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계에 대한 조사가 끝났습니다."
황제는 집무실에서 사하크에게 유학을 가르치던 중 갑자기 나타난 모용진의 말에 바로 책을 덮었다.
"그래, 결과는?"
차분한 어조로 황제가 묻자 모용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역시 조작이 있었습니다. 관계자는 형부 소속 관리만 5명. 그중에 무려 형부 상서가 개입된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6부 전체에서 개입한 대규모의 장계 조작 사건입니다."
생각 이상의 큰 사건이었다.
6부 전체가 관계되어 있고 심지어 한 부서의 장이 개입되어 있을 정도라니...
"...그래서 어찌하기로 했느냐."
"아무래도 이건 제 권한을 벗어난 일이라서... 그게 죄송합니다."
모용진의 대답에 황제는 탁자를 가볍게 두드렸다.
하긴 형부 상서가 개입되어 있으니 금위대장 혼자서 판단할 수 있는 정도의 사안은 아니었다.
탁. 탁. 탁.
그 행동 하나. 하나에도 모두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고, 안에 있는 모두가 긴장한 얼굴로 황제를 보고 있었다.
형부 상서라...
"쥐새끼가... 짐을 두려워하는 척하면서 뒤에선 이딴 망발을 벌여?"
황제의 입에서 거친 말이 튀어나왔고, 사하크는 공포에 몸을 떨었다.
그 모용진마저도 위축될 정도로 황제에게서 풍기는 기운은 흉흉했다.
"금위대장은 당장 그 사건의 재조사를 진행하여 모든 사건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나머지 금위대는 지금 당장. 이 장계 위조에 개입한 모두를 잡아서 짐의 앞으로 끌고 와라."
"형부 상서도 말입니까?"
"그래."
황제는 예외가 없음을 선언했고, 모용진은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가 역시..."
"모용진."
황제는 최근 꽤 자비로워지려고 노력했다.
실제로 가벼운 실수는 많이 넘어가 주었고, 어느 정도의 월권도 너그럽게 넘어가 주었다.
허나...
"짐이 거듭 말하게 하지 말거라."
"네."
지금은 그들이 명백하게 선을 넘었다.
황제는 그들에게 보여 줄 생각이었다.
그 선을 넘으면... 자신이 어떤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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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성. 웅성.
순식간에 금위대에게 잡혀서 광장으로 끌려온 관리들은 새파랗게 질려서는 덜덜 떨고 있었고, 관도의 시민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그들은 짐작하지 못했으니까.
또각. 또각.
그리고 그 순간 황제가 그런 그들을 향해 걸어왔다.
주변의 시선이 순식간에 황제에게 쏠렸다.
모든 사람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 잡는 카리스마. 황제에겐 그것이 분명 존재했으니까.
끼이이익.
의자를 가볍게 끌고 와서 관리들 앞까지 가져온 황제는 대담하게도 그들 앞에 당당하게 앉았다.
그러고는 자신과 눈조차 마주칠 생각을 못하고 있는 맨앞에 있는 남자.
형부 상서 장무량을 가만히 응시했다.
"재미있는 짓을 했더구나."
"폐, 폐하! 그, 그것은..."
장무량이 다급하게 변명하려고 했으나 황제는 그 변명을 들을 생각이 딱히 없었다.
"뭐, 좋아. 그대가 왜 그런 위반을 저질렀는지는 재조사가 끝나면 알 수 있겠지."
다른 이도 아니고 모용진에게 빠른 재조사를 요구한 상태다.
하루도 필요 없다.
이미 지금쯤이면 모든 조사가 끝났을 테지.
그러니 황제는 우선 조사 결과를 듣고 모든 걸 판단할 생각이었다.
"그것은 그러니까..."
"변명은 나중에 들으마."
황제는 그 말을 가볍게 자르고는 의자에 앉아서 그들을 살펴보았다.
식솔들을 제외하고 보아도 참으로 많은 관리들이 엮여 있었다.
"이리도 많은 이들이 위조에 관여했구나. 대단해. 확실히 요새 짐이 많이 무르긴 했던 모양이야."
6부 전체가 관련되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황제는 자신이 최근에 너무나도 자비로웠다는 걸 실감해버렸다.
"재상. 이 일은 어찌 책임질 생각이냐."
"...이 모든 건 신이 부덕한 탓입니다. 그 어떤 처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리고 그 책임에서 재상도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재상은 이토록 많은 관리들이 무려 황제에게 올라가는 장계를 위조하는 데 협력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있었다.
"짐은 그대를 참으로 신뢰했는데... 아쉬운 일이구나. 한 달 감봉이다. 시말서도 준비해 두거라."
"네."
재상은 황제의 관대한 처분을 받아들였다.
그 처분에 잡혀 온 관리들의 얼굴에 일말의 기대가 피어났다.
확실히 요즘 자비로워진 황제라면 어쩌면...
"폐하. 모든 조사가 끝났습니다."
그때였다.
모용진이 한눈에 봐도 사나워 보이는 인상의 청년을 포승줄로 묶어서 끌고 왔고, 그 옆엔 다리가 불편한 중년의 남자가 덜덜 떨면서 서 있었다.
"그래, 말해 보거라."
황제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인 형부 상서를 쳐다보고는 모용진의 보고를 듣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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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모용진과 함께 온 중년의 남자는 호랑이가 많이 나타나기로 유명했던 중호의 작은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살던 농부로 슬하의 자식 3명을 두었다.
잔소리가 조금 심하지만 그래도 억척스러운 면이 있어서 살림을 잘 꾸려 나가는 아내를 두었던 그는 어느 날 아내의 싸늘한 시체를 받아야 했다.
"관청에서는 호환을 당했다고 기록해 두었습니다."
"그 말은..."
"실제로는 살해당했지요."
모용진의 명쾌한 대답에 황제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야말로 위조가 아닌 것이 없을 정도가 아닌가.
"중호를 관리하는 자가 누구였지?"
"저기 잡아두었습니다."
모용진이 저기 형부 상서 뒤에 묶여 있는 남자를 가리키며 말하자 황제는 한숨을 쉬었다.
"가지가지 하는군."
황제는 구역질이 난다 생각하면서도 계속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범인은?"
"이 남자입니다."
황제는 그제야 한눈에 봐도 참으로 몹쓸 놈처럼 보이는 청년을 보면서 혀를 찼다.
"싹수가 아주 노랐구나."
"장가의 후계자입니다."
"...저게?"
저런 쓰레기가 장가의 후계자라고?
"명문 장가도 이젠 의미가 없구나."
울컥!
황제의 냉정한 평가에 청년은 순간 울컥했지만...
"그 눈은 뭐지?"
오싹.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황제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세에 위압당해선 바로 꼬리를 말았다.
"그래, 그러면 그런 평범한 농부의 아내를 죽인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해지는구나."
황제는 시선을 주기도 아까운지 청년에게서 시선을 떼고는 모용진에게 물었다.
모용진은 그 말에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힘겹게 입을 열었다.
솔직히 모용진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가 이해가 가지 않았으니까.
"...그냥. 심심해서 죽인 거 같습니다."
"..."
황제의 표정이 무서워졌다.
"짐도 한 수를 접게 만드는 구나."
그런 이유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구나.
황제는 정신이 어지러웠다.
생각은 할 수 있어도 실행까지 하는 놈이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그럼 저 남자는?"
"사건을 덮기 위해서 누명을 씌우고 장형을 내린 거 같습니다. 그 결과 하반신에 문제가 생겼고요."
"치료는?"
"치료할까요?"
"...일단 피해자는 치료하고 피해 보상금을 지급하거라."
황제는 그리 말하면서 남자에게 손을 까닥였다.
"이리 가까이 오거라."
"네, 네... 폐하."
남자가 덜덜 떨면서도 황제에게 절뚝거리며 다가왔다.
그 모습을 안쓰럽게 쳐다보던 황제가 말했다.
"무엇을 원하느냐."
"폐, 폐하."
황제는 가만히 남자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볼 수 있었다.
가족을 잃은 분노가.
이 남자에겐 존재했다.
"복수를 원하느냐? 지금 말하거라. 짐이 들어 줄 수 있는 건 모두 들어 주마."
"폐, 폐하!"
그 말에 재상이 놀란 얼굴로 외쳤다.
그것은 그야말로 파격.
일개 평민에게 만인지상이 그 어떤 소원도 들어 준다는 것은 유례가 없는 파격이었다.
"그, 그것이..."
남자는 떨었다.
그러고는 증오스러운 청년을 보았다.
한참 청년을 보던 남자가 이내 눈을 질끈 감았다.
아직도 저녁 찬거리를 사오겠다고 말하던 아내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차갑게 식은 아내의 시체가 아른거렸다.
처음부터...
사실 남자가 할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복수를... 원합니다."
그 대답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는 이미 그의 대답을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그래, 그리 될 것이다."
황제는 눈을 감았다.
그래, 모두가 원수 앞에선 그런 생각일 것이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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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폐하께서."
한참 오늘 있을 합궁을 위해서 치장을 하고 있던 아네스는 황제의 소식을 듣고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합궁이 미뤄질지도 모른다.
물론 그래 봐야 고작 하루겠지만. 그 하루조차도 그녀에겐 참으로 길게 느껴졌다.
"어쩔 수 없지요. 그래도 치장은 해주시겠어요?"
혹시 모르니까...
아네스는 그리 생각하면서 얌전히 치장을 받았다.
'걱정이네요.'
아네스는 황제의 소식을 들으니 조금 걱정이 되었다.
최근 폐하는 변했다.
자비로워지려고 노력했고, 피를 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힘들겠죠.'
황제란 자리가 사실 그럴 수 없는 자리다.
자비로우면 무시당하고, 피를 보지 않으려고 하면 상대 쪽에서 피를 보고자 한다.
황제는 어쩔 수 없이 피를 흘리고, 비정해져야 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건 폐하께서 생각하는 황제의 자리를 유지하고자 했을 때 이야기고...
사실 대충 넘기면 얼마든지 자비로워질 수 있다.
악덕은 넘기고, 위반에 눈을 감으면 적어도 혼자선 자비로움을 가장할 수도 있겠지.
그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아도 될 거다.
'하지만... 폐하는 그럴 사람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황제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니까.
그런 사람이니까 홀로서 모든 걸 짊어지고 망가진 사람이니까.
아네스는 그런 점까지도 사랑했기에... 황제가 걱정이 되었다.
--
퍼억!
황제는 관도 시민들 앞에서 장형을 받는 관리들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형부 상서만이 장형을 받지 않고는 그대로 그것을 보면서 덜덜 떨고 있었다.
"관리도 전부 새로 뽑아야겠구나."
황제의 말에 재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모두 파직을 피할 수 없으니 대규모 인원 공백이 예견되어 있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머리가 아파. 짐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아직도 모르겠구나."
스윽.
두통을 호소하던 황제의 눈이 형부 상서에게 향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있느냐."
마지막.
그 말의 의미를 알아차린 형부 상서 장무량은 덜덜 떨었다.
"대답."
"폐, 폐하... 부디 자비를."
"그래, 자비를 베풀어서 사약을 내릴 것이니 안심하고 이야기하거라. 어찌하여 이런 위반을 저질렀느냐."
사약.
어찌 되었든 자신은 죽는다는 이야기였기에 무량은 덜덜 떨었다.
"그, 그것은..."
"사실상 그대 때문에 저 많은 이들이 희생당한 거다. 저들은 인생을 불구로 살 수도 있고, 설령 운이 좋아 몸을 건사해도 소금광산에서 평생을 보내게 될 테지."
식솔들조차도 예외가 없이.
황제는 단호하게 말했고, 그 말에 장형은 받지 않고 있던 식솔들은 몸을 떨었다.
"후회하지 않나?"
황제는 궁금해졌다.
이 남자는 자기 선택으로 만든 이 결과물에 후회하고 있을까?
"부모가... 자식을 어찌 버리겠습니까. 가족을 어찌 버린단 말입니까."
장무량이 억울하다는 듯이 말하자 황제는 그대로 잠시 굳었다.
"가족을..."
그 말이 황제에겐 다르게 들렸다.
황제에겐 그 말이... 마치 너 같은 괴물이나 가족을 그리 쉽게 버린다고 비난하는 것처럼 들렸으니까.
"그래, 그게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더냐."
황제는 그리 말하면서 어의가 들고 온 사약을 그에게 내렸다.
"마시거라. 그 후회 없는 결정을 후회하지 말고 죽어라."
"폐, 폐하! 천륜을 어찌 거스르라 하십니까! 아무리 죄인이라 해도 자식을 감싼 것이 그리 죄입니까!"
"죄다."
황제는 억울하다는 듯이 외치는 그에게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것은 죄였다.
"그대의 죄는 자식을 감싼 것이 아니야. 착각하고 있구나."
황제는 사약을 거부하는 그 입을 직접 손으로 벌리면서 말했다.
애초에 이 남자는 자신의 죄조차 제대로 파악을 못하고 있는 듯 했으니까.
"그대의 죄는 짐을 기만한 것이다."
벌컥. 벌컥,
"거짓 장계로 짐을 기만하고, 황제에게 진실을 고해야 할 자리에서 거짓을 고했다."
황제는 직접 그 입에 사약을 흘려 넣고는 그대로 그 입을 억지로 닫았다.
"그것 이상의 중죄가 어디 있느냐?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 했다? 기뻐하거라. 네 자식은 절대 곱게 죽지 못할 거야."
"읍! 읍!"
황제가 입을 막고 있었기에 장무량은 발버둥을 쳤지만 부질없는 일이었다.
"짐이 확언하마. 그대는... 그 실수로 오히려 자식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게 될 거다."
"으읍!"
눈물까지 흘리면서 장무량이 발버둥 쳤으나 황제는 신경 쓰지 않으면서 그가 사약을 삼킬 때까지 묵묵히 기다렸다.
꿀꺽!
결국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장무량이 사약을 삼키자 황제는 그 입을 놓아주었다.
"컥! 커억!"
몸을 부들거리던 장무량이 그대로 쓰러졌고, 청년은 그 모습을 보면서 겁에 질렸다.
"작두를 가져와라."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무사들에게 명령한 황제는 눈을 감았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자신도 이젠 알 수가 없었다.
자비로워지고 싶은데, 상황은 자꾸만 황제가 그리하는 것을 불가하게 만들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