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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의무방어전-156화 (156/235)

"후욱. 후욱."

할바르는 거친 숨을 내쉬고는 주먹을 거뒀다.

그러자 가죽이 터지면서 그의 앞에 있던 가죽 주머니에서 모래가 흘러나왔다.

'준비는...'

만전이다.

애초에 그는 오랜 세월을 군인으로 지냈다.

당연히 무기가 없는 상황에서의 난전 대비도 충분했다.

'주목할 건 역시...'

할바르는 손에 붕대를 감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가장 경계가 되는 상대는 역시...

대흘일까?

그 덩치에서 나오는 힘은 진짜고, 근육에서 나오는 속도도 범상치가 않았다.

오랑카이족에서 가장 뛰어난 궁수란 말을 들을 정도면 당연히 그 팔의 근육과 악력이 범상치 않은 게 당연한 것이니까.

당연히 그 팔에서 나오는 공격 역시 위협적이다.

잡히든, 맞던 최소가 골절을 각오해야 한다.

그 정도로 위협적인 사람은 이번 후보 중에 없었다.

료라이도 그 민족 출신이니 격투에 있어서는 경계할 필요가 있고, 바칸도 상당한 실력자지만...

그럼에도 대흘이 가장 경계되는 건 당연한 것일 정도로.

당장 대흘은 그 체급만으로도 넷중에서 가장 압도적이었으니까.

'이긴다.'

그럼에도 할바르는 각오를 다졌다.

폐하와 이야기하면서 느꼈다.

사실 이건 자신에게 주어진 시험이라는 것을.

허나 거기서 진다면 끝이다.

폐하는 결국은 시험을 통과한 자를 선택할 테니까.

오히려 폐하께서 자신이 패배했음에도 자신을 선택한다면 실망하리라.

'높은 곳으로...'

할바르는 눈을 감았다.

보칸 가문의 사생아.

태어난 순간부터 이미 한계가 정해져 있던 그에게... 그 이상을 꿈꾸게 해준 사람이 바로 폐하셨다.

그러니까...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더 높은 곳을 꿈꿀 것이다.

그 어떤 시험에도 부러지지 않고...

'더 높은 곳으로...'

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으니까.

--

"미안하구나."

다음 날.

준비하고 있는 넷을 내려다 보면서 황제가 옆에 있는 여인에게 사과했다.

황제와 비슷한 키에 우아한 느낌이 드는 가는 팔 다리를 지닌 여인.

얼굴엔 요염함이 가득한 그녀는 부채를 가볍게 접으며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즐거운 볼거리가 아닙니까? 합궁 전에 여흥 거리로 딱이지요."

지금 이 상황이 오히려 즐겁다는 듯이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말하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대에겐 그럴 수도 있겠지."

한때는 묘인들과 치열한 다툼을 벌였다고 알려진 그들에게 맨손으로 하는 격투는 친숙한 것일 테니.

"그보다 수박족에선 그대를 보냈구나."

연한 회색이라 하얗게도 보이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보면서 황제가 말했다.

저 머리카락이 그녀가 누구의 딸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어머, 묘인이 그 묘왕의 딸을 보냈으니 당연히 제가 와야지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옆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케르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역시...'

그걸 보면서 황제는 한숨을 쉬었다.

수박족은 오랜 세월 묘인과 싸워왔고, 당연히 지금도 그리 관계가 좋진 않았다.

당장 묘왕 무카와 수박족의 수장인 무아 바쿠는 늘 대륙 최고의 무술가를 두고 겨루는 사이였으니 사이가 좋으면 이상하겠지.

그건 당장...

"크르르르."

그녀의 옆에서 으르렁거리고 있는 케르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 모습을 본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입가엔 요염한 미소가 담겼다.

"귀엽네요. 약한 강아지가 잘 으르렁거린다는데 고양이도 다르진 않은 거 같아서."

"냐! 붙어볼 거다냐?"

"진정해라."

황제는 흥분한 케르를 진정시켰다.

솔직히... 케르가 그녀를 이길 확률은 희박했으니까.

저 가녀린 모습에 착각하기 쉽지만 그녀는 확실히 그 무아의 딸이다.

키린 바쿠.

대륙 여성 중에서 최강으로 뽑히는 그 베베라 다음가는 무술가로 평해지는 그녀에게 케르가 승산이 있을 리가 없었다.

"어머, 전 놀아줘도 괜찮은데요."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황제가 그런 그녀의 어깨를 잡고는 그대로 억눌렀다.

"...지금은 둘의 시간이 아니다. 짐의 체면을 살려주면 좋겠구나."

"어머나. 역시나."

그녀는 일어나려던 자신의 힘을 가볍게 흘려 버리는 황제를 보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애초에 케르는 황제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불만스러워하면서도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보고 싶다고 해서 둘을 불렀는데 싸우면 쓰겠느냐."

"마음이 바뀌었답니다. 이 고양이는 필요가 없네요."

"냐아아!"

발작하는 케르를 깔끔하게 무시하며 키린이 말했다. 이제 저 암컷 고양이에겐 관심이 없었다.

지금 키린의 흥미를 끈 것은 방금 황제가 보여준 순식간에 자신의 자세를 무너트리고 앉게 만든 합기.

순식간에 사람의 힘을 흩어버리는 기술이었으니까.

"폐하의 실력을 보고 싶어졌거든요."

"침대에서?"

황제가 귀찮은지 대충 농을 던지자 그녀가 입술을 가볍게 핥으면서 대답했다.

"그것도 기대하고 있지만요. 맛있을 거 같아서."

"...정말이지 놀리는 맛이 없는 여인이구나. 마음대로 하거라."

처녀가 저런 말을 해봐야 별로 위협적으로 들리지도 않는다.

오히려 허세로 보이지.

황제는 작게 푸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말했다.

"그럼 시작하자. 첫 번째는 할바르. 그리고 그 상대는... 료라이."

황제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 다시 앉았다.

할바르와 료라이는 그 말에 곧바로 연무장 위에 섰다.

"그러고 보니 우리 둘이 겨루는 건 오랜만이지?"

몸을 풀던 할바르가 친근하게 말을 걸자 료라이는 피식 웃었다.

"그러게요. 예전엔 빈손 형님이랑 자주 술 걸고 했는데."

료라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세를 잡았다.

우 자연체.

그 자세를 본 키린이 말했다.

"저희 사람이네요."

그 말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료라이는 확실히 수박족.

그중에서도 쿠류에서 들어온 유술을 익힌 조우 가문 출신이다.

"제대로 알아봤구나."

"후후, 저 역시 비슷한 계통인 걸요. 모를 수가 없지요."

"냐! 저거 권투 자세다냐."

케르가 할바르의 자세를 보고는 말했다.

확실히 할바르의 자세는 기본적인 권투 자세다.

저 가벼운 풋워크가 할바르가 얼마나 뛰어난 권투 실력을 지녔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가볍구나."

"그러게요. 저 체구로 저 정도라니."

황제의 평가에 키린도 공감했다.

저 거구에 저 정도로 가벼운 풋워크라니... 만만하게 볼 상대는 아니었다.

"재미있는 승부가 되겠구나."

황제는 그리 말하고는 둘을 보았다.

체격은 확실히 할바르의 우위.

저 정도의 체격 차면 잽만으로도 료라이에겐 위협적이다.

즉...

'바닥으로 끌고 가야지.'

료라이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바닥으로 상대를 끌고 와야 했다.

그래서 그런가?

서로가 눈치만 보는 지루한 신경전이 이어졌다.

타앗.

그 신경전을 끝내고 먼저 움직인 것은 할바르.

그는 빠르게 접근해서는 잽을 날렸고, 료라이는 그 순간 팔을 올려서 잽을 막았다.

'아파!'

잽을 막았을 뿐인데도 묵직한 충격이 료라이를 덮쳤다.

체급의 차이는 유의미!

그 가벼운 잽조차도 막기 버거워하며 료라이는 시종일관 두드려 맞고 있었다.

"너, 너무 일방적이다냐."

그걸 본 케르가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황제는 그러나 아직은 모른다고 생각했다.

'눈은 살아 있다.'

필사적으로 가드를 유지하는 료라이의 눈은 살아 있었다.

저건 포기한 자의 눈이 아니었다.

'한 번. 기회는 한 번이겠네요.'

이대로 가다간 잽으로 모든 게 끝날 것이다.

키린은 그리 생각하면서 차분하게 둘의 대결을 관망했다.

그녀가 볼 때 료라이가 상황을 역전할 기회는 단 한 번.

그리고 그건...

'기회는 많지 않다.'

당사자인 료라이 역시 느끼고 있었다.

할바르의 잽을 막으면서도 료라이는 차분하게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얼마나 남았지?

막고 있는 팔이 저리다.

그렇기에...

'지금!'

터억.

이 기회를 놓치면 다음은 없다.

그대로 날아온 잽을 잡아챈 료라이는 업어치기를 시도했다.

그야말로 깔끔하게 들어간 기술은 그대로 할바르를 땅에 메다꽂았다.

쿠웅!

엄청난 소리와 함께 땅에 충돌한 할바르가 극심한 통증에 몸을 꿈틀했다.

그걸 본 료라이는 바로 발차기를 시전했다.

퍼억!

할바르의 머리에 제대로 박힌 발차기가 그대로 할바르를 저 멀리 날려 버렸다.

"우욱!"

피를 토하면서 할바르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터억!

그런 그를 이미 추격한 료라이가 그대로 할바르를 잡고 다시 한번 메다꽂았다.

쿠웅!

다시 한번 제대로 업어치기에 당한 할바르가 활어처럼 꿈틀거렸다.

그야말로 업어치기 한 번에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할바르는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으려고 했으나 당장 뇌진탕으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의식을 유지하기조차 힘들다.

할바르는 그런 생각하면서도 다시 달려 들어오는 료라이의 발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누운 상태로 하는 주먹질에 위력이 담길 리가 없다.

그러니 오히려 할바르의 주먹이 깨질 것이다.

료라이는 그런 생각을 하며 피하지 않았으나... 그게 실책이었다.

빠각!

놀랍게도 부러진 것은 료라이의 발이었으니까.

"끄윽!"

그대로 료라이가 부러진 발을 잡고 바닥을 뒹구는 순간... 할바르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하악... 하악...!"

의식이 흐릿하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런데도.. 할바르는 억지로 힘을 주고는 그대로 주먹을 쥐었다.

이건 이미 의지의 영역을 벗어났다.

그야말로 사력.

"푹... 쉬어라."

"자, 잠!"

콰앙!

누워 있던 료라이에게 할바르의 주먹이 제대로 박혔다.

"...죽진 않았겠지."

황제는 그 주먹을 보고는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방금 일격은 아무리 봐도 사람을 죽이려는 위력이었으니까.

"살아는 있네요."

"정말이지. 제압이라는 단어가 저 녀석에겐 이해하기가 어려웠나."

키린의 말에 황제는 투덜거리면서도 아래로 내려가서 료라이를 확인했다.

확실히 중상이긴 하나 죽진 않았다. 그렇다고 이걸 제압이라고 보긴 애매했으나...

사실 료라이도 딱히 제압을 생각하며 싸운 것 같진 않았기에 실격시키기도 애매했다.

"둘의 치료를."

"네!"

황제의 명령에 대기하고 있던 의원들이 그대로 둘을 데리고 사라지자 황제는 잠시 헛기침하고는 말했다.

"처음부터 좀 과격했구나. 그럼 다음은 알고 있지? 올라오거라."

"금방 끝납니다."

황제의 말을 들은 대흘은 연무장에 올라서서는 덤덤하게 말했다.

바칸은 절대 쉽게 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불태웠으나...

꼬륵.

"승자는... 대흘."

정말 승부는 순식간에 났다.

시작하기 무섭게 엄청난 속도로 접근한 대흘이 그대로 바칸의 목을 잡고 들어 올려서는 기절시키는 것으로 끝냈으니까.

'바칸은...'

분명 제법 뛰어난 자일 텐데...

황제가 판단하기로 바칸의 실력은 료라이보다 약간 떨어지는 정도.

그런 그를 대흘은 어린아이를 제압하는 것보다 쉽게 제압해 버렸다.

황제는 대흘의 성장에 놀랐다.

통합 훈련 이후 더 성장했다.

확실히... 실력만 놓고 보면 넷 중에서 대흘이 압도적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할바르... 어려운 싸움이 되겠어.'

기절한 채 치료를 받고 있는 할바르를 보면서 황제는 솔직히 힘든 싸움이 될 거라고 예상했다.

그만큼...

대흘이 보여 준 모습은 황제가 보아도 꽤 압도적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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