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장 개방( )의 혈운(血雲) (32/54)

 29장  개방(  )의 혈운(血雲)

개봉부(開封府).

개봉부는 오랜 옛날부터 그 중요성을 인정받은 도시였다. 개봉부는 유유히 흐르는 황하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드넓은 하남 대평야를 가운데 두고 있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곡물들은 중원 전역으로 운반되어 갔다. 그러자니 자연스럽게 교통이 발달하고 상업이 융성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 어떤 도시보다 사람들이 많은 곳이었다.

그야말로 천태만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개봉부에 살고 있었다. 그들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삶을 영위해 나갔다. 

물론 제일 많은 부류의 사람들은 농공인들이었다. 그 뒤를 이어 관(官)의 녹을 먹는 관리들이 있는가 하면, 상업에 종사하는 상인들이 있었다.

그밖에 강호를 떠도는 낭인들과 무녀들, 점장이, 약장사, 역사(力士) 등 수없이 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개봉부에는 유난히 거지들이 많았다. 개봉부는 그야말로 하늘을 지붕 삼고, 땅을 구들장 삼은 거지들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은 보통 거지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바로 정의와 의리에 죽고 사는 열혈(熱血)의 거지들이었다. 그들은 중원 대강남북 십팔만 리에 퍼져 있는 개방(  )의 거지들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유독 왜 개봉부에 거지들이 많은가? 그것은 바로 개봉부에 개방의 총단(總檀)이 있기 때문이었다.

공자대묘(公子大廟).

개봉부 남서 쪽에 위치한 방대한 공자묘에는 수없이 많은 거지떼들이 득시글거렸다. 

그곳이 바로 당금무림에서 혁혁한 명성을 날리고 있는 구파일방 중 개방의 총단이었기 때문이었다. 총단에 상주하는 거지들의 숫자는 오천에 가까왔다. 

그들은 항상 게으르고 무질서해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와 정반대였다. 개방도들은 엄격한 규율과 일사불란한 지휘계통을 고수하고 있었다.

개방은 천이백 년의 전통을 갖고 있었다. 총단에 출입하는 개방도들은 모두 어깨에 매듭이 있는 띠를 걸쳐야 했다. 당대 개방주는 구결(九訣)의 띠를 매었다. 

그 매듭은 계급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들의 명령체계는 그 어느 문파보다고 엄격했다.

휘이잉... 휭.......

바람이 몹시 불었다. 

찐득거리는 습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이었다. 그 바람으로 미루어 보아 엄청난 태풍이 휘몰아칠 조짐이 역력했다.

칠월이었다. 어느덧 계절은 여름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몹시 무더운 날씨가 보름간이나 계속되고 있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더위에 지쳐 늘어질 대로 늘어져 있었다. 점포에 앉아 기지개를 켜는 상인, 죽통(竹筒)을 무릎에 놓고 조는 점장이, 약을 팔다말고 하품하는 낭중(浪中)의 얼굴에는 짜증과 불쾌감이 역력했다. 

그들은 무더운 더위와 함께 몰려드는 졸음을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하늘에는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휘이... 잉... 휘잉.......

바람은 점점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잠결에 깬 사람들은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마침내 살았다는 듯이 이렇게 중얼거렸다.

"비가 곧 뿌릴 것 같군."

"허허! 하긴 비가 와야 해. 그동안 너무 메말랐어."

"가뭄 때문에 황하 물이 줄었는 걸."

그러나 그들은 몰랐다. 부는 바람과 함께 몰려드는 먹구름이 혈우를 몰고 온다는 것을.

황삼육(黃三六).

그것이 사내의 이름이었다. 그는 개방 제 사십오대 제자였다. 계급상으로는 오결이었다. 

그는 부모가 왜 삼육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는지 몰랐다. 왜냐하면 그의 부모는 그가 어릴 때 죽었기 때문이다. 

그는 천하를 떠돌다가 아홉 살 때 개방에 입문했다. 그 이후 그는 개방을 위해 신명을 다 바쳤다. 그야말로 눈물겹도록 헌신적인 노력을 한 것이었다. 

그 덕분에 그는 오결이란 높은 계급에 오를 수가 있었다.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개방 총단에서 전서구(傳書鳩)를 총관장하는 중책을 맡게 된 것이다. 

비구당주(飛鳩堂主).

그것은 개방 십팔대당(十八大堂)의 하나였다. 그러나 비구당주는 개방 내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직이었다. 

개방의 가장 큰 특징은 정보의 총합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야말로 실핏줄처럼, 중원 곳곳에 퍼져있는 개방도들이 수집하는 정보는 확실성과 신속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 모든 정보는 전서구를 통해 개방의 총타에 전해지고 있었다. 물론 명령의 하달도 마찬가지였다. 

비구당주인 황삼육의 일은 바로 그런 일이었다. 즉 수천 마리의 전서구를 일일이 날려보내고 받는 일을 총괄하는 것이다.

황삼육은 그런 일에 소질이 있었다. 결국 황삼육은 비구당주가 되면서 통비개(通飛 )란 별호를 얻었다. 그는 자신의 새로운 별호에 대단히 만족했다.

"......?"

황삼육은 잔뜩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철책(鐵柵) 안을 바라보았다.

철책은 수천 마리의 비둘기를 기르는 새우리였다. 그런데 그 철책 속은 거의 텅 비어 있었다.

"대체...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날려보낸 비둘기가 한 마리도 돌아오지 않으니... 또 각 분타에서는 벌써 십일 간이나 연락이 끊어졌으니... 대체 이게......."

황삼육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것은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열흘 전부터였다. 열흘 전 매일 백 마리 이상씩 날아들던 전서구가 딱 끊어진 것이다. 

다급해진 황삼육은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또 다른 전서구를 날려보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날려보낸 전서구조차 돌아오지 않았다. 

황삼육은 이제 사십오 세였다. 그는 삼십육 년 동안 개방에 몸담고 있었다. 그동안 이런 일은 단 한차례도 없었다.

"이제껏 처음 있는 일이다."

황삼육은 이 변괴를 중대하게 생각했다. 그는 결코 책임을 소홀히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황삼육은 벌써 열 아홉 차례나 상급자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그의 상급자는 육결의 계급을 가진 풍류신개(風流神 ) 채화봉(蔡華峯)이었다. 채화봉은 개방의 팔대단주 중 의전단(儀典壇)의 단주였다. 

황삼육은 채화봉에게 다시 한 번 보고서를 올렸다. 그런데 여전히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제기랄! 왜 의전단에서는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는단 말인가?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계속 술타령만 하고 있단 말인가?"

황삼육은 의전단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의전단에 불만을 가진 자는 황삼육뿐만이 아니었다. 개방의 대부분의 하급 방도들은 의전단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의전단은 개방의 지객(知客) 담당과 각종 행사를 맡는 곳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누더기를 입지 않고 깨끗한 옷을 입었다. 뿐만 아니라 의전단은 매우 깨끗하고 화려하기까지 했다.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의전단에는 미색이 뛰어난 여제자들도 많았다. 

그것은 의전단의 업무상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해서 의전단은 부러움 반, 질시 반의 감정을 사고 있었다.

푸드드득.......

황삼육은 마지막 남은 한 마리의 비둘기를 잡았다. 이어 그는 발목에 대롱을 묶었다.

"이 놈이 마지막이다. 젠장... 이젠 비구당도 할 일이 없어졌군."

휘익!

황삼육은 전서구를 하늘 높이 날렸다.

그는 웬지 불안한 듯한 시선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몰려드는 먹구름을 올려다 보던 황삼육은 시선을 내리며 중얼거렸다.

"젠장! 방주께서도 그 놈의 광명회에만 신경을 쓰느라 총단을 비워놓으니 총단 내부가 말씀이 아니란 말야."

황삼육은 투덜거렸다.

"설마 무슨 일이야 있으랴마는... 전서구가 두절된 것은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일이다. 내가 직접 의전단주를 만나봐야겠다."

황삼육은 마침내 직접 보고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즉시 몸을 날렸다.

"흐응... 흐으윽."

숨가쁜 신음과 교성이 방 안을 가득 채우며 흘렀다. 

방 안은 그다지 화려하지는 않았다. 단지 오밀조밀한 소품이 그런대로 방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었다.

그곳은 의전단주의 처소였다. 처소의 내실.

휘장이 반쯤 걷혀진 침상 위에 남녀 한 쌍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알몸이었다. 남자는 사순쯤 되어보이는 중년인이었다. 그의 얼굴은 제법 청수했다. 

알몸의 여인은 뜻밖에도 흑녀(黑女)였다. 그녀는 머리카락뿐만이 아니라 신체 전부가 검었다. 그러나 몸매는 대단히 빼어난 여인이었다. 

중년인은 미태가 잘잘 흐르는 흑녀의 가랑이 사이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유희에 몰두하고 있었다.

"허억... 헉... 팔선개(八仙 )... 너희들 언제 이런 기술을 허억... 배... 배웠느냐?"

중년인 밑에 깔려 있던 흑녀가 두 다리를 번쩍 들었다. 이어 흑녀는 검은 다리로 중년인의 허리를 바짝 조이며 말했다.

"흐응. 의전단주님. 평소 우리 팔선개는... 단주님을 사모... 흐윽... 이렇게... 벌써부터 즐기고 싶었어요. 흐으응."

중년인은 바로 의전단주인 풍류신개 채화봉이었다. 흑녀는 의전단 소속의 팔선개였다. 그녀는 새외의 귀빈을 모시는 일을 맡고 있었다. 

원래 그녀는 색목국의 여인이었다. 색목국의 여인이 어떻게 개방의 의전단에 소속되어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 시각.

풍류신개 채화봉의 침소 밖에서는 뜻밖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곳은 바로 의전단주 채화봉의 집무실이었다. 의전단주의 탁상은 자단목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뜻밖에도 다섯 명의 여인이 탁상 위를 뒤지고 있었다. 여인들은 탁상 위에 수북히 쌓인 각종 서류와 문서 따위를 일일이 살펴보고 있었다. 

그것은 휘장 안의 낯 뜨거운 정사와는 너무도 대조적인 풍경이었다.

"진작 너희들과... 헉헉... 즐겼어야 했는데... 방내의 일이 바빠......."

"흐으윽... 방내 사무는 이제부터... 저희 팔선개가 맡아... 처리할테니... 흐윽... 단주님은 신경쓰지 않아도 되옵니다. 흐으윽."

침상 위의 남녀는 절정을 치닫고 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느닷없이 밖에서 노성이 들려왔다.

"비켜라! 채단주님을 만나야겠다!"

그것은 바로 비구당주 황삼육의 음성이었다. 그러자 여인의 만류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왜이러세요? 보고서를 올리면 될 것을."

"닥쳐라! 벌써 스무 번씩이나 문서를 올렸다. 그런데도 대답을 듣지 못했다! 오늘은 기어이 직접 단주를 만나야겠다!"

황삼육의 노성은 흥분되어 있었다. 그때였다.

"......!"

채화봉은 마지막 절정에 이르기 직전에 그의 음성을 듣고 말았다. 그는 흠칫했다. 이어 그는 고개를 들고 물었다. 

"황당주가... 무슨 일로 스무 번씩이나 상서를 했더냐?"

그 순간 흑녀는 팔을 뻗었다. 그녀는 채화봉의 얼굴을 자신의 가슴에 묻으며 콧소리로 말했다.

"으으응.... 아무것도 아니옵니다. 다만 전서구 몇 마리가 병들었다고......."

"겨우 그깟일 때문에... 허억!"

채화봉은 눈을 크게 떴다. 마침내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몸 한부분에서 무엇인가가 세찬 속도로 빠져나갔기 때문이었다.

"무... 무슨 짓이냐 이것이?"

의전단의 집무실로 들어섰던 황삼육은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았다. 의전단 소속의 팔선개 중 다섯 명이 느닷없이 싸늘한 눈초리로 황삼육의 앞을 막은 것이었다.

"이... 이런 간사한!"

황삼육은 여인들을 노려보며 분노성을 터뜨렸다. 그는 그렇잖아도 평소에 의전단 소속의 팔선개들을 요사스럽다고 느끼고 있었다. 

황삼육의 생각에는 팔선개가 의전단에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들은 사소한 일로 개방 총타를 돌아다닐 적에도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는 차림을 했다. 뿐만 아니라 아무에게서나 요기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막말로 표현하자면 팔선개들은 저잣거리에서 몸을 파는 기녀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방도들을 대하는 팔선개의 콧대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비켜라! 꼭 단주를 만나야겠다!"

"안 됩니다. 돌아가 계시면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팔선개의 표정이나 행동은 평소답지 않았다. 여인들은 싸늘한 눈초리로 황삼육을 쏘아보고 있었다. 뜻밖에도 그 눈빛 속에는 살기가 스며 있었다.

"왜 안 된다는 거냐?"

"단주님은 지금 연공 중이십니다."

"그럼... 기다리겠다!"

"돌아가서 기다리십시오."

"뭣이?"

황삼육은 더이상 참지 못했다.

"힘으로라도 뚫고 들어 가리라!"

파파팍!

찰나지간 그는 쌍장을 휘둘렀다.  

"앗!"

놀란 여인들이 뒤로 추춤거렸다. 황삼육은 바로 그 틈을 이용하여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앗! 이... 이럴 수가!"

그는 방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차마 못볼 것을 보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벌거벗은 남녀 한 쌍이 극치의 순간을 맞고 있었다. 그 모습은 지극히도 동물적이었다. 

"이... 이런!"

황삼육은 분노심과 혐오감 때문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남자는 분명 의전단주 채화봉이었다. 그는 벌거벗은 채로 한 여인을 올라타고 있었다. 여인은 바로 흑녀였다. 

아니, 그것은 여인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시커먼 원숭이나 성성이에 불과했다. 황삼육의 관점에서 보면 분명 그랬다.

채화봉은 막 절정의 환희를 느끼는 듯했다. 그는 부릅뜬 눈으로 허공을 노려보며 벌거벗은 몸뚱이를 뻣뻣이 경직시키고 있었다.

"......!'

황삼육은 아직 동정(童貞)이었다. 그런만큼 그의 충격은 컸다.

"이... 이... 더러운!"

황삼육은 열화같이 분노했다. 그는 앞뒤 가리지 않았다. 그는 재빨리 허리춤에서 타구봉(打狗棒)을 뽑아 들었다. 인간같지도 않은 두 년놈들을 찢어죽일 심사에서 였다.

바로 그때였다.

푹! 푸욱! 팍!

황삼육의 등뒤의 사혈(死穴)에 비수 세 자루가 깊숙이 꽂히는 것이었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연이어 한 쌍의 섬섬옥수가 뻗어나왔다. 섬섬옥수는 황삼육의 두개골을 부수어 버렸다. 

뒤따라 들어온 여인들이 일제히 그에게 살수를 뻗친 것이다.

"......!"

황삼육은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황삼육은 흐느적거리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바로 그때였다.

"허... 억!"

채화봉은 턱까지 차오른 긴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는 여체 위에서 무너지듯 떨어져 내렸다. 

"휴우......."

그는 탈진해 있었다. 그러나 매우 행복한 표정이었다. 채화봉은 잠시 눈을 감고 가쁜 숨을 고르는 것이었다. 

잠시 후 그는 여인의 젖가슴에 매달린 유실을 만지며 말했다.

"내 평생... 요즘같이 행복한 적이 없었다. 모두 너희들 덕분... 끄윽!"

문득 그는 말을 끊었다. 그리고 단말마의 신음을 토해냈다. 바로 그때였다.

주르르.......

그의 입으로부터 시뻘건 핏줄기가 냇물처럼 흘러내렸다. 어느새 그의 입 속에 시퍼런 칼날에 삐어져 나와 있었다. 흑녀가 그의 뒤통수를 단검으로 쑤셔박은 것이다.

툭.

채화봉은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그는 자신이 왜 죽는지도 모른 채 죽어버린 것이다.

"호호홋! 이제 시작이다!"

흑녀는 웃음을 터뜨리며 일어섰다. 터질 듯이 풍만한 그녀의 시커먼 젖가슴에 채화봉의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두 알의 유실도 충혈된 그대로였다.

"호호호호! 모든 것이 계획대로다."

"성공이야!"

어느새 팔선개는 모두 모여들고 있었다. 그녀들은 깔깔거리고 웃었다.

문득 한 여인이 웃음을 멈추었다. 그녀는 다른 여인들을 돌아보며 차디차게 말했다.

"이제 때가 왔다. 우리 요화문(妖花門)이 그동안 숨어 살던 곳으로부터 나올 때다!"

다른 팔선개의 얼굴에 만족스런 웃음이 어렸다.

"호호홋! 이제 팔로혈륜대에게 전서구를 날려라. 우리는 그동안 개방의 분타록을 모두 베꼈고, 기밀을 몽땅 흡수했다. 호호...! 뿐만 아니라 소식을 단절시켰으니 총단에는 허수아비에 장님들만 남아 있는 셈이다."

흑녀. 그녀는 팔선개 중에서 가장 뛰어난 여인이었다. 

푸드드득!

비둘기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모두 여덟 마리였다. 

여덟 마리의 전서구는 먹장구름이 가득 몰려드는 음산하고 컴컴한 하늘을 가르며 팔방으로 날아갔다.

휘이... 잉... 휘잉.......

무거운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었다. 세찬 폭우가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했다.

신주제일룡 사유성. 

사풍객을 천추신검으로 물리친 그는 마침내 정도연맹의 맹주자리에 올랐다. 사유성은 맹주가 되기가 무섭게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백도제파는 그에게 모든 것을 일임했다. 

우선 그는 정도맹을 정리해서 대광명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후 광명회에 가입한 백도문파의 숫자는 무려 칠백파가 넘고 있었다. 

중원의 대강남북을 비롯하여 심지어는 변황, 남만, 동해, 남해문파까지 가맹했다. 무림사상 전무후무한 대연합지회(大聯合之會)가 탄생한 것이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 정도(正道)의 혼은 스러지지 않는다!

...... 정도지기(正道之氣)가 찬란히 불타리라!

신주제일룡 사유성이 인솔하는 광명지회는 무림의 희망이자 등불이었다. 정도맹의 사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드높았다.

......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다! 대혈륜궁 따위는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그런 의기양양한 소리가 나돌았다. 당연히 그런 말이 나올만도 했다.

칠백백도제파연합지회(七百白道諸派聯合之會)인 대광명회는 소림에 자리 잡았다. 숭산 소림사는 그야말로 철벽이었다. 

이제 소림에 상주하는 고수들의 숫자만 해도 삼만이 넘었다. 소림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이었다. 

대혈륜궁이 아무리 집마궁(集魔宮)이라 해도 이제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각파의 지존들은 연일 소림에 모여 천하대계를 짰다. 마도를 영원히 씻어버릴 대계를.

개방(  ).

개방은 소림 다음으로 강했다. 그들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개방 방주인 신풍마취개(神風魔醉 ) 백리천후(百里天候)는 대광명회에서 구대광명대존자(九大光明大尊子)라는 중직에 있었다. 

구대광명대존자는 구파일방의 장문인들로 이루어진 최고 신분이었다.

밤.

모든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 그것이 창조의 역사이든 파괴의 역사이든 말이다.

그러나 오늘밤은 여느 밤과는 달랐다. 오늘따라 유난히 어두운 밤이었다. 또한 괴기스럽기도 했다. 

그것은 하늘을 잔뜩 뒤덮은 먹장구름 탓만은 아니었다. 오늘 밤은 세차게 불던 바람도 숨을 죽이고 있었다. 먹장구름은 이제 더이상 움직일 기미조차 없었다.

공기는 끈적끈적했다. 마치 피비린내를 잔뜩 머금은 것처럼. 

사람들은 이런 날 밤 깊이 잠들지 못하는 법이다. 악몽을 꿀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방의 총단에게는 이런 밤의 악몽도 겁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끈적거리는 어둠 속에서도 깊이 잠들어 있었다. 삼천여 명에 달하는 개방도들은 대부분 잠에 취해 있었다. 

삼경(三更) 말이었다.

개봉부 외각에 위치한 공자대묘의 개방총단은 정적에 싸여 있었다. 

별빛 하나 보이지 않는 칠흑의 밤이었다.

휘리링.......

잔뜩 숨을 죽이고 있던 바람이 또다시 불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변덕스러운 날씨가 아닐 수 없었다. 

그때였다.

사사사삭.......

풀잎을 스치는 것같은 미세한 소리가 개방총단의 팔방으로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바람은 더욱 거세게 불었다.

휘이... 이잉... 잉.......

습기를 잔뜩 품은 바람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들리는 미세한 소음은 바람소리마저 눌러버리는 것이었다.

스스스슥.......

개방총단에 기거하는 개방도들은 최하가 삼결이었다. 그 중에도 경비는 주로 사결제자가 맡고 있었다.

공자묘 동쪽.

이황(李皇)과 당량(唐亮)은 개방 총단의 사결제자(四結弟子)였다. 그들은 동편의 영인문(永人門)쪽의 경비를 맡고 있었다. 

"아흠! 자꾸 졸리군. 쯧쯧 웬 바람이 이리도 부나?"

이황이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저 시커먼 구름을 보게. 곧 비가 올 것 같은데?"

당량의 말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이황은 문득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는 어둠에 휩싸인 전방을 노려보았다. 그는 들었던 것이다. 바람소리와는 또 다른 미세한 소리를.

그것은 정체불명의 소리였다. 하지만 분명히 자연적인 소리는 아니었다. 

"응?"

이황은 허리춤의 타구봉을 움켜 잡았다.

"왜 그러나?"

당량이 물었다.

"가만... 저 소리......."

"......?"

당량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가 난다고? 엇!"

그는 안색이 변했다.

사사사삭.......

마침내 당량도 그 소리를 듣고 말았다. 그것을 듣는 순간 당량은 오싹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사방팔방으로부터 물밀듯이 밀려오는 소음들 속에는 기이하게도 살기까지 느껴졌던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

이황과 당량의 눈에 공포이 빛이 떠올랐다.

"저... 저것은!"

"아아!"

그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침내 그들은 보았던 것이다. 

칠흑의 어둠 속에서 구름처럼 몰려드는 인영들을. 인영들의 수는 헤아릴 수가 없었다. 

"헉! 적이다!"

"빨리 연락을!"

이황과 당량은 사색이 되어 부르짖었다. 

이황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급히 신호용 활을 잡았다. 바로 그때였다.

쌔액!

무수한 한성(寒星)들이 어둠을 뚫고 날아들었다. 한성들은 이황과 당량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왔다. 

"아아악!"

그들은 삽시에 무수한 비도, 자오정, 비전, 철비표 따위에 고슴도치가 되어 쓰러졌다.

"우우......!"

수없이 많은 인영들이 이황과 당량의 시신을 밟고 밀려들었다. 그들의 입에서는 음흉한 괴성이 끝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서쪽.

"으으!"

두 명의 개방 사결제자는 각기 머리통이 으스러진 채 쓰러졌다. 그 시신을 짓밟으며 괴영들이 물밀듯이 총단으로 날아들었다.

달빛 한 점 없는 밤이었다.

쌔애액!

"큭!"

남쪽에서도 죽음은 어김없이 찾아들었다. 

졸음을 쫓기 위해 장기를 두던 제 십구(十九) 초소의 사결제자 두 명은 여지없이 고슴도치가 된 채 나동그라졌다. 그 위를 마의 폭풍처럼 무수한 괴영들이 넘어갔다.

북쪽.

"겨... 경종을 쳐라!"

"아... 알겠네."

북쪽 초소의 사결제자 두 명은 죽음의 사자들처럼 밀려오는 괴영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급히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한 마장쯤 안으로 들어가면 비상시 치도록 경종이 설치된 종각(鐘閣)이 있었다. 

남천(南泉)과 곡풍(曲風)은 급히 종각 안으로 뛰어 올라갔다.

"빠... 빨리 치게!"

남천이 급히 재촉했다. 그때였다.

"호호호! 두 분 잠깐만 기다리세요."

느닷없이 교태로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경종 뒤로부터 한 여인이 사뿐사뿐 걸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팔... 팔선개!"

남천과 곡풍은 깜짝 놀랐다. 

경종 뒤에서 나타난 여인. 그녀는 바로 의전단 소속의 팔선개 중 하나였다. 

"......?"

남천과 곡풍은 어리둥절해 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 시각에 팔선개가 이곳에 있을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따지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비...비키시오! 적들이 침입해 오고 있소! 빠... 빨리 종을 쳐야 하오!"

곡풍은 다급하게 외쳤다. 이어 그는 종을 치기 위해 망치를 들었다. 그때였다.

"호호... 잠깐만요. 뒤를 보세요. 뒤에 방주님께서 오셨으니 안심하세요."

"바... 방주께서!"

"아아!"

남천은 희열에 찬 표정을 지으며 뒤로 돌아 섰다. 곡풍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그 순간,

"크...아...악!"

두 사람은 비명과 함께 나동그라졌다. 

그들 두 사람이 고개를 돌리는 즉시 본 것은 개방주의 위엄있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들은 어둠보다 더 시커먼 황천(黃天)의 문을 본 것이었다.

두 사람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등뒤에 서 있던 여인의 옥수가 번개처럼 뻗어 옥침혈을 부수어 버린 것이었다.

쿵! 쿠웅......!

혼을 잃은 남천과 곡풍의 몸뚱아리가 경종 아래의 돌계단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들은 자신들이 왜 죽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죽어버리고 말았다.

"호호호호......!"

두 사람의 까닭모를 죽음을 애도(?)하듯 여인의 교태로운 웃음이 먹구름 뒤덮인 하늘로 울려퍼졌다.

쉬이이익... 펑!

개방 총단의 사방으로부터 긴급을 알리는 불꽃이 솟아 올랐다. 그것은 개방이 존망(存亡)의 위기일 때만 쏘아 올릴 수 있는 불꽃신호였다.

그러나 모든 것은 이미 늦은 후였다.

콰르르릉.......

궁선루(窮仙樓)의 전각이 통째로 허물어져 내렸다. 그곳은 개방 역대 방주가 기거하는 곳이었다.

"크윽! 이... 이럴 수가... 너희들이 왜......?"

화염에 뭉그러진 궁선루로부터 한 노개(老 )가 뛰쳐나왔다. 그는 이미 피투성이가 된 채였다. 그의 어깨의 매듭은 여덟 마디 였다. 노개의 용모는 경악스러웠다. 

그는 칠 척이 넘는 거구에다가 호랑이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주먹은 무쇠솥만했다. 그는 일백 근이 넘어 보이는 철장(鐵杖)을 쥐고 있었다.

노개는 바로 개방의 수호신이라 불리는 용호풍운(龍虎風雲) 사신개(四神 ) 중의 하나였다. 그는 바로 호백신개(虎魄神 )였던 것이다. 

그는 개방주와는 동문 사형제였다.

그는 용맹이 천하무적이었다. 

특히 외문기공(外門奇功)을 익혀 전신이 금강신(金剛身)이었다. 그는 개방방주 신풍마취개가 광명회에 있는 동안 방주직을 대행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깔깔깔......!"

갑자기 요상한 웃음소리가 호백신개의 좌우에서 들리는 것이었다. 

뒤를 이어 여덟 명의 여인들이 호백신개의 주위를 포위하는 것이었다. 흑녀 하나와 일곱 명의 중원여인이었다. 그들은 바로 팔선개였다.

"......!"

호백신개는 두 눈을 부릅뜨고 여인들을 노려보았다. 그는 전신에 분수같은 피를 흘리며 비틀거렸다. 

"호호호! 왜냐고? 이유는 단 하나다. 개방은 오랫동안 더러운 냄새를 풍겨왔기 때문이다!"

흑녀가 조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그녀는 팔선개 중의 우두머리로 대선개(大仙 )였다.

"으으... 너희들... 첩자였구나!"

호백신개의 몰골은 참혹했다. 그는 이미 전신 팔대사혈(八大死血)에 여인들이 머리에 꽂는 비차가 꽂혀 있었다. 팔선개의 암습에 당한 것이다.

"호호호호! 알아도 이미 늦었다. 우리는 요화문의 문도들이다."

대선개가 조소했다. 호백신개의 눈이 튀어 나올 듯 부릅떠졌다.

"으윽! 더럽고 천한 계집들... 감히... 우아아악!"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팍! 파팟!

호백신개가 힘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 순간 그의 전신은 두 배로 커지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여덟 개의 비차가 모두 튕겨 나오는 것이었다.

"천한 계집들! 가랑이를 찢어 죽이겠다!"

호백신개는 괴성을 발했다. 이어 그는 솥뚜껑만한 손바닥을 휩쓸었다.

호백신개의 장심에서 태산같은 경기가 뻗어나갔다.

위이잉...! 우... 웅.......

"피... 피해라......!"

"으악!"

요화문도들은 추풍낙엽처럼 날아갔다. 

그녀들은 호백신개의 위용과 신공을 도저히 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음산한 음성이 시커먼 허공 위에서 들려왔다.

"ㅋㅋㅋㅋ...! 호백. 오랫만이다!"

동시에 허공에서 시뻘건 화염에 싸인 괴영이 떨어졌다.

"추... 축융마제(祝融魔帝)! 네 놈이... 살아 있었다니?"

호백신개는 대경실색했다. 

화르르륵!

축융마제가 땅에 내렸을 때였다. 화끈한 열기가 사방 십 장을 태우듯이 휘몰아쳤다.

축융마제.

그는 바로 마도삼전(魔道三殿) 중 축융전의 전주였다. 

그는 과거 대마성의 붕괴 때 죽었다고 알려졌던 거마였다. 그런 그가 호백신개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일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ㅋㅋㅋ 여기 빙백수라신마(氷魄修羅神魔)도 있다!"

돌연 허공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휘이잉.......

그 음성은 만년빙풍(萬年氷風)이 휘몰아치는 듯했다. 뒤이어 새하얀 서리와 함께 빙무(氷霧)가 날아왔다.

빙백수라신마. 그 또한 마도삼전 가운데 빙백전의 전주였다. 

"크으으... 마... 마도이전(魔道二殿)이 되살아 나다니!"

호백신개는 실색했다. 

"거령신장(巨靈神掌)!"

그는 즉시 폭갈과 함께 쌍장을 휘둘렀다. 여차하다가는 두 거마에게 목숨을 잃을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태양열폭강(太陽熱爆 )!"

"빙백수라참혼강(氷魄修羅斬魂 )!"

찰나지간 구 거마의 입에서 동시에 폭갈이 터졌다.

콰르르... 콰쾅!

엄청난 굉음 속에 화광과 빙강이 작렬했다. 

"크아... 아악!"

누군가의 입으로부터 참혹한 비명이 터졌다. 그것이 전부였다. 오래지 않아 서서히 빙강과 화광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

패한 자는 호백신개였다. 

호백신개는 이미 숨이 끊긴 후였다. 제 아무리 금강신의 몸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소용이 없었다. 그의 몸 오른쪽 부분은 새까맣게 숯이 되어 있었다. 왼쪽 부분은 얼음처럼 얼어붙은 채로 흙 속에 파묻혀 있었다.

"크크크크......!"

축융마제와 빙백수라신마는 호백신개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괴소를 흘렸다. 

스스스스.......

이어 그들은 또 다른 피맛을 보기 위해 암천을 날아 올랐다. 

개방은 철저히 도륙되고 있었다. 곳곳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번쩍... 화르르르!

화광은 곳곳에서 충천했다.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우르르릉... 쾅.......

여기저기서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굉음이 이어졌다. 

개방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호백신개와 만리운개(萬里雲 )가 개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개방의 수호신인 사신개 중 이신개가 비명 속에 죽은 것이다.

마도들이 일으킨 살육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무적태풍백팔의개(無敵颱風白八義 ). 

개방의 중추역할을 하던 무적태풍백팔의개가 손 한 번 써보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전멸하고 만 것이다.

삼십육천강탕마개(三十六天 蕩魔 ),

칠십이지살철혈개(七十二地煞鐵血 ),

십팔타마개(十八打魔 ),

팔대수호사자신개(八大守護獅子神 ).......

그야말로 쟁쟁한 무명(武名)을 자랑하던 개방의 정예들이 비명 속에 피를 뿌렸다.

달도 없는 칠월 그믐날 밤이었다. 

마침내 하늘도 비통함을 금할 길이 없었던 것일까?

번...쩍!

우르릉... 콰쾅!

먹장구름이 소용돌이치더니 뇌전(雷電)이 일고 벼락이 쳤다. 

섬전 속에 개방의 총단이 드러났다. 그 광경은 참혹했다. 정녕 아수라의 지옥도 그보다는 나을 듯했다. 그 외에 달리 무엇으로도 그 참혹함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개방 총단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었다. 

잿더미 속에 나뒹구는 삼천의 의개(義 )들의 참혹한 시신 위로 벼락이 떨어졌다.

콰콰콰쾅!

뒤이어 천지개벽하듯 장대같은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쏴아... 쏴아아아......!

마침내 우기가 시작된 것이다. 

오랜 가뭄 끝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중원산하를 온통 떠내려 보낼 듯한 엄청난 폭우였다.

쏴아아... 쏴아아아아......!

하지만 그 비는 그냥 폭우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중원을 피로 물들이려는 혈우(血雨)의 시작일 뿐이었다.

- 다음 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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