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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의무방어전-147화 (147/235)

"코오피란 것도 그리 나쁘진 않구나."

푹신한 의자에 편히 앉은 설육이 황제가 직접 탄 커피를 마시면서 중얼거렸다.

우선 이 커피란 것은 향이 좋았고, 특히 쓴맛 뒤에 감도는 고소한 향이 설육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니까.

"입에 맞으셨다니 다행이군요. 그래서 두 분께선 어떤 일로 이곳을 찾으셨습니까?"

그런 그들 앞에 앉으면서 황제가 묻자 강상이 대답했다.

"너에게서 우리와 같아질 자질이 보여서 찾아왔단다."

"...우화등선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황제의 질문에 강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 황제에겐 신선이 될 자질이 차고도 넘쳤다.

"그래, 너에겐 자질이 충분한 듯 하구나. 한 분야에서 경지를 이루면 우화등선의 기회가 주어지지."

물론 강하다고 모두가 우화등선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당장 옆에 있는 설육은 검 한 번 들어 본 적 없는 사람이니까.

그러나 눈앞에 있는 황제는 이미 그 자격이 충분해 보였다.

"거절하겠습니다."

"...그럴 것 같았다."

단호한 거절에 강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자가 우화등선할 것처럼 여겨지진 않았으니까.

"하긴 그대에겐 신선보단 신이 더 가까운 듯 하구나."

설육의 한마디에 황제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비슷한 말을 최근에 들은 적이 있었으니까.

"천무제와 비슷한 말을 하는군요. 그 사람은 저한테 신이 되라고 하더니 말입니다."

"호오... 천선을 만나 본게냐? 마침 그 녀석 소식이 없던데 뭘 하고 있더냐."

설육이 그 말에 깊은 관심을 보이자 황제는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는 대답했다.

확실히 만났다.

그리고 소식이 없는 것도 어떤 의미에선 당연했다.

"죽었습니다. 제 손에."

"...!"

강상은 그 말에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떴고, 설육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죽었다고?

신선 중에서도 최강이자 최고 연장자이던 그가?

놀라운 일이었으니까.

그런 설육과 달리 강상은 생각보다 놀라진 않았는지 어느새 표정을 고치고는 덤덤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을 뿐이었다.

"허허, 과연... 신에 가까운 게 아니라 이미 신과 다름이 없는 경지였구나."

설육은 감탄하며 중얼거렸고 황제는 그 반응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화내지 않으십니까?"

황제는 그가 화를 내지 않을까 우려되었다.

말하는 것을 보면 꽤 친밀한 사이 같았으니까. 허나 설육은 화를 내지 않았다.

"그대야말로 슬프지 않느냐? 먼 선조를 죽인 것인데."

오히려 설육은 황제를 걱정해주었다.

걱정이 가득한 그의 말에 황제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이미 혈육도 죽인 사람이 선조를 죽였다고 해서 어떤 감흥이 있겠습니까."

그 대답에 설육의 표정이 변했다.

더욱... 그런 황제를 안쓰럽게 보는 듯 했다.

"아해야. 이미 다친 사람이라고 다른 상처가 아프지 않겠느냐."

설육은 황제를 보면서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다.

그가 볼 때 그건 감흥이 없는 게 아니라.

아무런 감흥이 없다고 스스로를 설득할 정도로 아파하고 있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설령 아프지 않다 하여도 그건 아프지 않은 게 아니란다. 단지... 무뎌진 것이겠지. 그건 오히려 더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지."

설육은 이 황제가 참으로 측은하였다.

얼마나 손에 많은 피를 묻혀왔기에... 그것은 감흥이 없다고 말하는 걸까?

얼마나 자신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기에... 상처 받지 않는다고 말하는 걸까?

설육은 이 황제가 제국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희생했는지 그 대답을 듣고 알 수 있었기에 이 친구의 제자가 참으로 측은하였다.

강상은 그런 황제를 보면서 말했다.

"내 가르침은 기억하고 있느냐?"

"네, 전부 기억하고 있습니다."

황제의 공손한 대답에 강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몇 년 사이에 가르침을 잊을 제자는 아니었으니까.

"알고 있느냐? 네놈의 검엔 늘 독기가 가득했지."

강상은 예전에 봤던 황제를 떠올렸다.

그때의 황제가 휘두르는 검엔... 점점 독기가 가득해서... 보기만 해도 위태롭게 만드는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부드러워졌구나. 무엇이 너를 바꾼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쁘지 않은 변화다."

검은 부드러웠고, 독기 하나 없이 아름다웠다.

그 변화가, 강상은 참으로 기꺼웠다.

"...전 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황제는 그런 강상의 말에 진지한 얼굴로 질문했다.

그는 확신을 얻고 싶었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존경하는 스승에게... 자신이 옳은 길을 걷고 있는지.

이 변화가 정녕 올바른 것인지.

황제는 확답을 얻고 싶었다.

"제가 즉위했을 땐... 잔혹해야 했습니다. 스승님이 그리 말하셨듯. 조금만 자비로웠습니다."

"..."

강상은 그 말을 묵묵히 들었다.

알고 있다.

어느 누가 황제에 오르든 피를 흘리는 건 필연이었다.

그때 제국의 상황이 그러했다.

그 어떤 뛰어난자도 그 상황에서 제국을 지키려면 피를 흘려야 하는 것은 분명했다.

"허나 지금은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전 잔혹해야 합니까?"

황제는 떨리는 손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예전엔 그저 광기에 몸을 맡기면 되었다.

거슬리는 자는 죽이고, 법도를 어긴 자는 죽이고, 제국에 방해가 되는 이는 죽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무르게 되어 버렸다.

황제는 이런 자신이... 지금 제국에 정말 적합한 건지 늘 의문이 들었다.

"아니면... 이대로 조금은 너그러워져도 되는 겁니까?"

주변에 사람이 늘어나면서,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지면서...

황제는 점점 이런 상황이 마음에 들었다.

아무도 죽이지 않아도 되고, 평화로운. 이 나날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제야 알았다.

황제는 자신을 무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천성은 생각보다 누군가를 죽이는 걸 좋아하진 않았다는 것을.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깨닫게 되었다.

"이 불민한 제자에게... 가르침을 주십쇼."

그렇기에 이 미련한 제자는 아직도 스승에게 가르침을 원했다.

이 길이 정녕 옳은지 적어도 스승님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괜찮지 않겠느냐."

그 말에 강상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이젠 피를 흘리지 않아도 모두가 네놈을 두려워하고 있다. 조금은 자비로워져도, 이 제국 전체를 지킬 힘이 너에겐 있지. 그런데 대체 무엇을 망설이는 거냐."

강상은 왜 황제가 망설이는지 그 이유를 이미 알고 있었다.

"너의 손에 묻은 피를... 이젠 조금은 닦아내어도 될 것이다. 그런다고 네가 그 희생을 외면하는 게 아니니. 그러니까..."

강상은 황제를 향해 말했다.

"이젠 널 용서해주거라."

"..."

황제는 침묵했다.

그 침묵을 그저 지켜보면서 강상은 조용히 시간을 주었다.

이 참으로 미련한 제자가... 자신을 이젠 용서해 줄 수 있도록 말이다.

--

모든 게 변명. 변명이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그들의 죽음은 자업자득이라고.

미련하게.

사실은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었는데...

눈을 감으면 죽은 이들의 손이 온몸을 조여오는 게 느껴진다.

그렇기에 그들을 더욱 혐오하고, 증오했다.

그래야... 그들을 죽인 자신을 외면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그저 현실을 외면하고 무시하고, 지나치는 행동에 불과했다.

그들이 자신을 죽이려 했던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결국 죽은 건 그들이고 살아 있는 건 자신이었다.

이 손에 피를 묻힌 건... 그들이 아닌 어리석고 잔혹하여, 미쳐버린 자신이었다.

라오허가 자신을 두려워하는 눈으로 볼 때마다.

적어도 그 아이의 목숨은 살려달라고 빌며 목이 잘리던 그의 어머니가 떠오른다.

그 목을 자른 게 누구였지.

잔인하게.

그것도 라오허의 앞에서 그 어미를 죽인 게 누구였지?

자신이었다.

라오허가 자신을 그토록 두려워하는 건 당연했다.

리아 누님을 철저하게 망가트린 것도 자신.

살려달라고 빌던 타마드를 죽인 것도 자신.

숙부와 형제들을 죽인 것도 자신이었다.

무문제의 비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고향으로 돌아간 자들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자신이 죽였다.

알고 있다.

이 손에 묻힌 피는 너무나도 더러워.

지옥이 있다면 그곳에서도 가장 극형을 받을 자가 바로 자신이었다.

그런 자신을... 용서해 줄 수 있을까?

스승님은 이제 용서하라고 했지만... 정작 자신은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이 세상 모두가 용서해준다고 해도 자신만은 용서해서는 안 되었다.

야만족들을 죽인 것도 오히려 과한 건 자신이었다.

그때를 기억한다.

황야에선 피가 강이 되어 흐르고, 시체는 산처럼 쌓였다.

고아들은 부모의 시체 앞에서 울음을 터트렸으며, 노인들은 자식의 시체를 끌어안고 오열했다.

그 지옥 같은 광경을 만들어 낸 것은... 자신이었다.

그들이 만든 것보다... 더한 지옥을 만든 죄인이 자신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을 용서하지 못한 것은... 그들을 용서한 순간 그 죄의 무게에 자신이 짓눌릴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자신을 용서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존경하는 스승님의 가르침이라고 해도...

도저히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기에 나는...

황제는 처음으로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

"황제란 자리가 무엇인지 아느냐?"

상념을 끝내고 대답하려던 황제는 갑작스러운 강상의 대답에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황제란..."

"틀렸다."

제대로 대답조차 듣지 않고 강상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 모습에 황제는 뭐라 말하기보단 그저 경청하는 것을 택했다.

"황제란 만인 위에 군림하는 자리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아느냐?"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황제는 그런 당연한 말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덤덤하게 대답했고, 강상은 그런 황제를 보며 가르침을 주었다.

"네 아래 있는 모든 이들을 책임지는 자리란 이야기다. 그 말은 즉 네 밑에 있는 모든 업을 짊어져야 하는 자리라는 걸 의미하며."

강상은 차분하게 말했다.

"그 성인군자가 황제라도 죄인이 되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단다."

황제는 그 말에 그렇다면 어째서 스승님께서 자신에게 자신을 용서하란 말을 한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니 자신을 용서해 줘도 되지 않겠느냐. 그 누구도 용서하지 않을 죄인을... 자신마저도 용서해주지 못한다면 어찌 버틸 수 있겠느냐."

그건 자신을 무너트리는 일이다.

그리고 지금의 제국에서 황제가 무너진다는 것은... 이 제국이 무너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해했느냐?"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그 속뜻을 황제는 이해했다.

"허나... 시간이 필요할 듯합니다."

그런 황제의 말에 강상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나 나나 남는 건 시간뿐이 아니냐. 그러니 천천히 하거라. 한... 백 년이면 적당하려나?"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조금 짧은 감도 있다만."

"짧진 않지. 길지도 않지만. 딱 적당한 거 같은데."

설육과 강상의 만담에 황제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보편적인 기준으로 보면 백 년은 그냥 긴 거 같습니다."

100년이 짧은 감이 있다니...

황제는 둘의 만담을 듣고 있다 보면, 시간 감각이 이상해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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