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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장 마(魔)의 출도(出道) (31/54)

 28장  마(魔)의 출도(出道)

'아니?'

백천강은 흠칫 놀랐다.

화려하게 꾸며진 침실이었다. 그는 칠층에서 내려온 직후 석무심의 얼굴로 변신했다. 그리고는 모백화의 침실로 들어섰다. 

"......!"

백천강은 굳어진 듯이 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다. 그리고는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말았다.

침상 위에는 뜻밖에도 두 여인이 나란히 누워 있었다.

"이럴 리가?"

백천강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는 다시 한 번 침상 위를 바라보았다. 

'틀림없다.'

백천강은 내심 경악했다. 하지만 그는 도무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침상 위에 있는 두 사람은 분명 옥운생과 모백화였다. 그들은 다정한 부부인 양 서로를 꼭 끌어안고 엉켜 있었다. 후끈한 열기가 두 사람 사이를 흐르고 있었다.

"흐응... 아음!"

옥운생과 모백화는 열기띈 신음을 발하며 엉키고 들었다. 그들은 석무심으로 되돌아간 백천강이 들어온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한순간 석무심이 중얼거렸다.

'옥운생이 여인이 아닌 사내였단 말인가?'

석무심은 지금까지 옥운생이 여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침상 위에서 분명 옥운생은 모백화와 운우(雲雨)를 나누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분명 옥운생이 사내라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석무심의 예상은 완전히 틀린 셈이었다. 그는 여인들끼리 운우를 나누는 방법이 있는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

백천강의 눈이 문득 차갑게 빛났다. 그는 성큼성큼 침상으로 다가갔다.

휙!

그는 거침없이 금침자락을 걷어 버렸다. 그때였다. 느닷없이 모백화가 알몸으로 벌떡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

그녀는 금침을 걷어버린 자가 석무심이라는 것을 알고는 곧바로 교소를 터뜨리는 것이었다. 

"호호홋!"

웃음 때문에 그녀의 젖무덤이 출렁거렸다. 터질 듯이 풍만한 젖무덤이었다. 

모백화는 웃음을 쉽사리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웃음과 함께 현란한 몸을 흔들며 석무심을 지나쳤다. 석무심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는 뜻밖에도 묘한 여운이 어려 있었다. 

마침내 모백화는 밖으로 나갔다.

석무심은 눈살을 잔뜩 찌푸리며 침상을 내려 보았다. 옥운생은 그때까지 전라로 온몸을 비비 꼬고 있었다. 석무심의 눈이 서서히 옥운생의 나신을 더듬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

석무심은 자신의 예측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옥운생. 그는 석무심의 예측대로 여인이었던 것이다. 

그의 가슴에는 복숭아같은 육봉이 터질 듯이 부풀어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살짝 벌어져 있는 두 다리 사이의 삼각지역에는 의당 있어야 할 물건이 없었다. 오로지 울창한 삼림이 뒤덮고 있을 뿐이었다. 

옥운생은 의심할 여지없는 여인이었다. 

그것도 보통의 여인이 아니었다. 그녀의 육체는 빙기옥골지신(氷 玉骨之身)이었다. 그야말로 십전십미(十全十美)의 완전무결한 육체를 갖고 있는 것이었다.

능히 천하제일미란 찬사를 받아도 당연할 미모였다. 

공야운리가 독가시를 품은 장미라면 옥운생은 구중심처 화원에서 자란 부용(芙蓉)만 같았다.

바로 그때였다.

"아아... 음!"

옥운생의 입술 사이로 열에 들뜬 신음성이 토해져 나왔다. 석무심은 급히 옥운생의 얼굴로 시선을 주었다. 

어느새 옥운생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것 뿐이 아니었다. 그녀의 전신은 땀투성이었다. 

"아... 흐으흑!"

그녀는 연신 신음을 발하는 것이었다. 두 손으로 괴로운 듯 자신의 터질 듯한 꽃봉오리를 움켜쥔 채.

그것은 분명 주체할 수 없는 욕정에 몸부림치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참을 수 없는 듯 허우적거렸다. 그러다 문득 눈을 떴다. 

"아... 석... 석랑! 어서... 소녀를... 아아흑!"

그녀는 넋이라도 빼앗긴 것처럼 벌떡 일어서는 것이었다. 이어 그녀는 석무심의 목에 매달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곧 옥운생은 침상 위로 나가 떨어지고 말았다.

쿵!

석무심은 매정하게 옥운생을 뿌리친 것이다. 옥운생은 침상에 쓰러진 채 달뜬 흐느낌을 발했다.

"흐으윽...석랑... 저를... 소녀를 제발......."

그러나 석무심의 눈빛은 차디찼다. 

그는 감정이라고는 한 올만큼이라도 섞이지 않은 눈으로 욕정에 몸부림치는 옥운생을 내려다 보았다. 이제 옥운생의 얼굴은 붉다 못해 자줏빛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제발... 흐으윽... 석랑... 흐으으흑!"

옥운생은 애원했다. 그 순간 그녀의 혈관은 팽창될 대로 팽창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석무심은 매정했다. 그는 일말의 동정심도 없이 등을 돌렸다.

"......!"

그 순간 옥운생의 얼굴에 짙은 절망의 그림자가 스쳤다. 바로 그때였다. 문득 석무심의 입에서 무심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자업자득이다. 네가 애당초 남장을 하고 나를 따라 다닌 것이 불찰이다."

그는 차디차게 말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흐으윽!"

그 광경에 옥운생은 숨이 넘어갈 듯 했다. 

이제 그녀는 전신을 바들바들 떨었다. 이미 침상보는 괴로움으로 몸부림치는 그녀의 손톱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다.

석무심은 옥운생이 죽어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침내 석무심은 문 앞에 이르렀다. 그는 문고리를 잡았다.

바로 그때였다. 그의 귓전에 요기어린 웃음이 들려왔다.

"호호호호... 사형, 정말 냉혹하군요? 옥운생은 음양궁 비전의 음양환극산(陰陽歡極散)에 중독되었어요. 만일 음기를 풀어주지 않으면 일각도 못되어 혈맥이 터져 죽을 걸요?"

"......!"

석무심의 눈썹이 푸르르 떨렸다. 그 음성은 바로 공야운리의 음성이었던 것이다.

"무엇 때문이냐?"

그의 음성은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호호호! 소매는 사형에게 여인이 많이 따를 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이유는 그뿐이에요. 호호호홋!"

공야운리의 웃음에는 증오가 어려 있었다.

"계... 속 이런 식으로 나를 괴롭힐 셈인가?"

"호홋! 그건 오직 사형의 마음에 달려 있어요. 호홋... 우선 옥운생을 구하는 것이 급선무가 아닐까요? 이제는 해독약도 소용없어요. 오직 사형만이 그녀를 구할 수 있어요."

석무심의 눈에서 증오의 불길이 쏟아져 나왔다.

"내가 꼭 그를 구할 이유가 있다고 보느냐?"

"호호! 아무래도 좋아요. 그러나 굳이 옥운생을 죽일 이유도 없을 텐데요?"

으드득!

찰나지간 석무심은 이를 갈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언젠가... 백 배, 천 배로 네게 갚아주마!"

"호호홋... 두렵지 않아요. 잊지 마세요. 사형은 심인고에 중독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독한 계집!"

석무심은 이를 갈며 소리쳤다. 그러나 공야운리는지지 않았다. 

"지독한 것은 사형이에요!"

마침내 석무심은 돌아섰다. 

스스......

석무심의 발밑에서 먼지가 일었다. 그것은 그의 발자국이 다섯 치나 깊숙이 찍히면서 일어나는 먼지였다. 그로 미루어 그가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알만한 일이었다.

"호호홋... 옥운생은 흔치 않은 미녀에요. 사형께 절대 손해도 없을 거예요. 호호호홋!"

요사스런 웃음소리는 점점 멀어졌다. 

석무심은 혼절 직전에 있는 옥운생 앞에 섰다. 이어 그는 묵묵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는 우람한 신체를 드러냈다. 그때였다. 

"아아... 석랑!"

옥운생이 타버릴 듯한 육체를 던졌다. 석무심은 그녀를 굳세게 안았다.

"아... 흑!"

옥운생은 그의 품에서 자지러질 듯한 신음을 발했다. 

석무심은 그녀를 안고 쓰러졌다. 이어 그는 발정난 암컷같은 옥운생의 완미한 육체 속에서 일어나는 뜨거운 불길을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쉽사리 잡히는 불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불길은 석무심의 육체까지를 태우려 들었다.

"아아... 흐으윽!"

옥운생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신음소리가 침실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흐으윽!"

노도가 되어 여인의 옥체를 짓이기는 사내. 

그는 성난 파도가 되어 모래성같은 여인의 육체를 허물어 뜨렸다. 그러면서 그는 내심 부르짖었다.

천강아......

여인...... 색...... 

그토록 네가 증오하던 것이 아니었더냐......

왜? 무엇 때문에 이 여인의 불길에 휘감겨야 하는가......

내버려 두면 여인의 불은 저절로 꺼질 것이고...... 

너는 떠나면 그뿐인 것을......

그러나 무엇이 너를 붙잡았느냐......

대체 무엇이......

이 뜨거움과... 쾌락과... 환희마저도 너의 미움이 아니었더냐......

천강아... 오오... 천강아......

백천강은 옷을 입었다. 

옥운생은 혼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녀의 젖가슴에는 역력히 백천강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 

그는 한동안 잠든 여인의 얼굴을 내려다 보았다.

스윽!

어느 순간 백천강은 손을 뻗었다. 그는 땀에 젖은 옥운생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운생... 정말 너의 이름처럼 구름 속의 꿈이었다고 생각해라."

백천강의 중얼거림은 낮았다. 

"서... 석형님!"

그의 목소리를 듣기라도 했던 것일까? 옥운생은 문득 돌아눕는 것이었다. 이어 그녀는 백천강의 팔을 잡아 끌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꽃봉오리에 갖다 대었다.

"처음부터... 형님이 좋았어요... 으음......."

잠꼬대였다. 옥운생은 혼몽 중에 잠꼬대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백천강은 잠시 후 다시 중얼거렸다.

"운생, 꿈이라고 생각해라. 후후... 석무심이 좋았다고? 그런 사람은 없다. 그런 사람은 앞으로도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손을 뺐다. 이어 금침자락을 끌어당겨 그녀의 벗은 몸을 덮어 주었다.

"나는 사풍객이다. 뿐만 아니라 혈륜궁의 궁주다. 너는... 나를 잊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지."

백천강은 몸을 일으켰다. 

그는 탁자를 향해 걸어갔다. 탁자 위에는 보자기로 싼 검이 있었다. 그것을 집어 든 백천강은 잠시 옥운생을 바라보았다. 아주 짧은 순간 백천강의 얼굴에 따스한 기운이 어렸다.

"이 검을...네게 주마."

그는 검을 잠든 옥운생의 머리맡에 놓았다. 그리고 백천강은 재빨리 침실을 떠났다.

석양이 불타올랐다. 

금릉의 외곽을 흐르는 강물은 노을빛으로 온통 붉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붉은 화리( 鯉)의 비늘처럼 반짝였다.

한 섬세한 인영이 불타오르는 강가에서 비틀거렸다.

"아아... 그 분이... 그 분이 떠나셨다. 내 곁에서!"

목소리의 주인은 여인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석양을 받은 인영은 남자의 모습이었다. 그는 유삼을 입은 미서생이었다. 

그는 바로 옥운생이었다. 그의 초롱한 두 눈망울에 석양이 담겨졌다. 하지만 그 석양은 이내 흐려지는 것이었다. 눈물이 동공에 가득 고였기 때문이었다.

"아아... 이십 년 동안 고이 가꾸어온 순결을... 그 분께 바친 것은 아깝지 않으나... 그 분이 떠나셨다니... 내게 이것만을 남긴 채 그냥 떠나셨다니......!"

옥운생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넋두리였다. 만리장성을 쌓은 끝에 사랑하는 님을 잃은 여인의 애틋한 넋두리였던 것이다.

옥운생은 품고 있는 긴 보자기를 내려 보았다. 그것을 보는 순간 또다시 석무심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난화소영루.......'

그녀는 내심 중얼거리며 얼굴을 붉혔다. 석무심과의 뜨겁고 광폭했던 순간들이 생생하게 뇌리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울 래야 지울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욕정에 정신을 잃었는지 몰랐다. 단지 술탓이라고만 여겼다.

그러나 석무심과의 뜨거웠던 순간들은 정녕 잊을 수 없었다. 여인에게 있어서 첫 남자는 평생을 간다는 말은 진리였다.

하지만 그 사랑은 두 번 다시 이룰 수 없는 사랑이었다. 그가 떠났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검 한 자루만을 남긴 채 아무런 언약조차 없이.

"찾아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분을 찾아야 해......!"

옥운생은 부르짖듯 말하며 급히 보자기를 끌렀다. 보자기 속에는 한 자루의 검이 들어 있었다.

"앗! 이... 이것은?"

옥운생은 검을 보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석양을 받아 붉게 물들었던 그녀의 얼굴이 한 순간 새하얗게 변했다.

"처... 천추신검!"

그녀는 경악성을 토해냈다. 

부르르......!

그녀의 몸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리기 시작했다.

보자기 속에서 나온 것은 바로 사유성이 사용했던 천추신검이었다. 

그것은 대원수 사광천 가문의 보검(寶劍)이기도 했다. 

비록 검집이 없는 검에 불과했으나 옥운생은 한눈에 그것을 알아본 것이다. 

"천추신검을 그 분이 가지고 계셨다니......!"

경악과 두려움, 의혹과 불안이 그녀의 눈 속에 시시각각 떠올랐다.

"그... 그렇다면 그가... 바로 신주제일룡에게 죽었다던 사......."

그녀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두려움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 상처......!"

이제서야 확연히 짚히는 것이 있었다. 문득 그녀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이어 그녀는 중얼거렸다.

"우... 운명이 나를 시험하는 것이라면 달게 받으리라... 이제부터 너는... 무림일비......."

바로 그때였다. 

스슷.......

느닷없이 옥운생의 신형은 황혼 속으로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것은 실로 경이로운 신법이었다.

혈륜전(血輪殿)이었다.

대혈륜궁의 중심부인 혈륜전의 태사의. 

혈의를 입은 한 청년이 앉아 있었다. 그는 바로 대혈륜궁의 궁주인 혈륜공자 백천강이었다.

"......."

백천강의 눈에는 푸르스름한 사기가 감돌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 그것은 매우 비정한 눈빛이었다. 그는 그 눈빛으로 대전 앞을 둘러 보았다. 그는 이 개월만에 혈륜궁으로 돌아온 것이다. 

어느덧 유월이었다. 

백천강이 떠나 있던 이 개월 동안 대혈륜궁은 엄청나게 변해 있었다. 

혈륜육신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인해 마침내 대혈륜궁은 고금제일의 집마궁(集魔宮)의 위용을 갖춘 것이었다.

삼산오악과 사해팔황의 심산유곡에 숨어 있던 마도의 고수들이 대혈륜궁에 집결해 있었다. 물론 거기에는 음양궁주 공야운리의 숨은 힘이 반 이상 작용하기도 했다.

어쨌든 이제 대혈륜궁은 명실상부한 마도의 대궁이었다.

"......."

백천강은 청광이 감도는 눈으로 중인들을 둘러 보았다.

백여 명에 달하는 인물들이 백천강을 향해 일제히 부복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한결같이 음독하면서 음침했다. 

그들은 바로 전설적인 거마들이었다. 

대부분이 일백 세가 넘은 노마(老魔)들로서, 대마성이 붕괴된 후 심산유곡에 깊이 숨어살다가 혈륜궁의 등장과 함께 다시 모습을 드러낸 마도의 종주들이었다.

또한 그들은 대마성 이전의 천여 년 간 마도지맥(魔道之脈)을 이어 내려온 마도제문파(魔道之門派)의 지존들이기도 했다. 그들은 다음과 같았다.

일부(一府).

천마부(天魔府).

삼전(三殿).

축융전(祝融殿), 빙백전(氷魄殿), 유령전(幽靈殿).

오문(五門).

무영투도문(無影偸賭門), 일월신복문(日月神卜門), 사월비마문(四月飛魔門), 요화문(妖花門), 사해문(四海門).

팔곡(八谷).

백골곡(白骨谷), 만수곡(萬獸谷), 천독곡(千毒谷), 불귀곡(不歸谷), 천화곡(天火谷), 백화곡(百花谷), 천왜곡(天倭谷), 사자곡(獅子谷).

일부삼전오문팔곡(一府三殿五門八谷)은 전통적인 마도문파들이었다. 그들은 과거 대마성이 천하를 피로 씻을 때 앞장섰던 가공할 마병들이었다.

특히 일부인 천마부는 전설적인 마교의 후신으로써 대마성이 나타나기까지는 중원 마도의 으뜸세력이었다. 천마부는 가공할 마공비기(魔功秘技)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종 마법과 사술(邪術) 등에도 능했다.

삼전은 제각각의 특색을 가지고 있었다.

축융전은 운남(雲南)에 위치했으며 각종 화공과 열양신공(熱陽神功)의 문파였다. 빙백전은 북해(北海)의 문파로써 축융전과 반대로 빙음진기(氷陰眞氣), 한빙마공(寒氷魔功)의 종주였다.

유령전은 사백 년전 유령인마(幽靈人魔)가 세운 마도문파로써 유령귀허환영비를 비롯한 경공의 종주였다.

그밖에 오문은 전통적인 하오문(下午門)의 맥을 잇는 문파들이었다.

즉, 신투(神偸), 도박(賭博) 등을 투기로 하는 무영투도문과 점장이, 사기꾼들로 이루어진 일월신복문(日月神卜門), 살수(殺手), 도부(屠夫)들로 형성된 사월비마문, 기녀, 윤락녀, 파계 비구니들로 구성된 요화문, 어부들로 이루어진 사해문 등이 그들이었다. 

이들 오문(五門)은 실상 강호의 뿌리에까지 밀착된 마도의 근본이랄 수 있었다. 

그들은 나름대로의 법을 가지고 있었고 그 고유법을 천 수백 년 간 지켜왔다. 그들의 무공은 비록 극상이랄 수는 없다 해도 무림의 기법을 흔들기에는 충분한 조직과 근성을 가지고 있었다.

팔곡(八谷)은 강호활동을 거의 금하고 있는 문파들이었다. 

그들은 대마성이 마도천하를 이룰 적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은 중원 전역에 퍼져 있으며 고집이 무척 강한 자들이었다. 팔곡을 끌어낸 것은 바로 음양궁(陰陽宮)의 힘이었다.

그 외에도 지옥사신(地獄四神), 혈천육악(血天六惡), 무림삼광(武林三狂) 등의 공포스런 이름을 가진 마도의 대마들이 백천강을 향해 일제히 부복하고 있었다.

어째서 그들이 이제 서른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혈륜공자 백천강의 발아래 복명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오직 한 가지를 예측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바로 혈륜궁이 대마성과 기환궁의 후신이라는 사실에 기인한 것일 뿐이었다.

아무튼, 그들은 대혈륜궁의 집마령(集魔令)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일제히 은거지를 박차고 달려온 것이다. 

"......."

백천강의 눈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더욱 짙어졌다.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부복한 군웅들을 훑어보았다. 

잠시 후 백천강은 입을 열었다. 으스스한 음성이 창백한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그대들은 고금제일이자 영세제일궁인 대혈륜궁에 입궁하였다. 앞으로 천하는 오직 대혈륜궁 하나만이 존재할 것이다. 결국 그대들의 판단이 옳았음이 증명될 것이다."

"......!"

백천강의 말은 마도인들의 가슴을 흥분으로 들끓게 했다. 그는 계속했다.

"대혈륜궁은 혈륜천하(血輪天下)를 대명제로 할 것이다! 모든 준비는 완비되었다. 남은 것은 오직 중원의 퇴락한 문파들을 쓸어버리는 것뿐이다!"

백천강의 말이 끝났다.

"혈륜천하천천세!"

"마도영세(魔道永世)!"

마도인들은 일제히 두 손을 쳐들며 함성을 터뜨렸다. 

모든 것은 완비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강호백파(江湖白派)를 궤멸시키는 일뿐이었다.

백천강은 마도인들을 대혈륜궁의 요소요소에 배치시켰다. 그는 혈륜전의 모든 일을 혈륜육신과 천마부(天魔府)에 위임했다. 

십이장(十二場)은 마도제파들의 연무장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삼십육원(三十六院)은 삼전, 즉 축융전과 빙백전, 유령전이 관장하도록 했다. 

칠십이각(七十二閣)의 각주(閣主)는 오문팔곡의 지존들과 마도고수들로 지위를 나누었다. 그밖에 수많은 마도인명부 속의 인물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그에 따르는 세부적인 계획은 천마부(天魔府)의 부주인 혼세천마(混世天魔) 위지경(尉遲經)이 도맡았다.

혼세천마 위지경은 과거 대마성의 부성주(副城主)였던 대효웅이었다. 그는 혈륜궁의 총호법(總護法)을 맡았다. 동시에 백천강이 없을 때 혈륜궁주의 전권을 대행하는 중임을 맡기도 했다.

바야흐로 혈륜천하를 이루기 위한 거대한 피의 수레바퀴(血輪)는 구르기 시작했다. 혈륜궁의 백여 명 마도고수들은 열기 띈 대화와 숙의를 계속했다.

밀실.

백천강은 한 명의 금포노인(錦袍老人)과 마주 앉아 있었다. 금포노인은 약 칠순쯤 되어 보였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의 백발과 백염이 다시 검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얼굴의 주름살도 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노인의 얼굴은 사순의 중년인같은 모습이었다. 반노환동(返老還童)의 경지에 접어든 것이 분명했다. 

금포노인은 양미간에 자줏빛의 점이 하나 찍혀 있었다. 그의 눈빛은 물처럼 담담했다. 그는 바로 혼세천마 위지경이었다.

백천강은 무심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수고하셨소. 위지 총호법."

"당연한 일이었소이다. 궁주."

위지경은 겸허하게 말했다. 

그의 음성은 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이하게도 가슴 깊숙이 파고 드는 힘이 있었다. 그것은 그의 목소리에 일종의 마력(魔力)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백천강은 앞에 놓인 찻잔을 들었다. 그가 지금 마시고 있는 것은 기차(奇茶) 중의 기차에 속하는 송종차(宋種茶)였다. 

백천강은 차를 한 모금 음미했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총호법을 얻음으로써 대혈륜궁은 다섯 배로 강해졌소이다."

위지경은 고개를 조금 숙이며 말했다.

"과찬의 말씀이오이다. 본부는 오직... 혈륜궁에 신명을 다할 뿐이오."

그때였다. 백천강은 문득 입가에 괴이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괴소를 거두지도 않고 위지경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후후.... 그 말을 믿어도 되겠소?"

"......?"

위지경의 물처럼 고요한 눈이 굴렀다.

"단지 그대가 과거 대마성의 부성주였다는 것만으로 본궁에 충성을 바친다는 것이오?"

백천강의 말에 위지경은 엄숙히 말했다.

"공자는 전 대마성주의 제자가 아니시오? 그러기에 노부는 충성을 다할 수밖에 없소이다."

"후후.... 틀렸소."

"......?"

"나는 만마지존 백무웅의 제자가 아니오."

"......?"

"나는 오직 나일 뿐이오."

"......!"

백천강의 말투는 싸늘했다. 찰나적으로 위지경은 다소 안색이 변했다. 그는 뚫어져라 백천강의 시선을 맞받았다. 백천강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본인에게 충성을 다하겠소?"

그 질문은 다소 짖궂은 데가 있었다. 그 순간 위지경은 유쾌하게 웃었다.

"허허헛! 공자께서는 마도제일인이시오, 노부 역시 마도인으로써 공자를 따르는 것이 당연하오이다."

"후훗! 그렇소?"

백천강은 비웃음을 흘렸다. 그는 위지경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덧붙였다.

"하지만 웬지 그대를 보면 우리가 서로 동상이몽(同相異夢)을 꾸고 있다는 느낌이 드오."

"그럴 리가......?"

위지경의 얼굴이 약간 어색해졌다. 별안간 백천강은 다시 차갑게 물었다.

"위지 총호법, 나를 끝까지 따르는 이유는 내가 강하기 때문이오?"

"그... 그 점도 있소이다."

"후훗... 내가 위지 총호법보다 강하다고 알고 있소?"

"다... 당연하오이다."

"어째서 그렇게 믿소?"

"그... 그건... 과거 대마성주의 진전을 얻은 이상......."

"후훗... 내공은 어떻다고 보시오?"

"......?"

백천강의 질문은 계속되었다. 위지경은 마침내 입을 다물고 말았다. 백천강의 의도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백천강은 느닷없이 허공을 향해 손가락 두 개를 뻗었다.

슉!

파공성이 들리는 순간이었다. 

백천강의 손가락 안으로 붉은 야명주 한 알이 쾌속하게 날아 들었다. 그것은 천장에 박혀 있던 일곱 알 중 한 알이었다.

"위지 총호법은 이 야명주를 가루로 만들 수 있소?"

백천강은 손가락 사이의 야명주를 내밀며 말했다. 

"......!"

위지경의 담담한 눈이 흔들렸다.

"후훗... 내 보기에 위지 총호법의 내공은 이미 사 갑자(四甲子)가 넘을 것이오. 이런 것쯤은 가볍게 가루로 만들 수 있을 것이오."

"과찬...이시오."

위지경은 겸손히 말했다. 그러나 언뜻 그의 눈에 한 가닥 자부심이 스쳐갔다. 

백천강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야명주를 탁자 위에 놓았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그러나 이 야명주에 머리칼처럼 가는 글씨를 새기기는 좀 힘들 것이오."

위지경의 반쯤 검어진 눈썹이 일순 가늘게 떨렸다.

"그것도 야명주에 손을 대지 않고 지력(指力)만으로 말이오."

"......!"

"더군다나 야명주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아야 하오. 후후훗!"

백천강의 괴소에 위지경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금강석같이 단단하고 매끄러운 야명주에 지력으로 허공을 격하고 머리칼같이 가는 글을 새긴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반듯한 탁상에 세워둔 야명주는 약간의 바람만 불어도 구르는 것이 당연지사였다. 

위지경이 회의에 찬 표정을 지을 때였다.

쓰쓰쓰.......

백천강의 중지 끝에서 거미줄같은 새하얀 백색강기가 쏘아지는 것이 아닌가? 

파파팟!

그 선강은 순식간에 야명주의 표면을 파고 들었다.

"으으... 저... 저럴 수가!"

위지경은 경악성을 토해냈다. 그의 안색은 백랍같이 창백해졌다.

엄청난 위력을 지닌 강기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야명주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미세한 먼지가 흩날렸다. 그 순간 야명주의 매끄러운 표면에는 실같이 가는 글씨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 배신자필잔살(背信者必殘殺).

참으로 잔혹한 내용을 담은 글씨였다. 

위지경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오금이 저리는 것 같은 기분에 정신이 아찔할 지경이었다. 

핑그르르.......

불현듯 현기증이 위지경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물론 그는 대혈륜궁주의 무공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무공이 이 정도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위지경의 안색이 몇 차례나 변했다. 그는 야명주를 보고 또 보았다. 

'설마 했는데... 상상 이상이다. 이 자의 무공이 이 정도까지 인줄은 몰랐다. 예측의 두 배가 넘는다. 이 자는 정말 강자다!'

혼세천마 위지경.

그는 둘째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마도제일인이었다. 과거 만마지존이 나타나 대마성을 세우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마도지주(魔道之主)였다.

'세... 세 번째로 나를 무력케 만든 인물이다.'

위지경은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몸은 격동으로 인해 부르르 떨릴 지경이었다.  

백천강은 몸을 일으켰다. 그는 창을 향해 다가서며 말했다. 

"이것이 나의 내공이오."

백천강은 말을 끝낸 후 뒷짐을 졌다. 그는 한동안 창 밖을 응시하는 것이었다. 

위지경은 백천강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의 등은 마치 거대한 암벽 같았다. 찰나지간 그의 이마로부터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것은 바로 백천강의 등에서 풍기는 싸늘한 한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백천강의 음산한 음성이 위지경의 귀를 파고 들었다.

"이제부터 혈륜이 구를 차례요. 후훗... 중원천하는 대혈륜에 철저히 유린당하리라!"

바로 그 순간이었다. 백천강이 문득 입을 열었다.

"준비하시오! 대혈륜이 첫 번째 목표는 개방이오!"

"개... 개방을!"

위지경은 대경실색했다. 그는 급히 입을 열었다.

"개... 개방은 백만에 가까운 방도를 거느린 무림최대방파이오. 하필이면 왜 가장 힘든 상대를 처... 처음... 아... 아니지! 제... 제일 먼저 친다는 것이오?"

위지경은 다급하게 말했다. 얼마나 다급했는지 말이 헛나올 지경이었다. 

백천강은 차디차게 웃었다.

"후훗! 허(虛)를 찌르라는 것이오. 광명회에서 가장 강한 난적은 소림과 개방이오. 개방은 방대한 조직과 인원을 가지고 있소. 그것은 바로 광명회의 눈과 귀, 다리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오. 개방을 먼저 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오. 광명회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정보를 단절시키기 위해서요."

"하... 하지만... 중원전역에 걸친 조직을 어찌 일시에 괴멸시킨단 말이오?"

"크ㅋ! 뱀은 머리만 자르면 죽소. 개방이 방대하다지만 총타가 무너지면 다시 복구하는데 최소한 일 년은 걸리오. 그 사이... 모든 것은 끝날 것이오."

"오!"

위지경은 마침내 탄성을 발했다.

"혈륜대(血輪隊)를 짜시오. 모두 팔로(八路)로, 각 로마다 일천 명, 각 로의 영수는 삼품(三品)의 고수로 배치시키시오."

"아... 알겠습니다!"

위지경은 무릎을 꿇었다. 그것은 바로 복명의 뜻을 나타내는 행동이었다. 

백천강은 그런 위지경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그는 창가를 떠나 즉시 오른쪽 벽으로 걸어갔다.

으르르릉.......

벽이 좌우로 열렸다. 백천강은 즉시 벽 속으로 몸을 감추는 것이었다.

귀진자 서문량.

그는 긴 사연이 적힌 쪽지를 전서구(傳書鳩)의 발목에 묶었다.

"으음.... 비령이호(秘靈二號)의 말이 사실이라면...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주상께서도 그 정도까지는 미처 예측하지 못하셨을 것이다. 하긴 나 비령이호도 오늘에서야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서문량은 대단히 심각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곧 뒤바뀌었다.

"흐흐.... 그러나 아무리 날고 뛰어도 주상의 손바닥 안이다. 본국은 모든 것을 관장하고 있다. 일단 사태가 전도되면 모든 것은 하루아침에 끝난다. 흐흐!"

귀진자 서문량은 음흉한 웃음을 흘렀다. 이어 그는 손에 든 비둘기를 허공으로 던지듯이 놓아주었다.

"자, 가거라!"

푸드드득......!

잠시 세차게 날개짓을 치던 비둘기가 쏜살같이 어둠 속으로 날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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