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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영지전쟁이 예정된 날이 밝았다.
“오늘 영광된 샤이엔은 간악한 배달과 싸워 승리할 것이다. 진격하라!”
접경지대에 병력을 미리 집중시켰던 샤이엔 백작. 영지 경계선을 넘어 진격하라고 명령했다.
백작의 말을 들어보면 당장 진격해서 싸울 것 같았지만 실제로 그저 행군에 불과했다.
“진격하라.”
“이랴~ 출발하라.”
‘떠걱떠걱~’
‘터벅터벅~’
지휘관들의 명령에 5,000병력이 순차적으로 기마로, 두발로 배달의 경계선을 넘어 행군하기 시작했다.
이시대의 전투는 6.25를 경험했던 팰리스에게 이상하다 못해 상당히 괴이했다.
전투만하더라도 기습공격은 꿈도 꿀 수 없었고 사전협상 없이 전투를 개시하는 건 거의 없었다.
오늘과 같은 영지전의 경우에는 더욱 심한데 전투에 들어가기에 앞서 상대측에 사자(使者)를 보낸다.
사자는 항복할 의사를 묻고 전투에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등의 여러 절차들을 밟은 후에야 본격적으로 전투를 시작한다.
국가와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니라면 성(城)을 의지해서 싸우는 것도 간혹 비겁하다고 비난받을 정도였다.
춘추시대에 접어들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지 의문이지만 최소한 현재까지는 이것이 관습이었다.
이런 이유로 팰리스는 너른 평야에 진을 치고 샤이엔 백작군이 접근하길 기다렸다.
팰리스의 지휘막사에는 드워프와 엘프 긜고 배달의 주요가신들이 영지전에 참여(를 빙자한 싸움구경)하기 위해 자리를 지켰다.
적군이 다가오자 군부의 수장 아르펜이 보고했다.
“영주님! 드디어 샤이엔 백작군이 도착했습니다."
”생각보다 꽤 늦었구려.“
“말이 5,000병력이지 규모가 상당하니까요.”
5,000명이 적은 수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몇 줄로 줄을 세우면 대단한 수의 병력이었다.
평야에 완전무장한 보병만 늘여놔도 꽤 넓은 공간을 차지한다.
기마부대와 치중부대의 규모까지 고려하면 샤이엔 군대를 모두 이동시키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무력부장. 치중부대 뒤에 따라오는 수레는 무엇이지요? 백작군과 떨어졌고 행색도 보아하니 민간인 같은데.”
울긋불긋 치장된 마차와 수레. 그곳에 올라탄 자들은 아무래도 민간인으로 보였다.
“아~ 이웃영지에서 보낸 참관단과 전쟁상인으로 보입니다. 그 뒤는 아마도 전쟁상인이 고용한 매춘부와 광대들 같습니다.”
“참관단이나 전쟁상인은 얼추 이해하겠소. 헌데 광대와 매춘부? 아니, 전쟁에 무슨 광대에 매춘부가 따라다니 것이지요?”
참고로, 배달은 보안을 위해 샤이엔 주변 영지들이 요청한 참관단을 거절했다.
“모르셨습니까? 전쟁상인은 아시다시피 병사들이 적을 죽이고 얻은 철물과 무기, 갑옷들을 헐값에 구입해서 영주나 다른 상단에게 되파는 자들입니다.”
“그렇다고 들었소. 다른 곳에선 그런 부수입 때문에 용감히 싸운다고.”
“우리나 파이온과는 꽤 다릅니다. 우린 마수의 숲 때문에 병사들의 규율이 강한 대신 대우가 꽤 좋았지요. 그런 파이온의 영향을 받은 우리 병사들은 전쟁상인의 부수입을 전혀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광대는 매춘부는 왜···”
“귀족이나 참관단의 여흥을 위해 광대가 필요합니다. 매춘부는 뭐··· 아시잖습니까? 젊은 남자들만 모아놓으면 꼭 사고를 일으키니까요.”
철저하게 훈련시키고 규율을 강조하는 파이온과 배달의 병사들이었다.
그와 달리 이 당시의 병사들은 오합지졸에 규율도 엉망이었다.
말만 군대였지 사실상 약탈자요, 잠재적인 범죄 집단이었다.
그래서 군대를 운용하는 자는 꼭 여러 전쟁상인들의 입찰을 받고 한곳을 골라 계약한다.
그럼 전쟁상인은 광대와 매춘부를 고용하여 전쟁터를 따라다닌다.
그래서 상인의 마차와 수레 이외에도 광대의 것과 매춘부들의 매춘마차들이 퍼레이드를 펼치는 것 같았다.
현대를 살았던 팰리스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팰리스와 아르펜이 왜 이리도 여유로울까?
그건 샤이엔 백작군이 한창 귀족들과 참관단의 휴식을 위해 천막을 치고 각각의 지휘망루를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 황당한 건 이런 자투리시간을 이용하여 병사들이 매춘마차 앞에 줄을 서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런 미친··· 도대체 싸우자는 거야 뭐야? 정말 적응이 안 되네.’
하도 어이가 없어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다행히 1시간정도기다리자 백작군이 작업을 얼추 마쳤다.
“영주님. 사자가 출발하려는 것 같습니다.”
아르펜의 말대로 백기를 든 기사가 말을 몰아왔다. 그는 아군과 접촉했고 십인장이 팰리스의 지휘막사로 안내했다.
“샤이엔 백작 각하의 충실한 기사, 마크 타이슨이오. 팰리스 배달 자작님을 뵙길 청하오.”
‘이건 뭐 쇼하는 것도 아니고. 뭐, 이곳의 절차라니 어쩔 수가 없겠군.’
“그대가 청한 팰리스 배달자작이다. 용건을 말하라.”
팰리스가 앞으로 나오자 타이슨이 다시금 자신을 소개하곤 배달군의 항복의사를 타진했다.
형식상 절차였고 당연히 되려 샤이엔군에게 항복하라고 제안했다.
이후에는 각자가 가진 힘으로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룰 것이며 승자의 뜻에 따를 것을 신의 이름으로 약속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렇다고 무슨 서류에 서명한 것도 아니었다.
귀족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 자체로 계약서와 동일한 효력을 가졌다는 인식이라서 맹세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럼, 약속한 대로 1시간 후에 옳고 그름을 가리겠습니다. 그럼···”
‘떠그덕, 떠그덕~’
귀찮고 번거로운 절차가 마무리됐다.
이제 1시간 후에 벌어질 전투에 따라 배달과 샤이엔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다.
배달과 샤이엔은 조만간 시작될 전투를 위해 진형을 구축하고 병력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백작군도 매춘마차에 줄을 섰던 병사들을 불러들여 나름 준비한 것들을 배치하기 시작했고 참관단은 중립지역에 세워진 망루에 올라 라이브 전쟁영화를 즐길 준비를 마쳤다.
술과 음식을 벌여놓고···
그런데 그때 시력이 좋은 기마부대의 수장, 머릿바람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어, 어라? 대포잖아? 영주님. 적들이 대포를 준비했습니다.”
그는 말위에서 샤이엔군을 지켜보다가 후방의 마차에서 청동제 대포를 끌어내리는 모습을 발견하고 팰리스에게 보고했다.
나름 비밀무기라고 검은 천으로 덮어 이동해왔는데 배달군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무기였다.
신무기의 등장에 참관단도 대포를 자세히 살피는 눈치였다.
‘이런··· 이젠 이곳에 대포가 유행하겠군.’
팰리스가 대포의 출현을 우려했지만 아직까지는 통짜 철환(鐵丸)을 날리는 무기였다.
살상보다는 상대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용도로 사용될 것이다.
허나, 피해 없이 샤이엔을 접수할 계획이었던 팰리스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대포? 대포로 무장했다고?”
“죄송합니다. 정보부에서 미처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정보부의 앙드레가 급히 다가와 사죄했다.
원거리 투사무기를 사전에 알아내지 못한 건 전적으로 그의 잘못이었다.
“적들이 대포를 보유했소. 원거리 투사무기 앞에서 계획했던 작전을 실행하는 건 무리가 있소이다. 아무래도 개전이 선포되는 것과 동시에 대포부터 타격해야겠소.”
“그럼 이번 전투에 속사포를 사용합니까? 참관단의 눈이 지켜보고 있는데···”
“아무래도 그래야 하지 않겠소? 비밀 유지도 좋지만 일단은 피해 없는 승리가 먼저요. 아참, 타격을 마치자마자 무한주머니에 수납해서 감추라고 하시오.”
“알겠습니다, 영주님. 작전은 대포부터 무력화 시킨 이후에 시행하겠습니다.”
작전을 급히 수정하고 잠시 기다리자 드디어 개전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울렸다.
이에 배달군도 나팔을 불어 공식적인 전투가 시작됨을 통보했다.
첫수는 샤이엔 백작, 그는 중앙군과 좌군, 우군의 보병을 한꺼번에 진출시켜 배달군을 압박하게 했다.
동시에 후방에 배치된 대포로 아군을 엄호하며 사기를 떨어뜨리려고 했다.
그런데 전장식 대포는 발사하기 까지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후장식 대포에 작열탄을 사용하는 배달군에게 밥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목표는 적 포대··· 쏴!”
“발사!”
“쏘랍신다!”
‘꽈앙~ 꽈과과꽝~’
‘슝, 슈우우우우웅~’
포구 속에 화약을 들이 붇고 한창 화약을 다지던 샤이엔의 포병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게다가 지연신관이 적용되어 폭발하는 작열탄이었다.
‘쿠꿍~ 쿠꾸구꿍~’
샤이엔의 포대가 위치한 곳에 갑자기 동시다발적인 작은 폭발이 발생했다.
그러다가····
‘꽈아아아앙~’
‘우르르르~’
지면이 흔들릴 정도의 엄청난 폭발이 발생했다.
얼마나 대단한 폭발인지 수 톤에 달하는 대포가 통째로 날아갔다. 폭압에 팔다리가 찢긴 시체들도 사방으로 흩날렸다.
관리의 문제로 포병과 화약을 한곳에 밀집시켰다가 작열탄에 직격되어 대규모 유폭이 일어났던 것이다.
엄청난 폭발에 놀란 샤이엔군이 저도 모르게 진군을 멈췄다.
그들은 자꾸 후방을 흘깃거리면 동료와 숙덕거렸다.
놀란 건 병사만이 아니었다. 참관단은 물론이고 샤이엔 백작도 깜짝 놀라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벌떡~’
“뭐, 뭔가!”
“마, 마법공격 같습니다.”
“마법공격이라고? 마법은 사거리가 기껏 100m잖나.”
“하지만 폭발이 발생했습니다. 마법이 아니라면 폭발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작열탄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속사포의 공격은 마법이었다.
샤이엔군은 급히 마법사에게 원인을 파악하고 배달측 마법사를 수색하게 했다.
적군의 마법사가 침투하여 포대를 폭발시켰다며 오해했던 것이다.
샤이엔 군이 이리 허둥대고 있을 때에 팰리스는 그제야 준비했던 작전을 시작하게 했다.
“이제부터 작전을 시작하시오.”
“넵, 영주님. 이럇~”
머릿바람의 지시에 주로 퉁구스인들이 추축이 되어 만들어진 기마부대가 좌우에서 날개를 펴듯 달려갔다.
기마돌격?
팰리스는 그런 무식한 전술을 사용하지 않는다.
머릿바람의 기마부대는 좌측으로 우측으로 크게 우회하여 적본진으로 다가갔다.
양측 간의 거리는 이제 500m!
기마부대에 배속된 엘프들이 한곳을 목표로 일제히 편전을 발사했다.
목표는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던 샤이엔 배작!
‘쐐엑, 쒜쒜에에엑~’
샤이엔의 배작을 호종하던 단장은 익스퍼트 중급의 실력자였다.
그는 따끔한 살기와 파공성으로 저격을 직감했다.
“헉! 피ㅎ···”
‘스릉~’
단장은 급히 검을 꺼내 화살을 걷어···
“어? 화살이 화실이 어디··· 에잇~”
걷어내려고 했지만 화살이 너무 작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익스퍼트 중급의 실력자였다.
마나를 눈에 집중시키자 검고 작은 화살이 애기살을 보였다. 그는 놀랄만한 반사신경으로 걷어냈다.
‘티티티팅~’
문제는 5명의 엘프가 1조가 되어 일점사로 발사했고 단장은 3~4개를 걷어내는 것으로 유효시간이 지나갔다는 점이다.
그가 미처 걷어내지 못한 애기살이 기어이 백작이 착용한 갑옷을 파고들었다.
‘빼엑~’
500m의 거리에 튼튼한 갑주를 입었다면 화살을 충분히 튕겨낼 것이다.
허나, 이번에 날린 애기살은 통짜 강철로 주조된 특수한 화살이었다.
게다가 궁술로 유명한 엘프들이 만든 각궁에서 발사됐다.
“으헉! 다, 단장! 화살··· 내가 화살에 맞았다.”
멍청이라서 그가 이리 허둥댄 것이 아니었다.
갑옷에 박힌 것이 아니라 몸통에 완전히 파고들어 뽑아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더욱 불행한 건 다른 조에서도 백작을 노리고 편전을 발사했다는 점이다.
‘쉐에에에엑~’
‘티팅~’
‘뻐버뻑~’
다른 부위에 맞았다면 화살을 뽑고 포션으로 상처를 치료하련만 적중된 애기살 하나가 투구에 작은 구멍을 만들어 놨다.
투구의 구멍에서 피가 흘러나올 무렵, 거구의 샤이엔 백작이 스르르 쓰러졌다.
“배, 백작님! 일어나십시오. 주군 제발···”
단장이 백작의 사체를 부여안고 소리쳤다.
그래서 그는 2번째 타깃이 자신으로 결정됐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쒜엑, 쉐에에엑~’
‘뻑! 뻐버버버버버뻑~’
우두머리에 이어 군의 실질적인 통솔자마저 허무하게 죽어버렸다.
‘떠그덕, 떠그덕~’
“이제부턴 자유사격! 지휘관들을 노린다!”
머릿바람의 명령에 엘프 기마궁수들이 편전을 발사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투퉁~’
‘쒜에에엑~’
“저격이··· 큭!”
“방패, 방패병 빨리·· 커헉~”
샤이엔군의 지휘관들이 빠르게 정리되기 시작했다.
500m거리에서 날리는 저격이라 샤이엔군은배달의 행사를 저지할 수가 없었다.
나름 막아본다고 자신의 앞을 방패로 가렸지만 강철 애기살은 방패마저 뚫고 들어와 기어이 목숨을 취했다.
지휘관들이 이리 되자 한창 거리를 좁히던 보병들이 완전히 제자리에 멈춰섰다.
그들은 주위의 동료들과 숙덕거리다가 망루의 백작이 쓰러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직감했다.
‘백작님이 죽은 것 같다. 이 전쟁··· 졌다.’
‘이미 진 싸움이다. 설레발치는 건 죽음이다.’
‘툭, 투툭~’
병사들은 저도 모르게 손에 쥔 무기를 떨어뜨렸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완장 찬 놈들이 눈치도 없이 무기를 들고 싸우라고 고래고래 고함쳤다.
그리고 화살에 맞고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며 죽어갔다.
배달과 샤이엔과의 영지전쟁이 끝나는 순간으로 전쟁개시 나팔이 울린 지 30분도 안된 때의 상황이었다.
영지전쟁을 위한 사전 절자보다 훨씬 짧았던 전투가 끝났다.
이제부터는 가난뱅이 샤이엔 백작령을 편입하여 온전한 배달의 땅으로 소화시켜야할 귀찮고 기나긴 작업이 시작되었다.
52. 샤이엔 편입-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