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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의무방어전-173화 (173/235)

'폐하라면...'

수이는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면서 그를 생각했다.

솔직히 너무 어릴 때라서 자세하게 기억나진 않았다.

어릴 땐 그냥... 아, 이 사람이 차기 황제구나. 예쁘네.

그런 생각을 했던 것뿐이었다.

'열심히 해야지.'

부족의 주술사에서 황제의 비가 되었어도 그녀는 자신이 할 일이 변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그저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 되니까.

물론 아는 사람이 한 명 없는 이 황궁은 참으로 어색해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런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최선을 다해서 작업을 끝냈다.

"이런 모습이었던 거 같은데... 얼굴을 보고 올 걸 그랬나요."

수이는 완성된 인형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기억을 최대한 더듬어서 황제의 인형을 만들긴 했는데... 기억과 다르면 곤란했으니까.

'슬쩍... 보고 올까요?'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녀가 사는 쳇코족은 외부와 단절된 곳이었고, 그렇기에 그녀는 황제의 소문 같은 건 듣지 못했으니까.

그렇기에 그녀가 기억하는 황제는 조금 어른스럽고 예쁜 소년이었고, 그런 소년을 무서워할 이유는 없었다.

방을 나와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던 그녀는 황제를 찾아서 이동했다.

황제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버지의 말대로 가장 강한 기운을 찾아서 이동하면 되니 간단했으니까.

"...아."

그리고 거기엔 있었다.

정자에서 가볍게 식사하고 있는 황제의 모습이.

간단하게 먹을 생각이었는지 황제의 앞에는 샌드위치 몇 개와 커피, 그것들과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 고기 산적이 놓여 있었다.

물론 그걸 감안 해도 황제의 식탁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초라했지만.

"무슨 일이냐."

당연하게도 그녀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듯이 황제가 말을 걸어왔다.

사락.

물론 그러면서도 손은 부지런하게 서류를 넘기고, 다른 손으로는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다.

"그... 일하고 계셨나요?"

"일이 아니라 간단하게 보고서만 읽고 있었지."

황제가 여전히 눈은 보고서를 향한 채 대답하자 수이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게 일 아닌지요?'

그녀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정작 황제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다른 곳에서도 순조롭게 진척되고 있는 모양이구나. 적어도 관도 내에선 올해 안에는 달리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뭔가를 바쁘게 중얼거리면서도 황제는 그녀에게 손짓 했다.

그 손짓에 멍하니 이끌려 그녀가 황제의 앞에 앉자 황제가 물었다.

"식사는 했느냐?"

꼬르륵.

"아, 그, 그게..."

작업을 하느라 하지 않았다.

그녀는 배에서 난 소리에 부끄러워하면서 고개를 푹 숙였고, 황제는 그걸 보더니 자신이 먹던 샌드위치를 나눠서 그녀에게 주었다.

"이거라도 먹고 있거라. 지금 사람을 시켜서 식사를 내오라고 할 터이니."

"아, 감사합니다."

황제가 자신이 들고 있던 샌드위치를 그녀에게 내밀자 그녀는 선뜻 그 샌드위치를 받아서는 먹기 시작했다.

그걸 황제는 조금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이걸 넉살이 좋다고 해야 할지."

"?"

황제의 중얼거림에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자 황제는 고개를 저었다.

"뭐, 짐이 그만큼 유해진 모양이겠지. 많이 먹거라.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요리에 신경 쓰라고 할걸 그랬구나."

"?"

우물우물.

마치 다람쥐가 음식을 집어먹는 것처럼 입에 한가득 샌드위치를 넣고는 우물거리던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자 황제는 피식 웃었다.

"뭐... 맛있으면 다행이구나. 더 먹거라."

꿀꺽.

"그... 폐하께서는 괜찮으신가요?"

다시 샌드위치를 하나 집으면서 그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자 황제는 손사래를 쳤다.

"이미 충분히 먹었다."

그 말에 안심한 그녀가 샌드위치를 먹어치우고는 이번엔 고기 산적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황제의 시선이 갑자기 그녀를 집요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우물. 우물.

"그... 맛있느냐?"

그녀가 산적을 먹는 걸 묵묵히 보고 있던 황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치 뭔가를 기대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엄청 맛있네요."

화아악.

그러자 황제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그렇지? 짐 역시 그리 생각하고 있단다. 다행히 그대하고는 이야기가 잘 통하겠어. 많이 먹거라."

상선을 시켜서 식사를 더 가져오게 시킨 황제는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그녀가 식사하는 걸 지켜보았다.

'다행이다...'

그녀는 그런 황제의 얼굴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과거와 그리 달라진 게 없어서.

인형은 굳이 수정하지 않아도 괜찮을 거 같았으니까.

--

"기우제를 위해서 폐하께서 이곳을 찾는다는 구나."

쳇코족의 주술사인 그녀의 아버지는 물뱀을 굳혀서 만든 지팡이를 어루만지면서 중얼거렸다.

그들은 늘 물과 친화적인 민족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황제는 가뭄이 있을 때마다 늘 쳇코족을 찾았다.

물론 날씨를 다루고자 할 때는 용인을 찾았지만...

비가 언제 올지를 확인할 때는 쳇코족의 주술사만큼 정확한 자는 없었으니까.

"잘 보고 배우거라. 미래에 네가 해야 할 일이다."

엄숙한 얼굴로 말하는 아버지를 보며...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그렇게 믿었다.

그 소년을... 만나기 전까진.

그게 그녀에게 정해진 미래였으니까.

--

"달의 마지막 날에 비가 오겠군요."

기우제를 끝내고 천막으로 돌아온 주술사가 엄숙한 얼굴로 선언하자 앞에 있던 황제가 기쁜 얼굴로 웃었다.

"그거 다행이군. 그렇지 않느냐. 태자."

"...어찌 그걸 확신하지."

움찔.

처음엔 차가운 소년의 말투에 놀라던 주술사는 곧 물뱀의 허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주술입니다."

"참 간단한 대답이구나. 허나 확실하겠지. 그대 정도의 뛰어난 주술사가 주술로 알아본 것인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태자의 말투는 여전히 차가웠으나 그 안에 담긴 것은 주술사의 능력에 대한 신뢰였기에 주술사는 솔직하게 감사를 표했다.

"뒤에 있는 저 아이는 그대의 여식인가?"

그걸 지켜보고 있던 황제가 뒤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조그마한 소녀에게 시선을 주었다.

아직 어리긴 하지만 미래가 기대되는 외모였다.

황제는 자신의 아들에게 딱 어울릴 거 같단 생각을 했다.

"네, 부족하지만 제 뒤를 이을 차기 주술사입니다. 딸아. 인사하거라."

"수이라고 하옵니다."

태연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한 소녀가 태자의 얼굴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왜 그렇게 보느냐?"

태자가 그 시선을 눈치채고 진지하게 질문하자 수이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예쁘다고 생각해서요."

"...조금 당혹스럽구나."

그 시절의 태자는 딱히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것도... 자기 면전에서 말이다.

태자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리자 주술사는 긴장했고, 황제는 한참을 끅끅대며 웃었다.

"폐하."

천막에서 나와서 황제의 뒤를 따라 걷던 태자가 입을 열었다.

"왜 그러느냐?"

조금 전 상황이 어지간히 재미있었는지 입가에서 미소를 지우지 못한 황제를 보면서 태자는 조금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제가 예쁘다는 말을 들을 사람입니까?"

"...너한테 필요한 건 검보단 거울이었구나."

황제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말하자 태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무슨 의미입니까? 사실이라는 겁니까? 아니라는 겁니까?"

호기심이 가득한 태자의 질문에 황제는 웃었다.

저렇게 궁금해 하는 모습을 보니까 더 말해주기가 싫었다.

"그건 나아중에 다 스스로 알게 될 거란다. 안 말해 줄 거야."

괜히 심술을 부리는 황제를 보면서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던 태자는 얌전히 황제를 따라 걸었다.

"...당혹스럽더구나."

주술사는 떠나는 둘을 보면서 수이에게 말했다.

"그런가요?"

이 아이는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짓을 한 건지 알고는 있는 걸까?

태자가 조금이라도 성격이 나빴다면 그녀의 입이 잘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정말이지. 그보다 태자라..."

주술사는 고작 7살짜리 어린 애가 저렇게 위엄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래서 마음에 들었느냐?"

"네. 엄청 반짝거리고 예뻐서..."

신난 얼굴로 설명하는 수이를 보면서 주술사는 생각했다.

저 아이에겐 어쩌면 주술사보다는... 황제의 비가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고.

기왕 합궁을 보낼 거면 황제에게 호의적인 아이를 보내는 것이 정답이겠지. 적어도 주술사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른 후계자를 찾아봐야겠구나.'

그때 이미 주술사는 다음 합궁에 보낼 아이를 정했다.

저 태자가 멀쩡하게 황제가 된다면...

그때는 이 아이가, 그 합궁 상대가 될 것이다.

주술사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

'준비는 끝.'

황제와 식사를 끝내고 돌아온 수이는 인형을 침대에 놓고는 옷을 갈아입었다.

이곳에서 받았던 화려한 수가 놓인 한복이 아닌, 쳇코족 전통 복장이었다.

가슴만 간단하게 가린 물뱀의 가죽으로 만든 상의와 역시 골반 쪽만 제대로 가린 속옷 느낌이 드는 가죽 옷을 입은 그녀는 머리에는 매의 깃털로 만든 장식을 쓰고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황제를 기다렸다.

'순서가...'

수이는 차분하게 해야 할 일의 순서를 외우면서 의자에 앉아서는 불안한 얼굴로 지팡이를 매만졌다.

원래는 주술사들의 전유물이던 물뱀으로 만든 지팡이 대신 그녀가 들고 있는 것은 번개를 맞은 오동나무에 매의 부리를 달은 지팡이었다.

드륵.

황제가 그 순간 안으로 들어오자 그녀는 환하게 웃으면서 황제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그래."

주인을 만난 강아지 같군.

황제는 그녀를 보면서 그런 평가를 내리고는 침대 위에 있는 자신을 닮은 인형을 보았다.

"이건... 뭐지?"

"아! 쳇코족의 전통 방식으로 하기 위해서... 잠시만요."

직접 보여주는 게 이해가 빠르겠지.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는지 황제에게 다가와 양해를 구하고는 머리카락을 하나 뽑아갔다.

그러고는 황제의 인형에 넣고는 꼬옥 끌어안았다.

"!"

황제는 갑자기 자기 몸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감촉에 놀란 표정을 지었고,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이런 거랍니다. 이건 폐하와 연결되어서 그러니까... 확인하는 용도예요."

"무엇을."

황제가 솔직하게 궁금하다는 듯이 묻자 그녀는 해맑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사실 이 인형은 완전히 연결된 건 아니랍니다. 보세요."

뚜욱.

그녀가 웃으면서 팔을 뽑았으나 황제에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팔도 멀쩡했다.

꾸욱.

"보셨죠?"

다시 인형 팔을 붙이면서 그녀가 웃자 황제는 신기하다는 듯이 자기 인형을 움직여보았다.

"신기하구나. 해서 이건 왜 하는 것이냐."

신기하긴 한데 여전히 그 목적을 모르겠다.

황제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녀가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감촉 같은 건 느끼셨죠? 이건 그러니까... 전통 같은 건데요. 이 인형은 말이죠. 폐하께서 그러니까 그... 뭐죠? 그 하얀거 나오는 게 있잖아요."

그녀가 손을 휙휙 흔들면서 말하자 황제는 설마 하는 얼굴로 대답했다.

"...사정을 말하는 것이냐?"

"네! 그거요. 아무튼 그게 나오면 인형이 하얗게 변하거든요. 그걸로 제대로 첫날밤을 보낸 것을 웃어른에게 확인을 받고 불태우는 거랍니다."

"...신기한 풍습이구나."

황제가 솔직하게 감상을 이야기하자 수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제대로 첫날밤을 보내지 않는 불경한 자들이 많아서 생긴 풍습이라고 들었어요. 이런 말하긴 뭐 하지만 저희 쳇코족에서는 남자가 그리 잠자리에 적극적이지 않답니다."

첫날밤을 거부하는 남자가 하도 많아서 생긴 풍습이지만 그냥 자위하고 끝내는 남자도 있어서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었다.

"왜 그런 일이..."

"쳇코족에서는 일정 나이까지 여인과 관계를 맺지 않으면 우수한 주술사가 될 수 있다는 그 미신이 있어서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볼을 긁적였다.

"혹시 폐하도 그런 걸 믿으시나요?"

"...그런 미신이 있는지도 몰랐구나."

황제는 처음 들어본다는 듯이 반응했다.

애초에 이미 그 논리면 황제는 절대로 우수한 주술사가 될 수 없었으니까.

"다행이다. 그럼 이건 필요 없었겠네요."

"..."

황제는 정말 태연하게 웃으면서 발정제를 집어넣는 그녀의 모습에서 오싹함을 느꼈다.

만약 믿었으면 황제한테 발정제를 써서라도 관계를 했을 거란 이야기가 아닌가.

정상적인 여성의 사고방식은 절대 아니었다.

"그럼 시작할까요?"

그녀가 황제의 품에 안겨 오면서 말하자 황제는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눈을 감고는 마치 뭔가를 기다리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살짝 내밀어진 입술이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기에 황제는 가볍게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황제의 입술이 작고 부드러운 그녀의 입술에 닿자 그녀의 여린 몸이 작게 떨렸다.

"신기하네요."

잠시 후 입을 뗀 그녀가 조금 상기된 얼굴로 중얼거렸다.

"단순한 입맞춤인데... 왜 이렇게 부끄러운 느낌일까요?"

이상하게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녀는 그런 생각하면서 황제의 품에 꼬옥 안겼고, 황제는 그련 그녀를 꼬옥 안아주었다.

'부드럽군.'

참으로 작고, 또 부드러웠다.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그녀를 조심스럽게 안아서는 침대에 눕혔다.

그녀의 조금 거칠어진 숨소리가 들려왔고, 잘 씻은 그녀의 몸에선 장미향이 풍겼다.

"이대로... 하셔도 되는데요."

수이는 그런 황제를 보면서 매력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애초에 지금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단순한 전통복이 아니었다.

다름 아닌 첫날밤에 입는 전통복이라서... 아래엔 이미 바로 넣을 수 있게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냥 전통복인 줄 알았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런 옷을 그냥 입고 다니는 건 조금... 부끄럽지 않나요?"

밑에 구멍만 빼면 달리아랑 노출 자체는 큰 차이 없는 복장 아닌가?

황제는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언급하지는 않았다.

사람이 부끄러워하는 데는 개인 차이가 있는 법이니까.

황제가 전희를 준비하고 있을 때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바로 넣으셔도... 되는데요?"

"전희가 필요하진 않느냐?"

"그, 그게... 딱히 필요하진 않을 거 같아요."

"?"

황제는 그녀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했고, 그녀는 여전히 조금 거친 숨결을 내뱉으면서 말했다.

"그... 사실 약효가 이미 듣고 있어서요."

"!"

그제야 그녀가 왜 이렇게 흥분했는지를 깨달은 황제는 한숨을 쉬었다.

설마...

"먹은 게냐?"

"네... 그게 덜 아프다고 하셔서..."

그야 처음에 약을 먹고 하면 아프지 않겠지.

황제는 한숨을 쉬면서도 삽입을 준비했다.

이대로 체력을 소모하게 두었다간 제풀에 지칠 판이니 그녀가 원하는 대로 바로 시작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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