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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하하하, 움하하하하···”
‘미친놈. 한밤중에 그러고 싶을까?’
라는 타박이 당장이라도 들려올 상황이었다.
다행히 일행들은 익스퍼트 급에 오른 팰리스를 축하하고 찬양하기에 바빴다.
(만으로)10살의 나이에 익스퍼트 급에 오른 토머스나 2서클 마법사가 된 피리온에 비하면 꽤 늦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둘은 원체 괴물 같은 천재들이라 논외로 치부해야 한다. 14살에 익스퍼트 급에 올랐다는 건 천재중의 천재라는 의미였다.
“총독, 정말 익스퍼트 급에 올랐소이까?”
“그렇습니다, 남작님.”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총독, 축하하오. 정말 잘된 일이오.”
“각하~ 축하드립니다. 14살 나이에 벌써 익스퍼트라니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총독님, 정말 축하드립니다.”
이렇게 드레이크와 제이콥, 피리온이 축하했지만 토머스는 역시 토머스였다.
“쳇~ 이제 겨우? 나는 10살 때에 그 수준··· 흡! 퉤퉤~ 에이, 씨~ 조장님. 더럽게 왜 또!”
다시금 투탁거리는 토머스와 제이콥. 대충 상황이 그려질 것이다.
각설하고, 팰리스가 명상에서 깨어나고부터 주변정리가 시작되었다.
팰리스가 트롤의 피에 젖은 옷을 갈아입는 동안 병사들은 고가에 팔리는 가죽을 벗기고 뼈와 힘줄을 발라냈다.
운이 좋았는지 심장에서 손톱만한 마석도 찾아냈다.
주변정리를 마친 팰리스 일행. 피 냄새로 몬스터가 몰려오기 전에 급히 이동했다.
2~3시간 거리에 편안한 잠자리가 보장되는 마을이 있었지만 한밤중에 이동하는 건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다.
야영하기에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급히 불을 피우고 늦은 식사를 해결한 일행들은 하나둘씩 노숙에 들어갔다.
화톳불 옆에 잠자리를 편 팰리스.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니 길었던 하루가 절로 생각났다.
1~2년 후로 미뤄졌지만 아나톨리아를 레온형님에게 상납(?)했다.
울화가 치밀어 기분전환을 위해 트롤과 싸웠고 방심했다가 맞아 죽을 뻔했다.
천만다행으로 익스퍼트에 올랐지만 다시금 생각해도 정말 아찔하고 파란만장한 하루였다.
‘휴우~ 정말 대단한 하루였다. 가이아는 확실히 위험한 곳이었어. 방심하면 그 순간 죽는다.’
팰리스는 오늘을 반성하며 다시는 방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다 문득 트롤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을 알아차렸다.
‘예전과 달리 간혹 트롤이 나타난다고 했었지? 기사라면 문제없지만 병사들만으로 상대하기엔 너무 위험해.’
상당한 실력을 가진 팰리스도 트롤을 상대하기에 벅찼다.
파이온의 병사가 아무리 정예라지만 트롤은 너무도 위험한 몬스터였다.
팰리스도 느꼈다시피 각궁이나 편전은 트롤보다 훨씬 약한 오크마저도 단번에 죽이질 못한다.
지금껏 한두 마리가 출현했기에 트롤을 퇴치했지 수가 많아지면 죽이기는커녕 오히려 병사들이 전멸당할 것이다.
재생력이 높은 트롤과 그 이상의 몬스터가 나타나면 재앙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몬스터 생태계가 또 언제 변할지 모르고 오우거나 그 이상의 몬스터가 나타나면 불행한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트롤 이상의 몬스터를 상대할 무기가 필요했다.
즉사는 힘들더라도 상당한 데미지를 안겨줄 무기 말이다.
“총? 그렇다면 총을 만들어 트롤을 상대하게 해야 하나?”
팰리스의 심장이 다소 빨라졌다.
일반소총이 아닌 대물 저격총 수준이라면 트롤이나 오우거를 충분히 상대할 것이다.
그런데 중세사회의 가이아에 총기를 들여와도 괜찮을까?
문득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화약무기의 대명사격인 총!
총이 등장하고부터 전쟁의 패러다임이 변했고 엄청난 사상사가 발생했다.
총이 등장하기 이전의 전쟁에서는 군인과 일반인이 비슷한 비율로 죽었으나 이후의 전쟁에서는 전투와 관련 없는 민간인이 훨씬 많이 죽었다.
게다가 지구에서 벌어졌던 1차, 2차 세계대전에서는 얼마나 많은 군인과 그보다 훨씬 많은 민간인들이 죽고 다쳤던가!
팰리스는 칠성시절에 한국전쟁을 겪었다.
그가 겪은 전쟁은 결코 낭만적이지도 영웅적이지도 않았다. 그저 어리석고 미친 짓이며 가장 잔인한 짓거리였다.
더욱 기분이 더러운 건 전쟁을 기획한 ‘늙은 자’들은 결코 피를 흘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로지 권력이 없고 힘없는 ‘젊은 자’들이 피를 흘리며 절규할 뿐이었다.
팰리스는 지난 경험으로 이런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이아에 총기를 도입한다는 점이 내심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총을 없다고 이곳이 평화로울까? 총이 있든 없든 인류 아니, 인간종족 사이에 전쟁은 결코 사라질 수가 없다.’
지구의 경우처럼 가이아 인간종족의 역사에서도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없었다.
알렉산더 대제(大帝)가 잦은 전쟁으로 혼란스럽던 대륙을 통일하여 타이판 제국을 세웠다.
그러나 그렇게 위대했던 대제 또한 전쟁(또는 분쟁)을 완전히 종식시키지는 못했다. 규모가 작아졌을 뿐이지 여전히 북부와 남부에서는 야만인들과의 전쟁이 지금껏 계속되고 있었다.
내부적으로도 영지간의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어찌 보면 인간종족에게 전쟁은 필요악(必要惡)처럼 느껴졌다.
총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일어날 전쟁은 벌어진다.
죽을 사람은 언제든지 죽을 것이다.
뭐, 총이 등장하면 훨씬 많은 군인과 그보다 더욱 많은 민간인들이 죽겠지만 그건 총을 만든 자의 잘못이 아니었다.
‘비겁한 변명이라고 탓할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그것이 모두 총 때문은 아니잖아?’
변명같이 들리겠지만 총은 단순한 도구였다.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추악한 권력자가 오용하지 않는다면 인간종족의 유용한 도구로 사용될 것이다.
요리사가 칼을 들면 사람을 살리는 요리를 만들지만 강도가 칼을 들면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던가.
오늘의 사례처럼 이곳 가이아는 몬스터의 창궐로 몹시 위험했다.
팰리스는 자신과 지인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총기를 개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좋았어. 일단 만들어보자!’
마음을 굳힌 팰리스는 어떤 총기를 만들 것인가를 생각했다.
중대형 몬스터를 상대하려면 대전차 소총이나 대물 저격총이 걸맞을 것이다.
그러나 팰리스에게는 그런 무지막지한 총보다는 훨씬 친숙하고 때로는 지겨웠던 총이 존재했다.
“에무원(M1) 개런드 소총!”
‘내게는 에무원 소총이 가장 익숙하지 않겠어?’
한국전쟁 시절에 사용했던 M1 개런드 소총. 8발들이 클립으로 장전하여 반자동으로 발사한다.
그리고 팰리스가 익숙하게 다루고 정비했던 소총이라 구조와 부품들을 정확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트롤이나 오우거를 상대하기엔 위력이 너무 약하다고?
그렇다면 M1 소총의 모습 그대로 크기와 위력을 키우면 간단하지 않겠나!
문제는 현재의 기술수준으로 M1 소총을 재현할 수 있느냐!
‘에이 몰라, 몰라. 그딴 문제를 내가 왜 고민해? 노가다 뛸 드워프가 고민해야지. 안 그래?’
맞다. 그럴 목적으로 드워프를 꼬셔 신성한 계약을 맺지 않았던가.
“드워프랑 연금술사에게 맡기고 지금은 잠이나 자자.”
잠이 오지 않아 지금껏 뒤척이던 팰리스가 그제야 잠이 들었다.
* * *
남자에게 ‘총기’는 상당히 요상한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의 남성이 ‘자동차’를 여성의 경우에는 ‘보석’에 대해 느끼는 애착이나 향수 비슷한 감정 말이다.
‘흐흐흐~ 총을 만들어 짠하고 보여주면 정말 놀라겠지? 그러자면 한동안 바쁘게 움직여야겠다.’
요상한 기대감으로 마음이 들뜬 팰리스는 다음날 아침부터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출발을 서두르게 했다.
아나톨리아를 상납한 바람에 죽을상이던 사람이 갑자기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드레이크가 조심스레 그 이유를 물었다.
“아, 이상하게 보였겠군요? 아나톨리아 문제는 이미 지나버린 문제잖습니까.”
“···벌써 지나버린 문제가 되었구려. 그런데 정말 괜찮소?”
“하하하. 괜찮지 않으면요. 남작님. 조만간 총이라는 새로운 투사무기를 만들 생각입니다.”
“총? 총독, 총이라는 물건은 무엇에 쓰는 물건이지요?”
“트롤이나 오우거를 상대할 무깁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마음이 들떠 서두른 것 같습니다.”
“호오~ 뭔지는 모르겠지만 총독의 기분이 나아졌다니 정말 다행이오. 이제야 밝히지만 걱정을 많이 했소.”
“고맙습니다. 센트럴에 도착하면 전체회의를 소집하고 결정된 사안들을 알려야 할 것 같습니다. 한동안 작업실에 박혀 연구해야 하니 귀찮은 일은 빨리 처리해야겠지요?”
“호오~ 그렇단 말이지요? 그렇다면 잘 됐소이다.”
왠지 모르게 드레이크의 눈동자가 커진 것 같았다.
“네? 뭐가 잘 됐다는 말씀입니까?”
“총독, 그런 일은 내게 맡기시오.”
“무얼··· 말입니까?”
“전체회의를 주관하고 결정된 사안들을 통보하는 아주 ‘귀찮은’ 절차 말이오. 그런 귀찮은 문제는 내가 처리하고 총독은 아나톨리아에 이로운 물건을 개발하시오. 뭐, 내가 처리해도 문제없겠지요?”
드레이크가 말한 절차들은 팰리스에게 다소 귀찮지만 총독의 고유한 업무라 가벼이 처리할 수 없던 것들이었다.
평소라면 ‘이 사람이 왜 이러나.’하며 고개를 갸웃거렸을 것이지만 지금의 팰리스는 마음이 살짝 들떠 있었다.
사람들을 놀래주려면 서둘러야 했다.
“남작님께서요? 그러면 저야 좋지만···”
불감청(不敢請, 감히 청하지만 못하지만)이언정 고소원(固所願, 본래는 몹시 바라던)이었던 제안이었다.
그렇다고 얼씨구나 하고 드레이크에게 귀찮은 문제들을 모두 떠넘기면 모양새가 좀 빠진다.
그래서 뒷말을 살짝 흐렸다.
“전체회의에서 특별하게 논의할 것도 없잖소. 통보만 할 것 아니었소?”
“그야 그렇지요. 하지만 남작님께서 번거로울 것 같아서···”
“번거롭다니요. 그럼, 그렇게 합시다.”
“남작님께서 그리 원하신다면야··· 알겠습니다, 남작님”
귀찮은 문제를 남이 대신 해결해준다?
이번 총기개발은 처음부터 좋은 소식이라 왠지 모르게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흐흐흐~ 바쁘다, 바빠. 빨리 설계도부터 만들자.’
센트럴에 도착한 팰리스.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실에 틀어박혀 M1소총의 구조와 여러 부품들의 설계도를 세밀하게 그리기 시작했다.
이틀을 투자해서 만든 설계도는 완벽했다.
팰리스는 한창 예술혼을 불사르고 있던 티아늄 부부를 찾아가 소총의 설계도를 보여줬다.
한참동안 설계도를 들여다보던 티아늄이 고개를 연신 갸웃거렸지만 마음이 들뜬 팰리스는 이를 무시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티아늄! 설계도대로 만들 수 있겠어요?”
“어, 어? 그야 당연하지! 내가 누구야? 나··· 드워프야, 드워프!”
“맞아요, 총독. 계약자는 가끔 우리 드워프를 무시하는 것 같네요.”
“어? 내가 그랬어요?”
“당연하지. 우리 여보야가 말해서 말하지만 계약자는 가끔 그런 면이 있어.”
“그럼 루비, 티아늄 내가 사과할게요. 미안해요, 두 분.”
“에이~ 그렇다고 사과할 것까지야. 불편하게 시리··· 으헤헤헤헤~”
루비가 이리 손사래를 쳤지만 가증스럽게도 입꼬리가 귀에 닿으려고 했다.
“팰리스 설계도대로 에무원 소총이라는 것을 만들어주면 되나?”
“네, 티아늄. 아참 잊을 뻔했네. 혹시 강선도 새길 수 있겠어요?”
프레스와 선반 같은 도구 없이 총열에 강선을 새긴다는 건 기술적으로 매우 어려웠다.
다행히 드워프는 노가다 종족인지라 팰리스가 살짝 기대했다.
“어허~ 내가 누구야? 나 드워프야 드워··· 그런데, 강선이 뭔데?”
티아늄의 질문에 팰리스는 소총 설계도를 짚어가며 설명했다.
“총열··· 에~ 그러니까 이곳의 기다란 쇠관 내부에다가 회오리 모양으로 홈을 파는 거요.”
“아~ 이것을 강선이라고 부르는 건가? 아무튼 일주일 정도 공을 들이면 쇠관 하나에 강선이라는 걸 팔 수 있을 것 같다.”
이상하게도 소총개발은 이처럼 순조롭게 풀렸다.
각궁이나 도자기, 가성소다의 경우와 와 전혀 달랐다.
‘앗싸아~ 조만간 에무원 소총이 만들어질 것이고 그걸 보면 사람들이 깜짝 놀라겠군. 안 그래? 으흐흐흐~’
“좋아요, 티아늄. 설계도대로 소총을 꼭 만들어줘요. 알았죠?”
“알았다. 계약자. 그런데···”
고개를 끄덕이던 티아늄이 살짝 뒷말을 흐렸다.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그런데 이건 뭐하는 물건이야? 어디에 쓰는 물건인데 그런 얼굴이냐고.”
“자기야도 몰랐어요? 솔직히 나도 그것이 궁금했네요.”
티아늄 부부의 물음에 팰리스는 소총으로 트롤과 오우거를 상대할 것이라고 말해줬다.
“뭐, 이것으로 트롤이나 오우거를 상대하겠다고?”
“어머, 정말이오?”
“그래요. 티아늄, 루비.”
‘갸우뚱~’
“이상하네··· 기계뭉치로 어떻게 몬스터를 상대한다는 것이지?”
“맞아, 계약자. 이런 정밀한 기계로 어떻게 몬스터를 상대할 거야요?”
‘후후후~ 총을 설계도로 배웠으니깐 잘 모르겠지. 당신들도 기대하시라.’
티아늄 부부는 설계도를 통해 M1 소총의 구조와 작동원리를 파악했지만 진정한 위력은 몰랐다.
총이 발사되는 장면을 목격해야만 그제야 ‘아~’하며 깨달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총기가 만들어진 이후의 일, 지금은 책으로 사랑을 가르치듯이 소총의 개요와 원리를 알려줘야 한다.
팰리스는 설계도 이곳저곳을 짚어가며 다시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곳이 방아쇠인데 여기에 손가락을 넣어 당기면 에··· 여기의 공이치기가 용수철의 힘으로 두꺼운 바늘(공이)을 때리고 에··· 두꺼운 바늘은 이곳 약실 속에 들어가는 총알의 엉덩이(뇌관)에 충격을 줘요. 그럼 그 충격에 화약이 폭발하고 그 힘으로 총알이 나가는 원리에요.”
팰리스의 설명을 가만히 듣고 있던 티아늄이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엉덩이? 폭발? 설사는 아닐 테고··· 그나저나 팰리스. 총알이라는 것이 도대체 뭐야? 도대체 그것이 뭔데 똥침을 맞았다고 앞으로 팍 튀어나가는 거냐고?”
“그래요, 계약자. 얼른 보여줘 봐요. 지금 가져왔겠죠?”
”그야 당연히···”
팰리스는 차마 뒷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마음이 들떠 그만 총알문제를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 하하, 하! 하! 당연히 이제부터··· 만들어야겠죠?”
팰리스가 머리를 긁적이며 겨우 대답했다.
총기의 문제들이 술술 풀린다고 생각하던 팰리스. 방금 전까지 전혀 몰랐었다.
진정한 문제는 소총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M1 소총은 드워프들이 잔뜩 매달려 깎고 조이고 기름 치면 몇 정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이지만 (풀 메탈 재킷 방식의)총알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21. 가신(家臣)을 받아들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