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는 가만히 장형을 받는 관리들을 구경하면서 조금 심심했는지 옆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질문했다.
"잘 보고 있느냐?"
"네? 아, 예..."
자신이 황제의 옆에 앉아 있다는 사실에 겁먹은 남자가 덜덜 떠는 것을 보면서 황제는 말했다.
"이제부터가 더욱 재미있어 질 테니 지켜보거라."
아무튼 해야 할 일은 해야지.
황제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광장에 준비되고 있는 작두를 보았다.
"그대의 자리가 준비되고 있구나."
"네?"
황제는 그 말에 당황한 청년을 보면서 웃었다.
"그래, 그대의 자리가 저기 중앙에 말이다."
덜덜.
그 웃음이 참으로 공포스럽다.
청년은 그리 생각하면서 덜덜 떨었다.
당장에라도 살려달라 빌고 싶었는데 그 미소를 본 순간 입이 도저히 움직이지가 않았다.
"작두에 올려라."
"폐, 폐하! 잘못했습니다! 부, 부디...! 부디! 그러니까. 살려. 그러니까!"
그 한마디에 갑자기 횡설수설하는 청년을 보면서 황제가 덤덤하게 말했다.
"올려."
그 목소리에 담긴 감정은 시베트의 추위보다도 차가웠다.
청년은 황제에게서 느껴지는 한기에 그대로 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네, 바로 올리겠습니다."
금위대의 병사들이 그대로 청년을 끌고 가서는 작두 위에 올렸다.
"히, 히익!"
자신과 가까운 칼날을 보면서 청년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몸을 떨었다.
"이게 무엇인지 아느냐?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
그 모습을 보고 다가온 황제는 작두를 만지작거리면서 가벼운 어조로 말을 걸어왔다.
"이건 요참형이라고 하는 것이다. 작두로 죄인의 허리를 잘라 내는 형벌이지."
황제는 작두에 손을 올리면서 말했다.
요참형은 그 잔인함 때문에 사실 오랜 세월 집행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모르는 이도 많을 테지.
황제는 그렇기에 죄인의 무지함을 이해했다.
"이대로 내려찍으면 그대의 허리가 두 동강이 나겠지. 걱정은 말거라. 바로 죽진 않으니. 인간은 생각보다 그리 약하지 않거든."
황제는 친절하게 설명해주면서 웃었다.
청년은 당장에라도 도망치고 싶었지만 이미 속박당한 상태라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천천히. 천천히 죽어갈 것이야. 물론 짐이 해주면 단숨에 허리가 잘릴 거다. 짐은 그럴 수 있지."
황제는 덤덤하게 말하고는 작두에서 손을 똈다.
"허나 그러지 않으면 어찌 될까? 그러면 한 번에 잘리지 않을 거다. 우리 미숙한 집행인이 여러 번 시도하고 나서야 허리가 잘리게 될 테지. 그 고통은 실로 끔찍할 거다."
미숙한 집행인.
우습지만 그 말은 틀린 말도 아니었다.
애초에 황제는 지금까지 극형을 받은 죄인은 전부 자신의 손으로 처리해왔으니까.
그런 황제의 말에 청년은 오들오들 떨었다.
"폐, 폐하... 부디 자비를..."
"장난삼아 사람을 죽였다지. 무서운 발상이구나. 고작 재미로 사람을 죽이다니."
물론 황제도...
"사실 짐도 그런 생각한 적은 있단다. 그저 검을 휘두르고 싶어서, 사람을 죽이고 싶어서.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감정을 품어본 적은 있지. 그래서 짐은 그대를 이해한다."
광기에 몸을 맡겼을 때, 황제도 그런 생각을 품었다.
물론 그래도 황제는 나름대로 명분을 만들고 죽였지만.
"허, 허면..."
부디 자비를... 청년은 그런 눈으로 황제를 올려다보았고, 황제는 바로 다시 작두에 손을 올리고는 그대로 작두를 내렸다.
서걱!
"그래, 자비를 베풀어서 짐이 직접 집행해 주마."
그야말로 깔끔하게 청년의 허리를 양단한 작두를 보면서 황제는 피를 보았다.
두근!
그 순간 미친 듯이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황제는 피를 보자 흥분하기 시작한 자기 몸에 구역질이 나려고 하고 있었다.
"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청년을 보면서 황제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천천히 피를 흘리며 죽어 가는 청년을 보고 있자면...
'정말이지... 난 쓰레기구나.'
황제는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들었다.
사람이 죽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희열을 느끼다니.
이런 건 이상했다.
정상이 아니다.
황제는 저기 죽어 가는 청년과 자신의 다른 점을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뒤처리는 재상이 끝내도록 하거라. 짐은 피곤하구나."
황제는 그리 말하고는 어의에게 치료를 받고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어떤 기분인가?"
"...허무합니다."
남자는 피를 쏟으며 죽어 가는 청년을 보면서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분명 복수를 했는데...
남자가 느낀 감정은 허무함이었다.
이렇게 복수를 한다고 해서... 죽은 아내가 돌아오지는 않았으니까.
"그래, 그렇겠지."
황제는 그 대답에 눈을 감았다.
"짐도 그러했거든."
복수는 허무하다.
복수란 감정은 실로 탐욕적이어서 아무리 피를 먹이고 먹여도 부족함을 느낀다.
그 부족함에서 인간은 허무함을 느끼는 것이고.
그 허무함은... 아마도 복수를 한다고 해도 잃은 것이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겠지.
"그래도 하지 않은 것보단 낫지."
"...네."
그래도 황제의 경험상 복수하는 편이 마음은 훨씬 편했다.
그러니 이 남자도 마음은 편해졌겠지.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남자의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런 황제의 뒤를 모용진이 얌전히 뒤따랐다.
"주변의 시선이 따갑구나."
"모두가 놀라겠지요. 이런 사건에서... 평민의 편을 든 황제는 폐하께서 처음이십니다."
사실 이런 사건 자체는 생각보다 흔했다.
평민을 장난삼아 죽이고 장계를 위조해 넘긴 일이 이 기나긴 제국의 역사 동안 한 번도 없다고 하면 거짓일 테니까.
그 유명한 명군 한무제 또한 그러한 일을 조용히 덮은 일이 있다는 것이 황실 비사에 적혀 있을 정도였다.
하긴 6부 전체가 개입된 사건에서 평민의 손을 들어 줄 황제도, 그럴 필요성을 느낄 황제도 없을 것이다.
이런 작은 사건 하나로 귀찮은 일을 늘릴 황제가 얼마나 되겠는가.
적어도 기나긴 제국의 역사에서... 지금 황제를 제외하고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평민의 편을 든 것이 아니지."
황제는 모용진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이번 사건은 평민의 손을 들어 준 일이 아니다.
애초에 황제에겐 누군가의 편을 들어줬다는 말이 나오는 게 신기한 사건이었다.
"당연한 일을 했는데 왜 그런 반응이 나오는지 짐은 이해할 수가 없구나."
그들은 법을 어겼고, 황제는 그것을 처벌했을 뿐이다.
황제는 오히려 이 사건에서 왜 누구의 편을 들어줬냐는 그런 이분법적 사고가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모용진."
"네."
황제는 눈을 감았다.
"차라리 눈을 감는 것이 나았겠느냐?"
황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이런 위조 정도... 눈을 감았으면... 이런 피해는 없지 않았을까?
가벼운 처벌로 끝내면 달라졌을까?
"그러지 못하시는 분이잖습니까."
모용진은 그런 황제의 의문을 단숨에 잘라 내듯 말했다.
"생각해 보면 늘 그런 분이셨지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바른 말을 하시던 분이었습니다."
모용진은 기억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폐하는 그 재상 앞에서도 바른 말을 하던 사람이었고, 목에 칼이 놓여 있어도 뜻을 굽히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번에도 폐하께선 올바른 결정을 하신 겁니다."
언제나 스스로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걷는 사람.
그것이 황제였으니까.
모용진은 지금 이 일도 올바르다고 믿었다.
"...그런가."
황제는 그 대답에 조금 위안을 받았다.
"입에 발린 소리도 할 수 있게 되었구나."
황제는 그리 말하고는 다시 걸었다.
물론 황제가 그 말에 공감하는 건 아니었다.
황제는 스스로가 걸어온 길이 늘 옳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오늘은 합궁은 못 하겠구나."
황제의 말에 모용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전하겠습니다."
"그래, 아네스에겐 미안하다고 전해다오."
황제는 솔직히 이런 날엔 도저히 합궁을 진행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아네스에겐 미안하지만... 합궁을 미룰 생각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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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다녀오셨어요?"
그러나 모든 게 황제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황제는 자신이 처소에 도착하자마자 급하게 이불에서 얼굴을 떼어내는 아네스를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
"...뭘 하고 있던 거지?"
자신의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뭘 하고 있던 거지?
황제가 그런 의문을 품은 채 질문하자 아네스가 급하게 흐트러진 옷을 정돈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새하얀 원피스는 너무 얇아서 그녀의 검은 속옷이 그대로 비쳐보이고 있을 정도였다.
"크흠! 큼!"
붉어진 얼굴로 헛기침하는 그녀를 보면서 황제는 피 묻은 용포를 벗고는 의자에 앉았다.
"합궁은 미룰 생각이었는데..."
"유감이네요. 그럼 잠깐 이야기라도 나눌 수는 있나요?"
합궁을 미룰 거란 황제의 말에 눈에 띄게 아쉬워한 아네스가 부탁했다.
황제는 그 부탁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야기 정도야 상관없겠지."
"감사합니다."
아네스는 그리 말하고는 황제를 보았다.
그녀의 눈엔 피에 젖은 모습이 참으로 안쓰러워 보였다.
"씻지 않으실 건가요?"
"아... 그래, 씻어야겠지."
황제는 그 말에 그제야 자신이 피투성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런 모습으로 처소로 오다니...
"정신이 없긴 했던 모양이군."
황제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생각해 보면 처소에 아네스가 있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고, 자기 옷에 피가 묻은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황제는 자신이 지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힘든 일이라도 있었나요?"
"...힘든 일이라."
힘들었다고 해야 하나?
아니 오히려...
"즐거우셨군요."
아네스의 말을 황제는 부정하지 못했다.
그 말대로 즐거웠다.
어리석은 죄인을 비웃으며, 그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구역질이 날 정도로 즐거웠다.
꼬옥.
그런 황제에게 조용히 다가온 아네스가 그대로 황제를 꼭 껴안았다.
"괜찮아요. 그런 폐하라도 전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그게 괜찮은 이유가 되는가?"
황제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묻자 아네스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싫으신가요?"
"...아니, 고맙구나."
황제는 솔직하게 감사를 표했다.
이런 자신이라도... 상관없이 사랑해 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황제에겐 위안이 되었으니까.
"폐하께서 저를 이렇게 만드신 거랍니다."
꼬옥.
그런 황제를 더욱 강하게 껴안으며 아네스가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책임 지셔야 해요?"
"...그래, 그래야지."
황제는 그런 그녀를 마주 안아 주면서 대답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순진한 아가씨를 본의는 아니지만 이렇게 망가트린 건 분명 자신이다.
그것을 황제는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까...
"미안하다."
황제는 사과했다.
왜 자신 같은 남자를 좋아해서. 이런 엉망진창인 남자를 사랑해서.
그녀 같은 여인이 망가져 버린 걸까?
황제는 그녀에겐 늘 마음 한 구석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대에겐... 늘 미안해."
애초에 그녀는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는 위치였다.
그녀가 선택한 남자가 황제가 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이런 자신을 택했다.
망가진 거다.
정상적인 여인이라면 절대 선택하지 않을 것을 고르게 된 것은...
그녀가 망가져 버렸기 때문인 거다.
그런데도 황제는 그녀가 원하는 것을 주지 못했다.
처음이라는 자리.
그 단 하나를 원해서 망가진 그녀를 황제는 사실상 방치했다.
그것이 황제는 늘 미안했다.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말아 주세요."
그런 황제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아네스가 가볍게 그 입술을 입을 맞추었다.
쪽.
"대신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그게 전 더 좋으니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웃었다.
황제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말했다.
"망가졌구나."
"폐하를 사랑하는 게 망가지는 거라면 전 얼마든지 망가질 수 있답니다."
"..."
마치 자신의 마음을 읽은 거 같은 그녀의 대답에 황제는 침묵했다.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망가진 그녀와 이미 망가져 있던 자신.
그런 그녀에게 필요한 것이 이런 자신의 사랑이라면...
"그런가..."
황제는 그녀를 안아주었다.
속에서 올라오는 말은 참으로 많았으나 결국 입 밖으로 나온 것은 하나였다.
"사랑해."
미안해 대신 사랑해.
그녀가 그것을 원했기에 황제도 그렇게 이야기했다.
"정말이지... 그런 점이 정말 폐하다우시네요."
그 '사랑해' 라는 말에 담긴 감정을 읽은 아네스는 황제를 보았다.
이런 고지식한 점마저도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는 자신은 역시 폐하의 말씀대로 망가진 걸까?
아네스는 그런 생각하면서 다시 황제에게 키스했다.
"저도 사랑해요."
그렇다면 망가져서 다행이다.
이렇게... 폐하를 사랑할 수 있으니까.
망가진 두 사람은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사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