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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취와 비위생적인 주거환경!
건물 대부분에 화장실이 없는 중세시대 거리의 전형적인 모습일 것이다.
어떤 학자는 맥주와 중세시대의 도시발전을 서로 연관시켰는데, 맥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을 끓여야 했기 때문이다.
즉, (물을 끓여야 하는)맥주를 만들어 마셔야 (수인성)전염병이 퍼지지 않을 것이고 그래야 사람이 죽지 않아 작은 마을이 도시로 발전한다는 학설이었다.
아무튼, 파이오니아의 거리는 이런 학설이 만들어진 지구가 아니었으나 그와 비슷할 정도로 더러웠다.
몇몇 넓은 길은 그나마 나았지만 대개는 도로의 움푹 파인 중간쯤으로 얇은 똥물이 (아주 느린)냇물처럼 흘렀다.
여기에 개와 고양이들이 개울(?)을 건너다 빠져 허우적거리고 죽은 쥐까지 둥둥 떠다녔다.
이런 ‘똥물의 바다’ 위를 짐마차를 타고 지나가자니 악취가 얼마나 고약할 것인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후각은 참으로 대단했다.
처음엔 악취로 머리가 어지러웠으나 30분가량을 견뎌내자 제법 참을 만했다.
‘젠장~ 이런 악취까지 적응하다니.’
“이제 좀 괜찮아졌지? 하하하~ 처음에는 원래 다 그런 단다.”
“네··· 괜찮아··· 졌네요.”
“이제는 대충 준비해라. 메이플 자작님이 계신 내성에 도착했으니까.”
아르펜의 말마따나 어느새 내성(內城) 즉, 영주의 성에 도착했다.
내성은 15m 높이의 아주 높은 성벽과 깊은 해자로 둘러싸였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방어적인 측면이 너무 강해 보였다.
아마도 외성이 무너지면 내성에 틀어박혀 수성(守成)하려는 목적으로 이리도 거대하게 건설했으리라.
“아~ 아르펜 대장인가? 통과!”
“그럼, 수고들 하쇼! 이랴~”
사전에 약속이 되었기 때문인지 짐마차는 팰리스의 예상보다 훨씬 간단하게 통과됐다.
“와아~ 여긴··· 깨끗하네요?”
확실히 영주의 가족들이 생활하고 영지의 중요 기관과 시설이 들어선 내성답게 상당히 깨끗했다.
(무슨 술수를 부렸는지)도개교를 건너 두꺼운 문을 통과하는 순간 악취까지 사라졌다.
아마도 마법이 존재하는 세상답게 무슨 정화마법이 활용되었을 것이다.
아르펜은 부근에 조성된 주마차장(駐馬車場)에 짐마차를 세우고 아들을 별관으로 이끌었다.
입구에는 젊은 시종이 대기하고 있다가 아르펜 부자(父子)를 안내해 영주대리의 집무실로 데려갔다.
“아르펜 대장님, 아시죠? 원래는 이렇게 쉽게 접견하면 안 된다는 거. 흠흠~”
일반적으로 영지의 최고위층을 만나려면 여러 단계의 검문과 상당시간 예절교육까지 받아야 한다.
그러나 파이온은 간소함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영지. 시종은 이점을 다소 탐탁찮게 여기는 것 같았다.
“에이~ 그건 아니지. 영주님이 말씀하시지 않으셨나! 그런 건 다 ‘뻘짓’이라고!”
“쳇~ 영주님이나 자작님이나··· 이러면 권위가 안 서는데.”
팰리스는 시종과 아르펜의 대화를 통해 이곳의 분위기가 어떤지 대충 파악되었다.
‘호오~ 우리 영지는 내가 걱정했던 그런 곳이 아니었군. 상당히 바람직한 영지였어.’
‘똑, 똑~’
“메이플 자작님! 아르펜 대장과 그의 아들이 지금 도착했습니다.”
팰리스의 생각은 시종의 안내로 집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틀리지 않았음이 증명됐다.
두 사람을 맞이한 건 메이플 자작이 아닌 탁자에 잔뜩 쌓인 양피지(서류) 더미였다.
“으~ 제기랄! 영주님을 보좌하는 마법사 몇 명만 남았어도 이런 서류들을 금방 처리··· 아참~ 왔나?”
양피지 더미 사이로 핼쑥한 얼굴이 나타나더니 불쑥 솟아올랐다.
메이플 자작이었다.
첫눈에도 문관이 아닌 무관으로 보였다. 갸름한 눈매는 전장을 호령하는 무장을 엿볼 수가 있었다.
아르펜은 재빨리 한쪽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했다.
살짝 긴장한 팰리스도 아버지에게 언질 받은 대로 행동했다.
“위대한 영주님을 대리하는 메이플 자작님을 뵙습니다.”
“위, 위대한 영주님을 대리하는 메, 메이플 자작님을 뵙습니다.”
“어, 그래~ 우리 사이에 대충 인사하지··· 아참~ 어서 몸을 바로 하게.”
자작의 손짓에 아르펜과 팰리스가 몸을 바로 세웠다.
“감사합니다, 자작님.”
“가, 감사합니다, 자작님.”
“자네가 저런 아이를 데리고 날 찾아왔다면··· 그럼, 저 아이가 바로 라이나의?”
자작의 눈매가 순간적으로 좁혀졌다.
팰리스는 발가벗겨지는 느낌에 소름이 확 돋았다.
‘으윽~ 뭐, 저딴 눈빛이··· 그런데 저 아저씨도 엄마를 알고 있었나?’
“네, 자작님. 제 아들입니다. 정말··· 잘 생겼죠?”
다행히 아르펜이 입을 열자 거짓말처럼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허허 참~ 세월이 참 빨라. 조그맣던 라이나가 영주님을 시중들다가 쟁반을 나에게 엎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 아이가 낳은 아들이 벌써 저렇게 컸다니.”
‘엄마가 영주님의 시녀로 일했었나? 아~ 그래서 엄마를 알고 있었군.’
팰리스의 추측이 맞았다.
라이나는 파이온 백작의 전속시녀였는데 약한 몸에 실수도 잦아 모두가 기억하는- 약하고 칠칠맞은 -소녀였다.
“하하하~ 저 아이 밑으로도 둘이나 됩니다. 자작님도 잘 아시면서 그러십니까?”
“당연히 그거야 잘 알고 있지. 자네가 좀 시끄럽게 떠벌이지 않았었나? 자네는 다 좋은데 좀 팔불출 같아.”
자작의 말에 아르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확실히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샜나보다.
“에에? 거짓말 하지 마십쇼. 제가 언제 그랬다고 그러십니까?”
“후후후~ 아무튼 저 아이를 보니 있자니 세월이 참 야속한 것 같더란 말이지.”
“에이~ 무슨 말씀을··· 자작님이 (기사단의 훈련장에)떴다고 하면 모두들 벌벌 떤다던데요.”
실제로 메이플 자작은 전혀 늙어 보이지 않았다.
다소 피곤해 보였지만 ‘매우’ 건강한 중년이었다.
“허허허~ 그것도 이젠 옛말이래도? 예전에 영주님이랑 자네랑 어울릴 땐 어땠었나? 술을 왕창 처마시고 마차를 막 몰았어도 끄떡없었는데··· 그래, 그때가 아주 좋았어.”
‘으, 응? 설마 저 아저씨···’
메이플 자작은 음주운전에 폭주마차족? 팰리스의 머릿속에 한편의 범죄 드라마가 펼쳐졌다.
“아~ 그때요? 히히히~ 그때가 정말 재미있었지요.”
“그렇지? 이제야 그때를 생각해보면 우리가 좀 너무 했어. 그때 불쌍한 라이나가 얼마나 맘고생이···”
요즘 서류더미 사이를 헤매야했던 메이플 자작. 아프펜과 함께 잠시간 추억 속을 거닐었다.
팰리스는 그제야 궁금했던 전후사정을 얼추 들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결혼 전까지 파이온 백작의 전속시녀로 일했고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에게 반했다고 한다.
그래서 파이온 백작은 아끼던 레인저의 캡틴과 어머니를 부부가 되도록 주선했던 것이다.
젊고 아름다운 신부를 얻은 아버지는 영주에게 더욱 충성했음이 너무도 당연했다.
각설하고, 자작은 지금처럼 한가롭게 추억을 떠올리기엔 너무 바쁜 사람이었다.
“아참~ 팰리스라고 했던가? 드워프에게 새로운 무기를 얻었다는···”
“아이고~ 가꿍입니다, 가꿍!”
‘아이고~ 가꿍이 아니라 각궁이요, 각궁! 에휴~ 아버지도 참···’
“이 녀석을 신통방통하게 글쎄, 그것을 만드는 법까지 알아냈다지 뭡니까?”
“오~ 정말인가? 예전에 그 점을 묻지 않아 마침 답답했었는데.”
“저도 깜빡했었지요. 아참, 그렇다고 하네요.”
“자넨 이제부터 좀 빠지고···”
자작의 말에 아르펜이 삐쳤는지 쳇 하며 아주 작게 투덜거렸다.
피식거리는 자작을 보니 알면서도 모른척하는 것. 두 사람의 친밀한 관계를 보니 아버지는 생각 외로 상당히 중요하게 평가되는 것 같았다.
“팰리스~ 정말 그러하냐?”
“네, 자작님.”
“좋군, 아주 좋아! 그렇다면 당장 양산(量産)해야겠구나.”
순간, 짙게 침착해있던 피곤이 단번에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각궁의 양산에는 심각한 장애요인이 잠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
“왜, 팰리스~ 무슨 문제가 있느냐?”
“네, 자작님. 각궁은 재료도 재료지만 우리 인간이 만들기에 너무 좀··· 아무래도 드워프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 그거야 뭐 당연하겠지. 아무튼 그 문제까지 너 같은 아이가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래, 아들아~ 영주님의 대장간에 드워프가 일하거든?”
“그렇지. 수고스럽겠지만 팰리스~ 네가 드워프에게 가, 가··· 흠흠~ 그것을 만드는 방법을···”
이름을 깜빡한 자작. 아프펜이 다시 얄밉게 치고 들어왔다.
“아이고~ 자작님! 가꿍이요, 가꿍!”
‘아이고~ 아버지! 각궁이요, 각궁!’
“흠흠~ 그래, 가꿍! 가꿍의 제조법을 알려주어라.”
“네, 자작님.”
“그런데 공짜로요?”
예상대로 아르펜이었다.
“어허~ 자넨 좀 빠지라니깐 그러내. 흠흠~ 그래, 팰리스~ 무엇을 원하느냐. 황도에 계신 영주님을 대신하여 상금을 원하면 골드를, 검을 원한다면 드워프가 만든 아주 좋은 검을 하사하겠다.”
드디어 ‘아기 다리 고기 다리던’ 선물 증정의 시간이 찾아왔다.
자작의 선언에 어째 당사자보다도 아르펜이 더욱 좋아라했다.
팰리스는 이곳에 오는 동안 살짝 고민했던 상을 말했다.
분위기가 하도 화기애애해서 별다른 고민도 없이 말할 수 있었다.
“학문을 배우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행정도요.”
영웅의 미래를 계획하던 ‘평민’ 팰리스에게 가장 곤란한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영웅이 되고 사회 지배층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글을 알아야할 것이다. 이것이 성공을 위한 당연한 상식이었다.
그런데 그린 포레스트에는 책은커녕 글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뭐, 경전을 읽어야할 신관은 한명이 있긴 있었다. 항상 술에 절어있는데다 번거롭고 귀찮다며 가르침을 거절했지만···
그래서 팰리스는 각궁에 대한 상으로 문자(文字) 즉, 학문을 배우기를 원했다.
덤으로 행정까지 배우면 가이아의 사정을 파악하고 미래를 경영하기에 유리할 것 같아 함께 요구한 것이다.
그런데 팰리스의 생각과 달리 분위기기 묘하게 흘러갔다.
“학문? 방금 학문이라고 말했나?”
“뭐, 뭐? 팰리스 그게 무슨···”
위로 휘었던 자작의 눈매가 갑자기 좁아졌다.
무골호인처럼 부드러웠던 눈빛이 매서워졌다. 방금 전까지 헤헤거리던 아르펜도 좌불안석이 되었다.
‘찌릿~’
‘오싹~’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전생이 아주 평범했던 팰리스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 어? 분위기가 아주 좋았었는데. 내가 무슨··· 실수했나?’
실수를 직감한 팰리스는 맹렬하게 머릿속을 굴렸다.
알다시피 이곳은 강력한 신분제 사회였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평민을 죽이더라도 벌금과 함께 영주의 불평만 감내하면 그만인 세상이었다.
만일,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당연한 ‘권리행사’라고 주장할 수 있다.
‘가만~ 혹시··· 그것 때문에?’
그렇다. 평민이 글을 배우겠다는 건 상당히 ‘건방진’ 요구였다.
귀족이라면 언제라도 ‘권리행사’를 주장할 수 있는 ‘중범죄’로 몰아갈 적당한 핑계거리였다.
팰리스는 사회적인 금기를 깨뜨렸던 것이다.
참고로, 중세시대의 매우 강력한 신분제 사회. 평민은 그린 포레스트의 분위기와 달리 말하는 가축이었다.
오직 착취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린 포레스트가 아주 특별한 마을이라서 팰리스가 피부로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 시대의 글은 소수의 귀족들이 다수의 평민(농노)들을 지배하기 위한 유용한 도구 중의 하나였다.
아무리 상하 관계가 부드럽고 물렁하게 보여도 메이플 자작은 상당한 작위를 가진 귀족이었다.
귀족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훼손시키는 평민을 언제라도 ‘처벌(처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즉, 메이플 자작이 원한다면 언제라도 팰리스의 목을 잘라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회분위기였던 것이다.
‘이런 씨··· 진짜로 큰일 났네. 이제··· 어떡한다?’
5. 작은 세상으로 나와 미래를 준비하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