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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의무방어전-166화 (166/235)

그날은 처음엔 그녀에겐 최고로 기분 좋은 날이었다.

처음으로 본 화려한 황궁.

자신의 마음에 쏙 든 프릴이 가득 달린 멋들어진 드레스, 주변에는 멋진 사람들.

황실 악단의 연주는 사람의 귀를 즐겁게 만들고, 쫙 깔린 비단길을 걸으면서 오고 있는 청년은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화려한 용포를 입고, 당당한 걸음으로 앞서 가고 있었다.

그녀는 설레는 마음으로 자신이 황궁에서 유일하게 알고 있던 황족을 찾아서 분주하게 눈을 움직였다.

'타마드 오라버니는 어디 있지?'

그녀는 이번 행사가 끝나고 같이 놀기로 했던 타마드를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는 늘 그녀가 황궁에 놀러가도 되냐고 물어보면 거절했지만... 이번에는 황궁에서 같이 놀자고 해주었으니까.

벌써부터 그녀는 그와 보낼 하루가 기대되었다.

그 유명한 황궁의 화원도 둘러보고, 황실 연못 위에 자리하고 있는 청화루에서 식사도 해보고 싶었다.

처음으로 온 황궁에서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도 많아서... 그녀는 지금 당장이라도 타마드와 일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없네...'

이상하게도 타마드 씨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프리아의 아네스도 보이지 않았고, 이탈리의 레오니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 부분이 그녀는 아쉬웠지만... 그래도 연주를 들으면서 기분을 풀었다.

그때까지도 행복했다.

재상이 갑자기... 칼을 뽑고 이 즉위식의 주인공을 찌르기 전까진 말이다.

"꺄아아악!"

그녀는 자신이 본 것을 믿지 못해서 비명을 질렀다.

재상이 칼을 찌르고, 그 청년이 재상을 해체하는 데까지... 단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사람들은 황제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도륙당하는 걸 보고 도망치려고 했으나 금위대장이 어느새 출구를 막고 있었다.

새로운 금위대장은 검을 뽑은 채 눈에 살기를 띠고 있었다.

마치... 이곳에 다가오면 죽이겠다는 듯이.

그러자 사태를 짐작한 사람들은 덜덜 떨면서 행동을 멈췄다.

그걸 본 청년은 앞쪽에 있던 여인과 뭐라 뭐라 이야기를 나누더니 그 여자의 목을 날려 버렸다.

그리고는 덜덜 떨고 있는 사람들의 목을 가볍게 날리면서 점점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아직도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단지... 이 모든 게 꿈이길 바랄 뿐이었다.

저벅. 저벅.

그녀가 떨고 있을 때, 이 참혹한 광경을 만들어 낸 청년은 어느새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느새 주변엔 금위대장과 그 황제가 목을 날렸던 여인의 옆에 있던 라오허란 이름의 황자.

그리고 이 모든 학살의 주범과 아버지 뿐이었다.

"이반. 그대도 올 줄은 몰랐구나."

"폐, 폐하... 그, 그것이."

그녀는 그 낮은 목소리에 덜덜 떨었다.

두려웠다.

어떤 상황에서도 믿을 수 있던 아버지마저도 덜덜 떠는 청년.

아니 새로 즉위한 황제가 그녀는 몸서리칠 정도로 두려워서 눈물이 나왔다. 그런 그녀의 드레스는 이미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황제는 그런 그녀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녀는 그런 황제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울면서 고개를 숙였다.

뚝. 뚝.

황제는 피에 젖어선 피를 뚝뚝 흘리면서 짙은 피 냄새를 풍겼다.

구역질이 났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토를 하면서 몸을 떨었다.

'타마드... 도와줘...'

두려웠다.

당장 자신을 저 황제가 방금 사람들처럼 도륙할 거 같아서.

그녀는 지금도 몸이 덜덜 떨렸다.

"이반. 마지막 기회를 주마. 짐의 신발을 핥겠느냐? 아니면... 저기 저 고기들과 같은 운명을 맞이하겠느냐?"

덜덜.

황제의 덤덤한 질문에 이반은 몸을 떨었다.

그 질문이 순수하게 진짜 신발을 핥으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잠시 엉망진창으로 겁을 집어먹은 딸을 보던 이반은 망설이지 않고 그대로 황제의 신발을 핥았다.

그러고는 선언했다.

"저희 오스반은... 폐하의 영원한 충복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래... 그 선택이 운명을 바꾸었구나. 금위대장. 시체를 치우라 지시하고 이 귀빈들도 잘 보호하거라."

귀빈.

순식간에 귀빈이 된 이반은 덜덜 떨면서도 자기 딸을 껴안았다. 그리고는 위로했다.

"괜찮아... 이제 괜찮단다."

그녀는 그 말에 울음을 그치고는 한참을 그렇게 아버지 품에 안겨 있었다.

그런 그녀가 나중에 온 금위대의 보호를 받으면서 들은 소식은...

그녀가 그토록 친애하던 타마드 황자의 죽음이었다.

--

"그 울보가 제법 그럴듯한 아가씨가 되었네요. 신기해라."

자신의 처소에서 아네스는 눈앞에 있는 분홍색 양갈래 머리의 여인을 향해 웃는 얼굴로 말을 걸었다.

우아하게 찻잔을 들어 올리는 그녀의 모습을 멍하니 구경하던 그녀는 곧 표정을 와락 구기면서 질문했다.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아네스는 그 질문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폐하의 약혼녀가... 황궁에 있는 게 그렇게 신기한가요?"

움찔!

황제가 언급되자 그녀가 눈에 띄게 두려워하면서 몸을 떨었다.

그걸 아네스는 측은하게 보면서 말했다.

"저런... 아직도 폐하가 두려우신가요?"

그렇게 말하면서 홍차에 각설탕을 더 집어 넣는 아네스를 보면서 그녀가 입을 열었다.

"너야말로 이상해. 안 무서워? 그런 사람이?"

그녀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이 되묻자 아네스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무섭죠. 이 이상 반해 버리면 돌이킬 수 없을 거 같아서 무섭답니다?"

그렇게 말하며 아네스는 행복한 얼굴로 무언가를 상상하며 몸을 떨었다. 그걸 본 그녀는 질린 얼굴로 몸을 떨었다.

"미친 거 아니야? 예전부터 느꼈지만 레오니만큼 이상해. 너. 아니 더 이상해진 거 같아."

그녀는 아네스에게 솔직한 감상을 늘어놓았다.

지리적으로 가까워서 그런지 그녀와 아네스, 레오니는 평소에도 어느 정도 교류가 있었다.

그런 그녀가 볼 때 아네스는 레오니랑 비슷하게, 아니 그 이상으로 이상해진 거 같았다.

"제가 그렇게 이상합니까?"

그때 마침 도착한 레오니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면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레오니를 보고 잠깐 놀랐지만 곧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레오니를 보았다.

"엘리자베르. 오랜만입니다."

딱딱한 어조로 인사하는 레오니를 보면서 엘리자베르는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다행히 레오니는 그녀가 알고 있는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검을 좀 이상할 정도로 좋아하는 건 변하지 않은 모양이었지만...

"이번 합궁. 엘리자베르 차례라고 들었습니다만."

레오니가 궁녀가 자연스럽게 두고 간 차를 마시고는 물었다.

"어, 그래서 좀... 무서워."

그 질문에 엘리자베르는 솔직하게 본심을 털어놓았다.

두려웠다.

다시 그 사람의 앞에 서야 한다는 게... 둘이서 함께 밤을 보내야 한다는 게... 너무나도 무서웠다.

"전 부러운데요."

"..."

엘리자베르는 눈치 없이 자기 속을 뒤집어 놓는 아네스를 노려봤으나 아네스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정식으로 건의하면 바꿔줄까요?' 같은 말이나 중얼거리고 있을 뿐이었지.

"그리... 무서운 분은 아닙니다."

그러나 레오니까지 황제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하자 엘리자베르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둘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아는 황제는...

그야말로 살인귀였으니까.

--

온몸에 피가 묻었다.

황제는 즉위하자마자 피로 범벅이 된 자신이 웃겨서 그냥 웃으면서 걸었다.

피가 뚝. 뚝. 떨어지며 길을 만들었고, 황제가 만든 그 길을 금위대장과 라오허가 뒤따랐다.

"어딜 가려고 그리 바쁘게 준비하느냐."

멈칫.

황제는 열심히 짐을 싸고 있는 타마드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뒤따라오던 라오허가 몸을 떠는 것이 느껴졌으나 황제는 신경 쓰지 않으면서 가볍게 타마드를 걷어차서 바닥에 쓰러트렸다.

철퍽.

"혀, 형님..."

"짐이... 전에 이야기하지 않았느냐. 짐을 적으로 돌리지 말라고."

바닥에 쓰러진 타마드가 황제의 낮은 목소리에 몸을 떨었다.

맞은 부위의 고통보다 당장 앞에 있는 황제가 타마드는 더 무서웠다.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빌라면 빌고, 발을 핥으라면 핥겠습니다. 형님! 절 살려주신다면 제가 형님의 앞잡이가 되겠습니다. 칼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부디..."

꾸욱.

황제는 진짜 자기 발이라도 핥을 기세로 빌고 있는 타마드의 머리에 발을 올리고는 그런 그를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참으로 딱하구나."

늘 당당하던 자기 동생이 눈물, 콧물, 오물까지 쏟으면서 비는 모습은 참으로 안쓰러웠다.

"진작 그리 했어야지. 그랬으면 라오허처럼 살았지 않느냐."

더는 두고 볼 수 없어서 황제는 그 모습을 더는 볼 수 없게 해주었다.

콰직!

그대로 밟아서 타마드의 머리를 터트려 버린 황제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걸로 내부 정리가 대충 끝났구나."

황제의 가장 큰 정적이었던 타마드는 그렇게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그건... 아직도 황제에겐 꽤 인상 깊게 남아 있었다.

그토록 목숨을 구걸하던 동생을... 마치 벌레처럼 밟아죽인 것이었으니까.

--

"그래, 도착했다고."

황제는 미령의 보고를 들으면서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황제에게도 그녀는 영 껄끄러운 존재였다.

그녀가 타마드와 친밀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그녀에게 자신은 그저 두려운 존재일 테니까.

"걱정이 많아 보이시네요."

느긋하게 차를 마시던 세이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아무래도 귀려가 준 눈은 기의 소모가 너무 심해서 그런지 그녀는 지금은 눈이 아닌 심안으로 황제를 보고 있었다.

"점이라도 쳐줄까?"

귀려도 그런 황제가 조금 걱정스러웠는지 과자를 먹던 손을 멈추고는 진지하게 질문했다.

"무슨 점을 말이냐."

황제가 관심을 보이자 귀려는 가볍게 눈을 굴리더니 대답했다.

"사랑점?"

"...필요 없다."

뭔 그런 점을... 황제는 딱히 그런 점에 의존할 정도로 사랑이 급한 사람은 아니었다.

"어라? 여기서 꽤 인기였는데..."

이상하다?

귀려가 그런 생각하면서 고개를 갸웃하자 황제는 한숨을 푸욱 쉬었다.

"짐이 그런 점을 쳐서 뭘 하겠느냐."

"음... 그런가?"

귀려는 머리를 긁적이고는 입을 다물었고, 황제는 눈을 감았다.

합궁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한 건 분명 자신이지만... 막상 다시 시작하니 걱정만 들었다.

그녀에게 자신은 무엇일까?

그녀는 그때의 학살을 직접 본 당사자다.

아직도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을 가능성도 높았다.

'그걸 어찌 해결해야 할까?'

황제는 알 수 없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렇기에 황제는... 한참을 그렇게 그녀에게 해야 할 말을 고르고 정리했다.

당장 밤에... 그녀와 마주하기가 참으로 힘들 거 같단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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