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싸웠구낭?"
타흘라는 자기 경과 진척 보고서를 살펴보는 니사를 보면서 능글맞은 얼굴로 물었다.
니사는 그런 타흘라의 하늘색 눈동자를 보고 있자면 속살이 드러나 보이는 기분이 들고는 했다.
"역시... 타흘라 씨는 못 속이겠네요."
"아니, 아니. 늘 붙어다니던 자매가 따로 다니면 아무리 그래도 이상하잖아?"
능청스럽게 말하면서도 타흘라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한 모습이었다.
"신경 쓰지 않으시네요."
"원래 가족 끼리 싸우고 하는 거잖아? 나도 카무란 녀석이랑 자주 싸워 봐서 뭐... 그리고 난 일단 가족하고 싸우는 게 일상이었거든?"
그 말에 니사는 새삼 눈앞에 있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주술사 가문의 주목 받는 천재에서 주술계에서도 마법계에서도 배척 받는 이단아로.
그녀의 행보는 적을 만들기 참으로 좋았고, 당연히 가족조차도 다르지 않았다.
"화해만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싸워도 괜찮지 않아?"
타흘라는 무심한 어조로 그리 말하고는 그대로 늘어졌다.
"하지만 폐하께선 걱정할지도?"
"...그러네요."
니사는 아침에 있던 일을 떠올리고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페하께선 나름 걱정해서 말을 걸어 주신 걸 텐데... 날이 선 반응을 보이고 말았다.
"사실... 화낼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긴 해요."
자기 물건을 남이 쓰고 있으면 화날 수도 있겠지.
니사는 굳이 따지자면 자신이 잘못한 게 맞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도 그땐 울컥했는걸요."
그래도 막상 생각이 없다는 말까지 들으니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알고 있다.
자신은 언니처럼 대단하지 않다는 걸.
언니처럼 밝지도, 그렇다고 자신감이 넘치지도 않는다.
닮았지만... 전혀 달랐다.
그래서 그런가? 그 별거 아닐 수도 있는 한마디가 가뜩이나 열등감을 가지고 있던 니사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흐음, 그럴 수도 있지."
"...타흘라 씨랑 이야기하고 있다 보면 괜히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예요."
신기하게도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다.
니사는 그런 타흘라의 무심함에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꼈다.
"일단은... 폐하께 사과해야겠죠."
니사는 그리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니한테 사과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폐하는 다르다.
솔직히 폐하한테는 자신이 일방적으로 잘못한 거니까.
그렇기에 니사는 황제에게 사과하기 위해 공방을 나와 황제를 찾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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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오. 둘이 싸운 거 같단 말씀이죠오?"
주방을 찾은 황제는 느긋한 마리프의 반응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참으로 걱정이구나. 짐이... 어찌하면 그들을 도와줄 수 있을까?"
신경 쓸 필요가 없다면 없는 일이다.
리사의 말대로 이건 두 사람의 일일지도 모르지.
허나...
"그래도 짐의 비들이 싸운 셈인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냐."
"후후, 그것도 그러네요오."
마리프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그보다 미르에프 그대는 지금 무얼하고 있느냐?"
황제는 자신을 영상 마도구로 열심히 찍고 있는 미르예프를 보면서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아네스 씨한테 받았어요. 폐하의 영상을 찍어 주면 그 영상에 가치를 판단해서 철곡에 지원금을 주신다고 했거든요. 그러니 좋은 영상으로 부탁 드릴게요."
민족을 위한 노동 중이었나...
황제는 딱히 말릴 생각은 들지 않았기에 그녀를 방치해 두고는 마리프에게 질문했다.
"뭔가 방법이 떠오르는가?"
"으음, 역시 이럴 땐 단 걸 먹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오?"
"단 음식이라... 무엇이 좋을까?"
황제는 그리 고민하더니 구석에서 밤을 먹고 있는 설화에게 물었다.
"여인은 단 것을 좋아하나?"
"그럼요! 단 걸 싫어하는 여자는. 아니 사람은 없어요!"
'...눈앞에 있는데.'
설화의 확신이 담긴 말에 황제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으나 내색은 하지 않았다. 자신이 특이한 걸 수도 있으니.
"그렇단 말이지..."
황제는 그 말에 의자에서 일어나서는 머리카락이 안 들어가게 두건을 둘렀다.
"그럼 한 번 만들어 보자꾸나."
"어머나. 어머나. 재미있겠네요오."
마리프는 반색하면서 앞치마까지 건네주었고, 황제는 묵묵히 그 가죽 앞치마를 둘렀다.
"이건 비싸겠네요."
미르예프는 계속 촬영을 이어 나가면서 중얼거렸고, 설화는 슬쩍 다가와서는 물었다.
"저도 나눠 주실 거죠?"
"다 같이 먹을 수 있을 만큼 만들어 보마. 짐이 그래도 가르쳐 준 대로는 곧 잘하는 편이니."
황제가 손을 씻으면서 말하자 마리프는 싱긋 웃었다.
"하긴 전에도 곧잘 따라 하셨죠오. 그럼 어디 보자... 일단 쿠키를 만들어 볼까요오?"
"쿠키라... 하긴 여럿에게 나눠 주려면 그게 좋겠구나. 한 번 배워 보마."
"전에 했던 것보단 훨씬 쉽답니다아아?"
마리프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고, 황제는 그녀가 말한 대로 우선 반죽을 만들기 시작했다.
고작 이런걸로 둘의 기분이 풀어질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해 줄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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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형은 또 주방이야?"
미친왕은 친왕비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저었다.
"인간을 썰어 버리는 게 질려서 이젠 식재료를 써는 걸로 바뀌었나..."
형님과 요리라니.
정말 어울리지 않지만 그런 점에선 어울리긴 했다.
"잘 어울리지 않습니까? 잠깐 보았는데 요리하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는데요..."
"...그건 그 형 얼굴이 그런 거고, 막말로 그 형은 빗자루 들고 있어도 어울릴 텐데?"
친왕비의 말에 미친왕이 툴툴거렸다.
그걸 본 친왕비가 웃는 얼굴로 물었다.
"혹시 질투하는 건가요?"
"으응? 아닌데? 그런 거 아닌데?"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그를 보면서 친왕비는 웃는 얼굴로 물었다.
저런 어린 아이 같은 모습이 참으로 귀여웠으니까.
"흐응... 그러시군요. 오늘도 그 죄인을 만나러 가시나요?"
"아, 그거 너무 가지고 놀면 질리잖아. 그래서 친구들한테 가지고 놀라고 빌려 줬어."
미친왕의 태연한 말에 친왕비는 조금 그녀가 불쌍하단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녀의 과거를 알고 나니 말릴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당신한테 친구도 있었나요?"
"..."
친왕비는 잔뜩 셈이 난 얼굴로 입을 꾹 다문 미친왕을 보며 웃었다.
저런 점은 참 귀여운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게 형이 좋으면 친왕비 말고 비를 하지 그랬어."
"솔직히 어느 하나 부족한 점이 없긴 하네요. 폐하는 아름다우시며, 강하고, 자상하시고, 현명하시죠."
"..."
미친왕이 그 말에 뚱한 표정을 지었다.
더 화나는 건 그 말을 단 하나도 부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 조금... 한량 같아도 당신을 좋아했던 거랍니다. 폐하가 아닌, 당신을 좋아한 거라고요."
"...그 앞에 그것만 빼면 더 좋은데."
한량은 빼주면 좋은데... 슬픈 건 부정할 수가 없어서 미친왕은 그녀의 무릎을 벤 채 중얼거렸다.
"그래도 늘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워."
미친왕은 처음으로 그녀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녀를 원망했던 적도 있다.
사실 그녀를 원망할 이유 따윈 하나도 없었는데... 하필 그녀와 함께 했던 날에 그 일이 있어서...
괜히 그녀를 원망했다.
폭력도 썼다. 정말 쓰레기 같은 남편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자기 옆에 있어 주었다. 괜찮다고 해주었다.
그녀를 때린 일로 자신을 처벌하던 형 앞에서도... 부디 선처를 해달라고 빌어주었다.
그것이 늘 고맙고 미안했다.
"고마우면 좀 여성 편력을 줄이시지요? 너무 심하면 제가 매력이 없다는 말로 들려서 서운하답니다?"
"...노력할게."
볼을 꼬집으면서 그녀가 말하자 미친왕이 미안한 얼굴로 사과했다.
'나도...'
뭔가 취미나 하나 만들까?
미친왕은 그런 생각하면서 눈을 감았다.
그 형이 요리를 취미로 삼은 거 같고, 카무란은 요새 분재를 모으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라오허는 악사들을 모아서 공연을 하는 게 취미라 하니 미친왕도 슬슬 주색잡기 같은 일은 멀리하고 다른 취미를 만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녀가 원하는 거 같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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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젊은이구만. 그렇지 않나? 강가야."
리사는 자신의 안내를 받고 찻집에 자리를 잡은 족제비 수염의 노인은 감사를 표하고는 앞에 있는 사나운 인상의 노인에게 말했다.
"흥! 도와주라고 누가 부탁이라도 했어!"
그러나 사나운 인상의 노인은 그런 말로 투덜거리고는 리사에게 말했다.
"처자는 대체 무엇을 원하기에 이 늙은이들에게 이런 호의를 베푸는 거요."
리사는 당황했다.
그냥 상단으로 출근하다가 노인들이 거리를 헤매고 있는 걸 보고 도움을 준 것뿐인데 마치 뭔가 의도가 있어서 도와 준 것처럼 물어보니까.
솔직히 조금 기분 나쁘기도 했다.
그래서 리사의 얼굴이 굳어지려고 할 때였다.
"기분 나빴느냐? 말이란 그러한 것이다. 좋게 말하면 안 싸울 일도, 나쁘게 말하면 싸우게 되는 법이지."
노인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 말의 내용에... 리사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는 노인을 보았다.
"...네?"
리사는 마치 오늘 아침에 있던 일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노인에게 위압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때 사나운 인상의 노인.
아니 강상은 무심하게 말했다.
"그대의 친절에 감사하며 이 촌로가 가르침을 조금 주었단다. 스스로가 아까 이 늙은이가 한 말처럼 말을 너무 거칠게 했다 여겨진다면 얼른 사과하거라. 아직 늦지 않았으니."
"...감사합니다."
어쩌면 저 할아버지들은... 신선이 아닐까?
리사는 그런 생각하면서 감사를 표하고는 그 말을 곱씹으면서 출근했다.
"어쩐 일이냐? 네가 가르침을 다 주고 말이다."
그런 강상이 신기한지 설육이 의외라는 듯이 묻자 강상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단순한 변덕이야."
"흐음, 네놈의 변덕이라..."
설육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리면서도 강상에게 물었다.
"그보다 과연... 네놈의 제자는 우리와 같아질 자질이 있구나. 우화등선을 할 거 같으니?"
"그 아이가... 솔직히 확률은 높지 않을 거 같다만."
설육이 제자의 기운을 느꼈는지 감탄하듯 말했으나 강상은 사실 제자가 자신과 같아질 확률은 높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지."
애초에 찾아온 목적이 그러했으니.
강상은 그리 생각하면서 차를 마셨다.
"인세의 차맛도 그리 나쁘지 않구나."
설육이 차를 만족스럽게 마시면서 중얼거리는 걸 들은 강상은 작게 투덜거렸다.
"차가 차맛이지 무슨..."
아무튼 오랜만에 제자를 만나게 될 테니 조금 기대가 되긴 한다.
강상은 그리 생각하면서 말했다.
"돈은 있지? 늙은이?"
"응? 없는데? 돈이 필요하던가?"
빠득.
이 빌어먹을 늙은이가...
철이 없는 설육의 말에 강상은 이를 갈면서도 자신도 돈이 없다는 걸 깨닫고는 어쩔 수 없이 제자를 팔기로 했다.
제자한테 달아두면 어떻게든 될 테니까.
--
"짐에게 사과할 일이 있었던가?"
한참 쿠기가 구워지고 있는 화덕을 보고 있던 황제는 니사의 사과에 고개를 갸웃했다.
"오늘 심하게 말한 거 같아서요."
"흐음... 아무튼 마침 잘 왔구나. 잠시만 기다려보거라."
"?"
니사는 황제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애초에 왜 폐하께서 주방에 계신 건지 니사는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정도면 잘 구워진 거 같은데요오. 꺼내도 될 거 같아요오."
그 말에 황제는 화덕에서 구워지고 있던 쿠키를 꺼냈다.
잘 구워진 쿠키가 맛있는 냄새를 풍기면서 니사를 유혹하고 있었다.
"자, 먹어보거라."
황제는 쿠기 하나를 집어서는 살짝 식히고는 니사의 입에 넣어 주었다.
우물. 우물.
"직접... 만드신 건가요?"
그 쿠키를 단숨에 먹어 치운 니사가 놀란 듯이 묻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단 것을 먹으면 좀 기분이 풀린다고 하기에... 한번 해보았다."
"아..."
황제의 말에 니사는 깊은 고마움을 느끼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은 성질이나 냈는데... 폐하께서는 자신을 생각해서 친히 요리까지 해주셨으니까.
그 황은에 그녀는 도저히 얼굴조차 들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니 화해할 수는 없겠느냐? 둘이 싸우니 짐의 마음도 참으로 좋지 않구나."
"...그건 아직 힘들 거 같아요. 죄송합니다."
황제의 말은 정말 고마웠지만... 니사는 아직 화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하냐."
"네, 쿠키는 정말 감사했어요."
니사가 그 말을 끝으로 사라지자 황제는 멍하니 쿠키를 들고는 가볍게 씹었다.
으득.
"...역시 고작 단 걸로는 안 되나보구나."
황제는 아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런 단 음식 따위로 무엇이 바뀐다고... 황제는 심란한 기분으로 일단 쿠키를 챙겨서 집무실로 돌아갔다.
둘의 다툼이 신경 쓰이긴 했으나 일단은 정무를 봐야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