?"

마석에 마력을 넣고 영상을 띄운 오르테가는 둘 다 알몸으로 침대에 누워 있는 걸 보고는 붉어진 얼굴로 따졌다.

알몸의 남녀가 할 일은 오르테가는 하나 밖에 알지 못했으니까.

"그야 남녀가 단둘이 있는데 아무 일도 없는 게 더 말이 안 되지 않나요? 저 그래도 일단 약혼녀인데요."

"그, 그건 그치만... 아무튼 순서가 있잖아!"

오르테가가 버럭 화를 내자 아네스는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물론 진짜로 하지 않았지만요. 아쉽네요. 제 순서가 너무 뒤라서... 오르테가 비 전하는 앞이였죠?"

"아, 안 했다고? 이 몰꼴로?"

오르테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아네스는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는데... 폐하께선 참으로 완고하신 분이라니까요? 뭐... 그런 점도 사랑스럽지만요."

"...그렇구나."

오르테가는 그 녀석답다는 생각이 들어서 웃음이 나왔다.

그 미소를 본 아네스가 싱긋 웃으면서 물었다.

"그래서 이제 의문은 풀리셨나요?"

"...다른 영상도 있어?"

오르테가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물었고, 아네스는 그 모습을 보면서 웃었다.

"목욕할 때 영상도 있는데 같이 보실래요?"

그 질문에 오르테가의 뿔이 반짝였다.

아니 저 뿔이 저런 식으로 빛날 수도 있는 거였구나.

아네스는 그런 생각하면서 오르테가를 살펴보았다.

'새삼...'

정말 아름다운 여인이다.

아네스는 여자가 봐도 이 아름다운 여인이 자신의 가장 큰 경쟁자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가 지켜본 결과 황제가 가장 총애하는 비는 바로 눈앞에 있는 이 여자였으니까.

'안 질 테지만요.'

아네스는 속으로 각오를 다지면서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모, 목욕...? 흠 한 번 볼까? 따, 딱히 관심이 있는 건 아닌데. 그냥 단순한 호기심이라고 할까?"

정말 관심이 없다는 듯이 말하면서도 눈은 그 영상이 담긴 마석에서 떨어질 줄 모르는 오르테가를 보면서 아네스는 웃음을 터트렸다.

단연컨데...

그녀가 본 비중에서 가장 솔직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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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내가 등수가 제일 높을 거다. 한 번 봐라. 백부장 중 최강은 이제 나 황보철궁이 접수할 테니까."

처음엔 앓는 소리를 하던 백부장들도 막상 통합 훈련이 코앞까지 닥쳐오자 앓는 소리 대신 소란을 떨기 시작했다.

황보철궁은 재수 없는 표정을 지으면서 선언했고, 세르나는 콧방귀를 꼈다.

"또 맞고 싶어?"

"응, 우리 같은 편이야."

그 말에 황보철궁이 약 올리듯 말하자 세르나는 짜증을 부렸다.

"아 짜증 나! 저놈은 폐하랑 같이 싸우라고 하면 안 돼?"

마음 같아선 상대 편으로 보내서 두들겨 패고 싶은데.

세르나가 그런 생각을 했으나 그 생각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러면 우리가 저놈을 패는 게 아니라 폐하한테 두들겨 맞으면서 저놈한테도 맞아야 할걸?"

아비는 안타깝다는 듯이 중얼거렸고, 세르나는 혀를 찼다.

아쉽지만 그 말이 사실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지. 나중에 따로 패야겠네."

"거기 자리 비었냐? 나도 끼자."

박철준이 그 말에 반색을 하며 말하자 다른 백부장들도 손을 들었다.

"여기도 추가."

"여기도!"

"활로 그냥 저 입을 뚫어주고 싶은데."

"이, 이 자식들....  아! 내가 너무 잘나서 이런 시기와 질투를 받는구나. 어쩔 수 없지. 거위가 모인 곳에 백조가 혼자 있으면 고독해질 수밖에 없으니."

처음엔 배신감으로 부들거리던 황보철궁이 그런 그들을 보면서 한탄하자 백부장들의 표정이 그야말로 못 들을 걸 들은 사람처럼 구겨졌다.

"...페하, 저놈은 제발 반쯤 죽여주십쇼."

모용진도 자신을 백조라 칭하는 황보철궁의 모습에 짜증이 났는지 무기가 올 동안 가볍게 물구나무서기를 한 채로 팔을 굽혔다 펴고 있던 황제에게 부탁했다.

"...걱정 말거라."

황제는 계속 운동하면서 그 질문에 대답했다.

그 소원은 어차피 들어줄 생각이었으니까.

"공평하게 전부 반쯤 죽여줄 테니."

"..."

그 대답에 금위대 전원이 사색이 되었다.

그제야 그들은 알아차렸으니까.

지금은 자신들끼리 싸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당장 눈앞에서 괴물이... 송곳니를 갈고 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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