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잖아... 그런 거 완전."
정신을 차린 그들을 터덜터덜 돌아가면서 겁에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솔직히 무림에선 자신들의 적수를 찾기 힘들었다.
그래서... 어쩌면 그 금위대의 무사라도 상대해봄직하다고 믿었다.
그 생각이 얼마나 오만했는지... 당장 황제한테 검 한 번 제대로 휘둘러보지 못할 정도의 격차가 나는데...
그들 대부분은 이미 마음이 꺾여버리고 말았다.
"봤어? 문지기조차도 우리보다 강해."
덩치 큰 남자는 완전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야 보이는 게 있었다.
황궁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조차도 그들이 이길 수 없는 강자들.
그제야 알았다.
자신들은 고작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는 걸.
"...돌아가자."
덩치 큰 남자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때 단 한 명만이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오히려...
"미안. 그동안 고마웠어."
그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우란...?"
화우란은 그들에게 작별 인사하고는 다시 황궁으로 향했다.
"저기...!"
화우란은 그들이 가는 걸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콧수염이 멋진 남자를 보며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지?"
그 남자가 화우란을 싸늘한 눈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화우란은 당당하게 부탁했다.
"황궁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무과는 다음 달이다만."
정론이었다.
하지만 화우란은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오늘 그토록 대단한 경지를 보았다.
평생을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강함이었다.
그것을 곁에서 보고, 곁에서 배우고 싶었다.
목숨을 걸어도 좋았다.
"제발!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그녀의 애원에 남자.
아니 브레드는 콧수염을 매만지면서 생각에 잠겼다.
"흐음... 어떻게 생각하지 금위대장?"
"저요? 저야... 하, 일단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아마도 저 여자가 원하는 곳은 금위대 같으니."
이희를 데려다주고 있던 모용진은 자신에게 불똥이 튀자 난처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더니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화우란은 잔뜩 기대하는 얼굴로 모용진을 보았고, 그 눈을 본 모용진은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렸다.
"괜히 확인하러 왔다니까... 그보다 이희 님. 괜찮으십니까? 꽤 소중하게 생각하던 부하 아닌지요?"
누가 봐도 저 여자가 핵심인데?
모용진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으나 이희는 오히려 기뻐하는 얼굴로 말했다.
"괜찮아요. 우란이는 제 친구니까. 오히려 그걸 원한다면 제가 부탁하고 싶어요."
'이런...'
적당히 혼내서 쫓아낼 생각이었는데...
그런 부탁을 듣고도 적당히 혼내서 쫓아낼 수는 없었다.
'스스로 꺾이게 만들어야 하나.'
모용진은 귀찮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뭔가... 귀찮은 녀석을 맡게 된 것 같았다.
--
"아무리 이희 님의 친우라고 해도 쉽게 금위대에 들어올 수는 없을 거야."
모용진은 자기 뒤를 따라오는 그녀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화우란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각오하고 있습니다!"
'청춘이구만.'
그 시원한 대답 자체는 모용진도 딱히 싫진 않았다.
오히려 이런 쪽이 배신 걱정은 없어서 낫긴 했으니까. 실력만 있다면.
"어머, 금위대장님. 옆에 여인은 누구인가요?"
그때였다.
한눈에 보아도 감탄이 나오는 미인이 웃는 얼굴로 모용진에게 말을 걸어왔다.
'와...'
엄청 예쁜 여자다. 대체 누구지?
화우란이 그런 생각하면서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모용진이 뭔가 갈등하는 얼굴을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화우란의 어깨에 자연스럽게 팔을 올리면서 말했다.
"제 약혼자입니다. 진지하게 결혼을 고민 중이죠."
"!"
여인은 눈을 크게 떴고, 화우란도 눈을 크게 떴다.
그 순간이었다.
[적당히 말 맞춰라.]
'전음!'
화우란은 무림에선 그야말로 공상에 가깝다고 평가하는 기술인 전음으로 말을 걸어오는 모용진을 보고는 더욱 놀랐으나 일단은 시키는 대로 했다.
당장은 금위대장의 비위를 거슬러서 좋을 게 없었으니까.
"사실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 대답에 눈에 띄게 안타까워하던 그녀는 화우란에게 말했다.
"정말... 행복하셨으면 좋겠네요."
"가, 감사합니다."
그대로 그녀가 빠른 걸음으로 저 멀리 가 버리자 모용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누구예요? 용인 같은데."
그 모습을 보면서 화우란이 조심스럽게 묻자 모용진은 그대로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오르페나 공주님."
모용진이 덤덤하게 대답하자 화우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큰일이잖아요! 거짓말이 들키면..."
호들갑을 떠는 그녀를 보면서 모용진이 무심하게 대답했다.
"알아. 금방 들킬 걸? 지금 잡혀가면 안 되니까 임시방편이지."
잡혀가?
금위대장 정도의 사람이 잡혀갈 일이 있나? 화우란은 그 대답에 혼란스러웠으나 모용진에겐 이게 최선이었다.
그녀의 손에서 준비된 주술을 보고 모용진은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그녀가 또 자신을 잡아가려고 했다는 걸.
화우란을 시험해 봐야 할 상황에서 그녀에게 잡혀가서 희롱당할 시간은 없었다.
물론 뒷감당이 두렵긴 했지만... 미래의 일은 미래의 자신이 해결해줄 거라고 믿으면서 모용진은 애써 무시했다.
"충성!"
금위대의 병영에 도착한 모용진은 금위대 병사의 경례를 받으면서 계속 걸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바로 금위대 병사들이 훈련하는 연무장.
그곳에도 병사들과 무사 몇이 아직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김귀동 병사. 이쪽으로."
그들의 훈련을 중지시킨 모용진이 병사 한 명을 부르자 한참 땀을 흘리고 있던 검을 든 병사가 이쪽으로 와서는 바로 경례했다.
"충성!"
"그래, 이 녀석이 네 상대다. 이기면 바로 병사로 받아 주지."
"...네?"
화우란은 자신이 들은 말을 믿을 수 없어서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고작 병사하고 자신을 붙인다고?
물론 금위대의 수준을 무시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무림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였다.
비천검(飛天劍) 화우란 하면 적어도 무림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병사인데요?"
"그래서? 싫으면 나가."
모용진의 싸늘한 말에 화우란은 연무장으로 올라가서 검을 뽑았다.
그걸 본 김귀동도 연무장으로 복귀했다.
"귀동아 지면 오늘 술은 네가 사는 거다!"
연무장에서 물러난 병사들이 신난 얼굴로 외쳤고, 귀동은 그런 병사들에게 주먹 감자를 날려주고는 자세를 잡았다.
'저게...'
병사 맞아?
틈을 찾아보기 힘든 완벽한 자세에 화우란은 긴장하면서도 바로 공격했다.
"비연파천검(飛煙破穿劍)."
그러자 그녀의 검에서 흐릿한 검기가 쏘아져 나와서는 날카롭게 찔러왔다.
채앵!
그걸 가볍게 막아 낸 귀동은 빠르게 접근해서는 검을 내리그었다.
카앙!
설마 막힐 줄은 생각도 못 했기에 화우란의 반응이 늦었고, 막긴 했지만 자세가 무너진 화우란의 다리에 바로 귀동의 발차기가 들어왔다.
빠각!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무너졌고, 귀동은 그대로 검을 쓰러진 그녀를 향해 내려쳤다.
"그만!"
그 순간 모용진이 외쳤고, 귀동의 검이 화우란의 앞에 우뚝 멈춰 섰다.
"...말도 안 돼. 병사가 아니야. 절대 병사가 아니죠? 절 시험하기 위해서..."
화우란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얼빠진 얼굴로 중얼거리자 모용진이 덤덤하게 귀동에게 질문했다.
"그대가 복무한지 얼마나 되었지?"
"3개월입니다."
귀동의 대답에 모용진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화우란에게 말했다.
"병사가 아니다? 맞아. 이 녀석은 훈련병에서 금위대가 된 지 이제 한 달도 되지 않았어. 아직 금위대의 병사라고 부르기도 뭐한 풋내기지."
즉 귀동은 금위대에서도 가장 약한 병사였다.
"금위대에서 그 누구와 붙어보아도 똑같다. 이 녀석보다 경력이 짧고, 실력이 없는 병사는 금위대에서 없으니까. 원한다면 아무나 상관없으니 다시 해 봐라."
즉 너는 누구와 싸우든 이길 수 없다.
모용진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고, 화우란은 분한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황제와 한 번 겨뤄봤다고 자신이 뭐라도 된 줄 알았던 건가?
화우란은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알고 있었을 텐데.
자신은 이곳에선 그리 강하지 않다는 것을. 그런데도 그런 오만한 생각하고 있었던 건가?
정말이지... 져도 할 말이 없었다.
화우란은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검을 들었다.
"아무나 붙어도... 상관없다고 하셨죠?"
화우란은 부러진 다리로 일어섰다.
'언령에만 의존하는 머저리인지 알았는데. 생각보다 기를 다룰 줄 아는 건가?'
기로 부러진 다리를 고정하다니? 생각보다 소질이 없는 건 아닌가? 모용진은 그런 생각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한수 부탁드립니다."
"이거 원..."
모용진은 자신을 가리키고 있는 그녀의 검을 보면서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으면서도 검을 뽑았다.
"후회하진 마라."
모용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뇌기를 일으켰다.
그 모습을 본 금위대 전원이 몸을 떨었다.
저건... 누가 봐도 진심이었으니까.
"죽여달라고 빌게 해주지."
금위대 전원은 그 말에 화들짝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그들은 알고 있었으니까.
평소 금위대를 훈련시키는 그의 악랄함은... 어떤 의미에선 폐하보다 더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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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사실이야? 진이 녀석 결혼한다고?"
황제는 다짜고짜 찾아와선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오르테가를 보면서 마시던 차를 내려놓았다.
"그게 무슨 소리지?"
그야말로 생뚱맞은 말이었지만 그걸 말하는 오르테가의 얼굴은 진지하고 심각했기에 황제는 긴가민가하고 있었다.
"금위대장이 결혼한다고요?"
황제와 티타임을 즐기고 있던 나르타는 그 말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래! 오르페나 녀석이 완전히 상심해선..."
"누구한테 들었느냐?"
그야말로 금시초문인데?
황제가 그런 생각하면서도 다시 느긋하게 차를 마셨다.
아직 황제는 그리 그 말을 믿지 않고 있었다.
"본인한테!"
"...호오."
그러나 뒤에 이어진 말에 황제가 바로 관심을 보였다.
그 녀석이 진짜 결혼을? 쉽게 넘길 일은 아니다.
황제의 옆에 있던 나르타도 놀라운 일이라면서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상대는?"
"몰라. 모르는 여자인데. 이번 합궁 상대의 손님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그 여자인가?'
화우란이었나?
황제는 대충 누구인지 짐작이 갔다.
수준이 떨어지긴 해도, 모용진은 제법 괜찮게 평가해주고 있는 것 같은 여자였다.
"그런 취향이었나."
황제는 그녀를 떠올리면서 중얼거렸다.
오르페나와 비교하면 확실히 다른 점이 많은 여자였다.
가슴도 그리 크지 않고, 얼굴도 시원시원하게 생겼다는 느낌이 강한 여자라고 해야 할까?
예쁘다는 말보단 잘생겼다는 말이 어울리는 여자였다.
"일단은 사실 확인이 먼저다."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새 어이없는 상소도 적어서 시간이 좀 남았다.
황제는 모처럼 생긴 여유를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쓰기로 했다.
"그대도 갈 건가?"
"으음, 곧 세헤라자드하고 운동하기로 한 시간이라서요."
나르타가 아쉬운 얼굴로 말하자 황제는 오르테가에게 물었다.
"그쪽은?"
"가야지! 당연히."
그렇겠지.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오르테가와 함께 모용진을 찾아서 이동했다.
다행히... 황제가 살펴본 결과 모용진과 그 여자는 같은 곳에 있어서 바로 확인해 볼 수 있을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