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가 정말 좋아하는 개가 있었다.
어느 날 소녀는 자신을 따라주지 않는 개가 너무 미웠다.
[멍멍이 미워! 그냥 사라졌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날.
더 이상 개는 소녀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소녀가 정말 아끼는 새가 있었다.
소녀는 새의 울음소리가 너무나도 좋았고, 계속 아름답게 노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난 새가 계속 노래하면 좋겠어.]
그러자 새는 쉬지 않고 노래를 부르다가 지쳐 죽었다.
그 모습을 본 소녀의 아버지가 말했다.
[딸아. 넌 이제부터... 하지 말 거라.]
소녀는 그 순간 말을 잃었고, 이윽고 모든 일에 흥미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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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령은 조심스럽게 합궁 일자를 미뤄야겠다고 말하면서도 황제의 눈치를 살폈다.
아무리 그래도 폐하께서 그렇게 심한 부상을 입었으니... 비록 치료는 완벽하다고 해도 좀 더 시일을 두고 지켜보고자 하는 게 수 많은 대신들의 생각이었다,
문제는 황제가 합궁을 서두르고 있었다는 점인데...
"합궁은 3일 후. 그래, 나쁘지 않겠지."
생각보다 황제는 미뤄진 합궁에 생각보다 긍정적이었다.
'깨달은 점이 많아.'
그 이유는 간단했다.
황제는 노신과의 대결로 깨달은 게 많아서 그것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정무도 다 봤으니까 짐은 잠시 어디 좀 다녀오마."
"...네?"
갑작스러운 황제의 말에 미령이 당황했으나 황제는 태연하게 붓을 내려놓고는 집무실을 떠났다.
모용진도 갑작스러운 황제의 행동에 당황하긴 했지만...
'누가 막겠어.'
이내 둘 다 체념해버렸다.
애초에 그 누가 저 황제에게 해를 입힐 수 있겠는가.
어디 나간다고 해도 황제의 옥체엔 아무런 문제도 없을 건 뻔했기에 둘은 걱정은 하지 않았다.
애초에 합궁을 미루자고 한 것도 늙은 대관들의 노파심 때문었으니까.
진지하게 지금 황제의 몸상태가 합궁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는 적어도 이 집무실 안에는 없었다.
"그 와중에 일은 다 하고 가셨네요."
모용진이 깔끔하게 처리된 금일 올라온 안건과 잘 정리된 장계를 보고는 작게 감탄했다.
스윽 읽어보니까 일을 대충한 것도 아니었다.
어제 그렇게 다치고도 오늘 바로 정무를 보더니 이렇게 빠르게 처리했다고? 초인이 따로 없었다.
모용진은 황제의 능력엔 감탄만 나올 정도였다.
"폐하께서 이렇게 열심히 하시니 문관들은 죽어 나간답니다."
미령은 조금 앓는 소리를 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황제가 매번 늦게까지 정무를 보니 자연히 문관들도 야근이었다.
매일 문관들이 커피를 달고 산다는 소문이 괜히 들리는 게 아니다. 당장 미령도 최근에 격무에 시달려서 그런지 눈이 검게 죽어 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제시간에 퇴궁하겠네요. 모두."
황제가 이렇게 일찍 정무를 끝냈으니 정시 퇴궁이 가능하겠구나.
미령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웃었다.
연이은 격무로 죽어 가던 문관들에게 오늘 천금 같은 휴식 시간을 줄 수 있을 거 같았으니까.
그녀도 오늘은 조금 일찍 일을 끝내고 푸욱 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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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는 깨달음을 정리하기 위해서 산을 올랐다.
기왕이면 공기가 맑은 곳에서 명상하면서 깨달음을 정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 산장도 여전하구나.'
오르테가와 밤을 보냈던 산장을 살펴보고 나온 황제는 가만히 산장 앞에 놓여 있던 안락의자에 앉아서 명상을 시작했다.
컹!
"...?"
그때였다.
갑자기 들리는 개가 짖는 소리에 황제는 눈을 떴다.
컹! 컹!
"...개?"
황제는 자기 앞에 앉아서 꼬리를 살랑거리는 더러운 개 한 마리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대형견인지 크기는 크고, 털에는 흙먼지가 가득했다.
거무죽죽한 개가 그 기다란 주둥이를 들이대면서 쓰다듬어 달라는 듯이 반응하고 있었다.
"신기하구나."
황제는 그런 들개의 반응이 참 신기했다.
자신에게 이렇게 처음부터 아양을 부리는 존재를 만난 건 처음이었으니까.
"흠..."
오늘은 깨달음을 정리하려고 했는데...
황제는 그 더러운 개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면서 고민에 잠겼다.
개는 그런 황제의 손길이 기분 좋은지 눈까지 감고는 그것을 즐기고 있었다.
"일단 좀 씻겨야겠구나."
황제는 자기 옷이 더러워지는 건 신경 쓰지 않으면서 개를 안아 들고는 산장에 마련된 욕실로 향했다.
끼잉! 끼잉!
욕실에 준비된 따뜻한 물이 자신의 몸에 닿자 개가 발버둥을 쳤으나 황제가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금세 얌전해졌다.
황제는 물로 개를 깨끗하게 씻기고는 조금 놀란 눈했다.
"흰색이었나."
털이 흰색일 줄이야.
황제는 얼마나 더러웠으면 이렇게 새하얀 털이 그렇게 거무죽죽해질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컹!
갑자기 짖는 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황제는 잠시 고민했다.
"널 어찌하면 좋을까?"
주인은 없어 보이는데...
이렇게 씻기고 보니 제법 잘생긴 놈이었다.
무엇보다도 털이 풍성해서 쓰다듬는 맛이 좋았다.
컹! 컹!
황제는 몇 번 짖더니 자신의 얼굴을 마구 핥는 개를 쓰다듬어 주고는 결정했다.
일단 오늘은 명상을 포기하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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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이 좀 있네요. 그것만 빼면 건강한 암놈입니다."
어의가 황제가 데려온 개를 살펴보고는 기생충 약을 먹이면서 말했다.
검사 결과 기생충이 조금 있는 걸 제외하고는 건강한 녀석이었다.
"그래? 다행이구나."
그 말에 안심한 황제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꼬리를 살랑거리는 개를 쓰다듬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흠..."
"그...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십니까?"
어의는 갑자기 심각해진 황제의 얼굴을 보고는 덩달아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어서."
"네? 검사는 완벽..."
"이름을 뭐로 하지?"
휘청!
뭔가 검사에 이상이라도 있었나 걱정하던 어의는 이어진 황제의 말에 비틀거렸다.
엄청 심각한 얼굴이기에 뭔가 했는데 고작 그런 고민이라니.
그러나 황제에겐 꽤 중요한 문제였다.
"암놈이라... 흠, 그래 하얀 놈이니 백야라고 하자. 白자에 野자를 써서 말이다."
하얀 들개니까 이런 이름이면 적당하려나?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말했고, 백야가 된 개는 그저 좋다는 듯이 황제의 손을 핥았다.
그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이 구경하며 어의가 어색하게 서 있자 황제가 명령했다.
"녀석. 그래. 착하구나. 아무튼 백야가 굶주린 거 같으니 먹을 만한 걸 좀 가져오거라."
"네, 바로 준비하라 지시해 두겠습니다."
어의가 꾸벅 고개를 숙이고 사라지자 황제는 말끔해진 백야를 꼭 안아서는 그 털에 얼굴을 비볐다.
"그래, 그래. 착하구나. 멍. 멍. 하고 짖어도 된다. 그게 건강해 보여서 보기 좋..."
개소리까지 흉내 내며 황제가 한참 백야와 놀아주고 있을 때였다.
"어라? 내 천안에 이상이 생겼나?"
앞에서 조금 당황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제는 앞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봤느냐?"
타흘라는 황제의 민망한 듯한 그 말에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정말이지 다 큰 남자가 저렇게 귀여워도 되는 건가? 그녀는 그런 생각이 들었으니까.
"아하하! 그거 너무 귀여운 거 알아요? 폐하?"
커다란 개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귓불까지 빨개질 정도로 부끄러워하는 황제의 저런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타흘라는 그 황제가 이렇게 귀여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에 놀라우면서도 놀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귀여워라. 그렇게 푹신한 게 좋았어요? 이쪽도 푹신한 게 하나 있는데 어때요? 이 타흘라 누나가 안아줄까요?"
"...그만. 그만해라."
타흘라가 제대로 놀리기 시작하자 완전히 수치심에 붉어진 얼굴로 황제가 애원했다.
정말이지 황제의 인생 중에서 가장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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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시아는 자신에게 배정된 별궁에서 쉬면서 황제를 생각했다.
그곳에서 본 황제는 아름다웠다.
그녀가 지금까지 봤던 그 무엇보다도.
'또...'
만날 수 있을까?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자신이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을 했는지 깨달았다.
또 만날 수 있다.
애초에 그녀가 이 황궁에 온 이유가 바로 그 황제의 비가 되기 위해서였으니까.
"황궁은 어때? 난 둘러보니까 생각보다 많이 변했더라. 고작 2년 좀 넘었을 뿐인데 말이야."
제렌은 황궁이 익숙한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녀보고 온 모양이었다.
그녀는 신난 얼굴로 황궁에 대해서 떠들었고, 시아는 그런 제렌을 물끄러미 보더니 말했다.
"황제."
"응? 아! 오라버니 말이지. 솔직히 그런 대결을 하고 난 후잖아. 합궁이 조금 미뤄진다고 해도 어쩔 수 없지 않을까...?"
스윽.
"보고 싶어."
시아가 작게 말하자 제렌은 난처한 웃음을 흘렸다.
그야 얼굴 하나는 확실하니까 보고 싶은 마음을 이해 못할 건 아닌데 그녀가 아는 황제는 보통 엄청 바빴다.
"그... 나한테 그런 권한은 없는데. 그래도 물어보고 올게."
그러나 그렇다고 제렌은 슬픈 눈을 하고 있는 시아의 부탁을 거절하기도 힘들었다.
시아에겐 이상하게 약해지는 제렌은 결국 그게 가능한지 물어보기 위해서 사라졌다.
홀로 덩그러니 방에 남은 시아는 눈을 감고는 생각에 잠겼다.
자신의 말이 가지는 무게를 그녀는 잘 알았다.
함부로 말하지 못 하는 입장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제대로 말도 못 하는 생활을 하다 보니 그녀는 모든 것에 관심을 잃어가고 있었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어느새 그녀에겐 그런 것들이 상관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무관심. 무관심. 무관심.
그녀는 점점 아무것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었으니까.
그랬는데... 이번엔 달랐다.
그녀는 이번 황제에게 자꾸만 관심이 갔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가 지금까지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잘생겨서?
그것도 아니면...
'모르겠어.'
지금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다시 만나면 왠지 확신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황제를 만나고 싶었다.
만나서...
지금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