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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자작님! 저를 처벌해 주십시오. 우리 팰리스는 아직 철이 없어서···”
당황한 아르펜이 사죄하며 무릎을 꿇으려고 했다.
그러나 메이플 자작의 행동이 좀 더 빨랐다. 어느새 접근했는지 아르펜의 어께를 잡아 억지로 일으켰다.
‘덥석~ 쓰윽~’
‘뭐야! 왜 저렇게 빨라? 저 아저씨··· 설마, 익스퍼트 급인가? 행동을 조심해야겠군.’
“자작님~ 무슨 죄인지는 모르겠지만 죄는 저한테 물으시고 우리 팰리스는···”
“그만! 우리 사이에 이럴 것 까지는 없잖은가. 누가 자네 아이를 잡아먹기라고 하나?”
이런 자작의 말과 달리 아직도 눈빛을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자, 자작님···”
“나는 그저 궁금했을 뿐이야.”
“네, 네?”
“저 아이가 왜! 글을 알고 행정을 배우고 싶어 하는지를!”
“···”
“그러니 팰리스~ 그저 솔직하게 말해보려무나!”
‘정말 솔직하게 말하면 되는 거죠?’
순간적으로 솔깃했지만 팰리스는 세상을 너무 많이 알았다.
‘당연히 그러면 안 되지. 아~ 그래! 나는 지금 어린아이니깐!’
“그, 그건··· 으아앙~ 잘못했어요. 흑흑~ 아빠, 너무 무서워요.”
팰리스는 아이들의 만능치트키 울음을 터뜨리곤 재빨리 아르펜의 다리에 매달렸다.
이어, 가장 슬펐던 영화 아니, 전생의 자식들을 생각하며 억지로 눈물을 ‘만들어’냈다. 자작이 익스퍼트 급이라 함부로 눈을 비비다간 발각될 위험성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패, 팰리스~ 아빠가 여기 있다. 괜찮다, 괜찮아···”
아르펜은 메이플 자작의 눈치를 살피며 아들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
‘젠장~ 아버지에게 괜히 미안하네.’
“흐흑~ 나는요. 흐흑~ 글을 배우면·· 내가 똑똑해지면··· 흑흑~ 영주님에게 충성을 많이 하니깐··· 으아앙~ 제가 잘못했어요. 흑흑~”
평민이 영웅이 되고 사회지배층으로 오르기 위해 요구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법이다.
곧이곧대로 말하면 천하의 병신일 것이다.
팰리스는 자작의 취향에 가장 적절할 ‘대사’를 울먹이며 말했다. 순간, 죽어가던 아르펜이 살아났다.
“아하~ 팰리스! 그랬어? 그런 거였어?”
“호오~ 영주님께··· 충성하기 위해서?”
다행히 연기가 통했다. 자작의 눈빛 또한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
그러나 아직도 맘을 놓아서는 안 된다.
“흐흑~ 네에 아저··· 아니 자작님~ 흑흑~ 토머스랑 피리온이랑 약속했어요. 아주 세게··· 예전에요.”
일반화의 오류라는 용어가 있다.
팰리스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다수의 뜻이라면 좀 더 사실처럼 느껴질 것이다.
“토머스··· 피리온?”
“아~ 자작님. 팰리스 또래의 아이들입니다. 그린 포레스트의···”
“그래, 팰리스~ 그 아이들과 무슨 약속을 했니?”
“흑흑~ 우리가 커서 어른이 되면!”
‘꿀꺽!’
의도적으로 침을 삼키며 잠시 말을 끊었다.
억지로 울음을 참는 것 같은 표정에다 주먹을 불끈 쥐는 ‘연기’는 당연지사(當然之事)!
“그래, 어른이 되면?”
답답했는지 메이플 자작이 채근했다.
“영주님께 꼭··· 충성하자! 목숨을 걸고!”
“아~ 역시 내 아들··· 자작님! 들었습니까? 애가 그렇다고 하잖아요!”
“···”
“그런데 내가··· 우리가 멍청하면··· 흐흑~ 오히려 방해가 될 거에요.”
자작의 눈매가 다시 위로 휘기 시작했다. 고개도 슬쩍 끄덕거렸다.
“흑흑··· 똑똑해야 충성인데··· 멍청하면 반역인데··· 잘못했어요, 자작님~ 흑흑~”
‘이젠 됐지? 쪽팔리니깐 그만 좀 하자, 응?’
확실히 이것이 결정타로 작용했다.
메이플 자작은 10분 전의 그로 다시 돌아왔다.
“자작님! 이래도 뭐라고 하실 겁니까? 사정이 이런 데도요? 다시 한 번 말해보세요!”
“내, 내가 뭐라고 했었나? 자네가 지레 겁먹은 거잖나. 흠흠~”
“흑흑~ 용서··· 하시는 거예요? 흑흑~”
마침내 팰리스의 가증스러운 ‘대사’가 모두 끝났다.
메이플 자작은 한쪽 무릎을 굽혀 팰리스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팰리스~ 뚝!”
“흑흑~ 뚝!”
“잘못이 없는데 내가 무슨 용서를 하겠느냐. 그리고 앞으로는 충성을 안 할 생각이었더냐?”
“아, 아니요? 절대로··· 아니에요.”
“하하하~ 그럼 됐구나. 그리고 남자는 함부로 눈물을 보이면 안 된단다, 알겠느냐?”
“네에~ 자작님.”
‘아이고~ 이 세계도 그 눈물타령인가? 설마 3번이 어쩌고 하지는 않겠지?’
“팰리스~ 남자는 말이다. 일생동안 3번만 울어야 한단다. 한 번은 태어나면서 울고···”
역시 이곳도 사람이 사는 세상이었다.
메이플 자작도 한국과 비슷한 내용을 읊어댔다.
아무튼 이것으로 갑자기 찾아온 위기를 무사히 모면했다.
“···팰리스~ 잘 들었지?”
“네, 자작님.”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팰리스는요? 앞으로 저얼~때 울지 않을 꼬예염. 약속해요, 자작님!”
‘으~ 오그라든다. 손꾸락이 오그라들어.’
“하하하~ 좋아, 아주 좋아!”
“그럼 자작님. 우리 아들에게 줄 상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르펜의 말에 처음으로 다시 돌아왔다.
“아참~ 그게 남았군. 뭐, 훌륭한 어린인데 상을 줘야겠지?”
자작이 말을 마치고 한쪽 눈을 깜빡였다. 아르펜과 팰리스의 귀가 절로 쫑긋거렸다.
“공자님들의 가정교사를 통해 팰리스가 학문을 배울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
“와아~ 정말이요? 고맙습니다, 자작님!”
팰리스가 꾸뻑 앞으로 고개를 숙였지만 아르펜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그런데 자작님! 공자님들의 가정교사는 좀··· 우리 아이는 평민인데···”
아르펜의 괜한 기우(杞憂)가 아니었다.
영주 자녀들만의 ‘전담’ 가정교사에게 평민이 학문을 배우다니···
경우에 따라서는 불경죄가 성립할 수도 있었다.
“하하하~ 걱정 말게. 나에게 그 정도의 재량은 충분하니까. 마침, 소영주님과 공자님들이 영주님을 따라 모두 황도에 가셨네. 영지 업무를 도와줄 마법사까지 죄다!”
‘으드득~’
자작이 탁자위에 수북이 쌓인 서류더미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아무튼 그 바람에 가정교사가 매일 놀고 있지. 비싼 밥을 처먹으면서···”
‘으득~’
자작이 다시 이를 갈았다.
최근 행정가 모드라서 그런지 공짜와 낭비를 극도로 미워하는 것 같았다.
“아~ 그렇···습니까?”
“흠흠~ 내가 그렇게 결정했으니 그 문제는 끝났고 자~ 그럼, 팰리스는 이제부터···”
자작의 결정대로 팰리스는 영주의 대장간부터 방문해야 했다.
그는 파이온 백작과 계약한 드워프 아르곤 앤빌블럭을 만나 그에게 각궁의 재료와 제조방법 그리고 드워프의 특수처리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상당히 입을 걸은 아르곤은 예상했던 반응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오~ 작은 대빵이 보여줬던 활이 그렇게 만드는 거였어? 멍청하게도 만드는 법을 알려주지 않아 졸라리 궁금했었는데.”
“네, 아르곤님. 그런데 자작님은 귀족인데 그렇게 막 말해도 괜찮아요?”
“그래서 뭐! 그래서 뭐 어쩌라고?”
“아니,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요.”
“너는 네 문제나 신경 쓰고··· 아무튼 티아늄 새끼가 그걸 만들었고?”
“아, 네에~“
“나이만 처먹었지 멍청한 그 새끼가?”
‘거참~ 입에 걸레를 물었나. 어째···’
이때부터 아르곤은 예상외의 반응을 보여주었다.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드워프였기 때문이리라.
“작은 인간! 솔직히 불어봐. 너··· 거짓말 깠지? 나에게 뭐··· 속이는 거 없냐?”
“네, 네?”
팰리스는 저도 모르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신무기 제조비법의 전수 때문에 주변에 사람이 없어 천만다행이었다.
‘뭐야! 저 드워프··· 어떻게 알았지?’
“아이고~ 눈동자가 핑핑 돌아간다. 사실이··· 그렇지? 너··· 거짓말 깠지?”
‘아무리 인간에게 관심이 없다지만 사실이 밝혀지면 내가 곤란해진다. 무조건 잡아 때자.’
“아닌데요? 알고 보면 티아늄도 꽤 똑똑하던데요?”
“나이만 처먹었지 아직 장인도 아닌데다 성격까지 파탄 난 그 망할 놈의 새끼가?”
‘오호~ 어떻게 그걸··· 그런데 당신도 만만치가 않은 것 같소만.’
“이젠 장인이라던데요? 장로들에게 인정을 받아서요.”
“뭐 인정을 받았대? 하아~ 말세다, 말세!”
“?···”
“내가 없었으면 맥주도 못 마실 그런 얼빵한 새끼가 장인이라니.”
이제 보니 맥주로 꼬드기는 계획을 방해한 존재가 바로 아르곤이었다. 팰리스는 저도 모르게 이가 갈렸다.
“나 때는 안 그랬는데 세상이 차암~ 좋아졌어.”
‘까드득~’
“아르곤님! 이제 됐죠? 만드는 방법을 모두 알려드렸으니 저는 그만 가볼래요.”
“야~ 어린 인간. 이왕 왔으면 이야기나 좀 더 하고 가라. 티아늄 새끼와 어떻게 해서···”
“싫거든요?”
“야, 야~ 이래 뵈도 내가 여기에서 잘나가거든? 뭐, 칼이나 하나 만들어 줄까?”
드워프가 만든 물건은 뭐든지 고가로 매매된다.
내심 솔깃한 제안이었지만 드워프는 아르곤 외에도 많았다.
뭐, 부탁을 잘 안 들어줘서 문제였지만···
“이래 뵈도 나도 좀 바쁘거든요? 우리 동네에서는··· 그럼, 저는 이만 갈게요.”
팰리스는 아르곤의 만류를 뿌리치고 대장간을 빠져나왔다.
마냥 핑계나 거짓말이 아닌 것이 급하게 처리해야할 일이 갑자기 생겨났기 때문이다.
잠시 시간을 거슬러, 팰리스가 메이플 자작과 함께 있을 때였다.
[네가 글을 깨우치고 적당히 배우게 되면 그래~ 나를 도와줄 조수로 써주마.]
메이플 자작은 산더미 같은 서류더미를 흘깃거리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가만~ 조수가 하나보다는 여럿이 낫겠지? 그래~ 토머스와 피리온이라고 했던가? 제법 싹수가 보이는 아주 훌륭한 어린이 같던데. 좋다! 그 아이들도 함께 배우도록 배려하여 주마. 이제 만족하겠지? 우하하하~]
‘쳇~ 배려하지 않아도 됐는데. 큰일이다. 사실이 드러나기 전에 빨리 입을 맞춰야 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싹수가 보이고 매우 충성스러운 어린이가 된 것도 모자라서 학문을 닦다가 미래의 조수로 낙점된 토머스와 피리온.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마을로 돌아온 팰리스는 은밀(?)하게 토머스와 피리온을 불러냈다.
그리곤 자신과 함께 파이오니아에 가서 글을 배우고 학문을 익히자고 설득했다.
아참, 이들은 아직 6살 어린 아이였다.
그래서 일주일의 3일만 가정교사의 집에서 생활하며 학문을 배우고 나머지 4일은 그린포레스트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방식이었다.
아무튼, 평소 학구열(?)에 불탔던 피리온은 당연히 팰리스의 제안에 동의했다. 아니, 너무도 감동한 나머지 친구를 주군(主君)으로 모시려고 할 정도였다.
“크흑~ 나를 낳아주신 분은 부모님이었지만 날! 알아주는 이는 오직 팰리스 너뿐이다. 앞으로 내가 어른이 되면 주군으로 어쩌고저쩌고~”
그린 포레스트의 구박덩어리가 마침내 자신의 웅지를 펼칠 기회를 얻었다.
이렇게 피리온의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반면, 힘만 세고 머리가 둔한 토머스가 문제였다.
“토머스 너도 갈 거지?”
“내가 왜? 팰리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이 놈이나 저 드워프나 어째 하는 말이··· 쳇~ 마음에 안 들어.’
팰리스는 파이오니아를 동경했던 토머스라면 간단하게 꼬드길 수 있을 테지만 꾀돌이 피리온은 어떻게 설득할지를 걱정했었다.
그런데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토머스! 네가 매일 노래하던 파이오니아야, 파이오니아! 그곳에 가고 싶지 않아?”
“응! 당연히 가고 싶어!”
“그럼, 내가 말한 대로 학문을 닦고···”
“근데, ‘항문’을 닦는 건 싫어! 뭔지 잘 모르지만 머리를 쓰라는 말이잖아?”
‘뭐, 항문? 그리고 뭘 닦아? 이게 말이야 당근이야?’
“야~ 그게 아니라. 너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거야.”
“그래? 하지만 머리 쓰는 거잖아. 머리 쓰는 건 무조건 싫어.”
팰리스가 설득했지만 토머스의 대답은 ‘기,승,전, 머리 쓰는 것은 싫어.’로 귀결. 녀석은 생각 외로 완강하게 거절했다.
그러자 보다 못한 꾀돌이 피리온이 나섰다.
“팰리스~ 네 말이 정말이야? 정말 기사가 되면 예쁜 여자와 사귈 수 있는 거야?”
피리온은 토머스 몰래 팰리스에게 눈을 깜빡여 보였다.
참고로, 토머스는 얼굴이 우락부락한데다 자신이 무슨 ‘쌍코피 성애자’나 되는 것처럼 행동하는 바람에 여아(女兒)들 사이에서는 바퀴벌레와 동격이었다.
“어, 어? 아~ 당연하지 않겠어? 기사가 되면 예쁜 여자들이 막 줄을 선다더라.”
“저, 정말? 그게 정말이야?”
아무리 가이아의 여권(女權)이 낮다지만 여자도 사람이고 생각할 머리가 달려있다.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사실여부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너에게 설마, 거짓을 말했을까? 나, 피리온이야, 피리온!”
뒷말 때문에 오히려 신빙성이 대폭 낮아졌다.
그러나 토머스는 이미 ‘예쁜 여자’라는 용어에 마음이 흔들린 뒤였다.
“헤헤헤~ 예쁜 여자··· 좋아. 예쁜 여자, 헤에~”
“그런데 토머스. 글을 모르면 어떻게 기사가 되겠어?”
아니다. 가이아는 글을 모르는 기사들이 수두룩하다.
그리고 재차 말하지만 사실여부가 중요하지 않았다.
“어, 어? 하지만 나는 머리가···”
“기사는 똑똑해야 될 수 있대.”
“아, 안 돼! 나는 기사가 되어야 하는데. 그래야 내가 예쁜 여자랑···”
‘으드득~’
“그렇지? 예쁜 여자랑 결혼하려면 기사가 되어야 하고 기사는 똑똑해야 해. 그리고 똑똑해 지려면··· 알지?”
“그, 그래! 결심했다. 누가 뭐라도 난, 글을 배우고 말테다!”
그제야 토머스가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이로써 팰리스는 미래를 위해 반드시 배워야할 기본조건을 충족하게 되었다.
3일 후, 팰리스 일행은 마침내 파이오니아로 향하는 짐마차에 올랐다.
6. 천재는 누구?-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