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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의무방어전-153화 (153/235)

"콰오콴? 당신을 여기서 볼 줄은 몰랐는데?"

어느새 어두워진 황궁.

바쁘게 길을 걷던 귀려가 주술 부대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던 콰오콴에게 반가운 얼굴로 다가갔다.

"얼마만이더라... 그래, 귀가의 비전을 들어 보고 싶다고 했을 때 이후던가? 그 수호신을 만드는 주술은 찾았어?"

귀려가 친근한 척 말을 걸자 주술사들을 보내고 그쪽에 시선을 준 콰오콴은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찾았지요. 귀려 비 전하께서는 건강해 보이시는군요."

"?"

그런 콰오콴의 반응에 귀려가 고개를 왼편으로 갸우뚱했다.

뮈지? 이 녀석이 이렇게 공손한 녀석이던가?

귀려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곧 자기 신분을 자각했다.

"그 주술계의 망나니도 황제는 무섭나보네?"

이제 자신은 귀가의 장녀가 아닌 황제의 비였으니까.

물론 그걸 감안 하더라도 그 귀가를 상대로도 당당하고 과감없던 콰오콴이 예의를 갖추는 모습은 그녀에게 있어서 신기하면서도 의외긴 했다.

주술계에서도 아무한테나 들이받던 야수와 다름 없는 존재라 망나니 소리도 듣던 그가 이렇게 공손한 척이라니 어색할 정도였으니까.

"무섭지요. 당연한 거 아닙니까?"

콰오콴은 그런 그녀를 보면서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분이 화나기라도 하면 차라리 죽고 싶다고 느낄 사람이 많을 겁니다. 그 정도로 무서운 분이죠."

그렇게 말하며 콰오콴이 몸을 떨자 귀려는 이해가 안된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흐음... 그 정도인가?"

귀려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정도는 아닌 거 같았으니까.

그녀가 본 황제는... 조금 제정신은 아닌 거 같긴 했지만, 그렇게 무서워 보이진 않았다.

"한 번 보면 알게 될 겁니다. 화난 폐하를 말입니다."

콰오콴은 이미 보았다.

금위대장이 요괴들의 손에 넘어갔었던 그때...

황제의 분노는 그 분노가 자신을 향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소름이 끼칠 정도로 두려웠으니까.

특히 황제가 자기 사람을 아끼는 것은 분명했기에 당연히 콰오콴의 입장에선 황제의 사람이라 볼 수 있는 비를 대하는 데 있어서 더욱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보다 이 밤에 어디로 가십니까?"

"심심해서... 세이나랑 같이 자려고 가는 중이었지. 겸사겸사 놀고."

콰오콴의 질문에 귀려가 웃는 얼굴로 손에 든 과자를 자랑했다.

"마리프란 사람이 줬거든. 신기해. 이곳에 오고 나서 평생 사귄 친구보다 더 많은 친구가 생겼거든."

고작 하루도 되지 않았는데 많은 친구가 생겼다.

그 유명한 화염술사인 나르타는 적응이 힘들면 언제든 찾아와도 된다고 말해줬고, 마리아란 현자는 지신을 구경하고 갔다.

그 밖에도 많은 사람을 만났다.

싸울 줄 아냐고 물어보는 묘인에, 춤에 관심이 있냐고 물어보는 투르크족, 한눈에 봐도 엄청 강해보이는 거구의 미인에, 사냥에 관심이 있냐고 물어보는 이상한 여자 등.

오늘 만난 사람만 해도 상당히 많았다.

세이나의 말이 맞았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조금 특이했지만 그래도 전부 좋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그녀는 황실에서의 삶도... 그리 나쁘진 않은 거 같았다.

"즐거워 보이십니다."

그런 그녀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콰오콴이 말했다.

전에 봤던 그녀는 인생 자체가 그리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늘 사람들과는 마음의 거리를 두었고, 심지어 가문 사람들과도 거리를 둔 채 생활했다.

얼굴에선 감정을 찾아보는 것도 힘들 정도라... 나중엔 아예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닐 정도였다.

하지만 이곳에서 보니...

'저렇게 웃을 수도 있는 사람이었군.'

저렇게 꽃다운 나이의 여인처럼 웃을 수도 있는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조금 이른 판단일지도 모르겠지만... 즐거워. 지금까지보다 훨씬."

그렇게 말한 그녀는 웃었다.

그만큼... 그녀에게 이 황궁은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벌써 마음에 들었으니까.

--

"저... 이게 정말 될까요?"

관리 한 명이 우물쭈물하면서도 얌전히 금품을 챙기기 시작했다.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을 뿐더러 그 역시 지금이 엄청난 기회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씁! 자사가 없는 지금이 기회지. 대충 돈 될 거 챙기고. 입 싹 닦고 있다가 자사한테 다 떠넘기면 되는 거야."

그렇게 말한 제천 태수는 열심히 관청에 있는 귀중품들을 감정해 보며 챙기기 시작했다.

"어차피 폐하한테도 애물단지일 거야. 이 기회에 치워 버릴지 누가 알아."

"하, 하긴... 친형제도 아니고. 애물단지긴 하겠네요."

조금 안도한 관리가 열심히 패물들을 챙겼다.

"그렇지. 우리가 말만 잘 맞추면 폐하께서 이 기회에 자사를 치울지도 모르지. 그러면 이게 오히려 충성이라니까? 그러니 얼른 챙겨. 곧 중앙에서 사람을 보낼 테니까."

"흐음... 누굴 치운다고?"

그때 뒤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태수는 뭐 그런 당연한 걸 묻냐는 듯이 대답했다.

"그야 일도 못 하는 멍청한 낙하산 자사..."

뭐지?

태수는 그제야 자신에게 질문한 목소리가 어딘가 들어 본 목소리라는 사실에 전율했다.

그 목소리는 분명 들어본 목소리이나... 이곳에서, 이 상황에서 들려선 안 되는 목소리였다.

"그래... 낙하산이라."

끼긱. 끼기긱!

마치 고장 난 기계처럼 몸을 움직이며 뒤를 돌아본 태수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곳엔 있었다.

가볍게 서서 턱을 매만지고 있는... 황제가.

그 두 눈동자는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황제는 그런 두 눈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암담한 기분이구나."

그렇게 운을 뗀 황제는 가만히 태수와 관리들을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짐이 하사한 물건을 훔치는 건 그래... 어느 정도 너그럽게 봐줄 수도 있겠으나..."

"폐, 폐하. 그게..."

관청에 있는 귀중품들은 대부분이 라오허에게 황제가 하사한 물건들.

즉 이들은 황제의 하사품을 훔치고 있었던 셈이다.

그것 역시 중죄라면 중죄다만... 다소 너그러워진 지금의 황제는 그 정도는 이해해 줄 수 있었다.

허나...

"황족에 대한 그 무례한 언행은 쉬이 넘길 수가 없겠구나."

라오허에 대한 그들의 무례한 언행은 도저히 넘길 수가 없는 것이었다.

콰앙!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태수가 빠르게 머리를 바닥에 큰 소리가 날 정도로 박으면서 빌었다.

관리들 역시 빠르게 그런 태수의 뒤에서 머리를 박았다.

"...태수는 고개를 들라."

황제는 태수에게 고개를 들라 지시했고, 태수는 조금 안도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서걱!

"그래야 짐이 깔끔하게 자르지."

데구르르...

그리고 그것이 태수의 마지막 행동이었다.

황제의 손짓 한 번에 태수의 머리가 그대로 공중을 날면서 피를 흩뿌렸고, 관리들은 그 모습에 새파랗게 질려서는 더욱 머리를 박았다.

끼익. 끼익.

황제가 잠시 안으로 들어가더니 그대로 의자를 질질 끌면서 다가왔다.

"짐은 말이다. 동생이 가출을 하였다 들어 단숨에 이곳까지 내달려왔단다."

의자를 그들 앞에 놓은 황제가 그 자리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내 약하고 여린 동생이 행여 변고를 당하지 않았을까? 그런 걱정을 하면서 그대들이 얼마나 조사를 진행했는지 듣기 위해서 이곳을 찾은 것이고."

그런 황제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어서... 오히려 더욱 두려웠다.

"이미 밤이 늦었음에도 관청에 불이 꺼지질 않았기에 참으로 흡족했단다."

라오허를 찾기 위해 관리들이 참으로 부지런히 일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에 흡족하던 황제의 마음은 빠르게 식었다.

"짐의 동생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으리라 기대하며 안으로 들어왔더니... 보이는 것은 도적질이요. 들리는 것은 황실에 대한 모욕이니... 짐은 억장이 무너지더구나."

"폐, 폐하... 그것이..."

서걱!

변명하려던 관리 한 명의 목이 그대로 하늘을 날며 피를 뿜어냈다.

황제는 그걸 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야. 짐에게 아우가 애물단지라고?"

애초에 애물단지 취급 받을 정도의 형제들은 이미 이 세상에 없다.

라오허는 굳이 따지자면...

황제에겐 그저 약하고, 그렇기에 신경 쓰이며, 과거의 일로 마음이 가는 안타까운 동생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동생의 험담을 듣고도 너그러울 만큼 황제는 자비로운 성격은 아니었다.

"도망치지 말고 이곳에 얌전히 있거라. 한 명이라도 도망친다면 제국이 죄인을 쫓는다는 게 어떤 건지, 그렇게 된 죄인이 어떤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줄 터이니. "

덜덜.

떨고 있는 관리들을 내버려둔 채 황제는 관청을 나섰다.

그들의 처벌은 나중에.

책임자 두 명의 목을 쳤으니 나머지 관리들은 따로 처벌할 생각이었다.

지금은...

'라오허의 기를 찾아야겠군.'

라오허를 찾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황제가 쉬지 않고 기를 탐색하고 있긴 하지만 가진 기운이 미미한 라오허는 쉽게 탐색이 되지 않았다.

'대체 어디로 간 것이냐.'

그렇기에 황제는 무작정 걸었다.

밤이 깊었음에도... 황제는 그저 이 연약한 동생이 행여 무슨 변고를 당하지 않았을까 걱정되어서 도무지 쉴 수가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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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린 건 그리 많지 않지만..."

라오허는 그녀가 내온 상을 보았다.

낡아빠진 밥상에 올려져 있는 것은 김치와 보리밥.

그야말로 라오허 인생에서도 처음 겪어본 초라한 식탁이지만 라오허는 고개를 저었다.

"부족한 살림에 이 정도를 베풀어 주신 것만으로도 참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공손하게 감사를 표한 라오허는 그녀가 차려 준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었다.

다른 형제들이 봤다면 경악할 모습이었다.

라오허는 고기가 없으면 식사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으니까.

"입에 맞으셨다면 다행이네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그녀가 웃자 라오허는 심장이 두근대는 것을 느꼈다.

'침착하자. 침착해.'

상대는 차림새를 보면 이미 유부녀. 그러나 홀로 사는 걸 보니 과부가 분명했다.

과부라...

'상관은 없지.'

사랑만 있다면 과부인 게 무슨 상관일까?

라오허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스스로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상대는 관심조차 없을 수도 있는데 무슨...

"홀로 사십니까?"

"네... 부군을 여의고 나서 홀로 생활한지 어연 5년이 다 되어 간답니다."

그렇게 대답하면서 그녀는 슬픈 얼굴로 눈물을 떨궜다.

그걸 본 라오허는 자기 마음이 더 찢어질 듯 아팠다.

"저런... 괜한 걸 물어본 것 같습니다."

"아뇨... 이미 지난 일이니까요. 아무튼 편히 쉬도록 하세요."

눈물을 닦고 애써 미소를 지어준 그녀가 상을 들고  떠나자 홀로 남은 라오허는 이불 위에 누워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따뜻하구나.'

이불 안은 생각 이상으로 따뜻한 것이 난방이 잘되고 있는 듯했다.

아마도 손님을 위해 그녀가 열심히 불을 떼고 있으리라.

그 배려가 라오허는 고마운 한편 미안했다.

촤악.

"...?"

그때였다.

밖에서 들리는 물소리에 라오허는 슬쩍 이불에서 나왔다.

그러고는 망설였다.

문을 열어서 볼까? 하지만 만약 보기 민망한 상황이라면?

잠시 고민하던 라오허는 곧 창호지에 손을 뻗었다.

도저히 호기심을 참지 못한 그는... 문에 작게 구멍을 내고 조금만, 아주 조금만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엿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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