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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의무방어전-157화 (157/235)

꿈을 꿨다.

그곳에선 사방이 적이었고, 자신의 등 뒤엔 그가 있었다.

"보이냐. 할바르. 지원군이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대로 자신에게 등을 기댄 채 말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홀린 듯이 그쪽을 보았다.

거칠게 말을 달리면서 앞서 오고 있는 자는 금위대장 김유선이었다.

황제가 벌써 중앙군을 보낸 걸까? 아무튼 지원군은 분명했다.

"의외구나. 나를 제거할 기회라고 봤을 텐데."

내가 그런 생각하고 있을 때 그가 말했다.

확실히 재상에게 지금 만한 기회는 없을 텐데... 놀랍게도 지원군은 정상적이었다.

"뭐, 그만큼 그들도... 당황했다는 이야기일까."

도망치는 야만족들을 보면서 그는 웃었다.

그런 그의 온몸에선 피가 줄줄 흐르고, 팔다리엔 화살과 창이 박혀 있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중상.

그런데도 그는 웃었다.

"웃음이 나오십니까?"

그 모습이 나는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난 정작 그보다 상태가 좋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위험할 때마다 이 젊은 태자는 날 대신해서 그것들을 막아주었으니까.

그게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 따위보단 태자인 그가 더욱 귀한 몸이었으니까.

"...살았는데 웃어야지. 그럼 울어야 하느냐?"

태자의 반문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하긴...

"그것도 그러네요. 그보다 어째서 절... 지켜 주신 겁니까?"

솔직히... 그런 짓만 하지 않았다면 훨씬 멀쩡했을 텐데...

내가 그런 의문을 가진 채 질문하자 태자는 웃었다.

그 웃음엔... 힘이 없었다.

"잃고 싶지 않더구나. 너무 많이 잃어서 그런가... 더 잃고 싶지가 않았어."

벌떡.

그렇게 말한 태자는 그대로 일어나서는 화살과 창을 뽑았다. 어느새 그의 눈엔 독기가 어려 있었다.

"그럼 추격해야지."

"태, 태자 전하!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폐하께서도 당장 태자 전하를 발견하면 회군하라고..."

어느새 이쪽에 다가온 의무병이 태자의 그런 행동에 당황하며 말하자 태자는 화를 냈다.

"적이 아직 멀쩡히 살아서 도망치고 있는데! 쿨럭!"

피를 한움큼 토해낸 태자는 싸늘한 눈으로 말했다.

"당장 저들을 궤멸시킬 절호의 기회거늘 그게 무슨 소리냐!"

"저, 전하! 상처가 깊습니다!"

"닥쳐라! 이 무능한 놈들! 당장 적들이 무방비한 상태거늘! 회군이라니!"

추격 의지조차 없어 보이는 군을 보면서 태자는 화를 냈다.

지금이 그들을 절멸시킬 기회라는 걸 정녕 모르는 걸까? 태자의 눈은 분명 그렇게 따지고 있었다.

"그들이 흐르게 한 피의 열 배는, 아니 백 배는 받아 내어도... 쿨럭!"

다시 피를 토해낸 태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런데도 태자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모자라거늘! 회군? 당장 그 망할 황제와 연결해라. 내가 직접 담판을..."

털썩.

한참을 피를 토하며 주장하던 태자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의무병들은 당황한 얼굴로 치료를 시작했다.

"일단 출혈부터..."

"세상에... 이런 중상이라니."

바쁘게 움직이는 의무병을 보면서 나는 그제야 모든 상황이 끝났다는 걸 깨닫고는 완전히 긴장이 풀려 버렸다.

'전하...'

의무병에게 실려가며 나는 생각했다.

솔직히 나는 왜 태자가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다.

고작 부하들의 죽음에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우리들의 목숨따윈 그의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거늘.

그 아무것도 아닌 이들의 죽음에 이토록 신경 써줄 줄은 몰랐다.

'...높은 곳이라.'

나는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생각에 잠겼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지금까지의 자신이 얼마나 무례하고, 위험한 짓을 했는지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가 볼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높은 곳?

까짓 거 올라가보지.

태자의 몸으로 최전방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람도 있는데 그게 어려울까? 그 태자를 상대로 막말도 해봤는데 승진하는 게 뭐가 어렵다고.

나는 그런 자신감이 생겼다.

그때는 분명... 그런 마음이었다.

--

"...꿈이었나."

눈을 뜬 할바르는 온몸에 통증을 느끼고는 몸을 일으켰다.

지금은 그때와 같은 자신감은 없다.

높은 곳에 올라가려면 당연히 그만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할바르는 자신도 잘 알았다.

자신은 그 정도의 무언가는 없다는 것을.

오히려 금위대의 백부장 정도면 과분할 정도로 높은 곳으로 올라온 것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런데도...

'도전해 보지도 않고 포기는 너무 추하잖아.'

할바르는 몸을 일으켰다.

알고 있다.

료라이를 상대로도 이렇게 힘겹게 이긴 자신이...

"야, 좀 쉬웠나보다?"

그 바칸을 상대하고도 저리 멀쩡한 대흘을 이길 수 있는 확률이 적다는 것 정도는.

할바르도 머리가 있으니 당연히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남자가 높은 곳은 꿈꿨으면... 부러지기 전까진 포기하지 않아야 하니까.

"...기권을 하는 편이 어떤지."

대흘은 할바르를 가볍게 훑어보더니 권유했다.

그가 보기엔 할바르는 치료를 받긴 했지만 멀쩡한 몸 상태라고 보긴 어려웠다.

"임마. 황제의 창이 부러지기도 전에 스스로 꺾이는 게 되나?"

"..."

할바르의 단호한 말에 대흘은 잠시 침묵했다.

황제의 창이란 금위대를 뜻하는 단어기도 했다.

즉 할바르의 말은 황제의 금위대가 싸우지도 않고 포기하는 건 말도 안 된다는 뜻이었고, 대흘은 그 말을 이해했다.

"그렇군요."

그렇기에 대흘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풀었다.

"빠르게 끝내겠습니다."

양손을 앞으로 내밀며 자세를 잡는 대흘을 보면서 할바르는 권투 자세를 잡았다.

'잽은 의미가 없고.'

저 대흘을 상대로 잽은 견제도 안 된다.

잽을 하는 순간 그대로 잡아선 부러트려 버릴 놈이니까.

'훅인가?'

그런데 잽도 잡힐 정도면 훅이라고...

스윽.

통할 리가 없지.

할바르는 그 순간 양손을 내리고는 권투를 포기했다.

저 덩치를 상대로 권투?

둔한 놈도 아니고 심지어 자신보다 잽싼데?

미친 짓이다.

할바르는 그렇기에 도박을 해볼 생각이었다.

'흠...'

그 모습을 본 대흘은 잠시 고민하더니 순식간에 접근했다.

할바르가 대비를 한다고 했는데도 순간 놓칠 정도의 빠른 속도였다.

퍼억!

대흘의 주먹이 그대로 할바르의 복부에 박혔다.

"커헉!"

무슨 도박 같은 헛된 망상을 했는지...

할바르는 숨을 토해내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저건 도저히 대처할 수 있는 유형의 공격이 아니었다. 애초에 보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대응한단 말인가.

"다운이군요."

대흘은 더 추격하지 않고는 쓰러진 할바르를 보면서 덤덤하게 말했다.

"환자를 패는 취향은 없습니다. 그러니 이쯤에서 끝내..."

터억.

"허억... 허억...! 끝낸다고? 누구 맘대로."

그 순간 할바르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는 심호흡했다.

늑골이 나갔다.

말도 안 되는 녀석.

무슨 곰이랑 맨몸으로 겨루고 있는 기분이다.

할바르는 벽을 느꼈으나 그 벽에 부러지진 않았다. 그리고...

부러지지 않았다면 아직 싸울 수 있었다.

"..."

대흘은 가만히 그런 할바르를 보면서 순식간에 접근해 목을 잡았다.

이번에도 보지 못했다.

할바르는 무력함을 느끼면서도 그대로 발버둥을 시도했다.

"유감스럽게도. 여길 잡으면 몸에 힘이 안 들어갑니다."

"끅."

그대로 목이 잡힌 할바르는 떼어내려고 했으나 거짓말처럼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끝입니다."

"아..."

직이다.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

할바르는 그런 생각하면서 필사적으로 기를 끌어모았다.

'...이건.'

순식간에 열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화끈한 화기.

그걸 본 대흘은 급하게 할바르를 놓고는 거리를 벌렸다.

'경지에...'

저 정도의 기운 활용이면...

경지에 도달한 건가?

대흘은 눈을 감았다.

방금 열기로 그는 온몸의 화상을 입었다.

상대는 벽을 깨고 강해졌고, 자신은 저 열기 때문에 섣불리 접근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까?

냉정한 그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었다.

"왜 그러지?"

할바르가 그런 대흘을 보며 물었다.

몸이 이상하게 가볍다.

이상하게도... 이젠 대흘에게 질 것 같지 않았다.

"졌습니다."

그 순간 대흘이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할바르가 경지에 도달한 이상...

누구보다도 그 자리에 적합하다는 것을 말이다.

--

"늘 한 끝이 모자랐는데... 결국 벽을 깼군."

황제는 그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할바르에게서 느껴지는 강렬한 화기는... 그가 드디어 오랜 벽을 깨고 하나의 경지를 이뤘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저 대흘이라는 남자... 무섭네요. 판단이 너무 냉정해서."

키린은 대흘을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저 상황에서 저렇게 빠르게 패배를 인정한다고?

결과적으로 옳은 판단이긴 하지만 자신이 유리하던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서 저렇게 냉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니?

그녀는 자신이 저 상황에서 과연 저런 냉철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게 대흘의 강점이지."

황제는 미소를 지었다.

할바르의 승부에 대한 집착이 그를 오랜 세월 가로 막던 벽을 깨부셨지만... 그렇다고 그 집착이 꼭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황제는 대흘 같은 차가운 이성을 지닌 자가 더욱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으니까.

당장의 승자는 할바르였으나 황제는 대흘에게 더욱 기대가 되는 것을 느꼈다.

"아무튼 결정이 났구나."

수도 방위 사령관은 할바르로 결정인가...

황제가 그런 생각할 때 갑자기 키린이 황제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힘... 들어가시나요?"

"..."

그 말에 황제는 힘을 주려고 해봤다.

그러나 마치 무언가에 가로 막힌 듯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저희 가문의 합기도는 기본적으로 쿠류의 유술에서 시작된 고류 무술이랍니다."

'그렇군...'

황제는 그녀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차리고는 한숨을 쉬었다.

"기본적으로 상대를 움직이지 못하게 제압하거나 균형을 무너트리는 데 집중한 무술이지요."

즉 그녀는 지금 자신이 힘을 주려고 하면 그 힘을 흩어 버리면서 행동을 봉쇄하고 있는 것이다.

대단한 기예다.

이런 짓을 하기 위해서 그녀가 얼마나 수련했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을 정도로.

"기본적으로 저희 가문의 무술은 말이죠. 힘의 흐름을 제어하는 무술이랍니다. 그걸 잘만 하면..."

휘익!

키린은 그대로 황제를 던졌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공중에 붕 뜬 황제는 머리부터 떨어졌다.

쿠웅!

"경추는 단련을 못 하죠? 조금 실망스럽네요. 폐하께서 고작 이정..."

멈칫.

그러나 그것도 잠시 키린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그대로 멈칫했다.

뭐지?

그녀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머리부터 떨어졌는데... 황제는 멀쩡하게 몸을 일으키면서 목의 근육을 풀고 있었으니까.

말도 안 돼...

머리부터 떨어졌는데 저렇게 멀쩡하다고?

인간의 신체 구조상 그게 가능할 리가...

"제법 괜찮은 기술이었구나. 그래..."

콰득.

'무슨...!'

키린은 어느새 다가온 황제의 손에 얌전히 잡혀서 꺾여 버린 자기 손을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벗어나기 위해 힘을 주려고 했으나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대로 손을 꺾인 채 무릎을 꿇은 키린은 경악한 얼굴로 황제를 보았다.

"몸이 달았던 모양이구나. 근데 그걸 아느냐?"

황제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덤덤하게 말했다.

"그대의 기술은 썩 훌륭하나. 아직 짐에게 닿기엔 부족하다는 것을."

"..."

키린은 부정하지 못했고, 황제는 그런 그녀의 손을 풀어 주었다.

"이만하면 되었느냐?"

"...네, 아직은 제가 폐하를 이길 수는 없을 거 같네요."

아직은... 인가?

황제는 그녀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저 자신감은 제법 마음에 들었다.

"그래, 아직은... 이란 말이지. 그러면 그때가 오면 언제든 다시 도전하려무나."

황제는 그녀를 지나쳐가며 선언했다.

"언제든 그 도전을 받아줄 터이니."

"...후후, 그렇군요."

그녀는 그 말에 그대로 주저앉은 채 미소를 지었고, 황제는 그대로 걸어서는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인 할바르에게 다가갔다.

"축하한다. 벽을 깼구나."

"...폐하."

할바르는 그제야 실감했다.

자신이 정말... 벽을 깼다는 것을 말이다.

"경지에 도달하니 무슨 기분이 드느냐?"

"...새삼 폐하께서. 정말 괴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황제의 질문에 할바르는 새삼 자신이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을 실감했다.

경지에 오르고 나니 보였으니까.

폐하께서 얼마나 아득히 높은 경지에 있는지 말이다.

그것은 너무나도 아득하고 멀어서...

평생을 단련해도 따라잡을 수 없을 거 같은 아득함마저 느껴졌다.

"그러냐."

황제는 그 말에 웃었다.

그토록 원하던 경지에 오르고 하는 말이 엄살이라니.

그저 웃겼으니까.

"이번 시험에도 부러지지 않은 창이 폐하를 보니까 부러질 거 같습니다."

할바르의 호들갑에 황제는 진지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러면 수도 방위 사령관은 대흘이..."

"어허!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할바르가 능청을 부리자 대흘은 겸손하게 반응했다.

"저보단 할바르 백부장이 수도 방위 사령관이 되는 것이 맞습니다. 경력으로 보나, 그 경지로 보나. 이젠 그게 정답인 거 같습니다."

"넌 정말 진지하구나. 바칸. 일어났느냐?"

할바르는 나름 농담을 받아주는 반응을 했는데 대흘은 참 진지하구나.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깨어난 바칸에게 말을 걸었다.

"네? 아, 예!"

깨어난 바칸이 황제의 부름에 바로 달려와서는 무릎을 꿇자 황제가 가볍게 손을 펼쳤다.

그러자 저 멀리서 검이 날아와서는 그대로 그 손에 안착했다.

"짐의 검을 하사하니 그대를 금위대의 백부장으로 임명하겠다. 할바르는 빠르게 부대를 바칸에게 인수인계하고는 브레드를 찾아가서 수도 방위 사령관 업무를 인계받도록."

"네!"

할바르가 힘차게 대답하자 감격한 얼굴로 황제가 하사한 검을 보고 있던 바칸은 그 검을 받아 들고는 울먹이는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면서 대답했다.

"네! 신 골 바칸! 폐하의... 존엄하신 이 제국의 태양이 내린 명을 받습니다."

그 모습을 대흘은 덤덤하게 보면서 다가온 의원에게 화상 치료를 받았다.

"자, 그럼 돌아가자. 각자 일해야지."

그걸 지켜보던 황제는 대흘의 치료가 끝나자 어느새 고양이의 모습으로 다가온 케르를 양손으로 안아 들고는 말했다.

이제 인수인계로 한참 바쁠 테니까.

황제는 그들을 적당히 끌고 가다 보내고는 뒤따르는 키린에게 질문했다.

"어떤가? 짐의 창은?"

금위대가 황제의 검이라고도 불리긴 하다만...

좀 더 정확하게는 황제의 검은 단 한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다.

그렇기에 금위대는 보통 황제의 창이라고 불렸고, 황제는 지금 그 창을 그녀에게 자랑하는 중이었다.

"과연... 쉬이 부러지지 않는 창을 소유하셨네요."

그녀는 조금 부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수박족이 봐도 금위대의 수준은 아주 높았다.

과연 무패의 군대.

황제가 자랑하는 제국 제일의 창이란 말인가...

그녀는 과연 그 위명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짐이 얻은 몇 안 되는 자랑거리지."

"어머, 그 자랑거리를 좀 들어 보고 싶네요."

금위대 말고도 있단 이야기인가?

그녀가 흥미롭다는 듯이 묻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나의 검. 금위대장이 있겠고."

가장 먼저 자랑할 것은 당연히 모용진이다.

황제가 가진 것 중에서도... 감히 가장 귀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긴 그 모용진이면 대륙에서도 알아주는 무인이지 않습니까."

그 위명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기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황제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래, 짐을 제외하고는 이 대륙에서 가장 강한 자일 거다."

"...그건 좀 관심이 가네요."

그 말에 그녀가 호승심을 숨기지 않았다.

한 번 겨뤄보고 싶다.

과연 격투에도 뛰어날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는 황제의 옆을 걸었다.

"그리고 내 밑에서 이 제국을 지탱해주는 재상이 있지."

"호오... 그렇군요."

황제가 재상을 언급하자 그녀는 대충 흘러들었다.

그녀는 문관에겐 그리 관심이 없었으니까.

황제도 그걸 느꼈는지 재상에 대해선 더 설명하진 않았다.

"마지막으로... 비들이 있지. 누구에게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짐의 여인들이."

"냐아아아."

그렇게 말하며 황제가 품에 안긴 케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케르가 기분이 좋은지 울음소리를 내며 그 손길에 몸을 맡겼다.

"어머나. 듣기와 다르게 뜨거우시네요."

차갑고 냉정하다는 황제의 소문과는 꽤 다른 말이 아닌가?

그녀는 그런 생각하면서 웃는 얼굴로 부채를 펄럭였고, 황제는 고개를 저었다.

"딱히 뜨겁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슬슬 그대는 준비해야겠구나."

"어머나. 그러네요."

그녀는 그제야 시간을 확인하고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럼 밤에 뵈어요?"

쪽.

가볍게 황제에게 손키스를 날리고 멀어지는 그녀를 향해 케르가 으르렁거렸으나 황제는 신경 쓰지 않았다.

'결국 생각대로 되었다고 봐야 하는 건가...'

할바르의 성장을 떠올리며 황제를 미소를 짓고는 집무실로 향했다.

오래 알고 지낸 부하의 성장이 기쁜 일이긴 하나...

그렇다고 그 여운에 젖어 하루의 업무를 거를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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