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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의무방어전-155화 (155/235)

제천의 관리들을 처벌하고 그날 바로 황궁으로 복귀한 황제는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던 중 대장군의 면담 요청을 받았다.

"제 나이가 이제 일선에 나서기엔 벅차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김유선은 이제 늙어버린 자신의 몸을 보며 쓰게 웃었다.

이젠 정말 몸이 예전같지가 않았다.

"해서... 사직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대장군 김유선이 사직을 청하자 황제는 가볍게 책상을 두드렸다.

사직이라... 벌써 그런 때인가.

"그래, 그대의 나이가 어느덧 예순을 넘겼구나."

나이를 생각하면 놀라운 일은 아니다. 실제로 지금 무관 중에선 최고령이기도 했으니.

그렇기에 황제는 그 사직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토록 오래 황실을 위해 충성을 바쳐온 그에게 더 희생하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염두에 둔 후임은 있는가?"

"...현재로선 리처드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유선의 대답에 황제가 책상을 두드리며 고민에 빠졌다.

"리처드라..."

확실히 실력이나 경력을 보면 그만한 이가 없다.

모용진은 젊고, 무엇보다 금위대장의 자리는 어떤 부분에선 대장군보다 중요한 직책.

그 자리를 적어도 자기 대에선 다른 이로 채울 생각은 없었으니까.

허나...

"불가. 현재 리처드는 국경에서 중요한 일하고 있으니 급하게 교체하는 건 부적절하다 여겨지는 구나."

리처드는 지금 수도로 불러들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최근 크릴라이쪽에서 벌어진 문제도 리처드가 없었다면 그렇게 빠르게 해결되지 않았을 것이니.

게다가 현재 그는 비 후보를 경호하는 일까지 하고 있으니 괜히 그를 불러들여 일을 꼬이게 하고 싶진 않았다.

"그러면 브레드가 가장 적합하다 생각합니다."

김유선 역시 그 사실은 인지하고 있는지 바로 다음 후보를 내세웠다.

"브레드라..."

수도 방위 사령관인 브레드라면 역시 흠잡을 요소가 없다.

나쁘진 않겠지.

황제도 그가 가장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대장군은 브레드로, 허면 수도 방위 사령관에 공백이 생기는 구나. 누가 좋을까?"

황제가 고민하자 김유선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건... 백부장 중 한 명을 승진시키면 되는 문제가 아닐지요."

"흠... 짐의 백부장 중에서 말이지."

그 말에 황제는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딱 어울리는 자가 한 명 있긴 했지만...

'할바르가 적당하려나.'

실력만 보면 대흘이 맞겠지.

하지만 대흘은 경력과 역량은 충분하나 그 성격이 위에 서기엔 적합하지가 않았다.

그런 점에서 경력도 오래되었고, 실력도 부족하지 않은 할바르가 적합할...

"그래, 그자도 있었지. 골 가문의 그 남자 말이다."

"폐하! 그자는... 역모에 깊게 개입되었던 자가 아닙니까!"

황제의 말에 김유선이 놀란 얼굴로 외쳤다.

마치 비명을 지르는 듯한 그의 말을 황제는 이해했지만...

"처벌은 다 끝났으니. 관대한 모습을 보여 줘야 하지 않겠느냐."

무엇보다 비의 아버지기도 하니. 마냥 외인 취급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젠 시대가 바뀌었으니 관대한 처분으로 분위기를 바꾸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았고.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김유선이 그 말에 머뭇거리면서 대답하자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벽에 걸려 있던 검을 꺼내서 건네주었다.

그 검은 황제가 제법 아끼던 검 중 하나로 바위도 무처럼 베어버린다는 예리함이 특징인 명검이었다.

"오랜 세월 황실을 위해 충성해온 그대에게 선물 하나 없으면 너무 정이 없는 일이겠지. 받거라."

검을 하사해준 황제를 보며 김유선이 감격에 눈물을 흘리며 그 검을 받고는 그대로 머리를 박았다.

"폐하를... 섬길 수 있어서 참으로 영광이었습니다."

모든 무관들이... 그러한 감정일 것이다.

김유선은 그리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비록 몸은 떠나 있을지라도... 이 마음만은 변하지 않으리라 확신하면서.

대장군 김유선.

오랜 무관 생활에 끝을 고했다.

--

"그 영감 드디어 은퇴합니까?"

그날 저녁.

바로 황제에게 불려온 할바르는 그렇게 말하고는 주변을 보았다.

'익숙한 얼굴들인데...'

황제에게 불려온 건 할바르가 끝이 아니었다.

대흘, 그리고 료라이. 바칸이 그런 할바르 옆에서 얌전히 서 있었다.

"그래, 해서 대장군은 브레드가 맡게 되었다. 그로 인해서 아무래도 수도 방위 사령관 자리에 공석이 생겼구나."

원래는 이것은 병부 상서가 해야 할 일이긴 하지만...

황제는 이미 이 일에 대해서 병부 상서와도 이야기를 끝내 놓은 상태였다.

그건 황제의 뒤에서 얌전히 대기하고 서 있는 병부 상서의 존재가 증명하고 있는 사실이기도 했다.

"해서 그 후보들을 지금 부른 것이다."

"...그렇습니까?"

할바르는 그 말에 놀랐다.

수도 방위 사령관!

무관 중에서는 대장군 바로 아래로, 국경 방위 사령관과 금위대장, 전장군 같은 위치에 있는 고위 관직이었다.

원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적어도 할바르는 진심으로 그 자리를 원했다.

"소신에게도..."

바칸은 자신에게도 그 기회가 주어졌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솔직히 바칸은 자신의 대에서 군으로 복귀할 기회가 주어질 거라고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하물며 수도 방위 사령관이라는 고위직에 도전할 기회를 자신에게 주었다는 것 자체가...

바칸은 황제의 앞이 아니라면 볼을 꼬집어보고 싶을 정도로 믿어지지 않았다.

"군으로의 복귀를... 허락해주시는 겁니까?"

바칸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여전히 지금 자신이 들은 게 사실인지 바칸은 헷갈릴 정도로 믿어지지 않았으니까.

"그래, 허락한다는 의미다."

그런 그를 보며 황제는 덤덤하게 말했고, 그 말을 들은 바칸은 눈을 크게 떴다.

"...!"

주르륵.

그렇게 황제를 보던 바칸의 두 눈에 감동의 눈물이 흐르더니 바칸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고개를 숙이면서 미친 듯이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당장 이 심장을..."

"그만. 그대가 그리 죽으면 짐이 뭐가 되는가."

진짜 심장을 꺼내 바칠 기세인 바칸을 말리면서 황제는 대흘을 보았다.

"그대는 할 마음은 있느냐."

황제에겐 사실 대흘이 가장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이 녀석이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 짐작이 안 된다고 해야 하나?

좋다고 할지 싫다고 할지 도통 짐작이 가지 않았다.

"...폐하의 명이라면 전 그저 따를 뿐입니다."

대흘의 고지식한 대답에 황제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지... 생각 이상으로 훌륭한 대답이라 참 만족스러웠다.

"그대는."

"높은 곳으로 가야지요. 예전에 폐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높은 곳으로 가보겠다던 녀석의 말에 분명... 그대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높은 곳으로 가게 될 거다.

분명 그리 말했었으니.

황제는 그때를 생각하며 살며시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료라이. 그대는?"

"...부족하지만 어떤 시험이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실력만 보면 더 좋은 백부장도 있겠지만... 황제는 료라이의 저 진중함을 높게 샀다.

세르나는 가벼웠고, 아비는 시끄러웠으며, 비천은 책임감이 부족했다.

셋 다 높은 자리에 오르기엔 부족한 인재라는 이야기였다.

그런 점에서 다른 백부장 중에선 료라이가 가장 가능성이 보였다.

"그래 이 넷은 짐이 보기에 경력도, 실력도, 인성도 충분하다 여겨진 자들이다. 그러면 어떤 것으로 시험을 볼 거 같으냐."

"...모르겠습니다."

대흘의 대답에 황제는 가볍게 말했다.

"이 주먹. 그대들의 무력을 볼 것이다."

무인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겠지.

특히 그 자리가 바로 수도 방위 사령관이라면 더욱 일신의 무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무기의 사용은 금한다. 상대를 죽여서도 아니 된다. 오로지 제압. 이해했느냐?"

조건을 들은 그들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황제 입장에선 당연한 조건이었다.

수도 방위 사령관은 상황에 따라선 무기 사용이 제한된 곳에서도 무위를 보여줘야 할 때가 많다.

관습이나 법적으로 무기 소지가 금지된 곳에서의 호위도 담당해야 할 때가 있으니까.

그렇기에 더욱.

수도 방위대는 본인의 무력 자체가 중요했다.

그런 그들의 수장이 될 거라면 그 무력이 더욱 중요한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

"너희 넷은... 내일 바로 겨루게 될 거다. 최종 승자가 수도 방위 사령관이 되는 것이지. 그러니 오늘은 이만 퇴궁하고 내일 있을 시험을 준비하도록 하거라."

"네."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는 진지한 얼굴로 사라지자 황제는 자리에 앉아서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할바르...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수도 방위 사령관이라면 당연히 이 제국 최후의 보루가 될 자다.

어중간한 강함이면 곤란했다.

적어도... 경쟁자들 중에선 가장 강하지 않으면 곤란했다.

그렇기에 이 방식을 선택했다.

나머지 녀석들에겐 조금 미안한 일이지만... 이건 황제가 할바르에게 내리는 시험이었다.

"그대에겐 미안하구나. 원래 이 일은 그대의 권한일 텐데."

"...아닙니다. 저 역시 폐하의 뜻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부 상서가 고개를 푹 숙이면서 대답하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대도 오늘은 이만 퇴궁하거라. 피곤할 터이니."

"네. 소신은 그럼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병부 상서마저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떠나자 황제는 의자에 기대서는 눈을 감았다.

'내일인가...'

황제는 눈을 감고 미소를 지었다.

물론 이번 시험은 사실상 할바르에게 내린 시험이긴 하다.

하지만... 누가 승자가 되든.

황제에게 나쁠 건 하나도 없었다.

결국 이긴 자가 가장 강한 무인이라는 것이고.

가장 강한 무인이 그 자리에 오르는 건 결국 황제에게 이득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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