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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의무방어전-137화 (137/235)

그 높이가 아득하여 세간에는 하늘에 닿았다고 전해지는 천륜산.

그곳 정상에서 두 명의 노인이 느긋하게 바둑을 두고 있었다.

"자, 이러면 어쩔 거냐? 응? 강가 놈아."

족제비 수염을 기른 노인이 실실 웃으며 말하자 성질이 사나워 보이는 긴수염의 노인은 곰방대를 퍽퍽 피우고는 한숨을 쉬었다.

"제기랄. 신선이란 놈이 말투 한 번 걸쭉한 것이 죽탱이를 후리고 싶네."

정작 자신의 입이 더 험한 건 신경 쓰지 않는 긴수염의 노인은 신경질적으로 판을 노려보고는 부탁했다.

"설육 공. 자비를 베풀지 않겠소?"

"강가야. 이 상놈아. 가여운 백성도 아니고 네놈을 뭐가 예뻐서 자비를 베풀어 주겠느냐."

"후... 내 이름 그딴 식으로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이 빌어먹을 늙은이 같으니. 되었다. 쪼잔한 늙은이 같으니."

노인의 성은 강이요. 이름은 상이니. 상놈이라면 놈이다만.

저 빌어먹을 늙은이가 긁으니 가뜩이나 바둑의 판세도 불리한 강상은 성질이 버티질 못했다.

"그러고 보니 진위 그 늙은이가 요새 통 안 보이는구만. 아직도 그 사당을 싸고 도나?"

설육이 느긋하게 차를 마시면서 묻자 강상은 아직도 바둑판에 눈을 떼지 못한 채 대답했다.

"모르겠는데. 뒤졌나 보지."

"농담도... 그 늙은이 힘은 진짜거늘. 그 늙은이를 죽일 존재가 있겠느냐. 칠대성이 살아 돌아와도 무리일 걸?"

그 말을 설육은 흘러들었으나 강상은 진지했다.

"이 대륙에 있긴 하지."

"아, 그 제자 말이냐? 이름이..."

설육이 예전에 저 강가 놈이 변덕으로 가르쳤던 제자를 떠올리며 말하자 강상은 성질을 부렸다.

"곧 만나게 될 터이니 그때 듣고 얼른 다음 수나 두라고. 이 망할 늙은이야."

"거... 바둑도 못 두는 놈이 성질만 있네. 알았다. 알았어. 자!"

그 모습을 보고 투덜거린 설육은 바둑돌을 들었다.

그리고는 스윽 바둑판을 보더니 망설임 없이 다음 수를 놓았고, 강상의 얼굴이 더욱 심각해졌다.

'망할 늙은이가... 바둑은 잘 두네.'

도선(度仙) 설육.

대륙에선 그 유명한 설육 공으로 경전에도 자주 거론되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유학자였다. 우화등선한 시기로 따지면 천선(天仙) 진위 다음일 정도의 고참이기도 했다.

그런 그와의 바둑이다 보니 아무리 강상이라 해도 도무지 이길 재간이 없었다.

"젠장. 졌다. 졌어."

"끌끌. 그러면 얼른 신주(神酒)나 넘기거라."

설육이 손을 내밀며 만족스럽게 웃자 강상은 구겨진 얼굴로 가볍게 곰방대로 바둑판을 툭 쳤다.

그러자 바둑판 위에 호리병이 나타났고, 설육은 그것을 내민 손으로 챙겼다.

"클클. 이 맛에 내기 바둑을 두는 거지."

바로 호리병의 신주를 마시면서 설육이 기분 좋게 웃었다. 이 후배 녀석에게 술을 뜯어내는 건 늘 즐거운 일이었으니까.

"강가야. 그러고 보니 조만간 내려가 본다지 않았느냐?"

"...한 판만 더 하고."

강상의 말에 설육은 빙그레 웃으면서 바둑판을 정리했다.

그는 신주를 또 뜯어낼 수 있을 거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잘하고 있나 보구나.'

정리되는 바둑판을 보면서 강상은 자기 제자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대륙에서 들리는 곡소리가 줄어들었다.

그것만으로도... 강상은 자신이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자의 성공은 스승의 성공이었으니 말이다.

--

"짐이 너희에게 악감정이 있어서 이러는 것은 아니다."

검에 베여서 쓰러진 모용진을 던져 버린 황제는 기검을 간신히 베어낸 할바르의 목을 잡고는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할바르는 그 손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황제의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타악.

그때 황제를 노리고 날아든 암기를 황제는 가볍게 손가락으로 잡아냈다.

그러고는 비천에게 돌려주었다.

"암기는 정확하기만 해선 안 되는 거지. 너무 정직하구나."

황제가 보여 준 것은 그야말로 기예.

얼핏 보면 하나로 보이는 암기는 자세히 보면 다른 하나가 그림자 속에 숨어 있어서 앞에 것을 쳐 내면 바로 그 뒤에서 날아오는 암기에 맞게 되어 있었다.

불합리했다.

하지만 그런 불합리함이... 어찌 보면 황제와 잘 어울렸다.

비천이 암기를 맞고 쓰러지자 한울이 창을 던졌다.

푸욱!

"짐의 손에 누가 들려 있는지 잊었나?"

황제는 그 창을 할바르로 막고는 창에 맞아 피를 토하는 할바르를 그대로 땅에 박아버렸다.

콰아앙!

"...짐이 딱히 너희에게 악감정이 있어서 이리하는 것이 아니다."

할바르에게 박힌 창을 뽑아낸 황제는 그대로 그 창을 한울에게 던졌다.

"!"

엄청난 속도로 날아간 창이 그대로 한울의 팔을 찢어발기면서 그를 전투 불능에 빠트렸다.

"맞을 거면 짐한테 맞아야지. 다른 놈들에게 맞는 꼴은 못 보니까. 나름의 애정을 담은 훈육이라 생각하거라."

꽈악.

"그 애정... 다시 받아볼까요?"

'이런...'

그때 어느새 다시 정신을 차린 베베라가 뒤에서 황제의 허리를 잡았다.

그걸 본 황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절대 허리를 잡혀선 안 될 사람에게... 허리를 내주었으니까.

쿠웅!

그대로 허리를 잡고 황제를 들어 올린 베베라가 저먼 수플렉스를 시전하자 황제가 그대로 땅에 머리부터 박혔다.

빠각!

거기서 그치지 않은 베베라는 자세를 잡고는 그대로 있는 힘껏 황제를 걷어찼다.

그대로 땅에 박혔던 머리가 잔디를 파내면서 황제는 저 멀리 날아갔다.

"...그대의 애정은 잘 받았구나. 짐을 너무 사랑하는 듯하여. 참으로 괴롭구나."

황제는 울리는 머리를 한 손으로 잡으면서 뒤에서 날아온 모용진의 검을 반대 손으로 잡았다.

우뚝!

'이게 잡힌다고...?'

모용진은 자기 검이 잡혔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뇌기를 흘려보냈다.

"그건 이제 그만하자."

타악.

바로 검을 놓은 황제의 발차기가 모용진의 턱을 훌륭하게 올려 쳤다.

부웅!

그대로 공중에 뜬 모용진을 본 황제는 손에 뇌기를 모았다.

파직

'뇌기라고?'

그걸 본 모용진의 눈이 커졌다.

황제가 뇌기를 다룬다고?

하긴... 천기가 뇌기이니 이미 사직 때 천기를 정제해 본적도 있는 황제가 뇌기를 다룬다고 해서 놀라운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모용진에겐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황제가 전투에서 뇌기를 자주 쓰진 않았으니 그것을 전투에 사용하는 게 익숙하진 않을 거다 .

그러니까 뇌기로는 자신이 질리가 없다.

모용진은 그리 생각하며 자기 손에 뇌기를 모았다.

파직!

그의 검은 뇌기와 황제의 황금색 뇌기가 주변을 지배하며 힘을 모으고 있었다.

'지금!'

그리고 그 순간 모용진이 뇌창을 날렸고, 황제 역시 뇌창을 날렸다.

크기만 놓고 보면 모용진의 검은 뇌창보다 황제의 황금 뇌창이 훨씬 작았다.

하지만... 둘의 충돌 결과는 크기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드드드드!

'이건 무슨...!'

자신이 뇌창이 뚫리기 시작하는 걸 본 모용진은 경악한 얼굴로 화안금정을 통해 황제의 뇌창을 보았다.

그러고는 할 말을 잃어 버렸다.

'저기에 수기를 섞었다고?'

황제의 뇌창이 가진 비밀.

뇌기에 수기를 섞어 수기의 응축되는 성질을 가미했다.

그야말로 압축된 뇌기의 창.

어떤 의미에선 밀리는 게 당연했다.

파지지직!

결국 뇌창에 맞은 모용진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져선 땅에 추락했다.

황제는 그 순간 돌진해온 레오니의 랜스를 가볍게 피하고는 안으로 파고들어 복부에 주먹을 박았다.

우드득!

"끅!"

레오니가 쓰러졌고, 그 순간 베베라의 태클이 들어왔다.

기우뚱!

레오니를 상대하느라 태클을 저지하지 못한 황제의 몸이 그대로 무너졌고, 베베라는 마운트 포지션을 잡고는 그대로 주먹을 내리쳤다.

콰앙! 콰앙! 콰앙!

황제는 최대한 가드를 올렸지만 그녀의 주먹이 뼈를 울렸다.

이대로 가다간 진다.

그런 생각을 한 황제가 조금 과하게 기를 써서라도 신체를 강화한 뒤에 허리를 움직여서 그녀를 튕겨 냈다.

'무슨 허리 힘이...'

튕겨 나간 베베라가 눈을 크게 떴으나 황제는 덤덤하게 말했다.

"요새 허리를 좀 많이 썼거든."

서걱!

"조, 조금 이상하게 들리는데요! 그 말."

여화가 황제의 그 말에 이상한 상상이라도 했는지 붉어진 얼굴로 검을 휘두르며 외쳤으나 황제는 간발의 차이로 그 검을 피해냈다.

고작 옷자락만 잘라 내는 게 고작이었던 여화의 검을 보면서 황제는 자세를 잡았다.

'이건...'

그 모습은 그야말로 철옹성.

도저히 틈을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방어 태세였다.

어느새 남은 건 베베라와 여화 뿐.

디나카는 진작에 병사들과 휩쓸려서 의원에게 치료받고 있었고, 료라이와 류화는 황제의 기검을 베어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여화는 사실상 훈련의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걸 알았다.

"...제가 틈을 만들겠습니다."

그때 베베라가 자세를 낮추면서 말했다.

'또 태클인가...'

황제는 그 모습에 지긋지긋하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베베라가 태클하면 필연적으로 황제는 그 태클에 대응할 수밖에 없다.

황제가 휘두르는 검을... 그녀는 한 번 정도는 받아 내고 태클을 성공 시킬 신체 능력이 있었으니까.

'검으로 대응은 무리.'

그렇기에 검을 이용해 대응하는 건 깔끔하게 포기했다.

괜히 검으로 대응하려고 했다간 오히려 신체 밸런스가 무너져서 태클을 심하게 허용할 여지가 있었으니까.

즉, 베베라의 존재 때문에 황제의 가장 큰 강점이 수비 검술은 봉인 당했다.

그런데도 황제는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황제의 몸에 상처가 없는 건 아니었다.

등에는 여화가 낸 검상이 남아 있었고, 두개골엔 금이 갔다.

머리는 어지러운 것이 뇌에 충격이 심하게 간듯했다.

그런데도 황제는 당당하게 서서 그녀들의 마지막 공격을 대비했다.

'엇박?'

황제는 평상시처럼 빠르게 태클하던 베베라가 갑자기 속도를 늦추자 당황했고, 베베라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시 급가속하며 황제의 허리를 잡았다.

"두 번은 안 당한다."

그러나 황제는 이번엔 그냥 당해주지 않았다.

파지지지직!

황제의 몸에서 흘러나온 뇌기가 그대로 베베라를 덮쳤으니까.

"끄윽..."

베베라는 엄청난 고통에 머리가 어지러운 걸 느끼면서도 황제의 허리를 놓아주지 않았다.

"감사해요."

그걸 본 여화가 어느새 접근해서는 황제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당연히... 베어버릴 각오를 하고 휘두른 검이었다.

'힘이 제대로 안 들어간다.'

허리를 잡혔으니 제대로 힘이 들어갈 리가 없다.

그렇기에 황제는 막는 건 포기하고 오히려 몸을 최대한 기로 단단하게 만들었다.

쨍그랑!

여화의 검강이 실린 검이... 황제의 몸에 충돌해 깨졌다.

그걸 황망하게 보고 있는 여화를 향해 뇌창을 날린 황제는 여화가 뇌창에 맞고 검게 타서 쓰러지자 간신히 의식을 부여 잡은 베베라를 떼어내고는 발차기로 관자놀이를 정확히 찼다.

빠각!

베베라마저도 쓰러지자 어느새 이곳에 서 있는 사람은 황제 뿐이었다.

"...나쁘지 않구나."

제법 위험했다.

황제는 그리 평가하며 이번 통합 훈련을 만족스럽게 여겼다.

그들의 성장이... 황제를 흡족하게 했으니까.

--

'이게... 인간이야 전술 병기야?'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라오허는 할 말을 잃어 버렸다.

형님이 강하다는 건 라오허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을 황제로 만들겠다는 헛된 꿈을 품던 어머니가 형의 손에 목이 잘릴 때, 저항할 마음조차 들지 않은 것은...

그만큼 그에게 형님은 공포의 대상이었기 때문이었다.

라오허는 그의 강함을 잘 알았다.

아니... 잘 알고 있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바보 같이... 형님의 전력은 보지도 못했는데.

'금위대가... 상대조차 되지 않다니.'

그 무패의 금위대가... 황제 한 명에게 이렇게 처참한 피해를 입다니...

두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었으니까.

그때 황제가 어느새 라오허의 옆에 다가와서는 말했다.

"바로 평가를 내리도록 하마."

의원들의 빠른 치료 덕에 어느새 정신을 차린 금위대 전원과 비를 보면서 황제는 라오허가 비켜준 자리에 앉으면서 평가를 시작했다.

"우선 비들의 평가부터. 1위는 베베라. 단련을 잘하였더구나."

"...감사합니다."

황제가 비들 중에서 가장 성가시게 생각했던 것은 다름 아닌 베베라였다.

그 말도 안 되는 신체 능력과 태클을 저지 못 하는 순간 들어오는 공격은 너무나도 위협적이었으니까.

"2위는 여화. 아직 부족하나 그래도 많이 발전했구나."

"..."

여화는 분한 얼굴로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황제는 그 분해하는 모습조차 마음에 들었다.

"3위는 레오니. 그대의 부족한 점은 그대 스스로가 잘 알겠지."

"네."

레오니는 덤덤하게 대답하고는 속으로는 다음을 기약하고 있었다. 그 투지를 읽은 황제는 만족스럽게 레오니를 봐주었다.

이런 향상심은 그녀들을 더욱 강하게 해주리라.

"디나카는... 굳이 평가할 필요도 없구나. 분발하도록 하거라."

"넵!"

디나카가 군기가 바짝 든 얼굴로 대답하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정말 한 명의 전사로 인정받고 싶다면 많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럼 이제 금위대로 넘어가자꾸나. 딱히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이해한다고 믿으마."

이제부터는 황제의 포상을 받을 열 명을 정할 순간이었다.

모든 백부장들이 자기 순위를 의식하면서 긴장한 얼굴로 황제의 말을 기다렸다.

"1위는 모용진."

"하하! 당연하지요."

잔뜩 긴장해 있던 모용진은 자기 이름이 언급되자 겉으로는 태연하게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위가 아니었다면 분명 저 망할 부하들이 얼마나 뭐라고 할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으니까.

"2위는 콰오콴, 3위는 크라이스..."

콰오콴은 자기 순위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고, 크라이스는 약간의 아쉬움은 얼굴에 남아 있었지만, 그래도 만족한 듯한 반응이었다.

꿀꺽!

그리고 그 순간 모든 백부장들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이게 진짜 백부장 중 1위를 가르는 순간이었으니까.

"4위는 대흘."

"말도 안 돼!"

화살 하나 쏘고 끝이었는데! 세르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하자 다른 백부장들도 공감을 표했다.

"나 황보철궁이 저런 활쟁이보다 못하다는 겁니까? 폐하. 이 순위는 설득력이 없습..."

"5위는 황보철.... 설득력이 없느냐? 그러면 그대는 순위권 밖으로..."

"아뇨! 역시 폐하의 안목은 정확하시군요."

황보철궁은 자기 이름이 언급되자 언제 불만이었냐는 듯이 태도를 바꾸었다.

세르나는 이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지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다른 백부장들도 마찬가지였다.

대흘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어도 황보철궁이 자신들보다 위라는 건 이해할 수 없었다.

"이번 훈련에서 같은 편을 위해 몸을 던진 헌신에 고평가를 주었다."

"크으! 역시 폐하는 알아보시는군요!"

사실 순수한 실력 평가만 보면 순위권 밖이겠지만, 그래도 황제는 개인 평가임에도 불구하고 훈련의 취지에 맞게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그의 헌신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6위는 할바르. 7위는 세르나. 8위는 아비. 9위는 비천. 10위는 료라이. 이상이다."

나머지는 그냥 황제가 평가한 순수한 실력으로 점수를 주었다.

모용진이 아직도 부동의 금위대 최강이었고, 할바르는 대흘에게 확실하게 밀렸다.

단 한 번의 화살이었지만, 그 안에 실린 힘은 황제가 봐도 범상치가 않았으니까.

꾸준한 단련으로 힘을 더욱 키운 것이 분명했다.

세르나는 뛰어났으나 여전히 공격엔 아쉬움이 있었고, 아비는 너무 직선적이었다. 비천은 암기를 잘 다루고 기본기가 뛰어났으나 너무 정직했다.

료라이는 기검을 이겨 내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순위에 들지 못한 백부장들보단 뛰어난 실력이었다.

"내일부터는 체력 훈련에 들어갈 테니 오늘은 쉬도록 해라."

"넵!"

금위대가 자연스럽게 해산하자 황제는 그대로 의자에 기댄 채 말했다.

"통합 훈련도 끝났으니 내일 체력 훈련을 끝으로 돌아가야겠구나."

"가면 또 합궁인가? 형님도 피곤하겠다."

그 말에 황제는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구나. 많이 기특해졌어."

그 철없던 라오허가 저런 말도 할 수 있게 되다니... 황제는 감회가 새로웠다.

역시 망나니들도 시간이 지나면 철이 드는구나.

괜히 뿌듯한 마음까지 들 정도였다.

"다음은 스키족이구나. 어떤 여인일지 짐작이 가느냐?"

"음... 모르겠는데."

라오허의 대답에 황제도 고개를 끄덕였다.

"짐 역시 그러하다."

스키족은 황제도 자세히는 모른다.

다만 여기저기를 항해하고 돌아다니는 대규모 함대를 운용한다는 것 정도만 알 뿐.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구나...'

아무튼 스키족까지 하고 나면 남은 합궁 수는 더욱 줄어들 것이다.

황제는 눈을 감았다.

수가 줄어들수록, 그 야만족과의 합궁도 다가오고 있었다.

'정말 내키지 않는군.'

그것이 황제의 마음을 심란하게 했다.

머리로는 해야함을 이해하고 있거늘.

심장이 그 사실을 자꾸만 거부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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