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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는 아이템을 따라간다(4) (116/170)

고수는 아이템을 따라간다(4)

고수는 아이템을 따라간다(4)

좀비는 한 마리도 세 마리도 아닌 여섯 마리였다. 수호자들은 썩은 시체보다 더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좀비를 발견하고는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죽어서도 민폐를 끼치는 놈들.”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처단해주지.”

“영원한 안식을.”

수호자들은 좀비들을 반드시 처단하겠다고 맹세했다. 좀비들은 그런 수호자들을 응시하며 살점이 떨어진 입을 벌렸다. 입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가 툭툭 떨어져 내렸다.

“그···워···어···어.”

잠시 후, 수호자들과 언데드들을 속박하던 봉인이 깨졌다. 동시에 팽팽하던 실이 끊어지며 긴장감이 폭발했다.

“빛의 심판을!!”

선봉은 순백의 날개와 성스러운 검을 지닌 발키리였다.

발키리는 두려움을 모르는 용감한 용사처럼 좀비들을 향해서 돌진했고, 불과 1초 만에 높은 곳으로 돌아갔다.

용감한 발키리를 뒤따르던 수호자들은 그 모습을 보고 진심으로 당황했다.

“뭐, 뭐야?!”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천사님께서는 어디로?!”

하지만 당황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좀비들과 구울들과 해골전사가 구역질이 치밀어오르는 몸을 이끌고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 자식들!!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지만 절대 용서 못 한다!!”

“죽었지만 다시 죽여주마!!”

수호자들은 전열을 가다듬고 좀비들을 향해서 돌격했다. 하지만 눈빛에서는 숨길 수 없는 공포가 엿보였다.

콰아앙!!

방패와 손톱, 이빨이 부딪혔다.

단단한 방패와 누런 이빨의 승부는 어느 누가 보아도 방패가 유리해 보였다.

그러나 승부는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크으윽?!”

“모, 몸이···!!”

“으어어억···!”

독! 좀비의 입에서 흘러나온 독은 방패조차도 녹여버릴 정도로 지독한 맹독이었다. 수호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어떻게든 버티려고 애를 썼다.

“우워어억···!!”

그러나 오래 버티지 못했다.

처절한 비명의 끝은 죽음이었고, 공포는 그 죽음을 머금고 쑥쑥 자라났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죽음이 활짝 필 듯했다.

“으아아아아···!!”

수호자들은 공포에 사로잡힌 나머지 눈물을 흘리며 검과 방패를 마구 휘둘렀다.

하지만 거머리처럼 달라붙은 좀비들은 떨어지지 않았다. 머리가 베이든 팔이 떨어지든 끝까지 덤벼들었다.

콰직!!

수호자들이 몸부림치면 칠수록 죽음이 더 활짝 피어났다. 죽음은 너무나도 새빨갰다.

“으아아······.”

비열한 하이에나들은 이 소란스러운 광경을 바라보며 짤랑짤랑 황금 목걸이를 흔들어댔다.

“캬캬캬!”

“정말 멋진 밤이야!”

10수호자+9질서다. 허접한 언데드 따위에게 진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

그런데 패배했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패배했다. 싸움은커녕 좀비들조차도 뚫지 못해서 녹아내렸다.

“···하이에나들 때문은 아니야. 좀비. 저 좀비들에게 당했어. 하지만 어떻게 좀비 따위가?”

아크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6성 챔피언인 해골전사-카쿰이라면 또 모를까. 상대는 좀비가 아닌가? 3성을 만들어도 공격력이 겨우 100을 넘는 약해빠진 챔피언.

5성이라고 해봐야 230밖에 안 되는 쓰레기 챔피언이 바로 좀비인데···. 좀비 따위에게 수호자들이 녹다니.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어.”

아크는 자신이 모르는 아이템이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현시점에서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 탓에 대처를 세운다든가 하는 일은 할 수가 없었다. 미지의 적을 상대로 대처를 세운다는 건 불가능하니까.

“···이상현.”

아크는 무시무시한 송곳니를 드러낸 이상현을 노려보며, 자신의 사명을 다시금 가슴이 새겨넣었다.

“···난 지지 않아.”

두근두근.

아크의 심장은 불안감으로 떨렸다.

‘적’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골드러쉬가 가능한 2라운드라서 비벼지는 모양새가 되었지만, 슬슬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3차 예선전 중간 순위]

[1위: 4번 크로노스(53)│14승, 7패]

[2위: 2번 아크(42)│12승, 9패]

[3위: 6번 하데스(27)│11승, 10패]

[4위: 1번 이상현(36)│10승, 11패]

[5위: 3번 베리알(28)│10승, 11패]

[6위: 5번 레오나(21)│9승, 12패]

[7위: 7번 이레논(20)│9승, 12패]

[8위: 8번 벱티스(12)│9승, 12패]

의도적으로 추락했던 이상현의 부활과 하데스의 연패, 꾸준한 아크, 크로노스의 상승세까지.

3차 예선전 2라운드 첫 번째 게임. 그 게임에서 우승 경쟁을 하게 될 세 사람이 드러난 것이다.

물론 여전히 승부는 안개 속이다. 영웅의 전당에서 어떤 아이템을 획득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그러나 영웅의 전쟁터에서 드러난 이상현의 전투력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어떻게 언데드 따위가?’

‘하이에나의 왕은 언제 획득한 거지? 영웅의 전당인가? 아니면 죽음의 던전?’

‘뭐가 저렇게 강해?’

아직 완전체가 된 이상현과 만나보지 못한 플레이어들은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 중에서도 현재 8위인 벱티스는 두려움을 넘어 질투심까지 느꼈다.

‘어째서지? 저놈이 획득한 아이템들은 시시한 것들뿐이었는데. 그런데 이 차이는 뭐냔 말이다!’

끓어오르는 질투심은 악의로 변질되었다.

‘죽을 땐 죽더라도. 방해해주마!!’

아직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지만, 벱티스는 느끼고 있었다. 자신은 곧 탈락할 거라는 것을.

그래서 벱티스는 자신과는 다르게 잘 나가는 이상현을 방해하기로 마음먹었다.

‘같이 죽자, 이상현!!’

벱티스의 이러한 행동은 STFT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귀신 작전이었다.

‘꼬라지를 보니까···. 날 방해할 생각인가 보네.’

이상현은 벱티스의 이유 없는 질투를 알아차렸다. 12년 동안 숱하게 당해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3초 정도 고민하다가···. 깔끔하게 무시하기로 했다.

‘뭐, 잘 해보라지.’

왜냐하면 무관심이 정답이기 때문이다.

현재 1위인 크로노스가 고를 수 있는 아이템이 몇 가지 되지 않았다. 그나마도 최악이었다.

‘망할.’

크로노스가 선택한 아이템은 하이에나의 활이었다. 궁수 조합이 아닌 크로노스에게 활은 큰 가치가 없는 아이템이었다.

게다가 하이에나 궁수도 없으니 사실상 무용지물이지만···. 크로노스에게는 하이에나의 검이 있다.

만약 네 번째 죽음의 던전에서 하이에나의 주머니를 획득할 수만 있다면···.

지금의 선택은 빛을 보게 될 것이다.

‘···기도할 수밖에 없나.’

물론 빛을 못 보고 최악의 선택으로 끝날 확률이 더 높지만, 지금으로써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현재 2위인 아크가 선택한 아이템은 수호자의 방패였다.

수호자의 방패.

고급 아이템은 아니지만, 질서 조합의 아크에게는 고급 아이템만큼이나 좋은 아이템이었다.

‘이게 맞아. 난 옳은 것을 선택했어.’

아크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수호자의 방패를 선택한 자신의 선택이 옳다고 믿었다.

‘난···. 내 길을 가야 해.’

8위인 벱티스가 발견한 아이템은 죽음의 왕관이었다.

그렇다! 언데드 조합에게 있어 최고의 아이템이 영웅의 전당에 나타난 것이다.

“하, 하하하!!”

만약 이 아이템을 이상현이 획득한다면 그 누구도 이상현의 승리를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첫 번째 죽음의 던전에서 이 아이템이 나왔다면, 하다못해 두 번째 죽음의 던전에서라도 나왔더라면!

벱티스는 물 속성 조합을 버리고 언데드 조합으로 갈아탔을 것이다. 그래.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죽음의 왕관에는 그만한 가치가 충분하니까.

하지만 이미 모든 게 늦었다. 10레벨을 달성한 시점에서 조합을 갈아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벱티스는 자신을 활활 불태우며 이상현을 비웃었다.

“안 됐구나, 이상현!!”

여전히 순위를 높일 가능성이 남아있지만, 아집에 사로잡힌 벱티스는 그 가능성을 보지 못했다.

벱티스는 이상현과 함께 죽을 작정으로 자신에게는 필요도 없는 죽음의 왕관을 선택했다.

“네놈도 나처럼 곧 죽을 것이다!!”

삐뚤어진 마음은 실패에서 비롯된 악의이자.

광기의 산물이었다.

[흑사병]

↳사령술사 전용 아이템. 전투 시작과 동시에 모든 적 챔피언에게 1~4배에 달하는 독 피해를 입힌다. 1%의 확률로 최대체력의 99%를 감소시킨다.

내가 획득한 아이템은 흑사병이다. 죽음의 왕관보다는 못하지만, 상당히 좋은 아이템으로 시작부터 적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죽은 자의 손톱 4개 중 2개를 복제하고, 흑사병을 복제한다면, 최소 880에서 최대 3520의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최대 3520의 피해! 어지간한 챔피언들은 한 방에 보낼 수 있는 데미지다. 그래서 흑사병은 죽음의 왕관보다 더 실용적인 아이템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새삼스럽지만 이번 판은 뭔가 되는 판이다.

보통은 이렇게까지 아이템이 쫙쫙 붙지는 않는데. 견제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 쉽다.

쉬워서 재미없다고 말해야 할 만큼 쉽다.

물론 방심하면 안 된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사람 인생이고.

STFT라는 게임이니까.

그러니 마지막까지 철두철미하게.

이겨야 한다.

[배신의 전장으로 돌아갑니다.]

언데드 조합을 선택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템이다. 아이템을 따라가야 한다는 말도, 아이템의 유무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첫 시작과 동시에 죽은 자의 손톱을 손에 넣었지만, 까놓고 말해서 그것만 가지고는 절대 우승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상현은 죽음의 방이라는 승부수를 던졌고, 그 승부수가 통하지 않으면 전사 조합으로 갈아탈 생각이었다.

암살자들의 부상으로 궁수 조합이 줄어든 이 시점에서는 전사 조합이 괜찮기 때문이다.

물론 갈아타는 만큼 리스크를 감수해야겠지만, 언데드 조합을 밀고 나가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승부수는 통했다. 첫 번째 죽음의 방에서 나온 아이템들은 언데드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아이템이었다.

그러나 날개가 달렸다고 해서 만족한다면.

언데드 조합을 할 이유가 없다.

날개를 달았으면 제트 엔진을 달 차례.

이상현은 고의적인 패배로 순위를 낮추었고, 그 낮춘 순위를 바탕으로 아이템들을 획득했다.

언데드 조합에게 꼭 필요한 아이템을, 3차 예선전 2라운드 첫 번째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리고 지금.

우승 경쟁자 중 한 명인 크로노스를 상대로 그 힘이 발휘되고 있었다.

“······.”

사령술사의 손에서 피어오른 시커먼 연기가 우글거리는 파리떼와 뒤엉켜 날아간다.

연기는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웠다. 숨을 들이쉬면 코와 폐가 썩을 것만 같았다.

어디 그것뿐인가? 눈은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질 것만 같았고, 살가죽은 푸르죽죽하게 변해서 떨어질 것만 같았다.

“크르르···!!”

짐승들은 서서히 다가오는 흑사병을 향해서 이를 악물었다. 왜냐하면 도망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흑사병이 짐승들을 덮쳤다. 어둠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바람에 꺼지는 촛불처럼 한순간이었다.

그러나 고통은 영원한 상처처럼 남아 짐승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선사해주었다.

짐승들은 끔찍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크르아악?!!”

고통은 짐승들을 분노케 했다. 살기로 물든 눈동자는 한 방울의 피처럼 붉었다.

이윽고 짐승들이 뛰쳐나갔다. 날카로운 어금니와 단단한 발톱이 바라는 것은 피의 복수였다.

“그워···어···어.”

짐승들의 앞에는 세 마리의 좀비가 서 있었다. 그리고 덜그럭덜걱! 해골전사 두 명이 녹슨 칼을 아래로 늘어뜨리며 흉흉한 안광을 빛내고 있었다.

흠칫!

짐승들은 그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에 정체 모를 공포를 느꼈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었다. 당한 만큼 갚아주는 것이 야생의 법칙이었기에 더더욱 기를 쓰고 달려들었다.

콰직!!

그렇게 전투가 시작되었다.

크로노스는 짐승들을 새까맣게 물들이는 흑사병보다는 하이에나들에게 더 당황했다.

“···하이에나가 넷이라고?”

2골드·5성의 하이에나가 둘도 아니고 무려 넷이다. 아무리 하이에나가 약한 챔피언이라고 해도 5성이면 동급의 1골드 챔피언 정도는 압살한다.

그런 하이에나가 넷이라니. 크로노스는 진심으로 어처구니가 없어서 작은 희망조차도 품지 못했다.

“···미친.”

패배는 너무나도 분명했다.

STFT에 완벽한 챔피언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드시 약점이 존재하며, 그 약점을 파고들면 의외로 허무하게 무너진다.

맹독이라는, 880의 독 피해를 입히는 좀비들이 상대한 적은 히드라였다.

짐승 조합에 있어 최고이자 최강의 챔피언!

히드라의 스킬은 좀비들의 맹독을 카운터치는 면이 있었다.

“크롸아아아!!”

체력이 40% 이하로 내려갔을 때, 9초 동안 무적이 되는 불사의 힘은 좀비들의 맹독을 무효화시켰다.

9초는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모든 조합 중에서 공격속도가 제일 빠른 짐승 조합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9초는 굉장히 긴 시간이었다.

콰득! 콰드드득!! 콰득!

히드라는 9초 동안에 좀비 두 마리를 물어뜯었다. 나머지 한 마리도 정상은 아니었다. 언제 머리가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워···어···!!”

9초가 지난 다음에서야 맹독이 히드라의 육체를 거무죽죽하게 물들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히드라의 머리 중 하나가 좀비의 머리를 꿀꺽! 한입에 먹어치웠다.

털썩. 머리를 잃은 좀비는 언데드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허무하게 쓰러졌다.

“크라아아앗!!”

좀비들을 모두 쓰러뜨린 히드라가 포효했다. 하지만 그 포효에 함께하는 짐승들이 없었다.

단 한 마리의 짐승들도 포효하지 않았다.

“?!!”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아차린 히드라의 머리들이 사방을 살펴보았고, 언데드들에게 포위되었음을 깨달았다.

“크, 라···아아앗!!”

하이에나들은 쓸데없이 열심히 싸운 히드라를 비웃었다. 녀석들의 목에는 황금이 가득했다.

“오, 맙소사! 이런 멍청이가 있다니!”

“그냥 편히 죽으면 될 것을!”

“지금이라도 잘 가라고!”

“걱정하지 마! 네 재산은 우리가 잘 써줄 테니까!”

짤랑짤랑.

황금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사나운 짐승 사냥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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