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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의무방어전-194화 (194/235)

뜨거운 사막.

낮엔 그토록 뜨거운 사막도 밤이 되면 그렇게 뜨거웠던 곳인가 싶을 정도로 차가워진다.

그 추위를 이겨 내기 위해 불을 피우면서 그날의 밤을 버티고 있는 무리가 있었다.

그들에겐 참으로 익숙한 추위였고, 그것은 이 상단을 지휘하는 그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능숙하게 사람들을 시켜 천막을 치고 불을 피울 것을 지시했다.

"거래가 이렇게 길어질 줄은..."

그녀는 작게 중얼거리면서 천막 안에 들어섰다.

그리고는 쓰고 있던 면사를 걷어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날렵한 그녀의 콧매였다.

높게 솟은 콧매, 통이 넓은 옷을 입었음에도 그 굴곡을 숨길 수 없는 몸매, 매혹적인 붉은색 입술을 가볍게 물면서 그녀는 고민에 빠졌다.

원래 그녀는 이번 거래를 빠르게 끝내고 합궁을 위해서 관도로 가려고 했다.

문제는 거래가 길어졌다는 것.

황실 상단과의 거래였기에 어느 정도 배려를 받긴 했지만, 그녀는 일정이 틀어졌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가 않았다.

"폐하께 페를 끼친 거 같네요."

"괜찮아요. 폐하께선 그런 걸 신경 쓰실 분이 아닌 걸요."

그런 그녀의 사과에 천막 안으로 뒤따라 들어온 리사가 손사래를 쳤다.

니사는 천막 안으로 들어오자 불에다가 낙타똥을 추가로 넣으면서 불을 살렸다.

"비 전하께서 그런 말을 해주시니 조금 안심이 되네요."

그녀는 리사의 말에 안도한 얼굴로 말하고는 침낭에 들어갔다.

벌써 밤이 늦었으니 슬슬 잘 준비를 해야했으니까.

"그, 그보다 이번 거래는 시간이 제법 걸렸지만 양쪽 다 만족스러운 거래여서 다행이네요."

니사가 리사 옆에 침낭을 깔고는 그 안으로 들아가면서 중얼거리자 그녀는 긍정했다.

"오래 걸린 만큼의 가치는 있어서 정말 다행이지요."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타협점을 찾아내느라 얼마나 시간을 태웠는지... 합궁이 늦어지게 된 이유는 사실 이게 가장 컸다.

'이제 이 일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녀는 이번 거래를 마지막으로 자신은 은퇴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당연한 일이다.

보통은 비가 된 순간 다른 일은 하지 못하게 되는 게 당연한 거였으니까.

하지만... 놀랍게도 이번 황제는 그녀가 비가 되고 나서도 계속 이 일하는 것을 허가해주셨다.

참으로 개방적인 황제였다.

'소문도 바뀌었고...'

모두가 두려워하던 황제는 어느새 제국의 백성들에겐 자랑거리가 되어가고 있는 듯했다.

혈육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한 황제의 행동은 어느새 그들에겐 구국을 위한 위대한 결단으로 불리고 있었고, 포로조차 제대로 남기지 않은 야만족을 상대로 한 학살은 야만족들에게 피해를 입은 자들을 위한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복수극이 되어 있었다.

물론 어느게 진짜인지는 그녀도 모른다.

그게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예전에 황제를 평가하던 말과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예전에 황제에 대해서 물으면 열에 아홉은 이렇게 대답하고는 했다.

권력과 피에 미쳐 혈육들을 잔인하게 숙청한 미치광이면서, 이미 전의를 상실한 야만족을 잔혹하게 학살한 학살자라고.

어떻게 그 평가가 이렇게 짧은 시간만에 바뀔 수 있었던 걸까?

'하긴...'

그녀는 대충 이해는 갔다.

평범한 제국민들에게 귀족을 많이 죽이고, 황족을 죽이면 어떤가? 자기들하고는 별 관련도 없는데 야만족들을 학살했다고 해도 문제인가? 어차피 적국인데.

그들에겐 당장 자신들을 배부르고 편하게 해 줄 황제가 더 좋겠지.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지금의 평가가 오히려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람일지를 알아야 할 텐데...'

솔직히 말해서 그녀는 황제를 좀 더 알고 싶었다.

전자든 후자든 객관적인 평가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녀는 황제가 실제로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일까? 아니면 절대로 그럴 수 없는 성질의 사람일까?

그녀는 애초에 인간을 두 가지 종류로 밖에 구분할 줄 모르는 삶을 살아왔다.

이용이 가능한가? 아닌가?

그런 점에서 볼 때 그녀는 이번 황제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려오는 이야기만 들어봐도 황제는 호불호가 꽤 확실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신중해야 했다.

그녀는... 비가 황제의 눈 밖에 난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조금이라도 평가를 잘못해서 행동을 실수한다면 크게 어그러질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신을 잘 알았기에 더욱 가면을 쓰기로 결정했다.

자기 내면을 알면...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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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크족의 카란타 마하르라..."

황제는 이번 합궁 상대에 대한 정보를 들으면서 빠르게 장계를 넘겼다.

어제 이미 황태후께서 점검한 것마저 따로 확인하는 그 모습에 모처럼 합궁 상대에 대해 보고하러 온 재상은 조금 질려 버렸다.

어쩌면... 폐하께서는 일이 즐거워서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늘은 미령 대신 그대가 왔구나."

"비 전하께서는 다른 일로 바쁘셔서... 이것도 참 오랜만인 거 같습니다."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다만. 그렇게 느껴지긴 하는구나."

황제는 그 말에 피식 웃으면서도 손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튼 마하르 가문이라면 들어 본 적이 있지. 그 술탄 늙은이가 자주 언급했었으니."

아르크족은 투르크족과는 오랜 세월 대립해온 민족으로 서로 앙숙이긴 하나 모두 같은 시기에 제국 아래로 들어와 굴복한 이들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 악감정이 사라진 건 아니라 둘은 걸핏하면 자존심 싸움을 하는 형국이었다.

아무튼 그 아르크족에서 오기로 한 여인은 바로 카란타 마하르라는 여인으로 그 아르크족의 칼리파인 아부아 마하르의 딸이었다.

이게 참 황제의 입장에서 보면 제법 난처한 느낌이었다.

술탄의 손녀와 칼리파의 딸이 황궁에 같이 있다?

언제 마찰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조금 머리가 아프구나."

어느 한쪽의 편을 들어 주기도 모호하고, 그렇다고 방임하기도 모호하고...

황제는 고민이 되긴 했지만... 세헤라자드를 믿기로 했다.

"잘 알아서 처신하겠지."

황제는 대충 그렇게 결론을 지었다.

물론 간단한 기 싸움 정도야 한다고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지만, 그 이상 선을 넘는 건 곤란했다.

선을 넘는다면 응당 그에 해당하는 벌을 받게 되리라.

황제는 대충 방침을 정하면서 재상에게 말했다.

"그러니 준비하라고 하거라. 오늘 도착한다지?"

"네, 지금 마법사들이 그쪽으로 갔으니 늦어도 오늘 정오에는 도착할 듯합니다."

금위대의 마법사들은 다른 일로 바빴기에 이번엔 다른 쪽의 마법사를 동원했다는 재상의 설명을 들으면서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늦어지지 않아서 다행이구나."

아무튼 합궁이 더 늦어지진 않아서 다행이다.

황제는 그리 생각하며 작게 안도했다.

예전엔 그저 합궁을 미루고 싶었지만 이젠 아니었으니까.

얼른 끝내야지 다른 일에도 더 집중할 수 있었기에 황제도 이젠 합궁은 어지간하면 서두르고 싶었다.

지금 황제는 합궁이 끝나면 제국의 여러 지역을 돌아보면서 감찰도 해볼 생각이었고. 여러 민족의 지도자들도 두루 만나 보며 이야기를 나눠볼 생각이었으니까.

할 일이 이리 많은데 합궁 때문에 어디로 가지도 못하고 관도에 남아 있어야 하는 지금 입장이 황제는 그리 달갑지가 않았다.

"이쪽 길 문제는 어찌 되었지?"

"감찰관을 따로 보내서 점검해 보고 장계의 내용이 사실이면 바로 조치할 수 있도록 해 두었습니다."

황제는 모처럼 재상이 왔으니 직접 장계에 대한 것을 물으면서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재상은 황제가 물어보는 것에 대해서 차분하고 깔끔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여전히 흠잡을 점이 전혀 없는 그의 일 처리가 황제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대가 있어서 짐은 참으로 든든하구나."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재상의 말을 들으면서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나선 가볍게 재상의 어깨를 두드렸다.

"짐이 그대를 얻은 것이 어쩌면 가장 큰 행운일지도 모르겠어. 아직 식사는 하지 않았겠지."

"네."

재상의 대답에 황제는 앞서 걸으면서 말했다.

"식사나 같이 하자꾸나. 나머지 이야기는 식사 하면서 하면 될 테니."

황제의 제안에 재상은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대답했다.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재상의 말에 황제는 그를 데리고 이동하면서 한참을 그와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 선비들의 교육 수준이나 곧 있을 경연의 주제. 요즘 유학자들의 주요 화제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면서 황제는 재상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재상과 이런 건설적인 이야기하는 것은 황제에게 있어서 몇 안 되는 즐거움이 된 지 오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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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들의 도움을 받아 도착한 황궁에서 바로 리사, 니사와 헤어진 카란타는 궁녀들에게 이끌려서 몇 가지 조사받고는 단장을 시작했다.

과연 황궁의 궁녀들은 수준이 높았고, 황궁 역시 크고 화려해서 보는 사람을 위축시키는 힘이 있었다.

비싼 항유를 머리에 바르고, 옷도 고급 비단으로 만든 옷이 입혀졌다.

그녀는 말끔하게 단장이 되어서는 자연스럽게 황제의 처소로 안내되었다.

'굉장히 검소한 편이네.'

황제의 처소를 살펴본 그녀의 감상은 그러했다.

물론 그런데도 어지간한 방보다는 화려했지만, 이 거대한 제국의 지배자가 쓰는 방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검소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이불은 푹신하고. 청소도 잘 되어 있네.'

좋게 말하면 청소를 잘해 둔 거고 나쁘게 말하면 참으로 생활감이 부족한 곳이다.

그녀의 시선으로 볼 때 황제에게 이곳은 그냥 잠을 자는 곳으로만 보일 정도였다.

삭막했다.

그녀는 어쩌면 황제도 그런 남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언제 오려나...'

그녀는 그대로 침대에 앉아서는 가볍게 입술을 깨물었다.

과연 언제 황제가 올까?

벌써 긴장이 되어서... 그녀는 온몸이 떨리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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