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 많이 좋아지긴 한 거 같아. 예전엔 마법으로 이동하지 않으면 이동 기간만 한 달은 잡아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오르테가가 어느새 보이기 시작한 비토바르를 보면서 말했다.
한참 축제가 진행 중인 비토바르엔 사람이 가득했고, 거리는 저녁임에도 불빛으로 환했다.
"등불은 아닌데..."
거리를 밝히고 있는 전등을 보며 오르테가가 말하자 나르타는 덤덤하게 말했다.
"요즘엔 등불보다 전등이 더 보편적이니까요."
"벌써 그렇게 된 거구나... 확실히 발전이 너무 빠른 거 같네."
오르테가는 새삼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 이젠 등불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니...
"후후,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나이 들어 보이는데요."
나르타는 그리 말하며 웃었고, 오르테가는 피식 웃었다.
"사실이잖아. 나이가 든 걸 부정할 생각은 없는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새삼 오르테가는 자신이 인간 기준에 많이 물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이면 부정했을 텐데... 지금은 인간의 기준으로 생각하게 된다.
확실히 자신의 나이는 용인의 기준으로 보면 젊지만 인간의 기준으로는 아주 젊은 나이는 아니었으니까.
"폐하께선 뭘 하고 계실까요."
황제를 떠올리며 나르타가 작게 중얼거리자 설화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마도... 일 하고 계시지 않을까요?"
설화는 솔직히 폐하께서 쉬는 모습은 상상하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그 의견엔 나르타와 오르테가도 동의했다.
그 일 중독자가 일을 안 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건 힘든 일이었으니까.
"도착이다. 내릴까?"
그때 열차가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리자 오르테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하자 나르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른 자는 사람들 깨우고 내릴까요? 그럼 부탁할게요. 라미에르 백부장."
그 말에 대기하고 있던 라미에르 백부장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든 여휘와 시아를 깨웠다.
"흐아암... 그냥 계속 잘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작게 중얼거리면서 여휘가 오르테가에게 기대왔다.
그걸 보면서 피식 웃은 오르테가는 그런 그녀를 부축하듯이 데리고 다니면서 시아를 챙겼다.
"시아는? 보조 필요 없어?"
끄덕.
잠은 많지만 그렇다고 혼자 안 걷는 건 아닌 시아는 혼자서도 일행을 잘 따라오고 있었다.
"여휘는 아들이던가? 이름이 무진이었지?"
그냥 이동하긴 심심했는지 오르테가가 자식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자 여휘가 오르테가의 어깨에 기대면서 대답했다.
"어... 그랬을 걸요?"
여휘가 확신하지 못하자 오르테가는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아들 이름도 헷갈려?"
"흐아암... 그게 알아서 잘하고 있으니까요... "
여휘는 꾸벅꾸벅 졸면서 대답했다.
하긴 그 기무자의 제자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단 이야기는 들었다.
그래도 그렇지 아들인데 좀 신경 쓰는 게 맞지 않나?
오르테가는 그런 의문이 들긴 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기무자가 곁에 있는데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 같단 생각도 들어서 더 언급하진 않았다.
"아린. 나는. 기억."
"다행이네. 시아는 기억하고 있어서."
시아의 말에 오르테가가 다행이라는 듯이 말하자 시아는 조금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말했다.
"곧. 합류."
"아... 그렇지. 아린이는 곧 온다고 했지? 어디서 만나기로 했더라?"
시아의 말에 오르테가는 그제야 그녀의 딸과 이곳에서 합류하기로 했던 걸 기억하고는 물었고, 시아는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여기."
"오셨어요?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그 순간 엄청나게 박력 있는 인사를 건네는 검은 머리의 소녀가 그 금안을 반짝이며 인사를 건네왔다.
키는 누굴 닮았는지 벌써 7척을 넘겼고, 얼굴은 시아를 많이 닮아서 그런지 참으로 곱상하고 예쁜 아이였다.
"아린이 왔구나. 공부는 잘하고 있었어?"
그녀가 바로 아린.
이곳에서 검술 교육을 받고 있던 시아의 딸이었다.
"네! 비토바르 토너먼트! 저도 나오니까 꼭 보러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린의 말에 오르테가는 깜짝 놀랐다.
이 아이가 이제 12살 아닌가?
벌써 비토바르 토너먼트에 나오다니... 너무 위험했으니까.
"폐하께 허락은 받은 거야?"
다른 이도 아니고 자신의 딸인데 그런 위험한 일을 허락했을까?
오르테가는 그런 생각을 하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으나 폐하는... 늘 오르테가의 상상 이상이었다.
"네! 폐하께서 열심히 하라고 말까지 하사해주셨습니다! 사유우이 비 전하께서 직접 골라주신 말이라고..."
그 녀석이 진짜...!
오르테가는 딸을 말리지는 못할망정 부추기고 있는 진위가 원망스러웠지만 저렇게 좋아하는데 확실히 말릴 이유는 없었다.
"그래 좋은 일이네."
그렇기에 오르테가는 말리는 것 대신 응원해주는 것을 택했다.
"아린."
시아는 그런 아린을 불렀고, 아린은 바로 주인에게 불린 강아지처럼 신난 얼굴로 시아에게 다가왔다.
"네! 어머니."
"힘."
그런 아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며 시아가 말하자 아린은 기쁜 얼굴로 웃으면서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훈훈한 모녀 사이를 연출하는 둘을 보면서 오르테가는 문득 명이 녀석이 생각났다.
'잘하고... 있겠지?'
철곡에서 잘하고 있을까...?
오르테가는 제발 잘하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는 좋던 싫던... 언젠가 황제가 되어야 할 몸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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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숙소에서 푸욱 쉬고 나서 오르테가는 드디어 시작된 토너먼트를 보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궁술 대회였나?
반가운 얼굴이 있으니 당연히 보러 나왔지만... 애석하게도 일행 중에선 불참자가 있었다.
'여휘랑... 시아는... 뭐, 사실 나오는 게 더 신기했으니까.'
축제 음식을 먹으면서 오르테가는 자리를 비운 두 사람을 생각하면서 허허 웃었다.
하긴 두 사람이 이런 이른 아침부터 대회를 보러 나오는 게 신기했으니까.
아린은 그런 둘을 지키고 있겠다면서 숙소에 남아 있기로 했다.
"축제는 즐거우신가요?"
그때였다.
오르테가는 뒤에서 들리는 반가운 목소리에 바로 반응했다.
"카란타! 오랜 만이네? 여긴 어쩐 일이야? 일?"
"상인이 비토바르 토너먼트 같은 좋은 시장을 놓칠 이유가 있나요? 후후, 황후 폐하께선 여전히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네요."
반가운 얼굴로 묻는 오르테가에게 그렇게 대답하면서 후후 웃은 카란타는 여전히 면사로 얼굴을 가린 채 느긋하게 말했다.
"사하라 씨가 안부 전해 달라고 해서 왔답니다."
"사하라는 잘 있어?"
"네, 같이 여행하기 좋던 걸요?"
사하라는 상단 일로 돌아다니는 카란타와 같이 다니고 있었다.
"딸 아이도 잘 따르고요."
"그건 다행이네. 아! 저기 리사랑 니사지?"
저쪽에서 열심히 사람들을 부리고 있는 여인 둘을 발견한 오르테가가 눈을 반짝이자 카란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지금은 경쟁 중이니까요. 너무 언급하지 말아 주셨으면 하네요."
카란타는 리사와 니사에게 경쟁 의식이라도 있는지 그렇게 말하고는 오르테가 옆에 앉았다.
"다른 분은 안 보이네요?"
"나르타는 설화랑 마실 거 사러 갔거든. 그보다 다 잘 지내는 거 같아서 조금 안심이 되네."
리사와 니사 옆에 꼭 붙어 있는 저 조그마한 꼬마 아이들은 분명...
"그보다 너희 아이들도 저기 있는데?"
두 명은 리사와 니사의 아들 둘이 분명한데... 다른 두 명의 소녀는 누가 봐도 카란타와 사하라의 딸이었다.
"아이들이 친하게 지내는 거까지 막을 수는 없잖아요?"
카란타는 그렇게 말하고는 면사를 거뒀다.
그러자 그 세월의 흔적을 숨길 수는 없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성숙한 매력이 느껴지는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후... 잠시 여기서 쉬어도 될까요? 가비 씨의 경기 정도는 봐두고 싶어서요."
"얼마든지. 어차피 둘이 안 와서 자리는 남거든."
오르테가가 허락하자 그대로 그녀의 옆에 앉은 카란타는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했다.
"가비 씨는 오늘 중요한 역할을 해 줘야 하거든요. 요번에 가비 씨가 대회에 쓰는 활이 바로 이번 우리 상단의 주력 상품이랍니다."
"홍보... 같은 거야?"
"그렇죠. 요즘엔 복합 소재를 이용해 공정을 거쳐서 만든 활이 많으니까요. 가비 씨는 전통 활 쪽이지만 그래도 활에 조예가 깊으신 분. 그런 가비 씨에게 많은 조언을 받아서 만든 물건이랍니다. 기대작이죠."
"...그렇구나."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대충 고개를 끄덕여 준 오르테가는 사 온 돼지고기 꼬치를 우물거렸다.
"가비 씨가 우수한 성적을 기록해야지 더욱 홍보가 될 테니까요."
어쩐지... 갑자기 경기를 보고 싶다고 하더니.
오르테가는 대충 이해하고는 그녀에게 아란치니를 건넸다.
"먹을래? 이거 맛있던데."
"사앙햐지 않겠습니다. 잘 먹을게요."
그대로 그것을 받아 든 카란타가 아란치니를 먹고 있을 때 나르타와 설화가 돌아왔다.
"어머, 카란타 씨도 있었네요. 넉넉하게 사오길 잘했군요."
나르타는 카란타를 발견하고는 바로 인사를 건네고는 빈좌석에 앉았다.
그러자 그녀의 뒤에서 음료수를 들고 있던 라미에르가 바로 카란타에게 물었다.
"드시고 싶은 것이라도 있으신지요?"
"음... 커피가 끌리네요."
카란타는 그녀에게서 커피를 받아들고는 경기에 집중했다.
모두가 각자의 활 솜씨를 뽐내고 있었다.
"디나카 씨도 있네요. 제법인데요?"
카란타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활을 쏘고 있는 디나카를 발견하고는 웃었다.
긴장한 거치고는 나쁘지 않은 솜씨다. 다른 쪽에선 달리아가 여전한 실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둘 다 상위 라운드 진출 자체는 어려워 보이진 않는데...
푸욱!
'과연... 가비 씨는 다르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당연히 가비였다.
가비는 쏘는 족족 중앙에만 꽂히는 화살에도 별 감흥이 없어보였다.
하긴 그 대흘의 동생이니 피는 못 속이는 거겠지.
오르테가는 그런 생각하면서 음료수를 마셨다.
"포도로 만든 주스인가? 좋은데?"
포도 주스에 만족감을 드러낸 오르테가는 경기에 집중했다.
규칙은 열 발을 쏴서 점수가 높은 상위 16명이 상위 라운드로 진출하는 모양이었다.
'그런 식으로 점점 줄어서... 마지막엔 1대1로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한 사람이 우승하는 방식이구나.'
보는 맛은 있네.
오르테가는 그리 생각하면서 즐겁게 대회를 구경했다.
나르타와 잡담도 나누고, 카란타에게 지루한 상품 설명을 듣기도 하면서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날의 우승자는... 결승에서 열 발을 쏘아서 100점을 기록한 가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