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아악!
노신은 갑자기 자신의 허리에서 느껴지는 출혈에 놀랐다.
급하게 출혈을 억제하긴 했지만 엄청 깊게 베였다.
문제는...
'언제?'
황제가 대체 언제 자신을 베었는지도 짐작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노신에겐 보이지 않았다.
황제의 검이.
그것이 노신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우득.
황제는 자기 잘린 팔을 그대로 끌어와서는 강제로 이어 붙였다.
기로 잘린 팔을 이어 붙이는 말도 안 되는 기의 운용.
그것에 놀랄 새도 없이 황제의 검이 노신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백보(白步)."
당황한 노신이 순식간에 보법으로 몸을 뒤로 뺐다.
"언령을 쓰는구나."
황제는 허공을 벤 자신의 검을 보면서도 다른 점에서 아쉬움을 느꼈다.
왜 굳이 스스로에게 제약을 거는 거지? 황제는 이해가 가지 않았으니까.
검을 든 자에게 대결은 늘 실전이고, 상대는 바보가 아니다.
언령에 담긴 뜻을 읽는다면 공격을 파악하긴 너무나도 쉽다.
그 성능은 인정받았으면서도 왜 무인들이 언령을 쓰지 않는지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 이유가 명확했다.
언령을 쓰는 순간 상대가 기술을 파악하고 대처하기 쉬워지니까.
"백일(白一)."
그 순간 노신의 검이 가로로 그어졌다.
그러자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기의 칼날이 황제를 향해 쇄도했다.
그러나 황제에겐 너무나도 그 기술이 파악하기 쉬웠다.
언령을 쓴다는 것이 그런 것이긴 하지만.
"아쉽게도."
콰드득!
황제는 그 칼날을 잘린 팔을 움직여서 막아 냈다.
잘린 팔을 기로 이어 붙인 건 분명 임시방편이었을 텐데...
'신경이 붙고 있다니.'
저런 재생력이라니? 저걸 인간으로 봐도 되나?
노신은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머뭇거릴 시간은 없었다.
"백로(白路)."
다시 한번 황제의 팔을 날렸었던 노신의 기술이 쇄도했다.
그러나 이번에 황제는 그 기술에 당하지 않았다.
휘익!
가볍게 고개를 젖히는 것으로 그 공격을 피해낸 황제가 말했다.
"그렇군. 자신도 알 수 없는 궤도로 공격하는 초고속 검술이었나."
황제의 말에 노신은 부정하지 못했다.
그게 사실이었으니까.
자신도 인지할 수 없는 속도로 휘두르기에 그 검로는 검을 휘두른 자신조차 알 수 없는 자유로운 검.
그게 방금 노신의 기술이었다.
'...더 끌리면 반드시 진다.'
그걸 본 노신은 직감했다.
황제의 분석력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완벽했다. 몸은 백로를 써도 고작 팔조차도 힘겹게 날릴 정도로 단단했고, 그마저도 스스로 이어 붙여 버릴 정도였다.
인간이 아니다.
어느새 황제의 머리가 금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노신은 그런 황제를 보면서 생각했다.
하늘이 눈앞에 있었다.
쉬이 닿을 수 없을 거 같은 하늘이.
'그렇다면 더욱.'
포기할 수는 없겠지.
황제를 보는 노신의 눈이 고요해졌다.
그러고는 준비해 둔 기술을 펼쳤다.
"백천(白天)."
그 순간...
이 경기장 전체가 하얗게 물들었다.
--
'팔이 붙어?'
황태후와 비들을 경호하며 경기를 지켜보던 모용진은 잘린 팔이 붙는 황제를 보면서 눈을 크게 떴다.
저 몸을 이미 인간의 몸이라고 봐도 되는 걸까?
황제는 스스로가 원하지 않겠지만 이미 인간을 초월하고 있었다.
'신... 인가.'
그래 지금의 황제는 신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것은 점점 금색으로 물들어가는 황제의 머리가 증명하고 있었다.
'천기를... 끌어다 쓰는 게 아니야.'
황제가 천기를 끌어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천기가 황제를 향해 모여 들고 있었다.
마치... 지금의 황제가 주인이라는 것처럼.
그 주인을 위해서 모이고 있었다.
"백천(白天)."
'이건...'
그때였다.
모용진은 갑자기 세상이 하얗게 물드는 것을 보면서 경악했다.
이건 무슨 기술이지?
화안금정으로 보아도 도저히 알 수 없었으니까.
--
"...언령을 쓰네요."
대결을 보러 온 여화는 노신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녀의 눈으로는 도저히 그 경지를 헤아릴 수 없는 노인이었다.
그런 노인이 언령을 쓰는 이유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폐하께 저 정도의 상처를...'
그 실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황제에게 저 정도 상처를 낼 수 있는 것 자체가 그의 실력이 이미 인간을 초월했다는 증거였으니까.
'머리가...'
레오니는 점점 금색으로 물들어가는 황제의 머리를 보면서 오한이 들었다.
뭔가 바뀌고 있는 거 같은데... 그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둘이 검을 섞으면 섞을수록, 황제의 머리는 금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잘린 팔은 황제가 기로 굳이 고정을 할 필요도 없이 완전히 붙었고, 노신은 서서히 황제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이건 황제의 승리인가?
여화와 레오니가 그런 생각할 때였다.
'...뭐지?'
그 순간 세상이 하얗게 물들기 시작했다.
마치.. 모든 것을 지워 버리려는 것처럼.
--
'이건...'
황제는 새하얀 세상을 보면서 검을 들었다.
카앙!
그러자 노신의 검이 그대로 그 검에 막혔다.
스륵.
황제는 자연스럽게 그 검을 아래로 흘리고는 자세를 무너트려 노신의 복부에 무릎을 박았다.
펑!
'허상?'
그러나 노신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제야 자신이 허상을 때렸다는 걸 깨달은 황제가 몸을 앞으로 굴리자 방금까지 황제가 있던 그 자리에 노신의 새하얀 기검이 솟았다.
'그렇군.'
황제는 그제야 알았다.
이 공간은 그야말로 노신의 공간.
이곳에서만큼은 그가 신이었다.
휘익.
노신이 가볍게 손을 가로로 긋자 기의 칼날이 황제를 향해 날아들었다.
파사삭!
황제는 그것을 순식간에 베어서 분해해 버리고 빠르게 노신의 목을 노렸다.
카앙!
그러나 어느새 생겨난 새하얀 기의 검이 그것을 막아 냈다.
푸욱!
황제는 자기 등에 박힌 기검에 눈을 크게 떴다.
"이곳은 이제 본좌의 세상임을 아직도 모르는가?"
노신은 그 모습을 보면서 검을 휘둘렀다.
이 공간에서만큼은 언령이 필요 없었다.
자기 기로 만들어 낸 이 하얀 세상.
이곳은 그야말로 자기 세상이었으니까.
콰득.
'...과연.'
황제는 그 검을 손으로 잡았다.
그러고는 기로 자기 몸에 박힌 기검을 빼냈다.
치이이익...!
그러자 빠르게 황제의 상처가 재생하기 시작했다.
그래, 재생이었다.
노신의 눈이 커졌고, 황제는 그 순간 노신의 검을 악력으로 으깨버리면서 선언했다.
"그렇다면 그 세상... 지켜보거라."
황제가 기를 방출하기 시작했다.
쩌적.
'백천에 금이?'
노신은 경악하고 있었으나 황제는 태연하게 더욱 자신의 기를 방출해 그것을 깨부수고 있었다.
쩅그랑!
그리고 마침내... 백천이 무너져 내렸다.
새하얀 기의 가루를 흩날리며...
무너진 백천을 보면서 황제가 말했다.
"지키지 못했구나."
"..."
노신은 황제의 덤덤한 말에 자세를 잡았다.
어느새 그의 손엔 자연스럽게 기검이 쥐어져 있었다.
푸욱.
황제는 자신의 검을 땅에 박아 버리고는 기검을 형성했다.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황제의 기검과 새하얀 노신의 기검이 동시에 충돌했다.
"백일연(白一煙)."
그야말로 연기처럼.
노신의 검이 흐르듯 사방에서 황제를 노렸으나 황제는 그 검을 전부 쳐 냈다.
그리고 빠르게 노신의 목을 찔렀다.
'또 목...'
이번 황제는 매번 같은 곳을 노리는 건가? 노신이 관성적으로 그 검을 쳐 내려고 할 때였다.
스윽.
갑자기 황제의 검이 검로를 뒤틀더니 노신의 복부에 박혔다.
그야말로 허를 찌르는 일격이었다.
설마 이 한 번의 공격을 위해서 일부러 목만 노리다니.
노신은 황제의 심계에 경악하면서도 뒤로 물러났다.
"쿨럭!"
"즐거워. 아주. 짐은 지금 즐거워서 미칠 거 같아."
이젠 완전히 금색으로 물든 머리를 길게 늘어놓은 황제가 웃으면서 말했다.
즐거웠다.
서로가 서로의 수를 꺼내고, 또 받아치는 이 싸움이.
황제는 너무나도 즐거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그 말을 들은 노신은 지혈하면서 황제를 밀어내고는 자기 복부에 박힌 기검을 파괴했다.
자신은 저런 괴물 같은 회복력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기술도, 판단력도, 수 싸움도 열세였다.
하지만...
'아직이지.'
포기하기엔 이르다.
노신은 차분하게 기를 정돈하고는 숨을 골랐다.
기운은 자신이 우위에 있다.
오랜 세월로 쌓아온 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그런 노신을 보면서 황제 역시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무리한 재생은 황제에게도 많은 부담을 주었으니까.
출혈을 막기 위해 여화가 쓰던 방식을 써본 거였는데... 역시 자신에게 맞지 않은 성질의 기를 운용하다 보니 생각 이상으로 기의 소모가 심했으니까.
솔직히 이럴 거면 그냥 기로 출혈을 막고 있는 게 오히려 더 이득일 정도였다.
'재생은 봉인.'
더 했다가는 오히려 기의 부족으로 질판이다.
황제는 스스로 재생은 봉인하고는 일단 상태를 점검했다.
이미 흘린 피가 생각보다는 많았고, 무엇보다도 아직 미숙한 재생 때문에 기맥이 잘못 붙었다.
이걸 풀어보려고 하고 있긴 한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고 있었다.
'강하다.'
황제는 노신이 정말 만족스러웠다.
늘 이런 강자와 싸우고 싶었다.
목숨을 걸고 수를 떠올리고, 최선을 다해서 상대를 분석하며, 노림 수를 심어두는 이 순간이.
황제는 그 어떤 때보다도 좋았다.
'너도 마찬가지겠지.'
너도 같은 마음이겠지.
황제는 그런 생각하면서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노신도 몸을 움직였다.
카앙!
둘의 기검이 충돌하고 둘이 동시에 뒤로 밀려났다.
기의 강함은 역시 오랜 세월을 쌓아온 노신의 승리였지만... 황제는 그것을 말도 안 되는 기의 운용으로 극복해서 동수를 이루어냈다.
그제야 노신은 황제의 강함은 단순히 기의 강약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황제의 정말 무서운 점은... 저 젊은 나이에 저만한 기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게 최대 강점이 아니라는데에 있었으니까.
저 젊은 황제의 진정한 강점은...
저 나이에 이룬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그야말로 신의 경지에 닿은 기술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