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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의무방어전-148화 (148/235)

연회장으로 둘을 데리고 도착한 황제는 상석에 둘을 앉힌 채 스스로가 아래에 앉았다.

그것은 그야말로 파격.

그 어떤 황제도 태사를 상석에 앉힌 일은 드물었다.

그것은 황제가 그만큼 태사를 극진히 여긴다는 증거기도 했기에 기미를 하고 있는 상궁들의 표정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조금이라도 실수를 했다간 저 폐하께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어 두려웠으니까.

"식사는 입에 맞으십니까?"

식탁에는 그야말로 평소 황제도 누리지 않던 호화로운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온갖 곳에서 구한 진귀한 식재로 만든 고급 요리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어지럽혔고, 그중에서도 가장 귀한 용의 고기를 사용해서 만든 요리는 그 식탁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 황제가 준비한 식탁을 보면서, 기미가 끝난 음식을 맛보고 있던 설육은 그 질문에 대답했다.

"입에는 맞으나 과하구나."

설육이 보기엔 그런 식탁은 너무나도 과해 보였다.

이토록 사치스러운 식사라니.

맛은 좋으나 설육은 황제가 사치스러운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우리 때문에 이리 거창하게 할 필요는 없는데... 뭐, 그래도 제자 덕분에 호강하는구나."

황제가 사치를 즐기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설육과 달리 강상은 제자의 성정을 잘 알고 있기에 그저 요리를 즐겼다.

이 녀석 성격상 평소에 이리 거창하게 식사할 리는 없으니까.

실제로 황제는 평소엔 역대 황제 중에서도 가장 검소한 식단을 유지하는 사람이었고, 지금의 식사는 황제도 스스로가 횡위에 오르고 나서 처음 보는 식단일 정도로 화려했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다음부터는 조금 검소하게 준비하라 지시하겠습니다."

강상의 말에 황제는 그리 답하고는 남은 요리는 민간에 나누라고 전하며 식사를 끝낼 준비했다.

"제자야. 후식은 없느냐?"

느긋하게 앉아서 후식을 요구하는 강상을 보면서 황제는 바로 상선에게 지시했다.

"준비해 둔 후식을 가져오거라."

꾸벅.

고개를 숙인 상선이 후식을 가지러 사라지자 황제가 말했다.

"그래서 태사께서 둘러보신 제국은 어떠셨습니까?"

황제는 입가를 가볍게 닦으면서 물었고 강상은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는 대답했다.

"좋더구나."

대충 둘러보아도 사람들이 살기 좋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단 몇 년 만에 이리 바뀌다니... 신기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건 설육도 같은 생각이었다.

지금의 제국은 확실히 몇 년전에 그 제국이 맞나 싶을 정도로 변화하였으니까.

"재상이 수고를 많이 했습니다."

"모든 업이 너의 것이듯 모든 공도 너의 것이다. 그러니 그런 사족은 붙일 필요가 없단다."

"...명심하겠습니다."

강상의 엄한 말에 황제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강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식은 되었으니 잠시 이야기나 하자꾸나. 오늘은 합궁이 있느냐?"

"없습니다."

황제의 대답에 만족스럽게 웃은 강상은 설육에게 말했다.

"늙은이는 잠시 쉬고 있어."

"그래, 그래. 이 늙은이는 느긋하게 후식이나 먹고 황궁이나 둘러보련다. 강가야.  상놈아"

"귀빈을 잘 모시거라."

궁녀에게 설육을 잘 모시라는 말을 해 둔 황제는 강상과 함께 자리를 떴다.

식사하던 연회장을 벗어나, 강상을 따라 도착한 곳은... 황제에겐 정말이지 그리운 곳이었다.

마당엔 복숭아나무가 심어져 있는 아름답고 작은 궁궐. 이곳은...

황제가 태자 시절 살았던 곳이자.

그의 가르침을 받던 곳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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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 아 그 영감님?"

여화의 질문에 오르테가는 누군가 한 명을 떠올렸다.

자기 얼굴만 보면 속이 터진다고 화를 내던 그 괴팍한 늙은이 말고는 황제의 스승이라 할 사람은 없었으니까.

"알고 있어?"

여화가 눈을 크게 뜨며 말하자 오르테가는 손으로는 수를 놓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 나만 보면 이 아둔한 놈은 가르치는 보람이 없다느니 뭐니 하면서 짜증 내던 괴팍한 늙은이야."

"...하하."

오르테가의 간단한 설명에 여화는 난처한 듯 웃었다.

괴팍한 늙은이라니... 태사께 할 만한 말은 아니었으니까.

"들은 바로는 그 환운 공과 같은 시대 사람이래. 그래서 위... 아니 폐하가 그 영감 말이면 죽고 못살았지."

"...잠깐만. 환운 님과 같은 시대 사람이라고?"

여화는 그 말에 뭔가 깨닫고는 경악으로 눈을 크게 떴다.

시대가 시대다 보니 당연히 그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다.

그 환운과 진비를 가르쳤다고 전해지는 그 시대 최고의 유학자가 바로 강상이었으니까.

설마... 황제의 스승이란 사람이 그와 동일 인물이라고는...

여화는 정말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화는 그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정말 그 사람과 지금의 강상이 동일 인물이라면... 폐하께서 태사에게 그토록 깍듯한 이유가 충분히 이해가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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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이곳에서 둘이 책을 읽었었지. 기억하느냐?"

강상이 그리운 얼굴로 복숭아나무를 매만지면서 말하자 황제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늘 이곳에서 자리를 깔고 앉아서는 책을 펴고 오르테가와 같이 예법과 여러 학문을 배우고는 했으니까.

오르테가는 그럴 때마다 졸았고, 그걸 본 강상에게 곰방대로 머리에 혹이 날 정도로 맞고는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 즐거웠던 시절이었다.

"책을 읽고 나면 네놈은 이곳에서 늘 검을 휘둘렀지. 수업 땐 졸기만 하던 오르테가 그 녀석은 그런 너를 보고 있었고."

전부 기억이 났다.

그때는... 황제에게도 좋게 기억되어 있는 몇 안 되는 시절이기도 했으니.

"그러고 보니 오르테가 그 아이는 뭘 하고 있느냐? 배움이 늦어서 검 말고는 가르칠 보람이 하나도 없었는데 말이다."

강상이 그때를 떠올리듯 웃으며 묻자 황제가 대답했다.

"비가 되었지요."

"...황제란 직업은 역시 힘든 일이구나. 그런 말괄량이를 아내로 맞이 해야 하는 현실을 보면 말이다."

강상은 그런 황제를 측은하게 쳐다보았고, 황제는 고개를 저었다.

오르테가의 인상이 스승님에게 나쁜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황제는... 솔직히 그녀와 함께 하게 된 게 그리 나쁘게 생각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를 비로 맞이한 건 그리 나쁜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황제가 그리 대답하자 강상은 조금 의외라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흐음, 네가 그렇다면 다행이다만."

머리가 다친 건 아닐까?

강상의 눈은 하는 말과는 달리 그런 걱정을 담고 있었기에 황제는 웃음을 눌러 참았다.

"내가 너한테 참 많은 것을 가르쳤지. 기억하고 있느냐."

"...네."

오르테가를 더 생각하긴 싫은지 강상이 화제를 돌리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가르침은 하나도 잊지 않고 있었다.

그 대답에 강상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든 것이 너의 미래를 걱정했기에 가르친 것이다."

강상은 그리 말하면서 황제의 머리를 쓰다듬기 위해 손을 들었다가 멈칫했다.

"...언제 이리 큰 건지."

자신보다 머리 하나 큰 황제를 보면서 머쓱한 얼굴로 손을 거둔 강상은 잠시 헛기침을 하더니 복숭아나무를 보며 말했다.

"금문제 시절 이후 다시 없을 황금기로구나. 그 황금기를 이끈 황제가 내 제자라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이토록 부강하던 제국은 그 금문제 이후로 처음이다.

게다가 최근 작업 중인 전국을 잇는 이동 수단인 열차란 것이 실제로 성공한다면? 금문제를 뛰어넘는 황금기를 구가한 황제가 될 수 있겠지.

"저 역시... 스승님의 제자라는 것을 그 무엇보다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 강상을 향해 황제는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그에게 배운 모든 것은 황제에게 그 무엇보다 귀중한 자산이 되었다.

그 환운 공을 가르쳤다고 전해지는 강상에게 배운 것을 황제는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런 스승이 베푼 은혜는 하늘과도 같아서 황제는 늘 그의 앞에서는 조심스럽고,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르친 제자 중에서... 단연 네가 최고다. 그러니 망설이지 말 거라. 흔들리지 말 거라. 그 어떤 결정이든... 네가 그리하기로 했다면 그게 옳다."

황제는 그 말에 놀란 듯이 강상을 보았다.

가장 존경하는 무인인 환운을 뛰어넘었다는 말은... 황제에게 그 어떤 칭찬보다도 값진 것이었으니까.

"아버지와 같은 말을 하시는군요."

"그 무능한 놈이 보는 눈은... 아니다. 네놈의 가치도 알아보지 못한다면 그 눈을 뽑는 것이 맞겠지."

지독한 독설이었다.

하지만 황제는 그 독설에도 그저 웃었다.

"여전하신 거 같아서 안심이 됩니다."

"네놈이 우화등선 하지 않으면 네가 죽어도 난 여전할 거다. 그러니 천천히 생각해 보거라."

아직 포기하지 않으신 건가?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화등선이라...

솔직히 아직까진 생각이 없다.

그리하지 않아도 황제의 수명은 평균보다는 길 거니까.

"쯧쯧. 거절한다는 말을 그리 돌려 말하지 않아도 된다."

그 대답에 황제의 뜻을 눈치챈 강상은 혀를 차면서 그리 말하고는 황제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도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다. 내일 떠날 테니 없으면 갔다고 생각하거라."

"...알겠습니다."

역시 떠나시는 건가.

황제는 아쉬움을 느꼈으나 잡지는 못했다.

그는 구름이었고, 구름은 잡을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예전에 말한 것을 기억하느냐? 네놈이 하늘이 되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네."

황제는 그때가 지금이라고 생각했다만... 강상은 다른 모양이었다.

"내 제자가 확실히 하늘이 되었구나. 그러니 언젠가 돌아오마. 그래..."

강상은 웃는 얼굴로 말했다.

"네가 아버지가 된 날에 말이다."

"...그 말은."

황제가 그 말에 눈을 빛내자 강상이 앞서 걸으면서 말했다.

"태자태사가 본래 내 직책이 아니냐. 태사 자리는 너무 무겁구나."

그 대답에 황제는 미소를 지었다.

그 말은 즉, 황제가 정한 태자의 스승이 되어 주겠다는 의미였기에 황제는 그런 강상의 등을 보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대체 언제쯤 갚을 수 있을까?

황제는 늘 고마운 은사에게 속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걸음을 옮겼다.

언제나 그랬듯이.

제자는 스승의 뒤를 따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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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벌써 가셨구나."

다음 날 아침.

그들에게 내어준 궁에선 둘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조정에서 돌아온 황제는 그 사실을 보고 받고는 아쉬움을 느끼면서 상선에게 말했다.

"방은 잘 정리해두고 언제든 두 분이 오실 수 있게 그곳은 늘 정갈하게 정리해 두거라."

"네."

황제의 명령에 꾸벅 고개를 숙인 상선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떠나자 황제는 눈을 감았다.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까?

황제는 아직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폐하. 이번 합궁 상대가 궁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집무실 문 앞에서 들려오는 미령의 목소리에 상념을 깨고 눈을 뜬 황제는 그녀를 안으로 들이면서 말했다.

"그래 이번엔 어디더냐."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니까.

황제는 자신에게 천천히 시간을 주기로 했다.

스승님의 말대로... 아직 시간은 여유가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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