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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의무방어전-167화 (167/235)

"세상에! 그럼 그게 공공연한 거였단 말인가요?"

나르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세헤라자드도 흥미를 숨기지 않는 얼굴로 황태후의 말을 경청했다.

"황제도 남자이기 이전에 사람이지 않느냐. 그 많은 여인을 전부 마음에 두고, 품어 주는 건 어려운 일이란다. 당연히 소외되는 비가 있기 마련이고..."

그 경우엔 뭐... 뻔했다.

바로 정인을 만드는 것.

그런 점에서 황제가 예전에 나르타에게 했던 말은 지나치게 솔직했을 뿐이지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황제는 소외된 비들이 정인을 만드는 것을 묵인해왔으니까.

"물론 황후에겐 상관 없는 이야기란다."

물론 황후는 당연히 예외다.

황후는 태자의 어머니이고, 나아가 황태후가 될 여인이니까.

애초에 그 어떤 황제도 잠자리에서 황후를 외면할 수는 없었고, 그건 아마도 지금의 황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러니 사실 황후는 황제가 마음에 안드는 경우만 아니면 정인을 만들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오히려 괜히 정인을 만드는 건 괜한 약점을 만드는 짓이라서... 황후가 정인을 만드는 경우는 역사를 따져봐도 몇 되지 않았다.

"그럼 황태후 폐하 시절에도..."

있었나요?

나르타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고, 황태후는 부드럽게 웃었다.

"없었을 것 같니?"

"...아뇨."

'하긴 없을 수가 없겠구나.'

아무리 무문제께서 절륜하셨다고는 하나 그래도 몸 자체가 그리 건강하신 분은 아니었다.

당연히 무문제께서 밤을 보낼 수 있는 여인의 수는 한정되기 마련이었고, 그렇게 소외된 여인들이 그저 독수공방으로 밤을 지새웠을리는 없으니까.

나르타가 그 사실을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이자 세헤라자드는 생각에 잠겼다.

"후후,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황상께서 그대들을 외면할 가능성은 없으니 말이다."

황태후가 그런 그녀들의 반응을 보며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은 안했사옵니다. 설령 폐하께서 소첩을 잊으시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사옵니까. 소첩은 끝까지 폐하를 기다릴 자신이 있사옵니다."

세헤라자드의 흔들리지 않는 대답을 듣고 황태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정말이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구나.'

특히 세이나와 미르예프는 거의 신처럼 신봉하던데... 참으로 대단한 아이였다.

황태후는 괜히 흐뭇해져선 차를 마시다가 뒤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촉감에 바로 짜증을 냈다.

"마리아아아!"

"뱃속에 아이가 놀라지 않느냐. 이 안에 있는 게 누구 아이인지 모르지는 않을 터인데."

능청스럽게 대꾸하는 마리아가 참으로 얄미웠지만 딱히 틀린 말은 없었기에 황태후는 입을 꾸욱 다물었다.

마리아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녀의 뱃속에 아이는 달랐으니까.

"정말이지 두 분은 정말 사이가 좋으시네요."

"..."

그 모습을 본 나르타가 웃는 얼굴로 말하자 황태후는 기분이 팍 상한 얼굴로 침묵했다.

마리아는 그 모습을 보면서 한참을 웃더니 그대로 황태후 옆에 털썩 앉았다.

"그래서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하고 있었기에 본녀를 따돌리고 대화 중이었느냐?"

흥미가 가득한 눈으로 이곳에 있는 이들을 둘러보며 마리아가 묻자 나르타는 웃으면서 대충 셋이 나눈 이야기를 요약해서 들려주었다.

"쌍둥이들과 이야기는 끝나셨나요?"

나르타의 질문에 마리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대로 늘어졌다.

"학구열이 많은 제자는 피곤하구나. 임신한 몸으로 가르치기까지 하려니 조금 힘들어."

말은 그렇게 해도 딱히 싫은 얼굴은 아니라서... 나르타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폐하께선 잘하고 계실까요?'

나르타는 불안하긴 했다.

최근 황제의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다고 할까?

뭔가 고민이 많아 보였으니까.

그렇기에 나르타는 약간의 불안을 느끼면서도 일단 이야기에 집중했다.

폐하를 믿자.

지금은... 그런 생각밖에 할 수 없었으니까.

--

'무서워...'

그녀는 황제의 처소에 덩그러니 남겨진 채 몸을 떨었다.

프릴이 가득 달린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채 그녀는 마치 버려진 강아지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방은 넓었고, 화려했으나 그녀는 오히려 너무 넓어서 오한이 돋았다.

'조금...'

살펴볼까?

이대로 겁에 질려있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그런 생각하면서 방 안을 구경했다.

화려한 장식품.

열심히 닦았지만 사용한 흔적이 느껴지는 가구는 몇 개 되지 않는 삭막한 방.

그녀는 무심결에 가장 사용한 흔적이 많이 느껴지는 서랍장에 눈을 주었다.

그저 잠을 자는 용도로 사용된 것처럼 보이는 이 황제의 처소에서, 유독 손길을 많이 탄 흔적이 있는 저 서랍장은 너무나도 이질적으로 보였다.

그녀는 긴장한 얼굴로 서랍장에 손을 가져가서는 열었다.

"...약?"

그녀는 서랍장에 들어 있는 다량의 약이 든 약병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무슨 약이지?'

황제가 약을 먹는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지병이 있다는 소문도 들은 적이 없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많은 약이 황제의 처소에 있는 거지? 그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거 그러니까... 흠, 신경 안정제?'

약병에 적힌 이름을 읽어 본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약이지?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였다.

"...본 건가."

"!"

그녀는 뒤에서 들리는 낮은 목소리에 몸을 떨었다.

잊을 수 없는 목소리였다.

얼굴조차 보지 못했지만... 아직도 저 목소리만은 기억에 생생했다.

두근.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다.

숨을 쉬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진다.

그만큼의 압박감이... 뒤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그거 내려놓거라."

황제는 조금 화가 난 거 같은 목소리로 말했고, 그녀는 덜덜 떨면서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 약은..."

그녀는 덜덜 떨면서도 뭐라고 말하려고 했고, 황제는 싸늘한 목소리로 다시 한번 말했다.

"내려놔."

"..."

영혼까지 얼어붙을 거 같은 싸늘한 황제의 말에 그녀는 덜덜 떨면서 약병을 내려놓았고, 황제는 그걸 확인하고는 차갑게 말했다.

"누가 멋대로 짐의 방을 뒤져볼 권리를 주었느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로 추궁하는 황제의 모습에 그녀는 덜덜 떨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아, 그, 그게... 그러니까..."

황제는 애처로울 정도로 덜덜 떠는 그녀를 보면서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왜 화를 냈지?

절대 화를 낼 일이 아니었는데...

황제는 스스로가 화를 내고도 믿어지지 않았다.

'이런...'

당장... 딱히 숨길 생각은 없었다.

그건 저렇게 무성의하게 놔둔 약병이 증명하고 있었을 텐데...

어째서 자신은 화를 낸 걸까?

황제는 스스로가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기에 자신의 잘못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구나."

그렇기에 황제는 사과했다.

바닥을 보니 그녀가 공포로 인해서 이미 지렸는지 물이 흐르고 있었다.

"..."

황제는 그것을 자기 용포를 벗어서는 닦았다.

그걸 본 엘리자베르가 눈을 크게 떴다.

설마 그 황제가... 직접 이런 짓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짐이... 아니다. 내가 널 두렵게 만들었구나."

다시 한 번 황제가 사과하자 엘리자베르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상해.'

이런 사람이 아닐 텐데.

고작 그런 거로 사과할 사람이 아닐 텐데...

어째서 사과하는 거지?

그녀가 알고 있던 황제가 아니었다.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고, 조롱하는 악마가 아니었다.

그녀의 눈앞에 있는 것은...

"...그 약은. 그냥 짐이 잠들기 위해서 먹는 약이다."

그저 상처 받은 인간이었다.

황제는 그런 그녀와 거리를 두고는 의자에 앉아서는 대답했다.

"잠이 들기 위해서... 인가요?"

엘리자베르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묻자 황제는 그런 그녀를 안쓰럽게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째서죠?"

그토록 강한 황제가, 그토록 무서운 황제가...

잠이 못 들 이유가 있나?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두려우니까."

황제는 그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했다.

"무엇이... 두려운 거죠?"

엘리자베르는 궁금했다.

저 무서운 황제는 무엇이 두려운 걸까?

"...그게 궁금하느냐? 별일이구나."

황제는 그렇게 답하면서 메마른 웃음을 짓더니 눈을 감았다.

무엇이 두려웠냐고?

황제는 많은 것이 두려웠다.

언제 배신할지 모를 형제들, 정을 주면 떠나가는 신하들, 어느 순간 자신을 향해 칼을 꽂는 궁녀들...

참으로 많은 것이 두려웠지만 황제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늘 하나였다.

"나 자신이."

자신의 죄가 두려웠다.

모두가 괴물처럼 보던 자신이... 정말 괴물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

황제는 그 무엇보다 두려웠다.

"...얼굴을 봐도 될까요?"

여전히 애처롭게 떨고 있던 그녀가 힘겹게 입을 열어서 요구했다.

그녀는 갑자기 황제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황제의 허락이 떨어지자 그녀는 힘겹게 시선을 들어서 황제를 보았다.

"아..."

그녀가 상상하던 모습과는 달랐다.

저런 고운 얼굴로 사람을 그렇게 죽여 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왜... 아네스와 레오니가 그렇게 말하는지 우습지만 조금 이해된다고 생각해 버렸다.

"그런 얼굴이었네요."

여전히 몸은 떨리고 있다.

그녀는 아직도 황제가 무서웠다.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때의 참상을.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저런 얼굴로 그토록 끔찍한 학살을 자행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어도... 그 사실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황제는 그녀를 기다렸고, 그녀는 그대로 조심스럽게 황제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그 손을 잡아보았다.

굳은살로 단단한 황제의 손은... 따스했다.

그토록 무서운 사람의 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따스했다.

"전 당신이 두려워요."

그녀는 솔직하게 말했다.

여전히 황제가 두렵다.

그런데...

왜 그렇게 두려운 사람의 얼굴이... 슬퍼 보일까?

그렇게 무서운 사람인데.

두려울 것이 없어 보이는 사람인데.

그녀가 본 황제의 얼굴은 참으로 슬퍼 보였다.

그게... 그녀는 마음이 갔다.

"그런데도... 따뜻하네요."

그녀가 황제의 뺨을 부드럽게 만지면서 말했다.

따스했다.

황제의 체온을 느끼면서, 그녀는 눈을 감았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지만...

꼬옥,

그녀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확실히 황제는 달라졌다.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알던 황제와는 달랐다.

그러니까...

그녀도 달라지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그게... 공평한 거니까.

그런 생각하면서 그녀는 황제의 품에 꼬옥 안겼고, 그걸 잠시 놀란 듯 쳐다보던 황제는 부드럽게 그런 그녀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녀가 그 손길에 두려운 듯 떨면서도... 황제의 손길을 거부하진 않았다.

"잠시... 이대로 있어도 되나요?"

여전히 두려운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에게 황제는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래."

그 목소리는 너무나도 따뜻해서, 자상해서.

엘리자베르는 울어버리고 말았다.

"...고마워요."

조금 물기가 어린 목소리로... 엘리자베르는 힘겹게 대답했다.

그녀는 한참을 그렇게 황제의 온기를 느끼면서 안겨 있었다.

--

황제는 알고 있었다.

자신은 그리 매력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적을 만들기 쉬운 사람이었다.

날이 선 태도는 늘 적을 만들었고, 그 적들은 황제의 목숨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그런 점에선 타마드의 말이 옳았다.

그렇기에 황제는... 자신이 황제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적을 만드는 자가 어찌 사람들 위에 설 수 있을까?

적어도 황제는 그리 생각했으니까.

사실 형제 중에선 아무도 황제에 어울리지 않았다.

모두에게 친화적이면서, 강하고, 어질면서, 현명한.

그런 완벽한 자가 황제가 되어야 한다고 그는 늘 생각했지만...

그가 생각하는 황제란... 처음부터 없었다.

그런 건 전부 허상이었다.

애초에 그 어떤 황제도 완벽하지 않았다.

대륙을 통일한 천무제도, 다른 대륙을 발견해낸 신문제도, 제국의 법을 다시 세운 법문제도, 제국 최고의 부흥기를 이끈 금문제도, 최후의 용을 사냥한 독무제도.

그 어떤 황제도 완벽한 황제는 없었다.

어디 하나가 부족했고, 어느 한 곳에 문제가 있었다.

아니면 아예 무문제처럼 문제투성이인 황제도 있겠지. 사실 그런 쪽이 좀 더 많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황제는 조금은 자신에게 너그러워져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들었군.'

그 부족한 황제는 오늘도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품 안에서 애처롭게 떨던 그녀는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자신이 타마드처럼 말주변이 좋았으면, 아니면 진민처럼 눈치가 조금이라도 좋았으면, 이 여인을 달래줄 수 있었을까?

어려운 문제였다.

황제는 합궁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여기고는 궁녀들을 불러서 그녀가 지린 것을 닦은 용포를 세탁하라 명령하고는 궁녀가 가져온 옷으로 그녀의 옷을 친히 갈아입혔다.

그러고는 침대에 엘리자베르를 눕히고는 이불을 덮어준 뒤, 의자에 앉아서 천장을 보았다.

'아무튼 한 건 제대로... 한 건가?'

교접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녀가 어느 정도 진정한 거 같았다.

그런 점에서 완벽한 합궁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게 아닐까?

애초에 자신은 완벽하지 않다.

그러니까... 조금 부족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잠에 들었다.

--

"으음..."

엘리자베르는 잠결에 뒤척거리다가 눈을 떴다.

푹신한 이불의 감촉. 그리고 따스한 온기.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자는 곳이 황제의 침대라는 걸 깨닫고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폐하는?'

그녀는 황제를 먼저 찾았다.

침대 옆에서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아...'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그녀는 곧 의자에 앉아서 곤히 자는 황제를 발견하고는 일단 머리를 묶었다.

헝클어진 자신의 분홍색 머리를 양갈래로 정리한 그녀는 조심스럽게 이불 밖으로 나왔다.

'옷은 누가...'

새하얀 프릴이 달린 잠옷으로 바뀐 자기 옷차림을 보고 그녀가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혔다.

설마 폐하께서 갈아입히신 건가?

그건 조금... 많이 부끄러웠다.

'얼굴은 참... 잘생겼네.'

그렇게 조심스럽게 다가와 황제 앞에 선 그녀는 자는 황제의 얼굴을 구경했다.

곤히 잠들어 있는 황제의 얼굴은 그 학살의 주범이 맞나 싶을 정도로 순하고, 또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이렇게 고운 얼굴로... 그렇게 잔인한 짓을 서슴지 않고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한참 그렇게 황제의 얼굴을 구경하던 그녀는 타마드를 떠올렸다.

그녀는 타마드가 좋았다.

그는 늘 자신감이 넘쳤고, 늘 재미있게 말을 해줬으니까.

그래서... 그를 죽인 황제와 아직도 같은 방에 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좋은 사람 일지도.'

황제가 생각보다 나쁜 사람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을 그녀는 지울 수가 없었다.

자신이 실례한 것도 그 용포가 더려워지는 것은 신경 쓰지 않으면서 그 손으로 직접 치워주었다.

그런 그의 행동은 배려로 가득했고, 그의 목소리도 처음만 제외하고는 정말이지 자상해서...

자꾸만 마음이 흔들렸다.

이러면 안 되는데. 죽은 친우인 타마드에 대한 예의가 아닌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어느새 그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쁜 사람이야."

차라리 정말 나쁜 사람이면 좋았을 텐데.

그냥 괴물 같이 무서운 사람이어서... 마음 편히 미워하고 두려워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녀가 본 황제는 그렇게 무서운 사람도, 나쁜 사람도 아니었다.

오히려... 상처를 입고 이미 한계에 몰린 거 같은, 그런 아슬아슬함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그녀는 황제에게 이상하게 마음이 갔다.

스윽.

그녀는 홀린 듯이 황제의 얼굴에 손을 가져갔다.

그 순간이었다.

터억.

갑자기 황제가 그녀의 손을 잡아채고는 눈을 떴다.

짧았지만. 엘리자베르는 황제의 얼굴에 담긴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경계심.

몹시도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대였나."

황제는 묘하게 안심한 얼굴로 그리 중얼거리고는 손을 놓아주었다.

얼마나 강하게 잡았는지 그녀의 손은 붉게 부어올라 있었다.

"미안하구나."

그 손을 본 황제가 진심으로 사과하자 엘리자베르는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 아직 새벽이네요?"

엘리자베르가 아직 어두운 방을 보면서 묻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니까 그대도 좀 자거라."

황제가 다시 눈을 감자 그녀는 조금 샘이 났다.

이대로 자고 끝낸다고?

그래도 일단은 합궁이고... 그녀도 그때 무얼 하는지 정도는 배워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저런 반응이라니? 자신에게 성적 매력이 없다는 이야기인가?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녀는 조금 퉁명스러워진 목소리로 물었다.

"이대로 끝낼 건가요?"

"...그대는 짐을 두려워하지 않았느냐?"

그런 그녀의 반응에 황제가 왜 그런 말을 하냐는 듯이 의아한 얼굴로 물어왔다.

그게 괜히 더 얄미워서... 엘리자베르는 황제의 무릎 위에 털썩 주저앉으면서 대답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엉덩이의 감촉은 황제의 물건을 일으켜 세우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두렵죠. 하지만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하잖아요. 그, 근데 뭐죠? 왜 갑자기 딱딱한 게..."

"..."

그녀가 황제의 물건을 느꼈는지 당황한 얼굴로 중얼거리자 황제는 생각했다.

'이게 맞나?'

굳이 안 해도 상관은 없을 텐데...

황제는 그런 생각했지만... 일단 그녀에게 어울려주기로 했다.

다른 자도 아니고 자신을 그토록 두려워하던 여인이 먼저 하자고 말하는 데 거절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었고, 그녀의 말은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으니까.

"그 할 일이라는 게... 이런 걸 말하는 것이냐?"

주물.

황제가 그녀의 봉긋하게 솟은 가슴을 부드럽게 움켜쥐면서 묻자 그녀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그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아, 알면서 물어보지 마세요."

"...짐은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였는데?"

"그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황제의 질문에 엘리자베르가 바로 부정했다.

타마드를 좋아하긴 했지만 사랑이라고 할 정도의 감정은 아니었다.

그녀의 단호한 반응에 황제는 쓴웃음을 지었다.

"타마드가 그 말을 들으면 슬퍼... 하진 않으려나."

그 녀석은 원래 여자가 많은 편이었으니까.

애초에 이 여인이 남자를 모르는 것 자체가 타마드가 그녀에겐 그리 진심은 아니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타마드가 진심이었다면 그녀가 이렇게 남자를 모를 리가 없으니까.

"그, 그런데 언제까지 만지고 있을 건가요? 조금 부끄러운데요?"

수줍게 얼굴을 붉히면서 그녀가 묻자 황제는 새삼 자신이 계속 그녀의 가슴을 만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 미안하구나."

황제가 사과하면서 그녀의 가슴에서 손을 떼자 그녀는 조금 헝클어진 옷매무새를 정돈하면서 투덜거렸다.

"...정말이지.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면 되나요? 한 번 배워 보고 싶어요."

그래도 나름 밤일에 관심이 있는지 그녀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그 질문에 황제는 잠시 고민했다.

어떻게 가르쳐야 하지?

황제는 그녀가 가르침을 요구하니까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참으로 막막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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