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이번에 전하께선 철곡으로 간다면서요?"
객실까지 배달된 파니니와 커피를 먹고 있던 나르타가 생각났다는 듯이 묻자 오르테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거기로 감찰하러 간다고... 명이도 좋아하는 거 같아서 그냥 보냈어."
"철곡. 추워."
슬금슬금 기어와서는 파니니를 집어먹던 시아가 작게 중얼거렸다.
확실히 철곡은 춥지만...
"추운 곳에서 자는 것도 또 각별하거든요."
어느새 일어난 여휘가 그렇게 말하면서 살짝 입을 벌렸다.
"저도 하나 주세요. 아."
"...정말이지. 자."
그걸 본 오르테가가 파니니 하나를 작게 잘라서 입 안에 넣어주자 여휘는 여전히 침대에 누운 채 그것을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이 가볍게 흔들리는 기분도 괜찮네요. 잠이 잘 와요. "
"그, 그래...? 그럼 다행이고."
여휘는 그거 하나 먹고 배가 찼는지 다시 잠들어 버렸고 오르테가는 그런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는 말했다.
"정말이지... 잘 자네."
이렇게 자도 사는데 지장이 없는 게 참으로 신기하다.
오르테가는 그리 생각하면서 일단 식사를 시작했다.
"전하께서 철곡으로 가는데 걱정되진 않나요?"
설화가 조심스럽게 묻자 오르테가는 고개를 저었다.
"그다지...?"
태자 옆에 길명이도 있고, 이화도 붙었으니까... 오르테가는 그리 걱정되진 않았다.
애초에 그녀가 걱정한 건 태자를 억지로 보내는 거였지, 태자의 신변을 걱정한 건 아니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이번에 전하 옆에 이화를 붙여두었던데 폐하께선 벌써... 그걸 신경 쓰고 계신 걸까요?"
나르타가 크게 감탄하며 말했다.
현재 다음 황제에 대한 합궁 순서는 이미 정해진 상태였고, 그 처음을 담당할 민족이 바로 동아족이었다.
그리고 폐하께서 태자에게 이번에 붙인 김이화가 바로... 그들이 선택한 합궁 상대.
즉 태자의 첫 합궁 상대가 될 여인이었으니까.
그녀는 태자에게 첫 상대와 미리 친해질 기회를 제공하는 황제의 배려가 참으로 놀라웠다.
"음... 그걸 감안 하고 고르진 않았을 거 같은데."
그러나 오르테가는 황제가 거기까지 생각하고 고르진 않았을 거라고 확신했다.
애초에 그런 부분을 신경 쓰는 사람도 아니고...
황제가 이화를 호위로 붙였다면 그건 간단하게... 그녀가 가장 그 일에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뭐, 그래도 친해지면 좋지 않겠어?"
아무튼 서로에게 첫 상대가 될 텐데 미리 친해져서 나쁠 건 없을 거다.
오르테가는 그리 생각하면서 커피를 마셨다.
"향 좋다."
커피 향을 맡으면서 미소를 지은 오르테가는 밖을 내다보았다.
"사원이네?"
그녀의 눈엔 커다란 사원이 눈에 보였다. 최근에 여기저기 생기고 있는 것이긴 한데...
대체 무슨 신을 섬기는 사원일까? 그 규모에 오르테가는 조금 궁금해졌다.
일단 천신을 섬기는 사원은 아니었으니까.
"폐하를 모시는 사원이랍니다. 신으로 섬기는 지역도 날로 들어가고 있더라고요."
나르타의 대답에 오르테가는 신기하다는 듯이 멀어져가는 사원을 쳐다보았다.
"흐음. 신이라..."
꼭 세이나가 할 거 같은 말이네.
오르테가는 그런 생각하면서 실실 웃었다.
뭔가... 그녀가 생각하는 녀석과 신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
"폐하! 저건 뭔가요?"
나름 모용진 녀석이 교육을 시켰는지 이젠 자신을 폐하라 부르는 수희를 보던 황제가 그쪽에 시선을 주었다.
수희가 보고 있는 것은 꽤 규모가 큰 사원이었다.
얼마나 크면 제법 빠르게 이동하는 열차 안에서도 아직도 사원이 보일 정도였다.
"사원이란다."
황제의 대답에 수희가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황제를 보면서 물었다.
"사원은 뭔가요?"
"종교 활동하기 위해 신도들이 모이는 장소란다. 저기는..."
황제는 저 사원에서는 무슨 신을 섬기는지 보려다가 굳어버렀다.
"음... 황제를 섬기고 있구나."
황제는 저 사원이 섬기는 신이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한숨을 쉬었다.
최근에 황제를 섬기는 사원과 신전이 늘고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벌써 이렇게 세력이 커졌을 줄이야.
그리고 그건... 결국...
'시간이 없겠군.'
이대로 계속 황제로 있다간 진짜 신이 될 판이다.
황제는 슬슬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태자에게 엄격한 것도, 국사에 관여시키는 것도... 그것을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태자가 약관의 나이가 되면 황제는 그대로 태자에게 선위할 생각이었으니까.
"우리 둘뿐인가요?"
"왜 싫으냐?"
"아뇨! 아빠가 없어서 좋아요."
황제는 아무런 호위도 대동하지 않았다.
모용진이 오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애초에 황제에겐 호위가 필요하지도 않았고, 사실상 비를 만나러 가는 것인데 뭔가 이것저것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건 황제의 성미에도 맞지 않았으니까.
물론 예전이라면 아무리 그래도 호위는 있어야 한다며 만류할 신하들이 어쩐 일인지 반대하지 않는 건 수상했지만...
황제는 그만큼 그들이 자신을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슬슬 식사 시간이구나.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하거라. 사줄 테니까."
"그럼 전..."
신난 얼굴로 메뉴판을 보고 있는 수희를 보면서 미소를 지은 황제는 자기 뒤에 완전히 긴장한 얼굴로 서 있는 주방장에게 말했다.
"소란 피우지 말거라. 짐은 번잡한 걸 싫어하니까."
"네, 넵! 명심하겠습니다."
주방장은 그 말에 잔뜩 긴장해선 대답했고 황제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어려운 요구겠지. 그보다 다 골랐느냐?"
이래서 별로 알리고 싶지 않았던 건데... 황제는 괜히 자기 존재가 부담을 준 거 같아서 조금 미안했다.
"이거랑! 이거랑! 이거도 먹고 싶고요. 또..."
'다 못 먹을 거 같은데...'
저 작은 아이가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도 주방장에게 말했다.
"이 아이가 원하는 것 전부 이쪽으로 가져오거라."
다 못 먹으면 자신이 먹으면 되니까.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일단 수희가 원하는 걸 전부 주문했다.
"네! 바로 만들겠습니다."
'이런 여행도 나쁘진 않구나.'
황제는 여행을 다닌다고 이젠 황궁에 없는 날이 더 많은 황태후를 떠올리면서 생각했다.
자신도... 선위를 하고 나면 여행이나 다녀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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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자는 잠에서 깨기 무섭게 카예프를 미르예프 비에게 돌려보내고는 의자에 앉아서 찌뿌둥한 몸을 풀었다.
"너무 자도 오히려 피곤하네."
태자는 밖을 내다보았다.
눈으로 뒤덮인 도시의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도착했구나. 생각보다 좋은데? 아름답고."
설경에 감탄하며 태자가 중얼거리자 길명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곧 내리실 텐데 내리고도 그런 생각하실 수 있을까요?"
길명이 말을 마치는 그 순간 열차가 정차했다.
"어디 한 번 철곡의 추위 좀 맛을 볼까?"
태자는 그리 말하면서 외투를 걸치고는 열차에서 내렸다.
내리고 나니 두꺼운 모피 코트를 두르고 있는 미르예프 비와 카예프. 이 추위에도 여전히 금위대의 무사들이 입는 옷을 입고 있는 이화가 둘을 반겼다.
"오셨습니까."
이화의 질문에 추위에 가볍게 떨었던 태자가 대답했다.
"어. 그보다 그렇게 춥진 않은데...?"
길명이 호들갑을 떤 거에 비하면 그리 춥지도 않다.
태자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중얼거리자 길명이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전하께 용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걸 자꾸 잊어 버리는군요."
어지간하면 태자는 뿔은 실체화하지 않으니까.
그에게 용인의 피가 흐른다는 걸 자꾸만 망각하고 만다.
길명은 그런 생각하면서 태자를 위해 준비했던 모피 코트를 자신이 입을까 고민하다가 이화에게 넘겨 주었다.
"쓰십쇼."
"...고맙습니다."
이화는 의외라는 듯이 길명을 보더니 순순히 코트를 받아 입었다.
솔직히 그녀는 길명이 자신을 챙겨줄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으나 확실히 철곡은 추웠으니까.
"올! 멋진데? 둘이 이대로 사이 좋아지는 거 아니야?"
"...전하. 모르십니까?"
그런 태자의 반응에 길명은 기가 막힌다는 듯이 그를 보았다.
아니 모르는 건가? 이화는... 전하의 첫...
"뭐가?"
"...아무것도 아닙니다."
순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는 태자를 보면서 길명은 말을 아꼈다.
뭐, 곧 알게 되실 거니까.
괜히 주제넘게 미리 알려줄 필요는 없겠지.
길명은 그리 생각하면서 대답 대신 주변을 경계했다.
"그래서 이제 어디로 가면 되는 거야?"
그런 길명의 태도에 김이 팍 샌 태자가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좀 춥긴 하지만 거리엔 제법 사람도 많고, 건물도 많이 들어서 있었다. 생각보다는 제법 발달한 도시라고 해야 하나?
"전에 왔을 때보다 훨씬 발전했네요. 이젠..."
미르예프는 조금 울 것 같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젠 정말 중앙의 지원이 없어도 자급자족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성장했구나... 그게 실감이 되었으니까.
그것에는 이 열차가 큰 역할했다는 것을 알기에 미르예프는 타흘라에게 늘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이 정도면 확실히 지원 규모는 줄여도 되겠네.'
태자는 거리를 걸으면서 생각했다.
이번 감찰은 생각보다 그리 어렵진 않을 거 같다.
태자는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이화가 무언가에 시선을 주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음, 뭐야. 이건?"
"저, 전하. 그것이..."
태자는 그녀가 보고 있던 것을 집어서 살펴보았다.
"오! 보는 눈이 있으시군요. 이 가게에서 제일 좋은 단도입니다. 호랑이 가죽도 가볍게 벗기는 놈이죠."
가게 주인이 신나서 설명을 이어가자 태자는 자신이 잡은 단도를 살펴보았다.
확실히 좋아 보이긴 하는데... 솔직히 태자는 이런 거엔 영 관심이 없었다.
아버지는 좋아하시겠지만.
"그럼 이거 주세요."
물론 태자는 살 마음은 들었다.
그렇기에 가게 주인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아이고 손님! 감사합니다. 이게 또 아주 좋거든요.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네. 네."
그 말에 가게 주인이 바로 반응하자 태자는 바로 길명을 불렀다.
"지불해."
"네."
태자의 말에 길명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가게 주인에게 어음 하나를 건넸다.
"이걸 줄 테니까 여기로 청구하면 된다."
"화, 황... 높으신 분을 뵙습니다!"
어음에 찍힌 황실의 인장을 발견한 가게 주인이 호들갑을 떨었으나 태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으면서 산 단도를 이화에게 넘겨 주었다.
"자. 가지고 싶었던 거 같은데 가져."
"저, 전하. 괜찮습니다. 절 그렇게 신경 써 주지 않아도..."
태자의 말에 눈에 띄게 당황한 이화가 손사래를 쳤으나 태자는 억지로 그녀의 손에 쥐어 주었다.
애초에 그녀가 안 받으면 딱히 쓸 일도 없는 물건이었으니까.
"부하한테 챙겨 준 거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오래 볼 사이잖아? 우리."
아버지가 자신에게 붙여준 거 자체가 그녀는 자신의 사람이라는 의미도 있을 테니까.
아마 자신이 진짜 황제가 된다면 중히 써야 할 인재라는 뜻이 아닐까? 적어도 태자는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에 이화는 그제야 납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머뭇거리던 이화는 단도를 받아 챙기고는 감사를 표했다.
태자는 그 모습을 보면서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우면 경호 열심히 해 줘. 그래야 길명이도 좀 편하지."
능청스러운 태자의 말에 이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반드시 지켜드리겠습니다."
"자, 그럼 가 볼까? 어디로 가면 되나요?"
태자가 미르예프에게 묻자 감회에 잠겨 있던 미르예프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아! 따라오세요. 이곳에서도 전하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미르예프의 뒤를 따르면서 태자는 자신이 할 일을 상기했다.
감찰이라... 처음이라 자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자신한테 시킨 일이니 태자는 최선을 다 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