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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의무방어전-184화 (184/235)

"폐하와 같이 복무했다고요?"

야영을 준비 중인 상단 직원들을 보면서 비천과 이야기를 나누던 리사가 놀란 눈으로 비천을 보았다.

"그렇죠. 제가 그땐 이래 봬도 상등병사여서 폐하보다 계급이 높았답니다."

"신기하네요."

비천의 자랑이 섞인 말에 니사는 솔직한 감상을 이야기했다.

그 황제가 막내였다니... 쉽게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였으니까.

"어땠나요? 군인이던 폐하는?"

리사가 흥미롭다는 듯이 눈을 반짝이며 묻자 비천은 그때를 떠올렸다.

"폐하는..."

그때의 폐하는 굳이 평가하자면...

"우수한 후임이었죠. 훈련도 성실하게 참여하고, 전투도 잘하고, 업무도 잘하고, 선임한테는 깍듯했으니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런 신분을 가지고도 순순히 막내답게 행동하던 황제는 어쩌면 그때부터 이미 범상치 않은 사람이었으니까.

하긴...

'평범한 사람일리는 없지.'

애초에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지금의 제국을 유지할 수는 없었겠지.

정말이지 존경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가장 아래에서.... 가장 위로 올라서면서 모든 무관들의 지지를 받는 위업을 세운 사람이다.

그를 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전장에서의 그는 분명 그러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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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말을 타고 달려서 이곳에 진지를 세운다. 적의 습격이 있을 수 있으니까 진지를 세우는 동안 별동대를 구성해서 그들의 시선을 돌릴 거다."

할바르는 차분하게 작전을 설명했다.

본대는 빠르게 말을 타고 빠르게 이동해서 이미 골라두었던 요충지에 진지를 짓는다.

그 과정에서 적의 습격을 방지하기 위해 별동대를 구상하여 그들의 시선을 교란시키는 것이 일단 첫 번째 작전의 개요였다.

"많은 인원을 편성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대충 구성할 수도 없다. 자원할 녀석은 있냐?"

어떤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별동대를 자원할 사람을 찾던 할 바르는 손을 든 남자를 보았다.

"빈손이 또 너냐?"

"제가 해야죠. 제일 강한 제가 안 하면 누가 합니까?"

"쩝...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네. 망할 놈아."

할바르는 그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상등병사 중에서 빈손보다 뛰어난 자가 없다.

이미 야만족을 상대로 혁혁한 공을 세워온 그라면 그들의 시선을 끌기도 적합하겠지.

할바르가 생각해도 빈손이 이번 일엔 가장 적임자였다.

"다른 놈은?"

"으음, 막내 한 명이면 충분하죠. 그렇지? 막내야."

그 말에 모두가 놀랐으나 휘는 태연했다.

"명령이라면."

할바르는 그 말에 휘를 보았다.

막내에 대해서 나름대로 알아보긴 했지만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일단 국경의 병사로 들어왔다는 건 신분은 확실하다는 증거일 텐데... 금위대장의 추천서만 있을 뿐 그 외에는 아무런 단서도 없었다.

오죽하면 저 이휘란 이름이 가명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였다.

"살아 돌아올 수 있겠어?"

그래도 지금은 지켜야 할 막내다. 그런데 그런 위험한 임무에 데려간다고?

할바르가 걱정이 담긴 얼굴로 묻자 빈손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안 그래 막내야?"

"그게 명령이라면 따를 뿐입니다."

휘는 그 말에 덤덤하게 군장을 멘 채 대답했다.

"살아서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휘의 얼굴엔 흔들림이 없었다.

그 위험한 임무를 맡는 소년의 얼굴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임무를 완수하고 나면 이곳으로 복귀해라. 복귀 시점도 너희에게 전부 맡길 테니까."

할바르가 진지를 구축할 예정인 곳을 보여 주며 말하자 빈손은 고개를 끄덕였다.

"겸사겸사 식량도 좀 약탈해서 올게요. 가자. 막내야"

빈손이 말 위에 올라타면서 말하자 휘 역시 자기 말에 올라타고는 능숙하게 말을 몰았다.

"말도 탈줄 알아?"

빈손이 그 능숙한 솜씨에 감탄하자 휘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애초에 말을 못 타면 기마부대에 어떻게 들어옵니까?"

정론이었다.

휘의 정론에 빈손은 할 말을 잃었다.

"어디로 가는 게 시선 끌기 좋을까? 막내 의견 들어 보자."

말을 부드럽게 몰면서 빈손이 묻자 휘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제대로 시선을 끌고 싶다면 확실한 곳이 있지 않습니까?"

"아... 역시 막내다. 우리 마음이 통했네."

그 대답에 빈손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 말이 맞다.

사실 시선을 끌고 싶다면 가장 적합한 곳이 있었다.

당연히 가장 시선을 끌기 확실한 곳은... 그들의 전초기지 말고는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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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격! 습격입니다!"

크릴라이에서도 가장 중요한 전초기지인 카흐랄 기지.

이곳은 크릴라이에서도 전선을 유지하는 중요한 거점이며, 그렇기에 가장 많은 수의 전사들이 머무는 곳이었다.

"젠장! 제국이냐? 몇 명이지?"

"그, 그게..."

그 기지의 총책임자인 가파이 백부장은 다급하게 옷을 입으면서 물었다.

그런 가파이 백부장의 질문에 전사가 머뭇거리더니 대답했다.

"두, 두 명입니다."

"...뭐?"

이곳이 어떤 곳인가.

제국을 막는 최전선이자, 그렇기에 백부장 중에서도 손으로 꼽히는 뛰어난 전사인 가파이가 3천이 넘는 병사들과 상주하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 고작... 두 명이 습격이라고?

"그걸로 호들갑을 떤 거냐?"

가파이가 긴장이 풀린 얼굴로 말하자 전사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그중 한 명이 그 빈손입니다!"

"그걸 먼저 말했어야! 젠장! 당장 내 극을 가져와라."

가파이는 그제야 표정이 다시 심각해졌다.

크릴라이에서 빈손의 이름을 모르는 자는 없다.

빈손으로 와서는 상대의 무기를 빼앗아 그 무기로 상대의 목숨을 빼앗는 저승사자.

그게 바로 그 남자였으니까.

그 남자의 손에 죽은 크릴라이의 전사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반드시 여기서 죽인다! 포위망을 구성하고! 내가 올 때까지 버티라고 해!"

드디어 그놈을 죽이겠군.

백부장이 나타날 때면 빠르게 사라지던 그 쥐새끼를 드디어 붙잡겠구나.

가파이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극을 들고는 바로 말에 올라탔다.

이번 기회에 드디어... 그 개자식을 잡아 죽이겠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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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걱!

휘는 그야말로 바람처럼 창을 휘두르면서 깔끔하게 달려드는 야만족 전사의 목을 베어냈다.

이곳에서 그는 그야말로 이 전장에 몰아치는 폭풍.

두려움을 모르는 야만족의 전사들이 달려들고 있지만 휘는 그야말로 깔끔한 솜씨로 다가오는 적의 목을 수확하고 있었다.

"이야, 창도 잘 다루네?"

빈손이 상대의 무기를 빼앗아 그걸로 목을 베어내면서 감탄하자 휘는 덤덤하게 말했다.

"이대로면 괴멸도 가능할 거 같습니다."

"그러게. 생각보다 훨씬 잘 싸우네."

빈손은 솔직히 휘의 실력에 감탄하고 있었다.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막내가 강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상상 이상이었다.

'자연스럽게 검기를...'

적당히 효율적으로 기를 사용하여 상대를 베어내는 그 솜씨는 노련한 군인 그 이상이었다.

게다가 막내는 사람을 죽이는데 아무런 망설임도 없었다.

저 어린 나이에 저렇게 누군가를 죽이는 것에 무심해지려면... 대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빈손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과연...'

한편 빈손이 휘를 평가하는 것만큼 휘 역시 빈손을 평가하고 있었다.

그런 휘가 볼 때 빈손은 이미 경지에 오르기 직전인 완숙한 고수.

그만한 자가 어째서 아직도 상등병사에 머무르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였다.

'좋은 경험이 되겠어.'

이 남자 밑이라면 확실히 배울 게 많을 거 같다.

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손은 분주하게 달려드는 병사들을 베어 넘기고 있었다.

"지원을 부를 생각은 없어 보이는데요."

"그야 당연하지 전령이나 척후는 내가 죽여 버리고 있으니까."

빈손의 말에 휘는 새삼 그 부분에선 자신이 부주의했다는 걸 인정했다.

눈앞에 적에만 정신이 팔려서 그런 부분은 미쳐 신경 쓰지 못했으니까.

"신경 쓰지 못했군요."

"괜찮아. 괜찮아. 그보다..."

빈손이 살짝 식은땀을 흘리면서 말했다.

기운만 봐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온다."

드디어 이 기지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가 오고 있었다.

"고작 두 명한테... 이런 꼴이라니."

가파이는 전장의 상황을 보고 혀를 차면서 극을 휘둘렀다.

엄청난 힘이 느껴지는 그 극을 보고 휘는 반사적으로 말을 앞발을 들게 해서 피했다.

"맞았으면 위험했겠습니다."

푸욱!

덤덤하게 뒤를 노리는 병사의 목을 날려 버린 휘는 떨고 있는 말을 진정시키면서 말했다.

"제가 처리할까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그 질문에 빈손이 잡고 있던 야만족의 목을 꺾어 버리면서 얼굴에 묻은 피를 가볍게 핥았다.

신입의 실력 평가는 끝났다.

그러니까...

"사수가 보여 줘야지."

빈손은 검에 기를 가볍게 둘렀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숙련도.

이렇게 빠르게 검기를 형성하다니. 그걸 본 가파이의 눈이 가늘어졌다.

'과연 소문이 거짓은 아니군.'

저 어린 소년도 신경 쓰이지만 역시 이 상황에선 저 남자를 가장 경계하는 것이 맞다.

가파이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부하 전사들에게 소년을 막을 것을 명하고는 빈손에게 달려들었다.

서걱!

푸히히잉!

바로 가파이가 타고 있던 말의 발을 잘라버린 빈손은 낙마를 노렸으나 가파이는 오히려 바로 말을 버리고 뛰어올라서는 그대로 극을 내리쳤다.

카앙!

"묵직한데?"

'막아...?'

단숨에 베어버릴 생각이었는데 설마 그 정도의 높이에서 내려친 자신의 극을 막을 줄이야?

가파이는 그런 생각하고 있었지만 빈손은 평정을 유지한 얼굴과 달리 온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어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냥 피할걸!'

괜히 멋부린다고...

빈손은 후회하면서도 다시 한번 이번엔 다리를 노리고 휘둘러지는 극을 뒷걸음질 쳐서 피했다.

그러고는 발로 가볍게 바닥을 굴러다니는 창을 띄워서는 걷어차서 날렸다.

채앵!

그걸 가파이가 쳐 내는 순간이었다.

빈손이 그 창에 가파이의 신경이 쏠린 순간을 놓치지 않고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훗! 얄팍해!'

고작 그런 걸로 자신의 목을 노리는 거라면 어리석다! 가파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비장의 한 수를 준비했다.

저렇게 급하게 들어오는 빈손의 목을 역으로 날려줄 생각이었다.

서걱!

"전쟁이라고. 멍청아."

그를 빈손은 비웃었다.

어느새 가파이의 뒤에 다가온 휘가 그런 가파이의 목을 날리고 있었으니까.

애초에 빈손은 일대일로 싸워줄 생각이 없었다.

바보도 아니고 전쟁 중에 누가 그렇게 정직하게 싸워준단 말인가.

게다가 가파이는 정면승부로는 빈손도 승산을 장담하기 힘든 강자.

당연히 이기기 위해선 무슨 짓이라도 해야 했다.

"백부장님이 당했다!"

전사들이 그걸 보고 충격을 먹는 순간 빈손이 말했다.

"자 정리하자."

우두머리를 잃은 군세는 전혀 두렵지 않다.

빈손은 그렇게 생각했고, 휘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다 죽이면 적들도 쉽게 우리를 칠 생각을 못 하겠죠."

전부 죽이면 적을 특정하는데도 시간이 걸릴 거다.

그렇게 얻은 시간은... 흑마 부대엔 더없이 유용한 시간이 되리라.

"이 소식을 칸에..!"

부관이 다급하게 전령을 보내려는 걸 휘가 창을 던져서 막아 내자 빈손은 감탄했다.

"배움이 빠른 막낼세?"

참 가르칠 맛이 있는 막낼세? 빈손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덜덜 떨고 있는 야만족의 목을 날렸다.

"슬슬 시간이니까 얼른 정리하죠."

그의 말을 무시하면서 휘는 무심한 얼굴로 겁에 질린 병사들을 학살했다.

참으로 무서운 광경이었다.

저런 어린아이가 사람들의 목을 마치 벼처럼 베어 버리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언제봐도 익숙해지지 않는구만.'

빈손은 솔직히 내키지는 않았다.

누군가가 죽고, 또 죽이는 것은.

이게 참...

자기 할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빈손은 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만 챙겨서 돌아가죠."

그런 빈손의 생각을 알 리 없는 휘가 식량이 실린 마차를 챙기면서 말했다.

그런 그의 주변엔 시체가 즐비했으나 휘는 아무런 감흥도 없는 눈치였다.

"사람을 죽였는데... 너무 태연한 거 아니냐?"

그게 참으로 빈손은 안타까웠다.

"서로가 죽이기 위해서 싸웠는데 제가 슬퍼해야 합니까?"

그 대답에 빈손은 혀를 찼다.

아직... 참으로 어리구나.

그는 그런 생각이 들었으니까.

"언젠가... 너 스스로가 느끼게 될 걸?"

"무엇을 말입니까?"

말을 몰면서 휘가 말하자 빈손은 스스로에게 역겨움을 느꼈다.

정작 이곳으로 녀석을 끌고 온 건 자신이면서... 뭐가 그리 잘났다고 이런 충고를 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래도 이 아이를 위해선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나 귀한 건지 말이야. 그때도 네가 그렇게 태연하게 넘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스윽.

휘의 머리를 가볍게 한 번 쓰다듬은 빈손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거 같은 막내를 보면서 그런 생각했다.

이 아이는 부디 그 무게를 견딜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빈손은 많이 봤으니까.

나중에서야... 스스로가 죽인 이들의 목숨이 가진 무게를 깨닫고... 그 무게에 짓눌리는 사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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