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다. 좋은 술이네."
진위가 따라준 술을 단숨에 털어 마신 키야는 감탄했다.
뒷맛이 깔끔한 것이 굉장히 좋은 술 같았다.
"럼주 같은 싸구려만 마시다가 이런걸 마시니까 입이 호강하는 기분인 걸? 응? 이거 화주잖아. 꽤 귀한 술을 뜯었는데?"
신난 얼굴로 중얼거리는 키야의 모습에 진위는 웃었다.
"거참... 잘생겼네."
그 얼굴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면서 키야가 실실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진위는 그녀를 보며 물었다.
"그래서 그 가출한 이유는?"
"으음... 우리 사이에 아직 그 정도를 말할 신용이..."
"쫓겨내야 하나..."
"에, 에이! 말해 줄게. 그러니까 쫓아내진 말아줘."
진위의 작은 중얼거림에 다급하게 진위의 소매를 잡으며 애원한 그녀는 잠시 헛기침하더니 말했다.
"사실 나 꽤 귀한 가문 출신이거든. 스키족이라고 알아? 그곳에서 알아주는 선장의 딸이거든."
"다브르 운 키르크손."
"어? 어떻게 알아?"
진위의 가벼운 말에 그녀가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뜨자 진위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중간이 성이고 뒤엔 아버지의 이름을 붙인 게 스키족이 아니던가? 그런 점은 루루족과 비슷한 거로 아는데."
루루족이 자신의 아버지 이름을 성으로 쓴다면 스키족은 가문의 성은 중간에 있고, 아버지의 이름을 그 뒤에 붙이는 작명법을 사용했다.
즉 그녀의 이름을 보면 그녀의 아버지가 다브르라는 걸 알 수 있다는 의미였다.
"아하하, 맞다. 이름 밝혔었지."
그렇기에 그녀는 민망한 듯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 말이야. 이번에 스키족에서 황제의 상대를 보내야 하거든? 황제는 알지? 그 성질 더러운 폭군 말이야."
"...잘 알지."
그 말을 들은 진위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뭔가 웃음을 눌러 참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녀는 그런 생각하면서도 불평을 늘어놓았다.
"솔직히 무서운 사람이잖아. 사람도 막 죽이고, 분명 못생겼을 거야. 그러니까 자신에 대한 불만을 그렇게 푸는 거지."
"그럴 수도 있겠지."
그녀의 험담에 진위는 덤덤하게 긍정해주고는 술을 따라주었다.
"그래서 도망친 건가?"
"그렇지. 그런 놈한테 잡혀서 내 꿈을 포기할 수는 없잖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환하게 웃었다.
그 미소는 참으로 밝고 어린 애 같은 순수함이 느껴졌다.
"내 꿈은 말이야...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지도를 만드는 거야. 더 완벽한 전국 지도. 멋지지 않아?"
"좋은 꿈이구나."
그 말을 들은 진위는 덤덤하게 말했고, 그녀는 반색을 하며 말했다.
"그렇지? 그런데 가문에서는 반대가 영 심해서 말이야. 게다가 합궁해서 비가 되면 그런 건 꿈도 못 꾸니까..."
키야는 술을 단숨에 털어 마시고는 말했다.
꿈을 위해서라도 그런 폭군에게 팔려갈 수는 없었다.
새장의 새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 감정을... 진위는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데 그 친구한테 나 좀 숨겨달라고 부탁해 줄 수는 없어?"
그녀가 조금 부끄러워하면서 묻자 진위는 가볍게 턱을 매만졌다.
"흠... 방은 많을 테니 가능은 할 테지. 그래 당분간 여기서 머물거라."
진위는 그 친구란 사람의 허락도 없이 그녀가 이곳에 몸을 숨기는 걸 허락해주었고, 그녀는 놀란 눈으로 그런 진위를 보았다.
"그 친구한테는 안 물어봐도 괜찮아?"
"내 의견이 그 친구의 의견이나 다름이 없지."
뭐야 그 자신감은...
키야는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어쩐지 정말 이 남자의 말대로 될 거 같단 예감이 들었다.
"친구한테는 말해둘 테니 당분간은 이 방에 머물거라."
자리에서 일어난 진위가 뒤에 있는 방을 가리키며 말하자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
"정말? 그보다 어디가?"
"슬슬, 일하러 갈 시간이라서."
진위가 닭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말하자 그녀는 머뭇거렸다.
"그... 또 만날 수 있을까?"
그녀는 뭔가 아쉬웠다.
이대로 헤어지기엔... 뭔가 아쉬운 기분이 들었으니까.
"그래, 내일 다시 만나자꾸나."
그 대답에 그녀는 환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일 봐!"
해맑게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 그녀를 보면서 진위는 피식 웃었다.
그렇게 그녀는 가출 중에 머물 수 있는 곳과 조금은 비밀이 많은 친구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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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족에겐 이미 찾았으니 찾는 시늉만 하고 있으라고 전하거라."
진위.
아니 황제는 그대로 저택을 나와서 조정으로 향하면서 자연스럽게 자기 뒤를 따르고 있는 집주인 친구. 모용진에게 명령했다.
"그리고 저 여자는 당분간 저기에 머물도록 내버려 두고."
"큽! 폐하께서 못생기셨..."
어느새 나타난 모용진은 방금 대화를 전부 들었는지 웃음을 눌러 참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그리 전하겠습니다. 그보다 그녀를 어쩔 셈이십니까?"
모용진의 질문에 황제는 황궁에 들어서며 대답했다.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주어야지. 짐은 어디까지나 강요할 생각은 없단다."
"그러면 스키족은 어찌 되는 겁니까?"
그 대답에 모용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자 황제는 덤덤하게 말했다.
마치... 그가 걱정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듯한 대답이었다.
"너무 걱정 말거라. 그들에게 그녀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물지는 않을 것이니."
그건 다행이다.
모용진은 그런 생각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 민족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걸 보는 것은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었으니까.
"술은 창고에서 적당히 가져가고."
황제의 말에 모용진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진짜요? 그럼 비싼 걸로 가져갑니다? 천년주라던가?"
"마음대로 하거라. 두어봐야 미친왕이 마실 것 아니냐."
어차피 술을 두어봐야 심심한 미친왕이 마실 뿐이니 어디다가 쓰든 상관이 없었다.
그렇기에 황제가 덤덤한 얼굴로 대답하자 모용진은 어느 술을 가져갈 지 행복한 고민하면서 황제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래서... 어땠습니까? 그녀는?"
잠시 후.
모용진이 자신의 집에 있을 그녀를 생각하며 묻자 황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만나 본 결과 그녀에 대한 황제의 평가는...
"당돌한 것이 재미는 있더구나."
솔직히 재미는 있었다.
그래서 다시 만나기로 한 것이고.
황제는 솔직히 그녀를 보고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었고...
"악질이십니다. 언제 밝히실 생각입니까?"
그런 황제의 말에 모용진이 측은한 얼굴로 묻자 황제는 가볍게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음... 언제 알아차리는지 보고 싶은 건 조금 너무한 생각일까?"
그런 황제의 대답에 모용진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정말이지... 폐하의 정체를 모르고 실언을 하게 될 그녀가 불쌍하게 여겨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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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왔네?"
그리고 그날 밤.
방 안에 얌전히 누워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그녀는 정말 다시 자신을 찾아온 진위를 보고는 반색하면서 말을 걸었다.
"덕분에 살았어. 당분간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면 들키지 않을 거 같거든."
그녀는 진위에게 순수하게 감사를 표했다.
그 잘난 추격자들도 한족의 명문가인 모용가를 뒤져볼 생각은 못 하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안전해진 그녀는 이 자리를 마련해준 진위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하냐."
덤덤하게 그 말에 대답한 진위는 이번에도 술을 들고 그녀에게 흔들었다.
"좋아하는 거 같기에 이번엔 직접 술을 하나 가져 왔는데 마실 테냐?"
"뭔데? 무슨 술이야? 좋아 보이는데."
어제 화주도 좋았는데 오늘은 어떤 술일까?
어제 술보다 좋은 술을 당연하다는 듯이 구할 수 있다고 말하던 그였기에 키야는 그가 가져온 술이 기대가 되었다.
"독왕주(毒王酒)라던가?"
"...설마. 이거 그거야? 그 독룡의 피를 증류해서 만들었다는 그 술?"
그 대답에 키야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이름만 들어 봤지 그녀도 실물은 처음 봤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이 처음 볼 그야말로 세기의 명주였다.
애주가라면 단 한 모금을 마시기 위해서라면 전 재산을 바쳐도 아깝지 않다 여길 그런 명주 말이다.
그런 술을 가져온 그의 정체가 궁금해질 정도였다.
"하나 정도야 마셔도 괜찮겠지. 어차피 술은 마시라고 있는 게 아니더냐."
"하나 정도? 이게 더 있다고? 진짜야?"
진위의 태연한 말에 키야는 그야말로 겁에 질리고 말았다.
아니 정체가 대체 뭐지? 황제도 아니고 저런 술을 가져올 수는 있을까?
그러나 그런 의문도 잠시.
똑.
진위가 술병을 열자 풍겨 오는 술 냄새에 그런 생각도 사라져 버렸다.
이런 향이라니... 사람을 중독시킬 거 같은 좋은 향기였다.
어느새 키야의 눈이 기대로 반짝이고 있었다.
"술은 좋아하진 않지만... 귀한 술이라고 하니 마셔는 보마."
"그, 그게 나도 줄 거지? 우리 친구잖아."
"..."
언제부터 친구였다는 거지? 진위는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잔을 두 개 놓고 그대로 술을 따랐다.
술을 따르자 더욱 강렬해진 향은 마치 맹독처럼 강렬하게 이곳을 지배했다.
누군가는 지독한 술 냄새라고 느낄 수 있으나 애주가들에겐 그야말로 향긋한 술향이었다.
그리고 키야는 굳이 따지자면 후자에 속하는 애주가였다.
그녀가 잔을 보면서 침을 꼴깍 삼킬 때 진위는 덤덤하게 잔을 들어선 그녀에게 내밀었다.
"친구라면서? 건배도 안 하나?"
"아, 해, 해야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술 한 방울이라도 떨어트릴라 걱정하며 잔을 살짝 부딪치는 그녀를 보면서 웃음을 눌러 참은 진위는 그대로 술을 느긋하게 마시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 모습을 힐끔 보고는 조심스럽게 한 모금을 마셨다.
'윽!'
엄청 독한 술이다.
정신이 날아가 버릴 거 같은 얼얼함이 입안에 감돌았다.
'엄청나...'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마신 술 중에선 그 어떤 술보다도 맛이 있었다.
그래... 마치 사람을 중독시키는 독같은 술이었다.
"맛은 괜찮구나. 술이 맛있다고 느낀 적은 없었는데."
진위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가볍게 술을 털어 마시자 그녀는 경악했다.
저 귀한 걸 저렇게 무심하게 마시다니...
그녀는 조금씩 술을 아껴 마시면서도 진위에게 물었다.
"이런걸 어디서 구한 거야?"
황제 정도 아니면 구하지도 못할 거란 말이 도는 명주를 대체 어디서... 이 술은 그 유명한 사냥꾼 바른 키무르베리가 만들어서 독무제한테 바쳤다고 전해지는 명주 중에 명주.
황실에서 몇 번 상품으로 내놓은 적이 있다고는 하나 그런데도 그 가치를 도저히 헤아릴 수조차 없는 명주였다.
"알고 싶나?"
"으음... 아니."
그러나 키야는 막상 말해 줄 것처럼 보이는 진위를 보고는 굳이 알고 싶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그녀의 감이 듣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아무튼 친구 잘 둬서 이런 것도 마셔보네. 고마워."
순수하게 감사를 표하면서 미소를 짓는 그녀를 보면서... 진위는 피식 웃었다.
'친구라...'
생각해 보면 그가 친구를 얻을 때는 단 두 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자기 정체를 숨겼을 때뿐이었다.
그렇기에 진위는 궁금해졌다.
이 여자는 어떻게 될까?
자기 정체를 알고도... 그녀는 자신을 친구라고 불러줄까?
모르겠다.
그렇기에... 진위는 아직은 이 비밀이 많은 친구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
"지금은 일단 마시자꾸나."
진위는 그녀의 잔을 채워주면서 웃었다.
오늘은 모처럼 친구가 생긴 날이니 즐기지 않을 이유가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