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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의무방어전-196화 (196/235)

"...드디어."

금일 정무를 끝마치고 밖으로 나들이를 나온 황제는 완공된 경기장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는 그가 오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언제올까?'

황제는 이곳까지 굳이 따라온 카란타와 경기장을 둘러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어떤 검을 쓸까? 어떤 성향일까? 오른손잡이일까? 왼손잡이일까? 보폭은 어느 정도고, 자세는 어떻게 잡을까? 호흡은 어떻게 할까? 근육은 어떻게 움직일까?

그에 대해서 궁금한 게 너무나도 많아서 황제는 당장에라도 그를 만나서 싸워 보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릴 정도였다.

"어, 어제는 그게..."

"?"

황제는 갑자기 붉어진 얼굴로 말을 거는 카란타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지?"

"아무것도 아니... 그보다 이거 돈 냄새가 나네요."

어느새 경기장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그녀가 눈을 반짝였다.

그녀도 귀가 있으니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천하제일인과 황제의 대결이라.

그야말로 엄청난 화제를 일으킬 대결이었다.

게다가 이만한 경기장이면 분명 돈이 될 거 같았다.

"좀 오래 걸릴까요?"

"보통은 고수일수록... 빨리 끝나지."

황제의 설명에 그녀는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대결이 빨리 끝난다면 그것으로 돈을 벌기엔 애매한 부분이 많았으니까.

"좀 긴 편이 좋을 텐데요..."

돈을 벌려면 경기 시간이 좀 긴 편이 좋은데...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겠지.

그녀가 그런 생각할 때였다.

"허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야. 성향에 따라. 승부의 양상에 따라. 오래 걸릴 수도 있겠지."

"그렇군요."

"그 일은 어차피 리사와 니사가 알아서 할 테니 그녀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거라."

"...네."

황제는 그녀를 돌려보내고는 혼자 경기장 안에 남아서 생각에 잠겼다.

'무엇을 준비했을까?'

최강의 위치에서... 그는 무엇을 준비했을까?

만약 준비했다면...

자신은 도전자의 위치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걸까?

황제는 차분하게 기를 운용해 보면서 하늘에 기검을 만들어 보았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인간이 하늘에 닿을 수 없고, 아무리 손을 휘둘러도 구름을 잡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황제는 조금 오만할지 모르지만 스스로가 그런 존재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나름 비등한 자가 있었지, 더 강한 이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신과 같은 곳에 서 있을 자가 없어졌다.

요괴의 왕이란 자도, 그런 그들의 힘으로 만들어진 최후의 요괴도, 심지어 그 오랜 세월을 살아온 과거의 황제도.

황제는 막상 싸워 보면 절대 질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고, 실제로 지지 않았다.

마치 하늘이 된 기분이었다.

아래에서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고, 잡으려고 애를 써도 잡히지 않는 그런 하늘이 된 기분.

고독한 하늘이 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주변에 사람이 많아져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늘어가도...

하늘처럼 강해져도 인간인 황제는 자꾸만 욕심을 부리게 되었다.

진정 자신을 이해해주는.

이 강함을 온전히 이해하고, 서로 온전히 부딪칠 수 있는.

그런 존재를 원하게 되었으니까. 갈구하게 되었으니까.

'부디...'

그러니까 그가 그런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

황제는 기대를 숨기지 않고는 그대로 하늘로 올려보냈던 기검을 흩어 버렸다.

기검이 흩어지면서 아름다운 마력의 꽃을 피어냈고,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면서 감탄사를 자아냈다.

그가 언제 오던지 상관이 없다.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눈을 감고는 모처럼 허리에 차고 온 검을 매만졌다.

그가 온다면...

황제는 죽어도 좋으니 모든 것을 걸고 그와 싸울 생각이었으니까.

--

"준비는 끝났군."

수련을 끝낸 노신은 폭포에서 나오면서 가볍게 물기를 닦았다.

마음은 고요했고, 몸은 그 어떤 때보다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과거를 회상했다.

처음으로 봤던 무과.

그곳에서 그는 벽을 느꼈다.

천부적으로 많은 기를 타고난 그였으나 그는 기를 다루는 기술이 형편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기를 다룰 수가 없었다.

그런 그가 무과에 낙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결국 마음이 껶여 버린 그는 무과를 포기하고는 무림에 몸을 담았다.

검을 포기할 수 있었다.

무를 포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것은...

그만큼 그가 검을, 그리고 무를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기를 다루는 재주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토록 사랑했던 이 길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인생의 전부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런 그에게 길을 제시해준 곳이 바로 이곳 무림이었다.

기를 다루는 능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언령을 이용하면 많은 것이 가능하다는 것도 그곳에서 처음 알았다.

훌륭한 스승, 뜻밖에 기연, 같이 성장할 수 있었던 친우.

모든 것이 그를 강하게 해줬다.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해줬다.

그러니까 더욱... 노신은 지고 싶지 않았다.

최강이 되고 싶었다.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최강이 되고 싶었다.

그래... 그는 하늘에 닿고 싶었다.

이 검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경지에 닿는다면... 모두가 자신을, 그리고 자신을 이 자리에 있게 해준 무림을.

인정해 줄 거라고 믿었다.

그렇기에 지금은 그야말로 다시 없을 기회라는 걸 노신은 인지하고 있었다.

황제.

10만 대군을 상대로도 단신으로 물러서지 않았다는 그야말로 일인 군단이요. 무의 화신이라는 말까지 듣는 모두가 인정하는...

진정한 천하제일의 검.

그런 존재와 천하제일을 겨룰 수 있는 기회를 마치 하늘이 내려준 것처럼 얻게 되었다.

황제는 참으로 겸손하게 스스로가 도전자의 위치에 섰지만 노신은 사실 알고 있었다.

진정한 도전자는...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말이다.

황제와 자신은 아무리 살펴보아도.

자신이 도전하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노신은 결고 방심하지 않았다.

가장 완벽한 몸 상태를 만들었고, 스스로의 평정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모든 것이.

하늘에 닿을 준비가 되었다.

그렇기에 노신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는 가볍게 중얼거렸다.

"백운보(白雲步)."

그렇게 말한 노신은 걸음을 뗐다.

"!"

그리고 그 순간 노신의 앞에 나타난 것은 황제였다.

황제는 자기 앞에 나타난 민머리의 노인을 보면서 처음엔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런 그의 얼굴은 분명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드디어 나타났다.

자신과 대등할지도 모를 존재가.

노신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황제는 그의 기운을 보고 확신했다.

이 남자야 말로... 자신과 대적할 이 대륙에서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왔는가."

그렇기에 황제가 그를 보는 눈은 참으로 따스했다.

"본좌를 기다리고 있었다면 미안하구만."

그는 덤덤하게 말하면서 잠시 경기장을 둘러보고는 황제 쪽에 시선을 주었다.

노신은 황제를 보았고, 황제도 노신을 보았다.

주변에 누가 있는지는 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에겐 오로지 서로만 보이고 있었으니까.

노신은 황제에게서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욱 두려워졌다.

대체 얼마나 높은 경지에 있으면 자신조차도 그 경지를 헤아릴 수 없는 지 의문이 들었으니까.

"그럼..."

몸이 완전히 달은 황제는 경기장에 서려고 했으나 노신이 그런 황제를 막았다.

터억.

"내일. 본좌는 좀 더 많은 사람이 봐주면 해서 말이야."

그대로 노신에게 어깨를 잡힌 황제는 그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이런... 그랬었지."

황제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으나 순순히 포기하고는 걸음을 멈췄다.

그 말대로 모처럼 이런 경기장도 만들었는데 사람이 없는 것도 허무할 테니까.

"그게 그대가 원하는 거라면 아예 이곳을 가득 채워줄까?"

황제가 경기장을 보면서 말했고, 노신은 되물었다.

"그게 가능한가?"

노신은 스스로가 말하면서도 솔직히 심장이 두근거리긴 했다.

다른 이도 아니고 그 황제다.

황제 앞에서 이리 오만해도 되는 걸까? 그런 불안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가능하지. 그대와 짐의 대결이 아니냐. 이미 전국에 방을 붙여두었으니 이미 그 대결을 보고자 하는 이들이 이곳에 모여 있단다."

그러나 황제는 오히려 그런 노신의 태도를 기꺼워하며 말했다.

마치 자기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황제가 그를 대하는 태도가 그러했으니까.

"그럼 본좌는 내일 다시 이 자리에 오겠다."

애써 당당함을 연기하며, 노신이 말하자 황제는 그 금안으로 그런 노신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일 보도록 하지. "

두근.

노신은 황제가 잠깐 흘린 기운에 잔뜩 긴장해서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토록 강렬한 기운이라니...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것이었으니까.

"그대도 심장이 뛰나? 짐 역시 그러하단다."

그것을 느낀 황제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황제는 그런 노신의 두근거림을 잘못 이해한 것 같았다.

"당장에라도 그대와 검을 섞고 싶어서 이렇게 심장이 뛰다니. 그 어떤 이도 짐의 심장을 이토록... 아니지. 한 명 빼고는. 흠, 아니다 별로 재미없는 이야기군."

황제는 갑자기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훌쩍 사라져 버렸다.

뭔가 말하기 민망한 화제를 스스로 꺼내서 민망해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행동이었다.

'언령도 쓰지 않고...'

노신은 황제의 보법에 속으로 감탄해 버렸다.

언령도 쓰지 않고 저 정도의 거리를 단숨에 이동하다니? 말도 안 되는 보법이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 정도의 기를 다루는 기술은... 자신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게 승패를 정하지는 않으리라.'

노신은 더욱 각오를 다졌다.

반드시 이길 것이다.

그래서...

노신은 자신이 쌓아온 것을 증명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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