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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의무방어전-182화 (182/235)

먼 거리를 이동하는 상단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는 무엇일까?

맹수?

아니다.

상단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는 바로 무림에서도 사파에 포함되는 도적들이다.

그들은 상단을 습격하여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겁탈하며, 돈과 물건은 빼앗는다.

그렇기에 상단은 거래를 위해서 이동할 때마다 무인들을 고용했으며, 그건 리사와 니사도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그녀들은 무인을 고용했다기보다는 빌려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지만.

'이번 거래는 실패하면 안 돼.'

리사는 마차 안에서 손톱을 물어뜯으면서 자신이 기억해야 할 것을 다시 한번 숙지했다.

그런 그녀 앞에서는 니사가 여유롭게 상품 목록을 점검하고 있었다.

"도적이 많은 곳이라는데 아무도 안 만나서 다행이다."

상품 점검을 끝낸 니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이 마차에 실린 물건은 잃어버린 순간 치명적인 손실을 야기하는 귀중품들.

니사는 도적을 만나지 않은 게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만나도 걱정할 필요는 없잖아?"

그러나 리사는 니사와 달리 그런 부분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만큼 이 마차에 대한 방비는 완벽했으니까.

풀썩!

그때 마차가 잠시 정차하더니 밖에서 무언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니사는 갑자기 마차가 멈추자 고개를 갸웃했고, 리사는 대충 밖에서 벌어지고 있을 상황을 예상하고는 차분하게 마차가 다시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정리가 끝났으니 다시 이동하겠습니다."

곧 비천의 덤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들은 리사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 봐. 걱정할 필요가 없다니까?"

니사는 그제야 밖에서 도적의 습격이 있었다는 걸 깨닫고는 작게 몸을 떨었다.

자신들이 무사하다는 건 알고 있어도... 니사는 솔직히 누군가가 죽는 것 자체가 무서웠으니까.

'안심이 되네.'

리사는 그런 니사를 진정시키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상단을 호위하는 것은 일당백은 우습게 해내는 금위대의 백부장.

호위가 고작 한 명이라고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

"명중! 이번 건 제법 큰데?"

모처럼 가비와 함께 데팔라 초원까지 사냥을 하러 온 달리아는 자신이 던진 창이 제대로 적중하자 신난 얼굴로 사냥감 쪽으로 달려갔다.

그녀가 던진 묵직한 창에 제대로 관통당한 커다란 물소는 그대로 땅에 쓰러져서는 눈을 끔벅거리고 있었다.

아직 숨이 약간 붙어 있는 걸 확인한 달리아는 물소의 심장에 제대로 단검을 박아서 확인 사살을 하고는 능숙하게 단검을 뽑았다.

"이 뿔이면 어때?"

큼직한 물소의 뿔을 보면서 달리아가 묻자 어느새 다가온 가비가 차분하게 그 뿔을 만져 보면서 대답했다.

"나쁘지 않은 재료네요."

가비는 작은 칼을 꺼내서는 해체를 시작했다.

능숙한 솜씨로 뿔을 잘라 낸 가비는 만족스럽게 그 뿔을 쓰다듬었다. 큼직하고 탄성이 좋은 것이 좋은 소재가 될 거 같았다.

"좋은 활이 될 거 같네요."

그녀가 평가를 내리자 천천히 다가온 대흘이 그 뿔을 받아서 뒤에 짊어졌다.

그리고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런 대흘의 말에 가비가 살짝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 오라버니? 솔직히 주변에 신경 쓸 사람도 없는데 조금 편하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솔직히 오라버니한테 존댓말을 듣는 것도 꽤 불편해서요."

예전엔 그렇게 친근하게 대하던 사람이 갑자기 거리감이 느껴지는 존댓말을 해대니...

이성은 이게 법도대로 하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감성은 그런 오라버니의 존댓말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어찌 제가 비 전하께 감히 말을 편히 하겠습니까."

그러나 대흘은 굽히지 않았고, 가비는 조금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거 사자...!"

그때 피 냄새를 맡고 나타난 숫사자가 갑자기 그녀를 습격하자 달리아는 눈을 크게 떴다.

이런 가까운 거리에선 여화나 레오니도 아니고 그녀들로선 저항할 방법이 없었다.

달리아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숫사자를 막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스스로도 이게 의미가 없는 행동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콰득!

그때 대흘이 팔을 뻗어서 달리아에게 달려든 숫사자의 목을 잡아선 그대로 땅에 메다 꽂았다.

그대로 땅에 제대로 박힌 숫사자는 다신 일어나지 못했다.

순식간에 숫사자를 정리한 대흘은 뒤에서 기습해 오는 암사자에게 순순히 어깨를 내주었다.

빠각!

그러고는 어깨를 물고 있는 암사자의 머리를 후려쳐서 그대로 뼈를 부쉈다.

뇌수가 튀어나오고 숨을 거둔 암사자가 그대로 대흘의 몸에서 떨어졌다.

그런 대흘의 몸엔 이빨 자국조차 남지 않았다.

그 압도적인 무력에... 살아남은 사자들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대흘은 추격할까 하다가 굳이 전의를 잃은 맹수를 사냥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에 그대로 사자들이 도망치게 내버려두었다.

"그... 다시 봐도 오라버니는 인간이 아닌 거 같네요. 저희 같은 피가 흐르고 있는 게 맞을까요?"

가비는 스스로가 본 게 믿어지지 않아서 어이가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으나 달리아는 그 광경을 보고도 생각보다 놀라진 않았다.

이미 그녀는 여화와 레오니의 말도 안 되는 사냥을 본 뒤였으니까.

물론 그래도 대단한 광경이긴 했다.

과연 황제의 창이라 불리는 금위대의 백부장이라고 해야 하나?

그 수준이 차원이 달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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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측량은 다 끝나셨나요?"

아비가 도에 묻은 피를 깔끔하게 털어내면서 말을 걸어왔다.

그녀가 금산파인가 흑산파인가하는 도적들을 정리하는 데는 일다경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어! 곧 끝나."

높은 곳에 올라가서 분주하게 손을 움직이던 키야는 측량을 끝내고는 도구를 다시 가방에 집어넣었다.

'과연... 이쪽은 길이 이렇게 되어 있구나.'

착실하게 높은 곳에서 보이는 이곳의 전경을 가볍게 스케치 하고 밑으로 내려온 키야는 내려오기 무섭게 풍기는 피 냄새에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정말 언제 맡아도 적응이 안 되는 냄새였다.

"생각보다 제국 치안도 그리 좋진 않은 모양이네."

키야는 그 시체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녀는 여행을 떠나기 전엔 나름 제국의 치안이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관도에서나 적용되는 이야기였다.

관도를 벗어나자 생각 이상으로 이런 도적 무리들을 자주 만나게 되었다.

음흉한 눈길을 보내면서 그 욕망을 숨기지도 않는 그들이 키야는 참으로 역겹다고 느끼면서도 든든한 호위 덕분에 별 위기 없이 여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엉망이었던 시기가 좀 길었으니까요. 폐하께서 즉위하신지... 이제 3년이 되어가던가요? 아직 치안까지 해결되기엔 조금 부족한 시간이죠."

그래도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이대로 태평성세가 유지된다면 굳이 목숨을 걸고 이런 짓을 할 필요가 없으니 몇몇 인간 말종들을 제외하고는 이런 도적단을 찾아보긴 힘들어질 것이다.

아비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보다 금위대는 대단하네. 언제부터 일한 거야?"

제법 많은 시체를 보면서 키야가 조금 감탄했다.

이젠 시체를 봐도 아무렇지 않아진 그녀는 시체보다는 이 많은 도적을 단신으로 처리한 그녀의 실력에 감탄만 나왔다.

그러다 보니 키야는 새삼 궁금해졌다.

이토록 강한 그녀는 도대체 언제부터 폐하의 밑에서 일하게 된 걸까? 그게 궁금해서 참기 힘들었다.

"저희 금위대는 폐하께서 즉위하고 나서 전부 새로 뽑은 사람들이니까... 이제 3년 다 되어가네요."

아비가 자신이 금위대로 일하게 된 일자를 세어보면서 말했다.

그녀는 당연히 지금 황제가 즉위하면서 금위대를 뽑을 때 같이 뽑혔다.

"어떻게 뽑히게 된 거야?"

물론 그녀 정도의 실력자를 황제가 알만한 방법은 많겠지만... 키야는 왠지 다른 이유가 있을 거 같았다.

실제로 틀린 건 아니었다.

그녀가 뽑힌 것은 그녀의 실력도 있겠지만... 황제와의 인연도 무시할 수는 없었으니까.

"아! 그 이야기군요, 사실 제가 폐하를 알게 된 건 꽤 오래전부터였어요. 적어도 금위대에서... 그러니까 50명 정도는 꽤 예전부터 폐하와는 인연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실제로 금위대는 그 50명이 가장 먼저 금위대의 무사로 들어왔고, 그 50명 중에서도 가장 강한 10명이 백부장으로 뽑히고, 다시 그 10명이 믿을 수 있는 병사 100명을 뽑아서 만들어졌다.

그 다음에 크라이스가 들어왔고, 그가 마법사 500명을 모아서 마법부대를 만들었다.

그 뒤로 여기저기 숙청을 위해 돌아다니면서 황제를 따르기로 한 무사들을 금위대의 무사로 편입했고, 최근엔 콰오콴을 중심으로 주술부대까지 만들었다.

아무튼 지금 금위대의 시작은 50명부터였다.

아비는 그들과 함께 했던 때를 떠올렸다.

언제 전우들이 죽어 나갈지 모를 지옥 같은 나날이었지만... 그래도 지나고 보니 추억이라고도 부를 만했다.

"예전에 국경에선 말이죠. 그러니까 국경 방위 사령관님의 심기를 거슬렀거나 문제가 있는 병사들을 따로 모아둔 부대가 있었거든요?"

아비가 실실 웃으면서 말했다.

병사들 중에서도 눈에 띄는 문제아들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실력은 확실하기에 함부로 내치긴 곤란한 병사들을 모아둔 부대가 있었으니...

어떤 사건으로 완전히 국경 방위 사령관의 눈 밖에 난 할바르 백부장의 부대였다.

그 부대에는 흑마 부대라는 멀쩡한 이름이 있었지만 대부분 그 부대를 아는 사람들은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는 했다.

"일단 그 부대는 기본적으로 기마 부대여서 말이죠. 흑마 부대란 멀쩡한 이름도 있었는데... 정작 그곳에선 이렇게 부르고는 했어요."

"?"

키야가 관심을 보이자 아비는 그리운 얼굴로 그때를 회상했다.

확실히... 어떤 의미에선 흑마 부대보단 훨씬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제국의 문제아들.

그곳의 사람들은 그들을 그렇게 불렀다.

"그런 문제아들이... 어쩌면 정말 제국 최고의 문제아와 만난 거죠."

아비는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제국의 문제아들은 그런 문제아들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제국 최고의 문제아와 만났으니까.

무려 태자의 신분으로 가출을 해서 말단 병사로 입대한.

역사에 남을 정도로 기가 막히는 문제아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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