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야. 검에서 혈향이 진동을 하는구나. 이게 위정자의 검이냐? 아니면 살인귀의 검이냐? 이 늙은이의 눈엔 아무리 봐도 후자로 보이는 구나."
검을 휘두르는 소년을 보던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 곰방대에 불을 붙이면서 투덜거렸다.
"제자야.... 네놈의 검에는 독기가 가득하구나. 그런 검으로 어찌 천하를 다스리겠느냐."
노인은 진지하게 소년을 향해 조언했다.
물론 이 소년에게 노인이 직접 검을 가르치는 건 예전에 그만두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이 노인이 눈앞에서 검을 휘두르는 소년의 스승이라는 건 변함이 없었다.
태자를 가르치는 태자태사.
그게 이 노인의 정체였으니까.
"한낱 촌로가 참으로 과분한 자리를 얻어 네놈을 가르친지가 어연 10년이 다 되어가는구나."
노인은 검을 내려놓고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소년을 보며 가볍게 회고했다.
태자태사로 살아온 지 어연 10년.
노인은 이 소년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가르쳤다.
서예, 바둑, 병법, 검술, 창술, 궁술, 제왕학, 유학, 천학, 천문학, 관상학, 승마... 이젠 언급하기도 숨이 찰 정도로 많은 것을 배우면서도 눈앞에 소년은 단 한 번도 노인을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이미 네 녀석한테 가르칠 건 전부 가르쳤다. 그러니 이 늙은이는 이만 떠나려고 한다."
그 모든 권신들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태자를 가르쳐 온 이 쇠고집의 노인은 앞에서 공손하게 앉아서 경청하는 소년을 보면서 말했다.
"의외로 잡으려 하지 않는구나."
"구름을 잡으려 한다고 잡을 수 있겠습니까."
태자의 대답에 노인은 빙그레 웃었다.
그 말이 옳았으니까.
노인은 구름이었고, 그렇기에 잡고자 한다고 잡을 수 있는 성질의 인간이 아니었다.
"그래, 잡을 수 없지. 역시 네놈은 날 잘 아는구나."
자신을 구름이라 칭한 노인은 흡족하게 웃었다.
눈앞의 태자는 단언하건데 노인이 받은 제자 중에서 가장 오성이 뛰어났으니까.
"허나 그 구름도 결국은 하늘에 속한 존재일 뿐. 그러니 네놈이 정녕 하늘이라면..."
노인은 이미 몇 군데가 비어 있는 이를 훤히 드러내며 웃었다.
이 아이가 정말 하늘에 적합한 자라면...
"그땐 다시 만날 수 있게 될 게다."
노인의 주변엔 어느새 나비가 날아다녔다.
이 추운 겨울에 대체 어디서 나비가 나타났는지 모를 일이었다.
소년이 나비에 시선을 준 순간...
노인이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가르침을 주마. 그러니 경청하거라. 곧 네놈은 위정자가 될 터이니..."
세력이 없이 정통성만 있던 소년이 프리아란 지원군을 얻으면서 갈라졌던 한족의 지지를 한 곳에 모았다.
이젠 이변이 없다면 이 태자가 바로 차기 황제.
그렇기에 노인은 이 제자에게 마지막으로 가르침을 주기로 했다.
이건 이 제자를 위한 가르침이자, 그래도 10년 정도 자신이 녹을 먹고 산 이 제국을 위한 가르침이었다.
"단련을 게을리하지 말 거라. 무릇 무기란 갈고 닦아야 제대로 쓸 수 있듯이 사람 역시 그러하다."
무기를 관리하지 않으면 녹이 슬듯, 인간 역시 그러했다.
몸에 녹이 슬면 마음에도 녹이 스는 법.
그러니 몸을 단련하는 것을 잊지 않아야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기 마련이었다.
노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태자를 보았다.
태자는 스승이 남기는 마지막 가르침을 진지한 얼굴로 경청하고 있었다.
"주색잡기를 멀리하거라. 주는 사람의 이성을 흐리고, 색은 사람의 본성을 망치니. 이를 멀리하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길이다."
술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색은 인간의 본성을 타락시키니.
위정자라면 이 둘을 가장 경계해야 함이 옳았다.
태자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노인은 마지막 가르침을 주었다.
어쩌면 이 제자에겐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었다.
"이건 너 개인에게 하는 가르침이자... 이 늙은이의 사소한 예언이다. 자비로워지거라. 무슨 선택을 하던 있어서 조금이라도 자비로워진다면 네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
이 아이 검에선 짙은 피 냄새가 났다.
피는 사람을 잔혹하게 만들고, 한 번 피맛을 보고 나면 더욱 피를 갈구하게 된다.
그러니 자비로워야 했다.
제정신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이 아이는 자중할 필요가 있었다.
"...명심하겠습니다."
태자의 대답을 들은 노인은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하늘로 올라갔다.
그 뒤로도 태자는 노인의 가르침을 늘 가슴에 새겼다.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주색잡기에 매진하지 않았으며,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 줄은 모르겠으나 조금은... 자비로웠다.
그렇기에 태자...
아니 이젠 황제가 된 제자는 스승님의 가르침을 여전히 기억했다.
오늘도 자비롭게...
"죽이진 않으마."
황제는 그리 말하고는 라오허가 준비해 둔 무수히 많은 병장기들을 땅에 박아두었다.
"시작하거라."
시작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금위대의 병사들이 황제에게 달려들었다.
본격적인... 통합 훈련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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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보다 근육이 늘었구나."
우득!
금위대 병사가 찌른 창을 안으로 파고들며 피한 황제는 그 몸을 가볍게 살펴보고는 그대로 팔꿈치로 명치를 찍었다.
갑옷이 우그러들면서 그대로 병사는 일어나지 못했고, 황제는 바로 뒤를 찔러오는 병사의 검을 보지도 않고 뒷발 차기로 날려 버리고는 자연스럽게 몸을 돌리면서 손등으로 뺨을 후려쳤다.
퍼억!
그대로 뺨을 맞은 병사는 쓰러져선 움직이지 못했다.
그 순간 황제는 자기 머리 위에 떨어지는 거대한 도끼를 발견했다.
'콰오콴인가...'
이런 공격 방식은 역시 콰오콴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사방에서 마법과 주술이 날아들었다.
황제는 그 모든 공격을 전신에 기막을 둘러서 막아 내고는 바로 전방을 주시했다.
"하앗!"
아니나 다를까 콰오콴이 달려들고 있었다. 하긴 이 남자의 성정이라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슈욱!
순식간에 콰오콴의 손에 나타난 대부가 황제에게 내려오고 있었다.
쨍그랑!
그러나 그 대부는 오히려 황제의 몸에 닿는 순간 오히려 깨져 버렸고, 황제는 그대로 콰오콴의 머리를 잡았다.
"그만하면 되었으니 좀 쉬고 있거라."
우득!
악력만으로 두 개골에 금이 가게 만들어 버린 황제는 그대로 콰오콴을 의원들이 대기하는 곳으로 던졌다.
부순 것도 아니고 금만 가게 조절을 했으니 죽진 않겠지.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우선 마법사와 주술사들부터 정리했다.
"으, 으아악!"
마법과 주술을 몸으로 뚫고, 병사들의 병장기는 몸으로 분쇄했다.
백부장들이 손을 쓰기도 전에 가장 먼저 마법 부대와 주술 부대, 그리고 병사들이 전멸했다.
의원들에게 그들을 전부 일일이 던져 준 황제는 이제 본격적인 싸움의 시작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순간 황보철궁이 움직였다.
재빠르게 창을 찔러 들어오는 황보철궁을 보고 황제는 손을 뻗었다.
처억.
그러자 땅에 박아두었던 창이 그대로 날아와서는 황제의 손에 안착했다.
투욱.
그야말로 가볍게 창대로 황보철궁의 창을 쳐 낸 황제는 바로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창은 안쪽이 약점이라 내 그리 강조하지 않았느냐."
푸욱!
황제가 앞쪽을 잡은 창으로 황보철궁의 복부를 찌른 순간이었다.
꽈악.
황보철궁이 갑자기 자기 창까지 버리고는 그 창을 굳게 양손으로 잡았다. 그런 그의 얼굴엔 비장함이 감돌았다.
"지금이야!"
'그렇군...'
어쩐지 너무 안일하더라니...
처음부터 자신을 미끼로 써서 몸으로 잡아낼 생각이었나?
황제가 그리 생각하는 순간 박철준이 그대로 쌍수 도끼를 내리쳐왔고, 모용진의 검이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합공.
그렇게 보였다.
"어, 어?"
황제는 그대로 황보철궁을 들어 올려서는 박철준에게 던졌다.
"뭐, 뭐야!"
퍼억!
순식간에 두 명을 처리한 황제는 혼자 남은 모용진을 보고는 빠르게 무기를 바꿨다.
창을 놓은 황제의 반대 손에는 어느새 검이 들려 있었다.
끼익!
그 찰나에 목을 노리고 들어온 모용진의 검에 자신의 검을 끼워 넣어 흘려 낸 황제는 그대로 자세가 무너진 모용진의 머리를 잡고는 무릎을 박았다.
빠각!
"윽!"
모용진이 그대로 이마에 피를 흘리며 뒤로 넘어가는 순간 세르나의 검과 아비의 도가 양쪽에서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을 정확히 노린 대흘의 화살이 정확히 황제의 목을 노리고 쇄도했다.
"세르나 넌 늘 공격이 방어보다 서툴구나. 아비 넌 늘 검로가 단순해."
황제는 바로 뛰어올라 두 사람의 검을 피하고는 둘의 머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그대로 땅에 박아 넣었다.
콰앙!
그대로 땅에 머리가 박힌 둘이 일어나지 못할 때 황제는 그대로 뒤늦게 날아든 화살을 잡았다.
어느새 황제의 손엔 활이 들려 있었다.
"대흘. 넌 너무 신중하구나. 쏘는 게 늦었다."
'이건 너무 빨...'
대흘은 황제가 쏘아낸 화살을 보고는 반사적으로 손을 들었다.
그러고는 날아온 화살을 잡았다.
그그그그그극!
그러나 화살은 멈추지 않고는 그대로 대흘을 뚫어 버렸다.
털썩.
복부가 뚫린 대흘이 쓰러지자 황제는 그 순간을 노리고 들어온 태클을 저지했다.
"베베라..."
"...이것도 저지해 버리는 겁니까?"
베베라는 기습적으로 시도한 태클이 저지당했다는 사실에 놀랐으나 상관없었다.
지금은...
'그렇군.'
황제는 자기 뒤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감각에 몸을 떨었다.
이건... 확실히 위험했다.
우득!
순식간에 베베라의 경추를 내려쳐 기절시킨 황제는 자기 뒤를 노리고 휘둘러지고 있는 여화의 검을 기검으로 막아 내고는 레오니의 랜스를 손으로 잡았다.
우득!
황제가 그대로 랜스를 구겨 버리자 레오니가 눈을 크게 떴고, 그 순간 여화가 황제의 기검마저 베어 버리며 그대로 황제의 등을 벴다.
푸아악!
'벴다...!'
그 황제의 몸에 상처가 났다.
여화가 그런 생각하고 있을 때 어느새 여화의 뒤에서 나타난 기검이 그대로 그녀의 등을 뚫어 버렸다.
"방심하지 말라 그리 말했거늘. 그건 늘 안 느는구나."
황제는 그런 여화에게 충고하고는 여전히 랜스를 잡힌 채 벗어나지 못 하는 레오니를 그대로 들어서 저 멀리 던져 버렸다.
"그대는 너무 직선적이야."
레오니는 너무 직선적이라서 읽기가 쉽다.
황제는 그녀에겐 그리 충고하고는 주변을 보았다.
어느새 서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었다.
'여화와 레오니는 아직 싸울 여력이 있어 보이는군.'
금방 몸을 일으킨 여화와 레오니.
모용진은 머리를 맞아서 아직도 어지러운지 비틀거리고 있었고, 할바르와 남은 백부장들은 황제가 견제용으로 쏘아낸 기검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래선 좋은 점수는 못 주겠구나."
황제는 그리 중얼거리고는 빠르게 몸을 이동시켰다.
"또 접니까?"
모용진은 황제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걸 보고는 질린 표정으로 뇌창을 쏘아냈다.
그러나 황제는 그 뇌창을 가볍게 베어내고는 멈추지 않고 달려오고 있었다.
'무섭네 진짜!'
그 모습은 그야말로 수라.
모용진은 공포를 느꼈으나 몸은 이미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황제의 검을 보며 모용진은 검을 휘둘렀다.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는 최선을 다해서 발악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