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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인리스가 개발됐으니 그에 걸맞은 생산라인이 곧 만들어질 테고 팰리스가 원했던 스테인리스 강괴와 강판이 생산될 것이다.
이렇게 생산된 강판을 프레스로 마구 찍어 싸구려 ‘스댕’ 그릇으로 성형하여 엘프들에게 가져다준다.
그럼 엘프들이 싸구려 ‘스댕’그릇에 법랑기법으로 예술혼을 불살라 식기를 빙자한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둔갑시킬 것이다.
뭐, 지금 당장 그리 된다는 소린 아니다.
최소한 3~6개월을 준비해야 본격적인 생산체제가 확립될 것이다.
중요한 건 이로써 2개의 과제가 한꺼번에 해결됐다는 점이다. 아쉽게도 팰리스는 편하게 쉴 팔자가 아니었다.
팰리스가 다른 과제를 고민하려고 할 때에 외부의 돌발변수가 발생했다.
배달의 최대 수익원이었던 남방의 특산품(후추와 설탕, 커피, 향신료 등)의 가격이 크게 하락했던 것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남방의 왕국들이 무너져 죄다 제국 영지들의 식민지가 되었다.
탐욕에 눈이 먼 총독들은 다른 산물을 생산하는 식민지를 탐내다가 결국에는 식민지 쟁탈전을 시작하고 말았다.
동시에 본래의 목적인 남방의 특산물을 경쟁적으로 가져와 제국에 풀었다.
후추를 비롯한 여러 특산물은 수요가 많았지만 공급이 몇 배로 늘어나버렸다.
가격이 하락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현상이리라.
팰리스는 배달의 로드이자 리더였다.
배달이 앞으로 나아가야할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IMF를 불러왔던 누구처럼 단기적이고 지엽적인 문제에 골몰하다간 미래를 망칠 것이다.
팰리스는 보다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목표를 위해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
“슈퍼스타호는 화물칸을 겨우 1/5만 채워 온다고 알고 있소만.”
“그렇습니다. 공급물량을 조절하여 고가정책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지요. 허나, 경들도 알다시피 남방의 제반여건이 크게 변하고 있소.”
“이리자야를 제외하고 죄다 식민지가 됐습니다.”
“식민지에서 남방의 특산물들을 경쟁적으로 들여오고 있습니다.”
“공급이 너무 늘어나 상품 가격이 크게 하락했습니다.”
가신들이 이리 말하자 배달상단을 책임진 드레이먼드가 좌불안석이 되었다.
괜스레 팰리스에게 고개숙여 사죄했다.
“하아~ 영주님. 죄를 청합니다. 공급이 늘어 가격하락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대를 탓하고자함이 아니오. 경이 어쩔 수가 없었던 문제잖소.”
“하지만···”
“들으시오, 세바스찬 경!”
“넵, 영주님.”
“지금부터 정책을 변경하겠소. 슈퍼스타호는 앞으로 화물칸에 특상품을 가득 채워오시오.”
슈퍼스타호는 배수량 2만 톤의 여객선이자 화물선이다.
주로 이리자야 처자들의 고향방문을 지원하고 그곳과의 교역을 담당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영주님. 화물칸을 가득, 네? 가득··· 채워 오라고요?”
드레이먼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득 채우면 자그마치 5천 톤입니다. 그럼, 하락 수준이 아니라 폭락수준으로 가격이 하락할 겁니다.”
박리다매의 의미처럼 언뜻 싼 가격이라도 많이 팔면 팔수록 수익이 더욱 커질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허나,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특히 농산물의 경우에는 조금만 공급이 늘거나 줄어도 가격이 폭락하거나 폭등한다.
그런데 주요 영지들이 경쟁적으로 수입(약탈)하는 바람에 교역여건이 크게 변했다.
앞으로 수입물량이 늘어났으면 늘어났지 줄어들 것 같지 않았다.
배달의 가장 큰 수익원이 붕괴된다는 뜻, 남방의 물품에서 발생한 수익에 의지하면 안 될 것이다.
더욱이 배달이 강해질 여건을 제공해주던 특산물들이 이젠 적이 될지도 모르는 영지들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남방의 특산물이라는 외부의 수익원이 사라질 판이다. 당연히 내부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한다. 그리고 어차피 먹지 못할 먹이라면 누구도 먹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렇소. 그리하면 후추를 비롯한 특산물 가격이 크게 폭락할 것이오.”
“그럼, 영지의 수익이 더욱 줄어들 겁니다. 영지재정에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단기적으로는 그럴 것이오. 다만, 우리의 재정이 꽤 튼튼하지만 적이 될지도 모르는 영지들은 다르오. 알다시피 그들은 엄한 곳에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부었으니 말이오.”
팰리스의 말대로 배달은 소위 ‘뽕’을 뽑고도 수천 배가 남았다.
마고성 지하에는 금괴가 수십 톤 단위로 쌓였고 현금이자 전략물자인 마나석과 마정석도 상자 단위로 쌓여 있다.
경쟁자들은 이런 배달의 수입이 부러워 엄청난 초기자금을 투입했다.
얼추 본전을 채우고 이제 재미를 보려는 상황. 팰리스는 소위 다된 밥에 재를 뿌리려는 것이다.
“아~ 그, 그렇군요.”
“우리야 상대적으로 투자비가 적었고 이리자야와 상생이 되는 교역으로 서로의 이익을 도모하고 있소. 하지만 우리의 적이 될 자들은 사정이 다르지요. 안 그렇소?”
“그렇습니다. 영지의 존망을 걸고 투자했으니 가격이 폭락하면 치명적일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배달은 지금껏 이리자야에서 1,000톤가량을 수입하여 제국에 풀었는데 이날의 회의 결과 수입물량을 최대 5,000톤까지 늘려버렸다.
그래서 그렇잖아도 가격이 하락하는 가격을 폭락수준으로 떨어뜨려버렸다.
가격폭락으로 배달의 수익이 줄어들었지만 물량의 증가로 그 폭이 미미했다.
반면, 영지들은 사정이 달랐다.
그들은 남방교역으로 벌어들일 수익만 믿고 병력과 선박들을 늘렸고 식민지를 운영에도 상당한 비용이 소모됐다.
그래서 재정사정이 급속도로 나빠지면서 또 다른 분쟁의 씨앗이 되었다.
“그렇소. 게다가 투자비와 노력 때문이라도 식민지에서 함부로 손을 떼지 못할 것이오. 그 사이 우리 배달은 메리트가 사라진 교역 대신 내수시장을 장악해야 한다는 소리지요.”
“오~ 그렇다면 빨리 신기술로 새로운 제품을 출시해야겠군요?”
“신기술? 새로운 제품? 요사이 무슨 기술이 개발되었소?”
“아~ 모르셨습니까? 스테인리스라고 녹이 슬지 않는 철이 개발됐습니다.”
화제는 이제 얼마 전에 개발한 스테인리스로 옮겨갔다.
팰리스는 법랑 때문에 스테인리스를 개발했지만 그 사용처는 무궁무진했다.
굳이 법랑이 아니더라도 문제가 없었다.
식칼만 하더라도 스테인리스 제품이 출시되면 시장을 완전히 장악할 것이다.
게다가 배달은 현대적인 무한제철소로 인해 철강원가가 무척 저렴했다.
“녹이 슬지 않는 철이라면··· 포크와 나이프, 숟가락으로 만들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 어디 그것뿐이겠소? 영주님. 주방을 아예 스테인리스 도배해야 합니다.”
스테인리스라는 실마리를 던져주자 가신들이 알아서 엉킨 실타래를 풀어갔다.
다음날, 팰리스는 후속작업들을 가신들에게 맡기고 내수시장장악을 위한 신제품 개발에 매진하기로 했다.
“법랑과 스테인리스는 해결했으니 다음은 옥도자기와 생활도자기 공장인가?”
일단은 생활도자기 공장, 전생의 둘째 아들이 도자기 공장을 운영했고 칠성이 아들을 위하여 잠시 도와줬었다.
그래서 도자기 공장을 어떻게 구성할지가 쉽게 떠올랐다.
여기에서 잠깐. 방금 ‘공방’이 아닌 ‘도자기공장’이라고 말했다.
여주나 이천하면 연상되는 전통적인 가마가 아니었다.
(붉은 벽돌을 굽던)터널식 가마가 적용되는 대량생산용 도자기 공장을 말함이었다.
물론, 지금 당장 가이아에 전생의 공장을 적용하긴 다소 곤란했다.
전생의 공장은 전기에너지와 모터를 이용한 방식이었다.
이곳에서는 마도기관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변환해야 하고 그 문제를 팰리스가 해결해야만 한다.
“내가 왜? 골치 아픈 그런 걸 내가 왜 고민해야 해?”
팰리스가 피식거리며 중얼거렸다.
“기술자 드워프와 똑똑한 피리온에게 맡기면 그만이지. 안 그래? 으흐흐흐~”
음흉하게 미소를 짓고는 그를 대신해 골치를 썩일 피리온과 드워프 안티몬을 호출했다.
“피리온, 안티몬. 스테인리스에 이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것이오.”
“오~ 어떤 사업이야?”
“영주님, 기대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후후후~ 새로 진행할 사업은 도자기 공장···”
“쳇~ 알았다, 알았어. 그러니까 아나톨리아에서 만든 시설을 다시 만들어달란 그 말이지? 괜히 기대했군.”
안티몬은 확실히 성격이 급한 드워프였다.
용건을 미처 말하기도 전에 성급하게 결론을 말했다.
“아니, 아니에요.”
“아니··· 었어?”
“네, 아저씨 아나톨리아 방식으로는 도자기 시장을 평정할 수가 없지요. 도자기 공장은 말 그대로 대량생산체제에 어울리는 공장입니다.”
이해를 돕자면, 아나톨리아의 생산방식은 전통적인 가마와 팰리스가 지금 만들려는 도자기 공장의 중간 정도라고 이해해도 무방하다.
“공장이라면··· 대량생산입니까? 영주님~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알았다, 피리··· 아니, 알겠소, 리저드경. 내가 생각한 도자기 공장이 어떤 방식이냐면···”
도자기 장인(기술자)의 수준이나 숙련도와 관계없이 일정한 품질의 제품을 빠르고 대량으로 생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마도기관을 동력원으로 공장자동화가 필수적이다.
이해를 위해 생산방식이 설명하면 대충 이렇다.
일단 (도자기용)여러 흙들을 가공하고 혼합기계로 잘 섞는다.
이후에는 기계로 여러 차례에 걸쳐 반죽하고, 공기를 빼고, 적당히 숙성시켜 도자용 흙으로 만든다.
도자기 장인(기술자)은 도자용 흙을 적당히 떼어 미리 만들어둔 도자기틀에 집어넣는다.
그럼, 성형기계가 고속으로 회전하며 일정한 규격제품으로 찍어내듯이 성형한다.
이후에는 적당히 말리고 기계를 이용하여 문양을 새겨 컨베이어에 올려둔다.
그럼 컨베이어는 기다란 터널식 가마를 아주 느리게 통과하면서 1차 완성품인 토기로 굽는다.
토기에 그림을 그리고 유약을 발라 다시 터널식 가마로 도자기로 굽고 포장단계에 도달할 즈음에는 적당히 식어진다.
중요한 건 이런 일련의 작업이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
팰리스는 전생에서 경험했던 도자기 공장을 설명하는데 말로는 다소 부족했다.
그래서 미리 준비했던 공장구조도를 곁들여 피리온과 안티몬을 완전히 이해시켰다.
“이러 저래, 이러쿵저러쿵···· 그래서 말 그대로 도자기 공장이 되는 것이지요.”
“오~ 저, 정말··· 영주님. 정말로 대단한 구상입니다.”
팰리스의 계획에 피리온이 격렬하게 반겼다.
반면, 안티몬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나는 반댈세. 무조건 반대, 도자기 공장은 절대로 안 돼.”
‘이 아저씨가··· 갑자기 왜 저래?’
“아니 왜요? 왜 반대하는 건가요?”
“한마디로 단순반복 작업이잖아! 그리고 뭐, 틀에 찍어 만들어? 획일적이고 똑같은 도자기라라니. 으~ 아무리 잘빠져도 그런 도자기는 형편없는 물건이다.”
드워프는 자칭 예술가다.
단순한 작업을 매우 싫어해서 공장을 반대했다.
그렇다고 안티몬을 설득하지 못한다는 건 아니다. 드워프가 원체 크고 거대한 작업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공장이 아주 크고 거대할 텐데요?”
“크, 크고··· 거대해?”
“네, 안티몬. 도자기를 굽는 가마만 100m가 넘어요.”
“그, 그렇게 크고 거대하면···”
‘꿀꺽~’
“어떻게··· 참여할 건가요?”
“단순반복 잡업과 크고 거대한 공장이라··· 어떡한다? 흐음~”
안티몬이 머릿속으로 바삐 저울질 하더니 곧 결론을 내렸다.
“에이 썅~ 그래도 안 돼. 우리 드워프는 예술가야. 예술가에게 단순반복에다가 개성 없는 도자기를 대량생산하라니···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안티몬이 거절했어도 팰리스는 실망하지 않았다.
‘드워프를 1, 2년 겪어봤나? 안티몬이 저럴 것을 충분히 예상했다. 이제부턴 결정타를 날리자.’
“공장과 별도로 옥도자기도 함께 만들 텐데요? 안티몬이 주체가 되어··· 언더 스텐?”
‘옥도자기가 얼마나 좋은 도자기인지를 잘 알잖아요. 그러니까 빨리 도자기 공장을 담당하겠다고 말해요. 으흐흐흐~’
드워프는 천성적으로 새로운 발명품을 좋아한다.
그것을 자신의 손으로, 자신이 주도해서 만드는 것을 더더욱 좋아한다.
“응? 오, 옥도자기?”
“네, 옥도자기요. 정확하게는 회골자기죠. 안티몬도 알다시피.”
“회골···자기? 아이 씨~ 그건 또 뭔데? 아니, 내가 뭘 안다는 거지?”
어째 분위기가 이상했다.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었다.
‘어라? 어째 좀 싸한데?’
“아저씨 몰라요? 회골자기.”
“웅. 당연히 모르지.”
“티아늄이랑 루비가 말하지 않았어요? 그거 만드는 방법이요.”
“걔들? 별다른 말이 없었는데?”
“그래요? 이상하네. 분명히 다른 드워프에게 알리라고 부탁했는데.”
정확하게는 드워프들에게 제조법을 알리고 양산하기 전까지 연구와 시험생산을 부탁했었다.
순간, 안티몬의 얼굴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빠직~’
“고오~뤠? 이런 씨부럴 연놈들이··· 지들만 알고 우리에겐 꽁꽁 숨겼어.”
안티몬이 크게 분노했다.
참고로, 드워프는 동료보다 먼저 자신이 개발하려는 욕심도 강했다.
“이 연놈들을 어떻게 한다?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
‘어째 좀 이상하더라니.’
“죽이든 살리든 그건 나중에 알아서들 하시고···”
“뭐, 알아서 하라고? 영주~ 자기일이 아니라고 그렇게 건성으로···”
“옥도자기! 아니, 회골자기요.”
“으, 응?”
“그것이 뭔지,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아참~ 옥도자기는 굳이 공장방식으로 생산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혹시···”
“네. 고급이니까 당연히 고가정책이어야겠죠. 그럼, 대량생산이 아닌 소량생산에 예술품으로 만들어야 할 테고요.”
“오~ 예술품!”
“안티몬. 옥도자기에 예술혼을 쏟아 부을 기회를 드리지요.”
“조, 좋다. 엄청나게 쏟아부어주마. 아참~ 그런데 옥도자기가 도대체 뭐야? 그게 뭔데 아까부터 계속 옥도자기, 옥도자기 하는 거야?”
”쩝~ 옥도자기가 무엇이냐면···”
티아늄 부부에게 알려줬던 내용을 재방송했다.
안티몬도 처음에는 몬스터나 동물의 뼛가루로 제작한다는 말에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러다가 고열로 정화하는 격이고 기존의 도자기보다 훨씬 성능(?)이 좋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회골자기는 재료의 비밀이 무척 중요하다.
그래서 팰리스는 (화학연구소와 무기연구소처럼 쇼쇼니 반도 남부의 섬에 공방을 차리기로 결정했다.
피리온은 팰리스가 언급한 공장을 가이아의 방식으로 적용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안티몬과 비스무트는 도자기공장과 옥도자기 공방을 만들며 원료를 사용할 몬스터와 동물의 뼈를 조용히 수집했다.
도자기 관련 사업도 3~6개월을 준비해야 겨우 첫 번째 제품을 제작할 것. 그런데 또 원치 않는 외부적인 변수가 발생했다.
도야마백작이 가리발디 영지를 기습 공격했고 이때부터 암묵적인 휴전이 깨져버렸기 때문이다.
60. 쟁투의 시대가 시작되다-1(아르고스를 모사드로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