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태동 (1)
환상이 보였다. 머리가 잘려나간 몸이 보였다. 희미한 빛이 어린 동공으로 뿌연 영상이 들어오고 있었다. 아직도 온기가 사라지지 않은 시체의 손이 보였다. 그 손에는 볼품없는 구릿빛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그는 그것을 향해 힘껏 손을 뻗었다. 닿지 않는 환영을 쫓듯.
그것에 손이 닿는 순간, 눈꺼풀이 밀려 올라갔다.
“꿈이었구나.”
악몽은 도둑고양이처럼 찾아왔다. 황제의 보랏빛 망토를 걸친 채로 영웅이 되어 세상을 호령하는 것이 어찌 악몽일까만 목이 잘린대야 황제도 별수 없었다. 자신이 목 없는 귀신이 되는 꿈이 악몽이 아니라면 무엇이 악몽일까. 언제나 날카로운 칼이 목에 떨어지는 순간에 잠이 깨곤 했다.
목을 매만지니 식은땀이 흥건했다. 땀을 너무 많이 흘린 탓인지 목이 탔다. 시녀가 가져다 놓은 물을 한 모금 마시자 정신이 들었다. 아직도 목이 잘려나간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꿈을 꾼 이후로 편히 잠이 든 적이 없었다. 끝없이 되풀이되는 악몽이다.
하지만 평범한 악몽은 아니다. 악몽을 꿀 때마다 기이한 기억과 지식이, 입에 맞지 않는 괴이한 언어가 익숙해졌다. 악몽을 꾼다고 듣도 보도 못한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면 평범한 꿈일 리 없다.
그래. 평범한 꿈은 아니다.
“그저 꿈일 뿐이야. 그저.”
애써 스스로를 기만했다. 그리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다. 겨우 자리에 다시 누운 채로 이불을 당겼다. 어두운 밤은 아직 길었다.
이른 아침의 햇살이 채광이 잘 되는 창을 넘어 미끄러지듯 스며들었다. 부드러운 여인의 손길처럼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햇빛에 기분 좋은 미소를 흘렸다. 이불을 끌어당기며 다시 꿈자리로 돌아가려는 몸을 무언가가 흔들었다.
“공자님, 공자님. 일어나셔요.”
“으으. 조금만.”
“오늘은 시전에 나가실 거라고 말씀하시었잖아요. 그만 일어나셔요.”
소년은 고개를 모로 틀며 그 집요한 손길을 피하려 했지만 끝내 이기지 못해 눈을 뜨고 말았다. 평화로운 아침을 방해한 사람은 탐스러운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였다. 그녀는 작고 갸름한 얼굴에 동그랗게 뜬 큰 눈이 인상적인 인형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귀엽다기보다 예쁘다는 느낌을 주는 시녀는 그에게 익숙한 사람이었다.
‘유하였구나.’
유하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소꿉 친구였다. 자주 보기 어려운 부모님들이나 여동생들과 달리 그녀만큼은 언제나 그 곁에 머물러 있었다. 이제는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그건 그렇지만 아침에 흔들어 깨우는 것만큼은 달리해주었으면 싶다.
그녀의 공격을 견디지 못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기지개를 쭉 펴며 일어났다. 소년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서야 유하는 향로에 넣고 태우던 침향 위로 물을 조금 부었다.
유하가 가져다놓은 세숫대야로 얼굴을 닦고 면경을 보며 머리를 대충 정리했다. 그사이 말끔하게 정돈된 옷가지가 침대 옆에 놓였다. 옷가지는 언제나 그가 즐겨 입는 백의 문사 복이었다.
“어서 옷부터 입으셔요.”
유하는 이부자리를 툭툭 털어 정리하고 세숫대야를 발에 닿지 않는 곳으로 옮기며 말했다. 그녀가 문사 건을 꺼내 오는 동안 소년은 침의를 대충 벗어내고 주섬주섬 옷가지를 걸쳤다. 옷소매에 손을 넣는 동안 유하는 옷에 달 옥패와 외출용 비단 주머니를 챙겼다.
백의 문사 복을 걸치고 나니 유하가 부채를 건네주었다. 손에 딱 맞는 부채를 움켜쥐고는 아직 아무것도 쥐지 않은 손을 내밀었다. 그제야 그녀가 ‘아’ 소리를 내며 비단 주머니를 건네주었다. 사향 주머니를 달지 않고서는 외출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소년은 주머니를 차고 나서야 문사 건을 둘렀다. 유하가 그 모습을 확인하더니 문을 열고 앞장을 섰다. 날씨는 화창했고 하늘은 푸르렀다. 소년은 가슴을 쫙 벌리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유하는 종종걸음으로 앞장서 걷다 소년이 멈춰 선 것을 보고 꽃신을 멈췄다.
“공자님, 어서 가셔요.”
포석이 깔린 회랑을 따라 걷다보니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소년의 머리칼을 흔들었다. 때마침 고개를 숙여 예를 표시하고 옆으로 비켜가던 여자들이 ‘사향 냄새’를 맡고는 볼을 붉혔다. 장원에서 소년의 인기는 꽤 괜찮은 편이었다. 거부의 아들이라서 인기가 많은 것은 아니다. 실은 잘 관리된 외견이 점수를 더 끌어냈다.
“아. 공자님 주변에서는 언제나 묘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아. 특별한 향유라도 발라두신 걸까?”
“무슨 소리. 공자님은 원래 깔끔한 분이야.”
시녀들의 소란을 뒤로하고 부채를 펼쳐 살랑살랑 턱밑에서 흔들었다. 유람이라도 나온 한량의 모양새라 조금 유치하긴 했다. 유하는 이쪽을 보고는 ‘공자님, 얼른이어요.’라며 소년을 재촉했다. 소년은 시녀들에게 한 손을 들어 답례하고는 유하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내원과 외원을 나누는 작은 해자를 건너자 외부인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집안 여성들의 출입이 제한된 곳인 만큼 방문자들은 모두 나이가 있는 남성들이었다. 개중에는 관모를 쓴 채 거드름을 피우는 관료들도 있었다. 썩은 버러지들. 그들을 보니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관료들은 부패한 제국이 낳은 고름이요, 오물의 구더기였다. 아니 구더기만 못했다. 최소한 구더기는 변이라도 먹어서 치워주는 공이 있었다. 관료들은 언제나 상인들을 제 손에 든 돈주머니 정도로 여기며 갖가지 명목으로 뇌물을 요구하는 썩은 무리들이었다.
“향아! 향아!”
유하는 소년이 관료들을 바라보는 사이에 외원에서 심부름을 하는 아이를 불렀다. 금세 삼단처럼 검고 고운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가 쪼르르 뛰어왔다.
“네, 유하 아가씨.”
“공자님께서 외출을 하실 것이니 문 어른께 가서 장정 넷과 교자 하나만 준비해 달라고 말씀드려라. 교자에는 비단 방석을 깔고….”
“잠깐만. 교자는 왜?”
소년이 대화에 끼어들자 유하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또 공자가 이상한 소리를 할 모양이었다. 유하가 당황하는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절로 나왔다. 유하는 ‘평상시’대로 준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기지개를 쭉 펴고는 그녀가 전혀 생각지도 않은 말을 불쑥 꺼냈다.
“오늘은 날씨도 좋잖아. 걸어가면 좋겠어.”
“하, 하지만 공자님. 그러시면 많이 걸으셔야 하지 않으셔요?”
유하는 ‘제발 소녀의 말대로 해주셔요.’라는 표정을 팍팍 내비치며 타이르려 했다. 하지만 이쪽의 고집은 유하가 어찌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괜찮아. 오늘은 좀 걸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호만 데려가자.”
“호 아저씨만 데리고 가셔요?”
“응. 호는 충분히 무공도 강하잖아.”
유하는 부드러운 천에 감싸인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호씨는 오씨 가문이 고용한 무술인 중 한 사람이었다. 공자와 죽이 잘 맞아 경호를 맡아 외출을 하는 일이 잦았는데, 이번에도 호씨 한 사람만 데려간다고 하니 유하는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당혹스런 심정이었다. 이 소년의 신분이 평범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공자님은 천하에서 제일가는 부자, 오유도 대인의 장남이시라고요. 그런 분이 경호원 한 사람만 데리고 외출이시라니!’
유하는 차라리 미쳐버리고 싶었다. 다른 시녀들은 진즉에 포기하고 공자의 말을 따른다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었다. 아니 그럴 수 없는 위치였다. 공자의 생모인 이씨 부인이 친정에서 데려와 ‘소년’만을 위해 기른 시녀였기 때문이다. 이대로 외출했다간 부인에게 무슨 소리를 듣게 될지 몰랐다. 울 수만 있다면 울고 싶었다.
유하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년이 직접 향이에게 말했다.
“향아. 가서 호를 데려 오거라.”
“예, 공자님.”
향이 시녀와 공자 중 누구의 말을 들을지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유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럴 줄 알고 이른 아침부터 공자를 깨워 정신없는 상태에서 교자에 태워 시전으로 나갈 생각이었는데, 공자는 눈을 말똥말똥 뜨고 제 의견을 또박또박 말하고 있었다. 생각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그럼 가자. 호는 곧 따라올 테니까.”
소년은 느긋한 표정으로 앞장섰다. 유하는 끙끙 앓는 소리를 내다 뒤로 따라붙었다. 그래도 명가의 훈육을 받은 시녀답게 기품 잃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오씨 가문의 장원은 웬만한 나라의 궁정보다 크고 화려한 것으로 유명했다. 발걸음이 그리 빠른 편이 아니라곤 하지만 그것을 가로지르는 데만 30분이 넘게 걸렸다. 그 크기는 실로 위압적이라 말하기에 충분했다. 이 장원에 살고 있는 승도도 장원의 규모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곤 했다.
제국의 왕공이 소유한 사합원도 이 장원의 크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비교한다는 자체가 미안할 정도였다. 인공 해자를 파고 웬만한 저택 한 채보다 큰 연못을 조성하고 수십 미터 높이의 인공 산을 만드는 그 ‘거대함’을 어찌 소박한(?) 왕공의 거처에 비교하겠는가.
그 화려함도 궁중에 뒤지지 않았다. 값비싼 비단을 값싼 무명천보다 흔하게 볼 수 있었고, 한 잔에 금화 1닢을 주어야 마실 수 있는 최고급 차를 물마시듯 마실 수 있었다. 정원을 장식한 돌이며 나무 어느 것 하나 값싼 것은 없었다. 심지어 식기로 쓰는 도자기조차 서역에서는 금화 100닢을 호가하는 것들이었다.
그런 가문의 후계자로 나고 자랐으니 물질에 전혀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다. 주머니에 금화가 떨어지는 일이 없었고 가지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특별히 사치를 부리고 싶다는 생각을 품진 않았다. 상인에게 있어 절제와 중용은 언제나 가까이해야 하는 가르침이었다.
외원을 지나자 큼지막한 담벼락이 모습을 드러냈다. 흡사 성벽을 보는 듯 5m 높이로 세워진 외벽은 압도적인 느낌마저 주었다. 대문으로 다가가자 향의 말을 듣고 부리나케 먼저 달려와 기다리고 있던 호씨가 있었다.
그는 이쪽을 발견하고는 두 손을 모아 포권하여 예를 표시했다. 승도는 그의 인사를 받고는 단단한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며 앞장섰다. 호는 호위를 위해 두 걸음 떨어진 위치에서 뒤따랐다. 유하도 뒤편으로 물러서서 거리를 두려 하는 눈치라 얼른 손짓을 했다. 그제야 유하가 한숨을 푹 쉬고는 곁으로 다가왔다.
장원을 나서자 별천지와 다름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잘 포장된 도로와 보기에도 시원스럽게 정리된 저택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었다. 모두 오씨 가문의 상단에서 일하는 상인들의 집들이었다. 이 일대를 가리켜 ‘오씨 왕국’이라고 부르는 말이 빈말은 아니었다.
잘사는 자들의 동네라 그런지 길가에서 마주친 아이들은 모두 비단옷에 옥으로 만든 노리개를 가지고 있었다. 가끔은 서역에서 들어온 기계 장난감과 인형 따위를 가지고 노는 아이들도 볼 수 있었다. 쾌활하게 웃으며 거리를 뛰노는 아이들을 지나쳐 걷기를 1시간. 승도의 눈앞에 세상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승도는 오래전에 상관 거리를 구경하다 그 번화함에 크게 놀란 적이 있었다. 그곳에 쌓인 상품만 은화 5천만 닢이 넘는다는 그 부는 웬만한 국가가 가진 경제력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단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숫자를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직접 돌아보고서야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거대한 동방 전체를 통치하는 제국 ‘신’이 서역 국가들을 향해 유일하게 개방한 항구, 강주의 상관 거리였기에 그런 번영이 가능했던 것이다. 머나먼 서역 국가들로 수출하는 차와 도자기, 비단 등이 이 상관에 모였다 서역인들에게 팔렸다. 그들이 가져온 향신료와 모직물, 면포는 상관을 거쳐 제국 전역으로 팔렸다.
그 과정에서 상관에 쌓이는 이익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 상관의 주인이나 다름없는 13명의 거상 중 한 사람인 그의 아버지 오유도가 쌓은 부가 그것을 증명해 주었다.
발을 디딘 도로는 물 한 방울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촘촘하게 포석이 깔려 있었고 오물 하나 없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골목마다 관병들이 수시로 순찰을 돌았고 제국 안에서 보기 힘든 마차가 수백 대나 쉴 새 없이 오갔다.
유하나 호씨는 정신없는 와중에도 승도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그를 따라가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었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이것저것 둘러보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상품들은 일정한 주기마다 새로운 것들이 등장했고, 그런 것들을 찾아보는 것은 그의 도락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 것은 제때 봐두지 않으면 금방 놓쳐버리기 일쑤였다.
이를테면 도자기가 그랬다. 지금까지 유행한 전통 자기 대신 채색 자기가 상점가를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채색 자기도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달랐다. 어제 난을 수놓은 것이 유행했다면 오늘은 서역의 풍물을 그려 넣은 것이 유행하는 식이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그 풍물의 변화를 보는 것은 그래서 즐거웠다.
경물을 구경하며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던 승도는 어느 상점 앞에서 익숙한 느낌을 받고 발걸음을 멈췄다.
그의 눈길을 끈 것은 사실적으로 경물을 묘사한 특이한 그림이었다. 산수화를 좋아하는 이 나라 ‘신’과는 전혀 다른 화법과 기풍으로 그려진, 이질적인 색감의 그림.
그 그림에 들어간 아이의 모습은 신제국의 가난한 빈민의 것이었지만 그림 자체는 분명 서역의 화풍을 따르고 있었다. 문득 호기심을 느끼고 상점 주인을 불렀다.
“흠흠, 주인은 있는가?”
“예에, 나갑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상점 안에서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대머리 사내가 쏜살같이 달려 나와 손을 비볐다. 그러다 승도의 얼굴을 보고 멈칫했다. 어린 소년이 무슨 안목이 있어 그림을 사겠느냐는 의구심이 주인의 얼굴에 맴돌았다. 그러다 값비싼 의복을 보고서 친절한 얼굴로 바뀌었다.
그 변신은 촌각을 다투는 찰나에 이루어진 것이어서 그 직업 정신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게 하였다.
승도는 그것을 확인하고 그림을 가리키며 눈을 잡아끈 ‘화풍의 주인’에 대해 물었다.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데 이 그림을 그린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겠나?”
상점 주인은 당연히 그자를 알고 있었다. 종종 그림을 팔러 오는 화가였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사내는 사근사근한 말투로 대답했다. 돈푼깨나 있어 보이는 댁의 공자님 같으니 환심을 사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그림을 그린 사람은 용씨 형제입니다.”
“용씨 형제?”
“예에. 서역에서 온 선교사로부터 그림을 배운 뜨내기들입죠. 기이한 서역 그림을 잘도 그려서 이 상관을 방문한 서역인들이 자주 그 친구들 작품을 찾습니다요.”
상점 주인의 말에 승도의 얼굴이 펴졌다.
“자네가 아는 화방에 그 친구들이 있는가?”
“그렇습니다요.”
“그 화방의 위치를 알려 주겠는가?”
“여부가 있겠습니까? 관리관의 앞으로 돌아서 나루 쪽으로 백 걸음만 걸으면 용씨 형제의 화방이 나옵니다요.”
대답은 만족스러웠다. 승도는 상벌이 확실한 성격이 있었기에 유하에게 동그라미를 그려보였다. 그러자 유하가 상점주인 앞으로 나섰다.
웬 아리따운 아가씨가 가까이 다가오자 상점 주인은 잠시 당황했다. 그러다 여자가 소년의 시녀라는 사실을 깨닫고 조금 더 정중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이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를 시전에 데리고 다닐 정도의 부자라면 그 신분이 녹록한 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유하는 주머니에서 은화 1닢을 건네주었다. 그 ‘씀씀이’에 대머리 사내는 허리를 굽혔다. 간단한 질문에 대답을 해준 것만으로 은화를 주는 사람이라면 그럴 이유가 충분했다.
승도의 얼굴에 만족감이 떠오른 것을 보았는지 유하가 귓가에 대고 조심스레 물었다.
“무엇이 그리 기쁘셔요?”
“그런 것이 있어.”
영문 모를 대답에 유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승도는 그녀의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대신 발걸음을 재촉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